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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재벌남 (42/94)


42화 재벌남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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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반응들이 대단했다. 한순간에 아기로 변한 반센트를 본 귀족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델리나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아이들도 어려진 반센트와 델리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어?”

코앞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노아와 아슈드는 이것이 속임수가 아님을 알았다. 노아는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고, 아슈드는 여전히 놀란 듯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응. 가문 비법.”

이윽고 델리나는 품에 있던 반센트를 도로 상자에 내려놓았다. 아기가 되었음에도 반센트 특유의 단조로운 얼굴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울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여기 잠깐만 얌전히 있어, 알겠지?”

아기 반센트에게 당부한 델리나는 다음 공연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그러자 자신의 차례임을 아는 듯 델리나와 눈을 마주한 노아가 씩 웃었다.

“그래서, 난 뭐 하는 건데?”

“네가 좋아할 법한 걸 준비했지.”

기왕 비싼 값에 고용을 했으니 그만큼 활용해 주는 것이 맞았다. 거대한 의자 하나를 낑낑대며 끌고 온 델리나가 의자에 노아를 앉혔다.

“넌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돼.”

의자에 앉은 노아는 귀족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옆에 선 델리나에게 노아가 소곤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거면 기대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럼, 너무 좋아서 울지나 말고.”

확신에 차 답한 델리나가 품 안으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목걸이였다. 목걸이 한가운데에는 작은 구슬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자, 잠시만 여기 목걸이에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델리나가 목걸이를 천천히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러자 귀족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목걸이에 쏠렸다.

“네. 이 목걸이를 계속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네, 숨을 천천히 내뱉다가 들이마시고……. 여러분들은 이제 제 암시에 서서히 걸려듭니다…….”

아무런 장치 하나 없이 능력을 쓰면 의심받을 것 같아서 생각해 낸 것이 목걸이였다. 물론 노아는 별 웃긴 걸 다 보겠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공연에 한껏 빠져든 귀족들은 델리나의 말을 경청했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이제 걸려듭니다……. 하나, 둘, 셋!”

<재벌남>

셋을 말함과 동시에 델리나가 빠르게 능력을 쓰자, 귀족들의 시선이 노아에게 쏠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귀족들의 눈빛이 변하더니 노아에게로 달려들었다.

“돈! 어서 제 돈을 가지세요!”

“보석! 제 보석이 더 좋은 보석이랍니다!”

“이 지팡이만큼 값나가는 게 없지요! 무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겁니다!”

노아 밑으로 몰려든 귀족들이 저마다 값나가는 물건들을 꺼내 노아에게 바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옷에 있던 보석을 뜯어내는 귀족들도 있었다.

“제 것을 가져가세요!”

“제 것도요!”

노아를 본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릎을 꿇고 돈과 보석을 바치기에 바빴고, 의자에 가려 노아를 보지 못한 귀족들은 그 모습을 경악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상황 한복판에 있던 노아는…….

“그래, 한 명씩 차례대로 해.”

아주 완벽하게 적응을 한 채 돈이며 보석을 바치는 귀족들을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노아의 모습을 본 델리나가 혀를 내둘렀다.

“저리 비켜! 나 먼저야!”

“누가 할 소리를! 내가 먼저 바칠 거야!”

물론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급기야 제가 먼저 바치겠다고 싸우는 귀족들을 보며 델리나가 다급히 목걸이를 흔들었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풀립니다. 하나, 둘, 셋!”

이윽고 델리나가 능력을 풀자, 정신을 차린 귀족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손에 들려 있던 보석이며 돈을 보며 놀라움과 경악이 섞인 탄성을 뱉었다. 그사이 의자에서 일어난 노아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자신할 만했네.”

“그렇지?”

“고용비 좀 깎아 줄게.”

“진짜?”

“그럼. 그 정도는 해 줘야지.”

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한 사람은 노아만이 아니었다. 델리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빛나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에드윈을 말이다.

“…….”

델리나는 애써 에드윈의 시선을 무시했지만 시선은 다른 곳에서도 오고 있었다. 에드윈과 마찬가지로 델리나를 향해 눈을 반짝이던 에스텔이 무언가를 수첩에 적었다. 델리나는 부디 저 수첩이 ‘인간 실험 수첩’ 같은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델리나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누구보다도 반응이 궁금한 이, 벨리온이 곧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델리나는 알 수 있었다. 가면 밑으로 보이는 벨리온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가 있다는 것을.

‘웃었어!’

벨리온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 델리나의 눈동자에 놀람과 뿌듯함이 떠올랐다. 동시에 자신감이 가득해진 델리나가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듯, 아슈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하려고?”

앞의 공연을 본 아슈드는 서서히 저에게 다가오는 델리나를 향해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한껏 여유가 생긴 델리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걱정 마세요. 이상한 건 안 시키고요. 전하께도 젠이랑 똑같은 능력을 걸어 줄 테니까요. 하고 싶은 거 몇 번 하시면 돼요.”

“나보고 저놈처럼 원숭이같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라고?”

“굳이 그런 거 안 하셔도 돼요. 단검 던지기나 이런 거 하셔도 되고요. 부담 가지지는 마세요. 그리고 인사만 잘해 주시면 돼요.”

앞서 보여 준 것만으로도 공연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황족인 아슈드가 공연에 참여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이슈가 되었다.

“이제 마지막 공연입니다.”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델리나가 아슈드에게 능력을 쓰려던 순간이었다. 순간 제 뒤에서 무언가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져서 델리나가 뒤를 바라보다가 경악했다.

으악!

어느새 상자 밖으로 기어 나온 반센트가 조금 전에 델리나가 들고 있던 총을 손에 쥐고 있었다. 반센트가 자연스레 방아쇠를 잡아당기자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총을 이리저리 휘두르기 시작했다.

“안 돼! 위험하니까 그거 얼른 내려놔!”

아슬아슬한 상황에 델리나가 급히 반센트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길게 뿜어져 나온 불길이 옆에서 놀고 있던 원숭이를 덮쳤다.

“끽!”

뜨거운 열기에 놀란 원숭이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고, 그 물건들은 연신 폴짝폴짝 뛰고 있던 젠의 머리통에 명중했다.

“!”

물건쯤이야 쉽게 피할 법도 하건만, 젠은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그 장면을 보던 델리나의 입이 벌어졌다.

‘설마……!’

“젠! 이제 내려와!”

아니나 다를까, 또 끓어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어다니던 젠은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젠의 반쯤 풀린 눈동자를 보고서 델리나가 외치자, 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물건이 젠의 얼굴을 직격했다.

“!”

얼굴을 맞음과 동시에 힘이 빠진 젠이 미끄러지듯 델리나 앞에서 쓰러졌다. 젠을 받아 든 델리나가 젠의 무게에 못 이겨 엉덩방아를 찧었고, 소란을 알아차린 칼릭스가 과녁에서 빠져나와 델리나에게 다가왔다.

“잠깐만, 너 아직 오면 안 되는데……!”

가까스로 자리에 일어나면서, 다급히 창을 열어 칼릭스의 능력을 해지하려 했던 델리나는 칼릭스의 보이지 않은 벽에 튕겨 났다.

졸지에 화려하게 한 바퀴 구른 델리나는, 어딘가 시원해진 느낌에 제 얼굴을 더듬었다. 곧 델리나는 근처로 떨어진 가면과 가발을 발견했다.

‘헉.’

모든 귀족에게 제 얼굴이 노출된 델리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하지만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뒤에서 비치는 밝은 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리며 돌아본 델리나가 빛이 어디에서 나는지 발견했다. 델리나는 속으로 경악했다.

<햇살남>

조금 전 칼릭스에 의해 튕겨 나가면서 다른 키워드를 누른 듯했다. 햇살남 키워드가 적용된 아슈드는, 연회장 한복판에서 온몸에서 빛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그는 제 온몸이 밝게 빛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분노로 가득한 눈으로 델리나를 쳐다봤다.

“너, 너…… 잘도 이런 웃긴 꼴을 나한테…….”

“……아뇨, 그게 전하, 그 누구보다 빛나는 제국의 황제가 되라는 의미로…… 으악!”

“일로 안 와!”

분노로 눈이 뒤집힌 아슈드가 델리나를 잡으려 뛰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던 델리나는 열심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기 반센트는 연신 총으로 불꽃을 뿜으며 팔을 흔들었고, 원숭이는 각종 물건을 던지며 무대를 헤집기 시작했으며, 젠은 바닥에 엎드린 채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칼릭스가 걸어 다닐 때마다 모든 물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온 사방으로 밀려났고, 노아는 아예 거대한 의자에 앉아 큭큭대며 이를 감상하기에 바빴다.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공연에 귀족들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하하하하!”

동시에 아슈드에게 도망치던 델리나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

“아, 덕분에 진짜 재미있는 공연 봤네.”

“……?”

그제야 제가 누군가의 팔에 감긴 것을 자각한 델리나가 저를 들어 올린 남자의 얼굴을 보려 고개를 치켜들었다.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내가 데려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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