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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의문의 초대 (32/94)


32화 의문의 초대
2023.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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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립 후작가에서 편지가 왔다고?”

“예. 그쪽에서 빠른 답신을 요구했습니다.”

급히 답장해야 하는 편지가 있다는 소리에 훈련장을 빠져나온 델리나는 베티가 건넨 편지를 받아 들었다. 델리나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사교 모임 초대장?”

편지는 예전처럼 초대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임에 참여하는 가문과 영애들의 이름이 전과 달랐다.

‘전부 다 사교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가문들이잖아.’

모든 영애가 참석할 수 있었던 지난번 사교 모임과는 달리, 이번에 델리나가 초대받은 모임은 인원이 한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사교 모임은, 델리나 또한 들어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분명 아무나 참석할 수 없는 모임인데…….’

다른 곳도 아닌 그 로즈립 후작가에서 정기적으로 여는 사교 모임 중 하나였다. 이번 모임의 주최자는 실비아였고, 델리나를 콕 집어 초대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나를 왜?’

다른 곳도 아닌 후작가의 편지를 받은 델리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로즈립 후작가에서 왜 또 나를 초대했을까?”

“아가씨가 그곳에서 무언가 눈에 띄는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음, 눈에 띄는 일…….”

아무리 고민해 봐도 화려한 원숭이 쇼나, 쿠키가 좀 맛있어서 많이 먹은 거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델리나는 창가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원숭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분명 쟤도 희귀한 동물이라고 했지?’

동물에 무척 관심이 많은 실비아니, 희귀하다는 원숭이에 관심을 가진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리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나나를 집어 먹던 원숭이가 델리나를 향해 껍질을 집어 던졌다.

“……사교 모임에서 동물도 선물로 주고받나?”

“원하신다면 알아는 보겠습니다.”

저놈의 원숭이를 후작가에 놓고 올까, 델리나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이 베티는 델리나가 건네준 편지를 읽어 내렸다.

“드레스 코드는 붉은색이군요.”

“그래, 그러면 붉은색 드레스를……. 아, 혹시라도 전하께는 드레스에 대해서 절대 말하지 말고.”

“예. 제 선에서 준비하겠습니다.”

데뷔탕트 때의 끔찍했던 드레스를 떠올린 델리나가 비장하게 말하자 베티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가시는 것으로 답신을 보내면 될까요?”

“응. 별다른 이유가 없는 이상은 가는 게 예의니까.”

로즈립 후작가의 사교 모임을 별 이유 없이 거절해서 주목을 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사실 실비아가 무슨 이유로 저를 초대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러면 가는 걸로 하고, 드레스는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베티가 그대로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 혼자 남은 델리나는 원숭이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야, 원숭아.”

“…….”

“너 사람이랑 지능 비슷하다며, 지금 내 말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 알거든? 너 그러면 간식 없다?”

“끽.”

델리나의 말에 원숭이가 마지못해 반응해 주었다. 델리나의 한숨이 깊어졌다.

‘다른 사람들 말은 잘 들으면서 왜 내 말은 안 듣냐고.’

원숭이는 벨리온도, 베티도, 펠릭도, 하물며 다른 사용인들의 말도 잘 들었다. 저한테만 유독 말썽을 피우는 원숭이를 가만히 노려보던 델리나는 문득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가만, 얘도 동물이니까 설마 서열을 보나?’

펠릭의 실력을 몰랐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대공가에 있는 이들 중 제가 가장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리나의 한숨도 더더욱 깊어졌다. 확실히 자신이 가장 약한 존재인 것은 맞았다. 약하디약한 몸뚱어리에, 불완전한 능력. 그것만으로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제어하기도 벅찼다. 그런데 델리나에게는 또 다른 벽이 있었다.

황제.

대공가를 극도로 경계하는 인물이자, 이후 대공가를 치기 위해 타 제국과 결탁해 전쟁을 일으키는 장본인이었다. 그 전쟁으로 벨리온이 죽었지만 하이르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후 아슈드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델리나는 생각을 떨쳐 내듯 고개를 휙휙 저었다.

* * *

헬리움 제국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황궁은 오늘도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곧 그러한 분위기를 깨듯, 저 멀리 황궁 복도를 천천히 걸어오는 누군가가 있었다. 바로 에드윈이었다.

“어, 뭐야. 너도 왔어?”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에스텔이 에드윈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러게. 설마 했는데.”

“그럼 너도 설마, 폐하께서 불러서?”

“맞아.”

같은 목적으로 불려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에드윈이 눈을 굴렸다. 지금 이 시점에 황제가 두 사람을 불렀다는 것은, 사실 그리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대충 느낌은 오는데 그게 아니길 바라야겠지만.”

노아의 얼굴을 드러낼 때부터 사실 각오야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하이르가 빠르게 움직인 모양이었다. 곧 두 사람은 황제가 기다리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하이르가 앉아 있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하이르가 손짓하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사적으로 공작과 후작을 보는 건 오랜만인데, 일단 앉지.”

그가 가리키는 곳에 에드윈과 에스텔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이르가 잠시 눈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둘을 불렀는지 알고 있나?”

“제 우매한 머리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폐하.”

에드윈이 웃으며 답하자 하이르가 말을 이었다.

“저런, 그래도 공작이라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이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데뷔탕트에서 두 사람이 선보인 영식들은 잘 봤어. 보아하니 각 가문의 후계자로 생각해 둔 모양이던데.”

“네. 아이가 원한다면 저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답한 것은 에스텔이었다. 에드윈도 마찬가지인 듯,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질문한 하이르 역시 꼭 두 사람 모두에게서 답을 들어야 하는 건 아닌 듯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그러면 그 후계자를 양성하려면 대공가의 후원도 필요한 건가?”

비로소 하이르가 두 사람을 부른 이유가 명확해졌다. 먼저 답한 것은 이번에도 에스텔이었다.

“말씀드린 대로 저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으니까요. 대공가의 후원 또한 아이가 원해서 받고 있습니다.”

“그래? 그 이유는?”

“대공가에는 선조 대에서부터 내려온 각종 신비한 장치들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조사하고 싶어 합니다.”

장치를 발명하고 조사하기를 좋아하는 반센트와 딱 맞는 것이었다. 이어서 에드윈이 답했다.

“저 또한 아이의 의견입니다.”

“…….”

“돈이 될 만한 정보들을 수집하는 걸 좋아해서요. 설령 그곳이 대공가 한복판일지라도, 그렇습니다.”

에드윈의 말이 끝나고 잠시 방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잠시 후 하이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그렇다는 말이지.”

“…….”

“나도 물론 잘 알고 있지. 워낙에 장치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후작이고 돈 앞에서 철저해지는 공작이지 않나. 그래. 그런 두 사람이 교육하는 후계자니 분명 그대들과 비슷할 테지.”

하이르의 눈이 번뜩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지. 그런 만큼 행동거지에 있어서 아직 좀 서툴 수도 있지 않나? 그러니 두 사람이 주의를 좀 시켜 주게.”

“명심하겠습니다.”

말이 아이들이지, 사실상 두 사람에게 하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에드윈도 에스텔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말이 나왔으니 한번 아이들을 만나 보고 싶은데. 차기 공작과 후작이 될 그 영식들을 말이야.”

“아직 배움이 짧아 폐하의 마음에 차지 못할 겁니다.”

“아니.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이번에 대공가의 후계자로 거론된 영식도 같이 만나 보는 게 좋겠군. 이름이 칼릭스라고 했던가.”

노아와 반센트에 이어 칼릭스까지. 대공가에서 후원하는 아이들을 다 만나 보겠다는 소리였다. 하이르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참, 혹시 공작과 후작은 플로렌 가문을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백작가의 후계자와 그 부인이 사고로 죽어 지금은 후계자의 동생 쪽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하던데요.”

하이르의 말에 에드윈이 모른 척 답했지만 이후에 나올 하이르의 말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 그런데 말이야, 델리나 플로렌이라고 했던가. 그 영애가 최근에 대공가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고 하던데.”

노아에 이어 델리나까지.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거론되었다.

“분명 대공은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골라 후원한다지? 그 영애한테는 무슨 재능이 있는지 궁금해지더군.”

재능 있는 아이만 후원하는 대공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델리나를 후원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이르는 델리나에게 더 관심이 갔다. 황제가 델리나의 존재도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에드윈은 가만히 벨리온을 떠올렸다.

‘분명 그쪽에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텐데.’

황궁으로 오라는 명을 벨리온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었다. 에드윈의 마음을 읽은 듯 하이르가 이어 말했다.

“같은 또래니까 내 손자가 데리러 가면 딱이겠군. 안 그런가?”

일반적인 기사들로는 델리나를 대공가에서 데려오기 힘들 것 같으니 황족을 보내겠다는 소리였다. 에드윈과 에스텔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 눈빛만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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