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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그 영애가 오면 재밌겠네 (25/94)


25화 그 영애가 오면 재밌겠네
20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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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가자 펠릭이 편지 두 통을 전해 줬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델리나가 하나를 먼저 받아 들었다.

“로즈립 후작가?”

편지 봉투에 새겨진 로즈립 후작가의 문양을 본 델리나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즈립 후작가. 분명 사교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영향력 있는 영애들이 있는 가문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막내딸인 실비아가 이번에 데뷔탕트를 했었다.

“근데 어떻게 내 편지가 대공가로 온 거야?”

“아가씨 편지는 전부 대공가로 오도록 조치해 뒀습니다.”

‘어쩐지. 어떻게 후작가에서 알고 보냈나 했더니…….’

펠릭의 말에 델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편지를 펼쳤다. 그것은 초대장이었다.

“사교 모임에 초대를 한다고…….”

내용을 보니 사교 모임에 올 수 있을 법한 영애들에게 전부 보낸 모양이었다. 이해가 가긴 했다. 왜냐하면 이 초대장을 보낸 당사자인 실비아는…….

‘엄청나게 동물을 좋아하는 영애였지. 분명 동물들을 위한 정원도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동물과 함께하는 사교 모임이라니. 과연 그녀다운 사교 모임이었다. 제국의 모든 영애는 로즈립 후작가에서 주최하는 모임을 선망했다. 그는 델리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내용을 보니까, 확실히 규모도 만만치 않겠어.

“나, 가도 되는 거야?”

“그럼요. 말씀드다시피 이제는 아가씨가 주먹질을 하면서 대공가의 이름을 팔아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교 모임에 가는 거야 두말할 것도 없죠.”

“……나도 다시 말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듯 손을 내저은 델리나가 다른 편지를 꺼내 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문양에 델리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에일리…….”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자신의 오랜 친구의 이름을 말이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델리나는 한 번도 에일리를 만나지 못했다.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대공가로 와야 했고 이런저런 일들이 생긴 탓에 만날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번 보기는 해야 하는데.’

부모님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며칠이고 제 곁에 있어 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였다. 그만큼이나 늘 고마운 친구였다.

‘내가 다락방에 갇혀 있을 때도 부당하다며 몇 번이고 니엘과 샬롯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었지.’

다락방에 갇히고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에일리의 영향이 컸다. 에일리와의 연은 기드온과도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사랑을 키워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왜?’였다. 친오빠와 친한 친구와의 만남이라니. 물론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왜’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참, 일단 그것보다는…….’

잠시 상념에 빠졌던 델리나가 정신을 차리고 델리나가 편지를 펼치자 익숙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너 이번에 데뷔탕트 왔었다며? 그런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참 생생한 글씨였다. 마치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델리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짜, 나도 그날 독감만 아니었으면 계속 있을 수 있었는데 하필 열나서 춤도 못 추고……. 아니, 아무튼 너 이번에 로즈립 후작가에서 주최하는 사교 모임 올 거지? 이번에 생일 선물로 강아지도 받는다고 했었잖아.>

에일리 또한 조금 이른 나이에 데뷔탕트를 했었다. 하필이면 데뷔탕트 당일에 열이 나서 황궁 출입만 하고 돌아가야 했지만 말이다.

‘그때는 그것마저도 엄청 부러웠지.’

<아무튼 너한테 물어볼 것도 많고 하니까 꼭 와야 돼. 알겠지? 꼭! 안 그러면 내가 백작가 쳐들어갈 거야!>

에일리의 소란스러운 편지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사교 모임에 꼭 오라는 당부로 끝난 편지를 접던 델리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맞아. 그러고 보니 에일리는 그쪽 방면으로 분명…….’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건 비단 에일리뿐만이 아니었다. 델리나 또한 에일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게다가 데뷔탕트도 했는데 사교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에일리가 정말 백작가로 쳐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걔라면 그러고도 남지.’

델리나가 대공가에 있다 해도 쳐들어올 것이 분명한 자신의 친구를 떠올리며, 델리나는 펠릭을 바라보았다.

“근데 말이야. 이번 사교 모임에 가려면 기르는 동물이 있어야 돼.”

에일리는 델리나가 선물로 받기로 한 강아지 이야기를 했지만 그 강아지는 이미 제인에게 간 지 오래였다. 델리나도 다른 동물을 구해야 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하께 잘 말해 두겠습니다.”

“……전하한테?”

순간 충격과 공포의 드레스를 떠올린 델리나가 머뭇거렸다.

“음……. 괜찮은 거지? 혹시 사람도 동물이라고 하면서 막 사람을 데려온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세상에, 아가씨…….”

“그래,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했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라니, 좀 심했다.”

“어느새 그렇게 이제 전하를 잘 파악하신 겁니까? 이제는 저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 나도 별로 그렇게까지 빨리 파악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펠릭의 진심 어린 감탄에 델리나가 재빠르게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전하셔도 사교 모임에 사람이 아닌 동물을 데려가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 그러겠지?”

“네. 그러면 사교 모임은 가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아, 답장은 어떻게 보내 드리면 될까요?”

“방식이 따로 있어?”

“아가씨가 원하시는 대로, 답장을 백작가에서 보낸 걸로 하거나 대공가에서 보낸 걸로 할 수 있거든요.”

“백작가로 부탁할게.”

대공가에서 보낸 걸로 했다가는, 답장을 받는 이들의 충격과 공포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였다. 그래서 델리나는 빠르게 백작가를 택했다.

“근데 괜찮을까? 나 지금까지 한 번도 사교 모임에 가 본 적이 없는데.”

기본예절은 알고 있었지만 실전 경험은 없었다. 사교 모임은 데뷔탕트하고는 전혀 달랐기에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 아가씨는 그 큰 황궁 연회장에서도 잘하셨잖아요.”

“잘하긴. 그것도 마지막에는 다 망했는데.”

또 한 번 아슈드와의 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던 델리나가 막 방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문밖으로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서 본능적으로 델리나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설마?’

또 반센트가 설치한 함정이 있을까 조심스레 문밖을 살피던 델리나는 문 밑에 있는 이를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젠?”

걸리는 느낌의 정체는 젠이었다. 델리나 방문 앞에 웅크리고 있던 젠이 델리나를 보고서 벌떡 일어섰다.

“너, 너 왜 여기 있어?”

놀란 델리나의 말에도 젠은 델리나의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그러자 펠릭이 답했다.

“방을 줬는데 아무래도 영 어색한가 봅니다. 아가씨 문 앞까지 온 걸로 봐서는요.”

“그래도 그렇지. 여기 계속 있을 생각이었어?”

그렇다고 방 안에 들일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에 델리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두 사람을 보던 펠릭이 작게 손뼉을 쳤다.

“그럼 두 분이 이렇게 같이 계신 김에, 아예 두 분이 함께 가르침을 받는 건 어떻습니까?”

“가르침?”

“예. 제가 마침 아가씨께 사교 모임 예절과 기본 예의범절을 가르쳐 주실 좋은 선생님을 알고 있거든요.”

말을 마친 펠릭이 두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 * *

“진짜, 짜증 나!”

로즈립 후작가의 정원에서 누군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정원 한가운데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던 여인이 입을 뗐다.

“실비아는 왜 저러는 거야?”

“어머, 언니. 이번 데뷔탕트 이야기 못 들었어?”

로즈립 후작가의 첫째, 플레나의 질문에 둘째인 골디아나가 답했다. 그 누구보다 고상한 자태로 차를 음미하고 있던 두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서 동물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는 실비아를 쳐다봤다.

“이번 데뷔탕트에서 실비아보다 더 주목받은 영애가 있잖아. 그것 때문에 저러는 거야.”

“우리 막내보다 더 주목받은 영애가 있었다고?”

골디아나의 말에 놀란 플레나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응. 이번에 황태손 전하와 마지막 춤 췄던, 그 영애 기억해?”

“그럼. 알지.”

플레나도 퍽 놀랄 만큼의 춤을 보여 주고서, 그대로 도망치듯 사라진 영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제야 플레나는 실비아가 왜 화를 내고 있는지 깨달았다.

“도대체 누구야! 누구길래 나보다 더 주목받는 거냐고!”

어디를 가나 주목받는 두 언니를 누구보다 동경해 왔던 실비아에게 이번 데뷔탕트는 무척 의미가 깊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문의 분홍 머리 영애에 의해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실비아는 반드시 그 영애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씩씩댔다.

“아하, 그래서 이번에 사교 모임에…….”

왜 모든 영애를 초대하나 했는데, 그 영애를 찾기 위해서라는 걸 깨달은 플레나의 눈에 흥미가 감돌았다. 골디아나도 재밌다는 얼굴이었다.

“그렇지. 동물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어지간하면 다 오겠지.”

모든 영애들이 오고 싶어 안달을 내는 곳. 그것이 바로 로즈립 후작가의 사교 모임이었다. 플레나가 여전히 화를 내고 있는 실비아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 영애가 오면 재미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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