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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며느리도 모르는 가문 비법 (8/94)


8화 며느리도 모르는 가문 비법
2023.06.08.



 
‘난 죽었다. 난 죽었어.’

능력에 키워드 취소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 끔찍한 광경을 계속 볼 뻔했다.

델리나가 진땀을 뻘뻘 흘리는 사이에도 펠릭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벨리온은 델리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물론 키워드를 취소시키자마자 델리나는 누가 쫓아올까 싶어 눈썹 휘날리게 내달려 감옥으로 돌아갔다. 세심하게 감옥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는 것도 잊지 않은 채였다.

방금 그거 기억에도 남나?

만약 개가 되었던 기억이 남는다면 일단 자신에게 올 암살자 네 명 정도는 예약한 셈이었다. 물론 그 네 명에게 가서, 너 혹시 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니? 하고 물을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래도 일단 키워드를 어떻게 쓰는지는 알았으니…….

예비 흑막들 앞에서 원하는 키워드를 추가하면, 그 키워드에 맞는 특성이 부과되는 모양이었다. 키워드는 한 사람당 하루에 한 번씩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만하면 괜찮았다.

애초에 키워드고 뭐고 다시 그 얼굴들을 볼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가까워지기는커녕 충격과 공포의 대형견남 사건으로 더더욱 멀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델리나는 절망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

델리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곧 모습을 드러낸 이는 펠릭이었다. 잔뜩 긴장한 델리나를 보며 웃음을 눌러 참은 펠릭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저예요. 아가씨.”

“…….”

“걱정 마세요. 저 혼자 왔으니까.”

“다른 사람들은요?”

“다들 돌아갔어요. 다들 그 상황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내 멍한 표정들이었고……. 그래도 전하께서 시험이 끝났다고 하니까 다들 별 반항 없이 돌아가기는 했는데. 글쎄요. 그 이후는 모르겠네요.”

됐다!

일단 네 명이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단 델리나는 안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펠릭은 웃겨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아. 아가씨. 그래서 그건 진짜 어떻게 하신 거예요?”

“……말했잖아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비법으로…….”

“플로렌 백작가에서 그런 걸 해 왔다는 건 전혀 예상 밖이긴 하네요. 아무튼 그래도 정말 아가씨 덕분에 한 달 치 웃을 걸 다 웃은 것 같아요. 진짜 아까 너무 웃다가 저 전하한테 밟혔잖아요.”

제가 밟혔단 말을 해맑게도 말하는 펠릭이었다. 곧 펠릭이 감옥 문을 열고서 손짓했다.

“자, 아가씨. 가시죠.”

“어디를요?”

“어디긴요. 이제 아가씨 배정된 방으로 가셔야죠. 감옥이 아니라.”

그 말에 델리나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그러면…… 진짜…….”

“네. 약속대로 시험을 통과하셨으니까요. 이제 아가씨는 울피림 대공가의 후원을 받게 될 겁니다.”

만세!

델리나는 저도 모르게 만세 삼창을 외칠 뻔했다. 하지만 펠릭의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입꼬리만 씰룩였다. 그사이 델리나와 함께 걷던 펠릭의 말이 이어졌다.

“역시 전하께서도 아가씨의 재능에 감명을 받으신 거겠죠. 사람을 개로 만드는 재능.”

“뭘, 그렇게 감명까지…….”

“비밀인데, 사실 저도 사람을 개로 만들 줄 압니다.”

“진짜요?”

“네. 저랑 술 먹으면 다들 그렇게 되더라고요.”

말을 말자. 그냥.

델리나가 언짢은 표정을 짓자 재밌다는 듯 펠릭이 큭큭거렸다.

“그리고 말씀은 편하게 하세요. 이제 같이 사시게 될 텐데.”

“아, 응.”

“참, 아가씨 정식 후원 이름은 ‘광대’입니다.”

“……응?”

“한마디로 대공가의 광대로서 후원받으시는 거죠.”

광대, 광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후원 이름이 있어?”

“아뇨. 이건 아가씨가 유일해요. 정말 특별하죠?”

정말 특별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어디 가서 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광대.”

그리고 델리나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저 멀리서 누군가가 벨리나를 광대라고 부르며 다가왔다. 바로 벨리온이었다.

“어딜 가는 거지?”

“아가씨가 머무실 방을 안내해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후원받으실 분이니까요.”

펠릭이 델리나를 내려다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참, 아가씨. 첫 후원 기념으로 전하께 뭔가 요구하셔도 좋아요. 이제는 뭐든 말만 하면 되니까요.”

“아니. 딱히 필요한 건 없는데.”

“생일 선물은 어떠세요? 보니까 최근에 생일이셨던데요. 강아지를 원하셨죠?”

그새 플로렌 백작가에서 강아지를 사 갔다는 것까지 조사를 끝낸 모양이었다. 하지만 델리나는 질색하며 말했다.

“아니. 필요 없어. 이제 좀 개라거나, 개 비스무리한 것들은 신물이 나서.”

“생각났다.”

“……네?”

“선물.”

델리나 옆에서 무언가 생각하듯 서 있던 벨리온이 갑자기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펠릭이 델리나를 재촉했다.

“자, 아가씨. 얼른 따라가 보세요. 전하께서 선물을 주실 것 같으니까.”

“아니. 정말 필요 없는데?”

“걱정 마세요. 항상 전하께서 선물하시는 건 평범한 게 아니니까요. 분명 아가씨 마음에도 드실 거예요.”

……과연 그럴까?

여전히 펠릭의 말이 미심쩍었지만 당장 델리나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쉰 델리나는 벨리온의 뒤를 졸졸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래. 뭐 그냥 선물이면 일단 좋은 의미니까…….

불안하긴 했지만 솔직히 여기서 또 뭐 얼마나 이상한 게 나올까 싶은 마음이었다.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델리나는, 벨리온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 * *

“……그러니까, 이게 제 선물이라고요?”

“어.”

<예비 흑막>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아떨어질까.

“크르르르르…….”

그리고 왜 이 예비 흑막 마지막 놈은 창살 안에서 진짜 짐승마냥(처럼) 저렇게 으르렁대고 있는 걸까.

연갈색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 상태는 영 아니었지만 외형과 지금 그의 머리 위에 뜬 창을 봤을 때, 분명 저 아이는 젠이 맞았다. 다만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제가 강아지를 원했지만, 그…… 얘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개 같지.”

“……어, 확실히 진짜 좀……”

사실 젠의 머리 위에 키워드가 뜨지 않았더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것 같았다. 젠의 상태도 심각했다.

‘……너무 작잖아.’

어른인 젠과는 무척이나 다른, 작은 몸에 놀란 델리나가 입술을 달싹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와 체구는 여자아이인 델리나보다도 작았다.

상처를 감았던 붕대도 모조리 뜯어 버렸는지 상처에서는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먹지 않은 음식은 접시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처참한 상황에 델리나가 미간을 좁혔다.

“크르르.”

젠의 환경을 살피는 사이에도 델리나를 경계하듯 젠은 눈을 번뜩였다. 네발로 걷듯, 흡사 짐승 같은 자세를 취하는 젠의 모습에 델리나는 벨리온의 말을 이해했다.

그때 바닥에 있던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델리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젠에 관한 소견서였다.

<경매장에서 데려옴.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함. 들개 무리에서 몇 년 동안 있었던 것으로 추정. 치료를 하려 해도 강한 거부 반응을 보임. 밥도 제대로 먹지 않음. 극도의 경계심을 보임.>

‘아, 그래서……?’

그제야 젠의 상태가 이해되었다. 딱 덩치 큰 개를 보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굵은 철창 너머로도 느껴지는 살기에 델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광대.”

“네?”

“이건 사람으로 못 바꾸나?”

“……네. 이건 못 해요. 게다가 능력도 단기로만 할 수 있는 거라서요.”

키워드에 ‘인간남’이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게다가 키워드가 발휘되는 것도 시간제한이 있을 것이다. 델리나의 말에 벨리온이 덤덤하게 답했다.

“그래, 뭐.”

“…….”

“아무튼 선물이다.”

“……감사합니다.”

강아지를 원했는데 개에 가까운 인간을 선물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정말 펠릭 말대로 평범함을 넘어서는 선물에 델리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밥 줘도 되는 거죠?”

“줄 수 있으면.”

이미 접시들은 바닥에 처참히 널브러진 상태였다. 델리나는 곁에 있던 새 접시를 집어 들고 침착한 얼굴로 젠을 주시했다.

“……젠?”

델리나의 한마디에 젠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델리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름은 기억하고 있어.

어른인 젠은 분명 사람과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아마 전쟁의 충격이나 들개들과 어울린 탓에 언어를 잠시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컸다.

“이름을 아나?”

“독심술이요. 광대 기술인데, 가문의 비법 중 하나죠.”

“그 며느리도 모른다는?”

“이번 건 사위도 몰라요.”

델리나는 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괜찮아. 젠. 나는 너를 해치러 온 사람이 아니야. 밥 주려고 온 거야.”

“…….”

“원래 잘 먹어야 상처가 빨리 나아. 이거 이상한 거 아니니까 한번 먹어 봐. 여기 밥 맛있더라. 감옥 밥도 맛있고.”

델리나의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름을 부른 덕분인지 조금 전보다는 젠의 반응이 차분했다.

델리나는 잽싸게 젠 앞에 접시를 놓았다.

“됐다. 맛있게 먹어?”

델리나의 말에 젠이 머뭇대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가르칠 게 많겠는데. 다시 사람처럼 생활을 하려면…….

“주인을 잘 따르는군.”

“……쟤는 사람인데요.”

……진짜, 내 인생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됐지?

계획대로 다섯 명의 흑막들을 만났고, 벨리온의 후원까지 받기 시작했는데도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느낌에 델리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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