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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능력 개방 (7/94)


7화 능력 개방
2023.06.07.



 
예비 흑막이라니, 듣기만 해도 오싹한 단어였다. 곧 알람이 한 번 더 울렸다.

<예비 흑막들을 만난 보상으로 새로운 능력이 개방됩니다.>

<예비 흑막들에게 키워드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 추가?’

안내 창에 네 명의 이름이 나란히 떴다. 이제 델리나는 앞에 선 네 명의 아이들과 그들의 이름들을 대조해 볼 수 있었다.

반센트.

햇빛에 강렬하게 타오르는 붉은 머리카락과 노란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다. 하지만 화려한 외모와 달리 아이의 표정과 눈빛은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무언가 손에 이런저런 도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기구를 다루는 쪽에서는 천재라더니, 어쨌든 그다음은…….

노아.

보랏빛 눈동자에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였다. 처음에는 무기를 안 들고 있나 싶었지만 손에 작은 은색 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본 델리나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칼릭스.

흑색 머리카락에 붉은색 눈동자. 가장 무기스러운 검을 들고 있는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델리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슈드.

무려 제국의 황태손을 이토록 가까이서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체를 숨기듯 두꺼운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안내 창에 그의 이름이 떴기에 델리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쓰는데?

보아하니 아이들과 관련된 무언가를 할 때마다 능력이 열리는 구조인 것 같았다. 키워드를 추가할 수 있다는 것이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델리나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델리나가 잡고 있던 막대기가 반으로 똑 부러졌다.

“……!”

놀란 델리나가 한 걸음 물러서자, 그녀의 막대기를 가른 장본인인 노아가 말했다.

“넷이서 싸우라길래 뭐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가 했더니…….”

“…….”

“아무것도 못 하는데.”

노아는 눈매를 접으며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동조하듯 반센트가 말을 이었다.

“내 실험용으로도 못 써. 이건.”

이미 델리나의 실력을 파악한 듯한 눈치였다. 칼릭스는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실력으로 시험까지 보게 된 거지?”

그리고 그 누구보다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아슈드가 말을 받았다. 눈을 굴리던 델리나가 답했다.

“대, 대공 전하 침실에 쳐들어갔다!”

나름 흑막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 한 말이었지만 생각보다 파급력이 셌다.

“……그 침실에 들어갔다고?”

“뭐야. 뭔가 뒤로 숨기는 게 있네.”

벨리온의 침실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퍽 충격인 듯, 아이들이 표정들이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델리나는 속으로 경악했다.

‘진지해지지 마!’

진지는커녕 그들이 발만 사용해서 싸워도 질 판인데, 저리 죽자고 달려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델리나는 애꿎은 안내 창만 들여다보았다.

뭔 능력이든 간에, 제발 좀 써지라고, 좀……!

그 순간 창으로 무수한 단어들이 나열되었다. 델리나가 그것들을 집중해서 읽었다.

다정남, 집착남, 대형견남……. 뭔데, 이건?

도통 알 수 없는 단어들에 델리나가 눈썹을 찌푸리는 순간, 옆으로 무언가 세찬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날아 들었다.

“……!”

퍽 소리가 나며 벽에 꽂힌 단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델리나가 네 명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다 비켜. 내가 상대할 거니까.”

“……내가 해.”

“뭐래. 먼저 잡으면 그만인데.”

“여기서 승률 높은 걸 따지면 난데.”

‘저기, 얘들아, 얘들아?’

한 명씩 덤벼도 힘들 판에, 저가 먼저 공격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들을 보자 진땀이 뻘뻘 났다.

“……요새 좀 많이 안 맞았었지?”

“덤비던가. 그럼.”

“진짜 하는 짓이 원숭이들 같다니까.”

“멍청해.”

급기야 이제는 자기가 먼저 공격하겠다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델리나는 울고 싶었다. 자기 하나 처리하겠다고 저리들 싸우는 모습이라니, 이런 인기는 죽어도 싫었다.

‘가만, 인기? 아……!’

한 여자를 두고 여러 남자가 대결하는 상황. 물론 이 상황과 완전히 달랐지만 비슷한 것이 생각났다. 예전에 복도에서 떠들던 하녀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번 소설 봤어? 역시 남주는 다정남이라니까. 그렇게 막 여주한테 꽃을 주고 고백하면서―]

[아니지! 남주는 뭐니 뭐니 해도 집착남 쪽이잖아. 내 여자 하나한테만 매달리는!]

애초에 로맨스 소설은커녕 책조차 잘 안 보는 델리나였기에, 그때는 하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 다정남, 집착남 이런 단어들을 보니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단어를 조금 이해했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왕이면 키워드 추가보다는 빼기가 나을 텐데.

미래에 흑막이 될 아이들에게 뭘 추가해 봤자 달라질까 싶었다. 그러다가 델리나는 다정남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혹시 이걸 저놈들한테 쓰면, 다정해지나?

단어만 봐서는 다정한 남자, 이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써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다. 그러다가 다정하게 죽이면?

매너 있게 서로 양보하며 이쪽 다리는 내 거, 저쪽 다리는 네 거, 이럴 수도 있지 않은가. 섣불리 키워드를 쓰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그제야 싸우던 아이들이 결론을 낸 듯 델리나를 바라봤다.

“좋아. 먼저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노아가 생긋 웃으며 말하자 다른 아이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손가락으로 아이들의 전체 이름을 누르던 델리나도, 반사적으로 뒤로 슬슬 물러섰다.

“잠깐, 잠깐만……!”

물론 그 말을 들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동시에 땅을 박찬 아이들이 델리나에게 달려들었다. 놀라서 손을 허우적대던 델리나는 수많은 키워드들 중 하나를 꾹 눌렀다.

* * *

“정말 이대로 놔두실 겁니까?”

벨리온은 여전히 델리나가 들어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펠릭이 물었다.

“지금 저 아가씨 상태로는 버티기가 아니라 바로 죽을 텐데요.”

“본인이 선택해서 본인이 들어갔지.”

“뭐, 그렇지만요. 그래도 정말 아쉽네요. 정말 재미있는 아가씨였는데.”

물론 두 사람은 가장 작은 검마저 낑낑대며 들던 델리나가 그 아이들을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험 시간은요?”

“곧 끝나.”

애초에 시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길든 짧든 델리나의 시험 결과는 뻔했다. 여전히 조용한 문을 바라보며 펠릭이 고개를 저었다.

“도망도 못 치셨나 보군요.”

물론 방을 빠져나와도 시험은 탈락이었다. 유독 고요한 문을 보며 펠릭은 델리나를 위해 묵념했다.

“직접 들어가실 겁니까?”

어느새 끝날 시간이 되었다. 벨리온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마찬가지로 펠릭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왜 그러십니까?”

문을 열려던 벨리온의 손이 멈췄다.

“……소리가 나.”

“예? 설마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까?”

“싸움 소리가 아니야.”

“그러면요?”

“개 소리.”

“예?”

도통 영문을 모를 말에 펠릭의 눈썹이 올라갔다. 곧 벨리온이 문을 열었다. 펠릭도 안의 상황을 보기 위해 몸을 쭉 기울였다. 그러자 굉장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왈왈!”

벨리온의 말대로 개 소리가 들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개를 흉내 내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크르르르…….”

그리고 네 명의 아이들은 마치 개처럼 네발로 기고 있었다.

“컹!”

정말 개판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정말 자신들이 개라도 되는 줄 알고 개 같은 행동들을 했다. 서로를 향해 짖고, 으르렁거리고, 심지어 발로 목뒤를 긁었다.

“아니, 그만 좀 오라니까?”

“컹!”

“그래.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

그리고 네 아이들의 중심에는 델리나가 있었다. 조금 전 가지고 들어갔던, 반으로 동강 난 막대기를 델리나가 던지자 네 아이들이 일제히 그 막대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경악할 만한 상황에 펠릭도 벨리온도 말없이 델리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 저기……, 끝났나요?”

네 명의 개, 아니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델리나는 그제야 펠릭과 벨리온의 존재를 알아차리고서 급하게 눈을 굴렸다.

“아, 저기, 이건, 그러니까, 그러니까요…….”

“…….”

“짠. 광대 쇼였습니다!”

델리나의 말에도 두 사람의 반응은 여전했다. 잠시 후 펠릭이 입을 달싹였다.

“이거, 이거…… 아가씨가 했습니까?”

“예. 그게요……. 사실 정말 전하 말씀대로 제가 좀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어서…… 그……, 며느리도 모르는 저희 가문의 비법으로…….”

<대형견남>

아이들이 달려들자 델리나가 누른 키워드였다.

‘아니, 대형견남이라고 진짜 개처럼 행동할 줄은 몰랐지…….’

여전히 저를 향해 개처럼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는며 델리나가 쓰게 웃었다. 벨리온과 펠릭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와 아이들을 바라봤고, 뒤늦게 터진 펠릭의 웃음소리가, 시험장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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