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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생일 선물 (3/94)


3화 생일 선물
2023.06.03.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그토록 잘해 주던 그 두 사람이 작위와 재산을 위해 그간 자신들의 보호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저의 데뷔탕트를 늦출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을까, 자꾸만 사교계에 나가는 것을 반대했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작위를 온전히 승계받은 두 사람은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그들은 델리나가 성인이 되는 날, 쉰을 넘긴 남자에게 팔아넘기려고 했다.

그보다 더 최악인 날은 없었다.

그 일은 기드온이 죽기 살기로 막은 덕분에 어떻게든 넘겼지만, 이후 두 사람은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거의 감금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제국이 망하던 순간에는 어떠했는가. 니엘과 샬롯은 온 재산을 빼돌린 채 튀려고 했었다. 델리나와 기드온은 쏙 남긴 채.

“……이번엔 절대 그렇게 못하게 할 거야.”

자신이 나고 자라 온 가문과, 가족을 지켜 낼 것이었다. 델리나가 눈을 빛내며 거대한 제국의 지도를 펼쳤다. 그중 ‘울피림 대공가’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은 델리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벨리온 울피림.

현 칼릭스의 보호자이자 울피림 대공가의 대공. 그리고…… 장차 흑막이 될 아이들의 후원자이자 스승이기도 한 자.

본디 벨리온은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후원하거나 가르치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다섯 명의 흑막들도 어린 시절부터 벨리온의 저택에서 수련을 받아 왔다.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그곳에 가야 그 다섯 명을 만날 수 있을 터였다.

“…….”

하지만 델리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많고 많은 곳 중에 왜 하필…….

대공가에는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가족들의 시체를 밟고서 대공 자리에 군림했다는 남자는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싸우게 할 목적이 아니냐는 소문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올 수 없고, 그 어떤 교류도 하지 않는 폐쇄적인 가문. 이따금 정체 모를 비명 소리만이 들려온다는, 무시무시한 대공가.

‘……근데 여기에 내가 가야 한다고?’

지금까지 들은 소문만으로도 절로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델리나는 잠시 어깨를 움츠렸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니야.’

화염에 휩싸이면서 이미 각오하지 않았던가. 그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불구덩이든, 대공가든 뛰어들어야 했다.

‘좋아, 그러면 일단…….’

다행히 이전 생에서 울피림 대공가가 황실에 의해 몰락하면서 몇몇 저택의 비밀들이 밝혀졌었다. 그것들을 떠올리는 델리나의 손놀림이 더더욱 바빠졌다.

* * *

“생일 축하한다! 두 사람 모두!”

생일 축하를 받는 기드온과 델리나 앞에는 커다란 케이크가 있었다. 케이크에 눈독을 들이던 기드온은 가까스로 케이크를 먹고 싶은 걸 참아 내며 얌전히 있는 상태였다.

“자, 제이크도 제인도 얼른 축하한다고 해야지.”

“……축하해.”

“축하해.”

샬롯의 성화에 제이크와 제인이 그제야 마지못해 축하를 건넸다. 그러자 샬롯이 웃으며 손짓했다.

“자, 그러면 이제 초에 불붙일까?”

이어 기드온과 델리나를 식당 중앙에 앉힌 니엘과 샬롯이 웃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사용인들도 모두 한 마음으로 입을 모았다. 사람들의 축하를 받은 기드온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지만, 델리나는 차분했다. 니엘과 샬롯이 만들어 낸 훈훈한 장면이 못내 싫었다.

“자, 둘 다 촛불 끄기 전에 소원 같은 건 없니?”

델리나의 타들어 가는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노래는 끝이 났고, 이윽고 초의 불을 끌 시간이 되었다. 샬롯의 말에 기드온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제국에서 제일 센 기사 되기요!”

벌써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드온이 눈을 빛내며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드온과는 달리 델리나는 쉽사리 소원을 말하지 못했다.

“소원이요?”

“그래. 델리나가 원하는 거 말이야.”

“…….”

잠시 침묵하던 델리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과 저택의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온 제국 사람들도요.”

물론, 내 앞에 있는 당신들은 빼고서.

델리나는 자신의 소원이 정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일렁거리는 촛불을 바라보다가 불을 껐다.

“받아라!”

하지만 델리나의 어딘지 서글픈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델리나가 불을 끄자마자 기드온의 생크림 공격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

“어때? 맛있지?”

델리나의 얼굴은 생크림으로 범벅이 되었다. 기드온은 키득대며 웃었고, 자신의 뺨에서 크림이 떨어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델리나도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손에 생크림을 한가득 쥐었다.

“이리 와. 오빠.”

“어디 해 보시지?”

훈훈한 생일 파티는 순식간에 두 남매의 생크림 싸움으로 변했다. 샬롯과 니엘이 두 사람을 말렸고, 사용인들이 델리나와 기드온의 얼굴과 손을 박박 씻기고서야 겨우 온 가족이 다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참. 이제는 작은 엄마 아빠가 준비한 선물을 봐야지.”

“진짜요?”

선물이라는 말에 잔뜩 흥분한 기드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 지금 기드온 네 선물은 마구간에 있으니까 이따가 밥 먹고 나서 가 보렴.”

“네!”

생일 선물로 자기 말을 원했던 기드온이었다. 그러자 니엘의 말에 신이 나 소리치던 기드온의 밥 먹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그리고 델리나.”

“네.”

“……네 선물은 아무래도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말인데, 혹시 오늘 당장 못 줘도 괜찮겠니?”

“…….”

“강아지를 사기는 했는데 말이야, 제인이 그걸 보자마자 너무 가지고 싶다고 떼를 쓰는 통에 말이다. 그래서 다시 구해 줄까 하는데.”

그래. 늘 이런 식이었다.

꼭 생일 선물을 준다며 준비된 좋은 것들은 어느 순간 자연스레 제이크와 제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델리나는 알았다. 기드온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말은 얼마 못 가 제이크가 타고 있을 것이고, 다시 구한 강아지는 무척이나 병약해서 며칠 못 가 죽을 거란 것을.

“네. 그렇게 해도 상관없어요. 다른 것으로 사 주셔도 좋고요.”

하지만 이제 정말 상관없었다. 지금의 델리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강아지도, 선물도 아니었기에.

“그 대신 말이에요. 밥 먹고 나가서 광장 구경을 할 수 있을까요?”

“광장 구경을?”

“네. 제 생일이니까 기념으로요. 좀 놀고 싶기도 하고.”

그 말에 기드온이 손을 위로 뻗었다.

“저도! 저도 갈래요!”

“오빠는 안 가는 게 좋을 텐데.”

“왜?”

“엄청 재미없는 곳에 갈 거니까.”

아니, 어쩌면 엄청 무서운 곳일지도 모르고.

“뭐야. 그럼 옷 가게 같은 데 가는 거야?”

“…….”

“에이, 그러면 안 갈래.”

델리나의 침묵을 긍정의 답으로 받아들인 기드온이 흥미가 팍 식은 듯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델리나는 니엘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도 되죠?”

“응? 뭐, 그야…….”

“원래는 강아지랑 같이 산책하고 싶었는데 괜찮아요. 혼자 잘 갈 수 있거든요.”

강아지라는 말에 조금 양심이 찔렸는지 어깨를 움찔거린 니엘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래. 뭐……. 그렇게 하거라.”

“네. 금방 나갔다가 돌아올게요.”

그 이후로는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기드온은 신이 난 듯 여전히 케이크를 먹고 있었고, 니엘과 샬롯은 서로 대화를 이어 나갔으며, 제이크와 제인도 별다른 말 없이 케이크만 먹었다.

가만히 케이크를 먹던 델리나는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골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식사가 끝난 후 기드온의 방을 찾았다.

“오빠.”

“……왜?”

여전히 델리나의 오빠 소리가 익숙하지 않아서, 기드온은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델리나는 기드온의 손에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나랑 내기 하나 할까?”

“뭐?”

“오늘 하루가 지나기 전에 이 쪽지를 펴면 오빠가 지는 거고, 오늘이 지날 때까지 안 펴고 있으면 내가 지는 거야.”

그 말에 기드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걸 왜 해? 그냥 보면 그만인데.”

“이번에 오빠가 이기면 원하는 거 뭐든 하나 들어줄게.”

“진짜?”

“응. 뭐든. 대신에 오늘까지 펴 보면 안 돼. 그거 피는 순간 내가 다 아니까.”

꼭 돌아올게. 너무 걱정하지 마.

쪽지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다만 기드온에게만큼은 자신이 스스로 나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라도 그 흔적을 남긴 것이다. 자신이 가려는 곳에 기드온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무척 위험한 곳이기에.

아직 시간은 몇 년이나 있어.

본격적으로 니엘과 샬롯이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은 지금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기드온은 본디 공식적으로 차기 플로렌 백작가의 후계자였기에, 니엘도 샬롯도 함부로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럼 나 뭐든 한다? 뭐든?”

“응. 아무거나 상관없어.”

“좋아. 그럼 내일 바로 네 방에서 펼쳐 봐야지. 졌다고 짜증 내지 마라?”

내일…….

“그래. 아무튼 소원 생각해 놓든가. 어차피 오빠 성격상 나 나가자마자 바로 펴 볼 게 뻔하지만.”

“안 펴!”

기드온은 쪽지를 아예 서랍 구석 속으로 꼭꼭 숨겼다. 그제야 작게 미소 짓던 델리나도 볼일을 끝마친 듯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암튼, 나중에 봐.”

꼭, 나중에.

채 말하지 못한 뒷말을 삼키며, 그렇게 델리나는 기드온을 향해 싱긋 웃어 준 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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