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오빠라고 부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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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오빠라고 부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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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오빠라고 부르려고요
2023.06.02.
난데없이 나타난 창에 대해 델리나는 이것저것 조사해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곧이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델리나의 방에 들어온 의원이 기드온을 끌어안은 델리나를 보고서 경악하더니 델리나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물론 델리나의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아침 소동은 델리나가 끔찍한 악몽을 꾼 것으로 결말이 났다.
“잘 잤니? 델리나.”
“어서 앉으렴. 수프 식겠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델리나가 식당으로 내려가자, 델리나의 작은 어머니 샬롯이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바로 옆으로는 그녀의 작은 아버지 니엘이 앉아 있었다.
“아…….”
“왜 그러니? 어서 앉지 않고.”
오랜만에 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델리나가 멍하니 바라보다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두 사람 곁에는 델리나의 사촌들인 제이크와 제인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델리나를 한번 새침한 얼굴로 보고는 도로 식사에 집중했다.
“릴리한테 들었어. 악몽을 꿨다던데 괜찮니?”
“네. 지금은 괜찮아요.”
샬롯의 말에 빙긋 웃은 델리나가 맞은편에 앉아 밥을 먹고 있던 기드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많이 먹어 오빠.”
“쿨럭!”
기드온을 향한 델리나의 다정한 목소리에 수프를 떠먹고 있던 니엘이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샬롯도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포크를 들고 있던 기드온의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제이크와 제인마저도 놀란 얼굴을 했다.
“……오빠라고?”
“네. 이제 오빠라고 부를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서요.”
“응. 뭐……, 그렇긴 하다만은…….”
혼돈스러워하는 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평온한 델리나는 빵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델리나의 태도에 샬롯은 어색하게 눈만 굴렸다.
“그래. 남매끼리 이리 다정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니. 좋아.”
조금 후에야 정신을 차린 니엘도 가까스로 입꼬리를 올리며 동조했다. 그러면서도 곁에 있던 하인에게 아주 낮게 소곤거렸다.
“의원한테 말해서 델리나의 머리도 한번 검사해 보라고 해. 아무래도 머리 쪽을 심하게 다친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니엘과 하인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사이, 기드온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는 얼굴로 있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외쳤다.
“알았다. 이번에 너 생일 선물 때문에 나한테 잘 보이려는 거지? 작은 아빠한테 강아지 받으려고!”
아, 그때인가.
곧 있으면 자신의 생일이라는 말에 델리나는 가만히 지금이 언제쯤인지 가늠했다.
“글쎄. 난 딱히 선물은 상관없는데.”
“……뭐?”
“난 사랑하는 오빠로도 충분한걸.”
“……?”
말을 마치고 싱긋 웃는 델리나를 본 샬롯과 기드온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니엘과 하인은 한 번 더 진지한 얼굴로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 * *
델리나를 제외한 가족들의 충격과 공포의 식사 자리가 끝이 났다. 방으로 돌아온 델리나는 눈앞에 떠 있는 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능력이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흐음…….
책상 앞에 앉아 창을 띄워 놓고 이것저것 해 보려고 했던 델리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능력이 개방되지 않았다는 안내 창에 델리나의 미간이 좁혀졌다.
“능력이 개방하지 않았다는 건 개방 조건이 있다는 말인데…….”
사실 왜 자신의 눈앞에 창이 뜨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어 주었다. 안내 창에는 여전히 다섯 명의 흑막들을 막으라는 말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다섯 명의 흑막들이라면 역시…….
차례대로 다섯 명을 떠올린 델리나가 어깨를 움츠렸다.
곧 델리나는 릴리에게 부탁해 서재에서 각종 자료를 가지고 오게 했다.
그리고 펜을 들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제국에 대한 정보와 현 귀족들의 가계도까지 샅샅이 분석했다. 과거로 돌아온 만큼 달라진 정보들이 많았다.
“헬리움 황족 가계도……. 찾았다.”
그중에서도 델리나는 황족과 귀족들의 가계도를 보는 것에 집중했다. 그녀는 현재 황족들의 가계도를 샅샅이 훑어 내려갔다.
‘황태손. 아슈드 헬리움.’
찾았다.
아슈드의 이름을 보자 델리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늘 황제 아슈드라고 불렸던 그가 황태손 아슈드라고 쓰여 있는 것이 몹시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황태손이 나중에 어마어마한 폭군이 된다는 거지.
지금 나이를 감안하자면 아마 저와 같은 어린아이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시간이 있었다.
“다음은…….”
델리나는 귀족 가계도를 훑었다. 첫 장에 울피림 대공가가 있었지만 칼릭스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칼릭스는 없는 건가?
북부 대공 칼릭스.
검술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칼릭스였다. 그와 비례해 그의 악명 또한 드높았다.
칼릭스가 다녀간 곳에는 피가 시내를 이룬다거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다고들 했다. 오죽하면 그가 쥐고 있는 검은 항상 피를 흘린다는 괴담까지 돌았다.
지금은 북부에 살고 있는 건가?
위치상 칼릭스가 있는 울피림 대공가는 제국의 북쪽에 위치했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 가문에 대해 더 이상 아는 바가 없었기에 델리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우선 다음으로 넘어가자.
일단 그 다섯 명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라도 알아 둬야 했다. 종이를 넘기던 델리나는 디아몬 공작가에 주목했다.
역시, 여기도 아직은 가계도에 없나.
‘노아 디아몬.’
신원이 분명한 다른 귀족 출신 아이들과는 다르게, 노아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에야 디아몬 공작가의 후계자로 공표되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후계자에 다들 말이 많았지만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겠지. 그만큼 디아몬 공작가의 세력이 어마어마하니까.
원래도 고위 귀족에 속하는 디아몬 공작가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디아몬 공작가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오죽하면 ‘제국의 모든 소문들은 디아몬 공작가를 거쳐 들어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디아몬 공작가에서 운영하는 정보 길드의 세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실 황실보다 재산이 많다는 소문도 있었지. 물론 그건 당사자만 알고 있겠지만.
나중에 디아몬 공작이 된 노아가 각종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대며 암흑 길드의 수장으로 변하는 것도 공작가의 길드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긴 쉽지가 않겠는걸.
지금 시점에서 디아몬 공작가가 노아를 꼭꼭 숨기고 키우고 있다면, 델리나가 그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갈수록 일이 힘들어 보여 델리나의 한숨은 커져만 갔다.
그래도 여기는 그나마 익숙해서 다행이지만.
이후 델리나는 엘피샤 후작가의 가계도를 살폈다.
‘반센트 엘피샤.’
물론 반센트가 엘피샤 가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기에, 그 역시 가계도에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델리나는 반센트를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교육계에서 탐을 내는 인재라고 들었다. 반센트는 제국의 몇 안 되는 천재 중의 천재였기에.
물론 그 천재적인 머리로 하는 것들이 전부 오싹한 일투성이였지만.
오죽하면 그가 진행한 실험 때문에 죽은 사람들 수가 셀 수 없을 정도라는 말까지 돌까. 차라리 죽임을 당한다면 칼릭스 쪽이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이나 반센트는 최대한으로 고통을 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젠.’
마지막으로 델리나는 가장 소재를 찾기 힘든 이를 떠올렸다. 다른 네 사람과는 다르게 젠은 유일하게 노예 출신이었다. 그랬기에 현재로서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다.
분명 패전국 노예 출신이었지.
원래 사람을 사고파는 일은 금지였지만, 포로들 경매만은 묵인되고 있었다. 그랬기에 젠 또한 경매 시장에 있을 것으로 추측됐다.
나중에는 온 거리를 무법자처럼 휩쓸고 다니지만.
사람이 아닌 짐승.
젠을 한 번이라도 본 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그 정도로 젠은 뒷거리에서 피바람을 몰고 다녔다.
“후우…….”
대충 그렇게 다섯 명에 대해 정리하던 델리나는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의자에 힘없이 몸을 기댔다.
지금 그것 이상으로 신경 써야 하는 게 또 있었다.
다 함께 아침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가족들. 단란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니엘과 샬롯은 몇 년 전 사고를 당해 죽은 친부모를 대신해 델리나와 기드온을 키워 주고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만 본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제 부모가 기드온과 델리나를 더 챙기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따금 자신들을 괴롭히는 제이크와 제인의 행태도 감수할 만했다.
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죽고 작위가 자신들에게로 승계되자마자 오빠와 저를 죽이려 했던, 그 사람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