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End of the Night (3)
죽은 자가 일어섰다.
성한 부분이라곤 반의반밖에 남지 않은 만신창이 얼굴이, 연신 흐느적거리며 이쪽을 향해 흔들렸다.
“……어……?”
몸이 굳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그랬다.
투명한 족쇄가 손발을 묶어 두고 있는 것처럼. 암만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느껴진 것은 두려움이었다.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감각.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를 목격한 것만 같은, 순수한 공포.
끼기긱. 끼기기긱―.
관절이 비틀린 듯한 불편한 소음.
되살아난 몸뚱이의 기괴한 움직임.
놈에겐 지금 눈이 없었음에도,
마치 우리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멜키세덱.”
이빨만 남은 턱을 연거푸 까딱거리더니.
소름 돋게도 정확한 발음으로, 속삭였다.
“몬시뇨르.”
그것이 <부름>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내가 채 깨닫기도 전에.
찌이익. 쩌저적―!
산탄에 맞아 부서진 유클리드의 얼굴이 상하좌우로 열리더니, 이윽고 말미잘의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혈관들이 핏물을 뿜으며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처 반응하지 못했을 정도로.
푸욱―.
채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핏줄기들이 날아와 꽂혔다.
“아.”
그런데.
내 앞에 누군가 있었다.
“애런.”
싸움꾼 애런 블런트.
우리 조직의 행동대장.
처음 녀석을 봤을 때는 갱생 불가능한 쓰레기 집단의 일부인 줄 알았는데, 내 밑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는 매번 꼬박꼬박 존댓말에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에 아무런 불평불만도 내뱉지 않았다.
한집에 먹여 살려야 하는 동생이 열 명인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녀석이 깡패 주제에 과하게 성실했던 건 말이다.
푹. 푹. 푸푹. 푸푸푸푸푹―.
핏줄기들이 애런의 몸을 줄줄이 관통했다.
녀석이 막아준 덕에, 나에게는 닿지 않았다.
애런을 찌른 혈관들은 곧 카우보이가 올가미질을 하듯 녀석의 몸을 칭칭 둘러 감싸더니, 잡은 사냥감을 통째로 낚아채 자신의 주인에게로 휙 날아 돌아갔다. 한때 인간 유클리드 진이었던 괴물체는 핏줄기에 묶인 애런의 몸을 그대로 꿀꺽 집어삼켰다.
끼긱. 찌익. 쩌어억―.
괴물체는 다시금 변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자기 모습, 인간 시절의 얼굴을 되찾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단지 인간의 모습을 한 무언가일 뿐이었다.
구태여 단어로 칭해야 한다면.
‘악마’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주인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타이퍼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잭 린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풀었다.
“죽지 않는 괴물이라, 시온에서 실컷 봤지.”
철컥―.
그는 양손의 샷건을 각각 장전했다.
“이봐, 카이트. 자네는 그 쪽잎귀 데리고 도망쳐. 저놈은 나랑 로봇 아가씨가 붙잡아 두지.”
비너스가 내 뒤로 쫄래쫄래 다가와 숨었다.
“돼지코 아저씨 말에 완전 동의. 유진 씨도 보면 알잖아요. 저건…… 뭔가 엄청나게 위험해요.”
“그래. 그러니까, ‘여긴 나한테 맡기고 어서 가!’ 큭큭. 이런 거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단 말이지.”
「현재 대상으로부터 약 30개 종류의 이상마력파장이 느껴집니다. 전투 결과 예측 불가. 회피를 권장합니다.」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는 모두가 알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여기선 무조건 도망치는 게 맞았다.
“…….”
그럼에도 나는 망설였다.
희생 따위는 죽어도 사양이다. 벌써 애런을 잃었다. 더는 나 대신 누군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나의 그런 졸렬한 마음이,
놈에게 닿기라도 한 것일까.
도망치게 놔두지 않겠다는 듯.
선택의 여지를 없애 주겠다는 듯.
“이자나기.”
다시금 놈은 속삭였다.
또 다른 악마의 이름을.
“타케미카즈치.”
언월의 모양을 한 남색의 번개가,
놈의 손아귀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전격 속성의 엘리멘탈 파괴 마법 <나루카미>.
<나루카미>와 같은 정령술 기반의 원소 마법은 기타 색채인 남색 마력으로는 구현하지 못한다.
허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저건 진짜 마법이 아니니까.
흑마법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묘한 악마의 힘. 무모한 억지로 일으킨 엉망진창의 기적이다.
몇 번이고 흑마법을, <부름>을 자기 손으로 써본 자라면 마땅히 알고 있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순.
설탕 대신에 사카린을 쓴 쿠키를 맛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구역질 나는 가짜의 감촉이 있다.
그래. 놈이 쓰는 건 흑마법이다.
아까도. 지금도. <부름>을 쓰고 있다.
흑마법은 한 사람당 하나밖에 쓸 수 없다.
그런데 놈은 여러 개를 쓰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설마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흑마법이란 흑마법 본연의 이치마저도 가볍게 부정할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
악마는 내 호기심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동명성해모수.”
번개의 칼날이 쥐어진 반대쪽 손에,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불꽃이 피어났다.
<용왕의 진노>. 물 속성 원소 마법의 극의.
번개와 파도. 놈이 지금 양손에 쥐고 있는 것은 <부름>으로 재현해낸 궁극의 파괴 마법이었다.
파지직. 쿠르릉―.
번개가 춤을 췄다. 웅장하게.
파도가 들썩였다. 난폭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는 건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네간 이어위커.”
“므두셀라 아타나시스.”
“네부카드네자르 바알.”
무시무시한 마법들이 서로 교차하며,
어마어마한 재앙의 시작점을 낳았다.
“Les bois sont déjà noirs.”
그리고―
지옥이 도래했다.
“Le ciel est encore bleu―.”
놈이 양손을 앞으로 뻗자,
마력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기억이 나는 부분은.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수십 개의 절망으로 뭉쳐진 그 마법의 파괴력은 이 폐건물을 바닥째로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회피나 방어 따위를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놈의 마법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도 느리고 약했다.
「주인님. 뒤로…….」
그나마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몸을 날려 다른 이를 지키는 것 정도.
「물러나ㅅ…….」
방금 전에 애런이 그랬던 것처럼.
타이퍼가 몸을 던져, 나를 감쌌다.
살에 맞닿은 녀석의 피부는 의외로 따뜻했다. 물론 그건 엔진이나 CPU의 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녀석이 고물이던 시절이 기억난다. 딱딱하기만 한 금속 피부였지. 그땐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얼티메이트-튜링 테스트를 통과해서 주민 자격을 얻게 되면 나보고 자기를 호적에 넣어 달라고 했었다. 가능하다면 스몰필드 씨도 같이. 농담 삼아 한 얘기인 듯해서 나도 농담 삼아 알겠다고 했다.
툭. 데구르르―.
시야가 암전됐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메인 AI 모듈의 반쪽만이 남은, 타이퍼의 유일한 흔적과 함께.
“……아…….”
타이퍼의 파츠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닿지 않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뒤늦게 나는 내 오른팔이 없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피로 얼룩져 검붉은 칠갑이 된 공허만이 유유히 자리해 있었다.
“…….”
주변은 휑한 철길이었다.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의 충격파로 인해 꽤나 멀리 날려진 듯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어둑하고 흐릿한 시야 속에 무엇인가 들어왔다. 반짝거리는 불빛이었다.
탕. 탕. 타아앙―!
잭 린든이 싸우고 있었다.
그가 샷건을 발사할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환해졌다. 다만 그것도 잠시뿐인 광경에 불과했다.
풀썩―.
레일 근처 신호기에 그의 몸뚱이가 떨어졌다.
어쩐지 그의 덩치는 반으로 작아져 있었다. 아니면 상반신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걸지도 몰랐다.
도살자 잭 린든은 믿음직스러운 동료였다. 뒤를 봐준 게 몇 번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왠지 나를 동경하는 모양이라 거의 맨날 공짜로 부려먹곤 했다.
목소리만 조금 큰 평범한 용병이었지만,
여기서 죽어도 될 만한 사내는 아니었다.
“…….”
애런이 죽었다. 타이퍼도. 잭 린든도.
비너스는 살아있을까. 모르겠다. 어디에도 모습은 보이진 않는다. 아마도 아까 전의 마법에 휩쓸려, 그대로 흔적도 못 남긴 채로 사라져 버렸겠지.
….
….
모두 죽었다.
순식간에. 전부.
“유감이야. 친구.”
그때.
놈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놀랐지? 나도 그래. 실제로 죽어본 건 처음이었거든.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패닉 왔었어.”
“…….”
“어떻게 부활했냐고? 뭐, 네가 생각한 대로야. 흑마법을 익혔어. 한 20개 정도. 아니, 더 되나?”
유클리드는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방금 처음 만난 것처럼 명랑스럽기 짝이 없는 어조였다.
“사실, 네가 부러웠거든. 뒷세계를 지배하는 최강의 흑마법사라니, 제길! 끝내주게 멋있잖아!”
“…….”
“나는 말이지. 딱히 네 지위나 명성이 탐났던 게 아냐. 그냥 되고 싶었던 거야. 암귀처럼. 아니.”
놈이 나를 웃는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너처럼.”
놈의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익숙한 색깔이란 생각이 드는 건 단지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항상 그런 생각을 했어. 전에도 말했잖아. 너랑 나는 꽤 닮았다고. 사실 닮은 정도가 아니지. 어떤 부분에서는 완전히 똑같아. 소름이 돋을 정도로.”
“…….”
“어쩌면 우린 어릴 적 헤어진 형제 같은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네가 날 완성시켰어.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덕분에 나는 너처럼 될 수 있었지.”
유클리드는 미소를 지었다.
순수한 기쁨을 지닌 미소를.
“고마워. 유진.”
그러고는 몸을 돌렸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럼, 좋은 밤 보내라고.”
….
….
놈의 뒷모습이 영원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상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추락하면서 척추를 잘못 부딪친 걸까. 허리 밑이 통째로 잘려 나간 느낌이다.
왼팔 역시 마찬가지다. 고통 외의 감각은 느껴지지 않고 있다. 오른팔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숨은 쉬고 있으나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
심장의 마력을 열심히 쥐어짜내 버티고 있을 뿐. 수명이 몇 분 남지 않은 시한부 송장에 가까웠다.
죽는 건가.
여기서 이렇게.
하늘에 뜬 반쪽짜리 달이 나를 위로했다. 허나 겨울밤의 밑바닥은 울고 싶을 정도로 차가웠다.
시에라시티에서 악당에게 죽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조금, 조금 많이 억울했을 뿐이다.
허무한 고요 틈에 눈이 몇 번이고 감기려 했다.
그때마다 환각과 환청이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보였던 것은 검은 머리의 그녀, 메리의 모습이었다.
“일어나요.”
그녀가 말했다.
어둠 속의 빛처럼.
“어서.”
문득.
익숙한 향기가 났다.
달콤함이 섞인 은은한 비누 냄새.
아아, 이건 분명 그리운 그녀의 향기다.
“눈을 떠요.”
나는 겨우 눈을 떴다.
메리가 눈앞에 있었다.
….
….
아니.
그녀는 메리가 아니었다.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
평소에는 안경을 끼는 그녀.
“팀장님.”
마지막 순간에 나를 안아준 사람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인물이었다.
“……스몰필드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