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End of the Night (2)
숨길 생각조차 없는 명백한 뒤통수.
감탄이 나올 정도의 기습적 배신이다.
‘하룻밤 만에 배반이라니. 멋진데.’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을까.
아니, 그렇진 않을 것이다. 유진이 처음 자신에게 접근해 왔을 시점만 해도 그런 낌새는 없었다.
‘아마도, 꽤나 급하게 세운 계획일 테지.’
유클리드는 알 수 있었다. 이 차디찬 모략에서는 갓 지은 밥 같은 따끈따끈한 기운이 느껴진다.
배신한 것은 필히 충동적인 결정. 이번 일의 전모가 기획된 것 역시 끽해야 반나절 전쯤일까.
‘그렇다 쳐도, 타이밍이 너무 이르잖아.’
보통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만 하루도 안 되어 (그것도 자기가 세운) 동맹을 깨부수진 않는다.
마치 자신이 할 법한 짓거리여서였을까. 유클리드는 나지막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재밌네. 당하는 쪽 기분도.”
탄약 없음. 체력 없음. 동료 없음.
당면한 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아무것도 아니지. 이 정도는.
무너진 바닥 밑으로 추락하기 직전, 유클리드는 상체를 젖혀 타이퍼에게 붙잡힌 멱살을 풀었다.
“하데스 디스파테르.”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내뱉은 저주의 단어.
악마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흑마법, <부름>.
사아악―.
흑마법 성물 ‘하데스의 투구’에서 비롯된 유클리드의 <부름>은 바로 <투명화> 마법.
사용자 혹은 대상의 형체를 일정 시간 동안 어떤 방법으로도 탐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유클리드를 폐건물 1층까지 몰아붙인 타이퍼는 곧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도 감지로도 적외선 감지로도, 사라진 유클리드를 포착할 수 없었다.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목표 소실. 탐지 불가.」
사실 유클리드는 타이퍼의 코앞에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로봇을 째진 눈으로 비웃으면서 말이다.
….
….
그런데.
기분 탓일까.
유클리드는 타이퍼와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안드로이드는 마치 보이지 않는 자신이 거기에 있음을 알고서 노려보는 것 같았다.
「학습 완료된 시퀀스 확인.」
「사전 계획을 이행합니다.」
물론 타이퍼는 유클리드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전 방위 사격 개시.」
투타타타타타탕―!
타이퍼의 상반신에 장착된 다중 총열을 지닌 미니건으로부터 무수한 총격이 퍼부어졌다.
<투명화>를 쓸 것을 애저녁에 상정해 둔 듯한 신속한 대응 속도. 유클리드로서는 예상외였다.
“웁스.”
허나 그리 큰 위협은 아니었다. 그야 한 발이라도 맞는다면 치명상이겠지만, 눈 감고 쏘는 거나 다름없는 저런 무지성 총질에 당해주지는 않는다. 일단 몸을 피하고 빈틈을 찾아 도주하면 그만.
이때 유클리드가 간과한 점은―
상대가 타이퍼뿐만이 아니란 점.
“지원 사격일세. 로봇 아가씨.”
양손에 각각 반자동 산탄총을 한 정씩 움켜쥔 오크 총잡이, 잭 린든이 사각지대에서 나타났다.
곧 양방향에서 무차별로 쏟아지기 시작한 총격을 피해, 유클리드는 계단 쪽으로 피신했다.
“……!?”
그리고 거기서 함정에 걸렸다.
계단참 앞에 도착한 순간, 마법진이 발동됐다. 녹색 촉수가 순식간에 유클리드의 발을 옭아맸다.
“오케이, 잡았다!”
숨어서 대기하고 있던 비너스가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특기 마법인 <파리지옥>은 일단 발동만 되고 나면 코끼리 다섯 마리 몸무게의 괴물 트롤이라도 3초는 묶어 둘 자신이 있었다.
“지금이에요! 유진 씨!”
그 순간.
유클리드는 식겁했다.
“이런. 젠장.”
1대5는 너무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등 뒤에서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그의 시야를 자색 마력으로 덮었다―.
***
빈사 상태.
그 말이 딱 어울렸다.
“쿨럭, 쿨럭…….”
놈은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HP로 표현하면, 딱 1과 2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정도.
쓰레기장에 버려진 인형처럼, 놈의 몸뚱이는 부서진 건물 잔해에 얹히듯 쓰러져 있었다. 목 아래로는 감각이 아예 없는 듯 미동도 하지 못했다.
“하아, 크흐읍, 이거, 내가 진 건가……?”
유클리드는 반쯤 풀린 동공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이젠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래. 네가 졌어.”
“…….”
“왜 이 꼴이 되어 버렸는지는 잘 알겠지. 너도 모르진 않겠지만, 원래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어.”
유클리드는 위험인물이었으나 당장에 내게 위협을 주지는 않았기에, 일단 명목상 동맹을 맺어 놓고, 당분간 천천히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너는 타산적인 인물이지.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질러. 바꿔 말해, 이득만 챙겨준다면 얌전할 테니, 굳이 적대할 필요는 없어. 어느 정도 계산이 서는 놈이야.”
“…….”
“그래서 나는 너랑 동맹을 맺었어. 네 목적은 뒷세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서 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 방향성은 좀 다르지만 나도 비슷한 목적이 있었거든. 그러니까 지금 시점에 너와 동맹을 맺은 것 자체는 분명 합리적인 일이었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오늘 일로 생각이 좀 변했지.”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낮에 있었던 테러로 인해 도시 치안에 큰 문제가 발생한 지금, 도시를 집어삼키기엔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야. 하지만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직 자기 세력을 충분히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지.”
“…….”
“반대로 생각하면 조금 이상해.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바르베이라가 테러를 벌이도록 가만히 내버려 둔 걸까. 바르베이라의 실각은 그녀와 동맹이었던 네 입장에선 오히려 손해라 할 수 있지. 잘만 하면 엄청난 이득을 볼 수도 있었던 상황에, 너는 바보처럼 손해만 본 거야.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뻔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재밌으니까.”
놈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듯했다.
“맞아. 너는 그런 놈이야.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죽여.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를 앗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웃음 지으면서.”
“…….”
“네가 나중에 도시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나면 분명 얼마 못 가서 지루해하겠지. 지배자 생활에 질린 너는 과연 무슨 짓을 할까. 나는 상상할 수 있었어. 그래서 널 없애기로 한 거지.”
지켜본다는 계획부터가 난센스였다.
악惡은 내버려 두는 것 자체로 악이었다. 미필적 고의로 세상을 멸망에 빠뜨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내가 위험한 놈이라서, 죽인다고……?”
“…….”
“하핫, 나는 좀, 다른 게 느껴지는데…….”
유클리드가 공기 빠진 소리로 웃었다.
“이를테면, 그, 개인적인 감정 같은…….”
그때.
총성이 울렸다.
타아아아앙―!
잭 린든의 샷건이었다.
내 옆에 서 있던 그는 놈이 말하던 중에 총구를 들이대더니, 머뭇거림 없이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지근거리에서 산탄에 직격당한 유클리드의 얼굴은 본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어, 아래턱의 반쪽만이 간신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카이트. 혓바닥이 길어.”
“…….”
“자네답지 않았어. 볼일 끝났으면 죽이든 살리든 하나만 해야지. 괜히 시간 끌 필요는 없잖나.”
잭 린든은 덤덤한 어조로 나를 나무랐다.
나는 확실한 죽음을 선사 받은 유클리드의 최후를 내려다보며, 그의 말에 끄덕거림으로써 동조했다.
「생명 반응 없음.」
「목표 사망 확인.」
놈의 시체를 살펴본 타이퍼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뒤늦게 모두의 긴장감이 풀린 듯 보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카이트 씨.”
“다 끝난 것 맞죠? 쯔읏, 하루 웬종일 부려 먹기나 하고. 저 이거 오늘은 무급으로 못 넘어가요. 야간수당에 휴일수당까지 몽땅 다 받을 거라구요.”
「주인님. 이만 돌아가서 쉬십시오. 현장의 뒤처리는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다 끝났다.
유클리드는 죽었다. 이제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화로웠다.
….
….
그런데.
기분 탓일까.
지금.
놈의 입술이 움직인 듯한……?
“라자로.”
그때.
어렴풋이 들려왔다.
“에게이로.”
한 번도 듣지 못한,
어느 악마의 이름이.
***
같은 시각. 아우터필드.
황무지 한가운데의 연구소.
「알파 팀. 진입한다.」
시에라시티 역사상 최악의 테러를 일으킨 용의자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의 거처로 추정되는 이 장소에서는 현재, 정부의 비밀 작전이 수행되고 있었다.
「입구 측 복도. 클리어.」
「전방에 적 없음. 확인.」
「부대 일렬로 전진한다.」
<나인서클>의 수장 귄터 사지타리우스와 ‘시간의 마도사’ 제퍼슨 브리즈가 참여한 스페셜 유닛.
현 정부의 최고 전력이나 다름없는 부대였지만, 이곳에서는 일말의 방심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쪽 문이 열려 있습니다.」
「대기. 아직 들어가지 마라.」
「방호 마법 전개. 이제 안전합니다.」
부대의 선봉을 맡은 대테러 요원들이 야간 투시경에 의지해 먼저 건물 안쪽 공간으로 진입했다.
그들 앞에 펼쳐진 연구소 내부의 모습은…….
「윽.」
살풍경 그 자체였다.
고약한 추상화처럼 여기저기 덧칠된 핏자국들. 유흥가의 삐라마냥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살점들.
「끔찍하군.」
인체 실험이라도 이뤄졌던 걸까. 도대체 여기서 뭐가 벌어졌던 건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무렵. 공간 내부를 관찰하고 있던 부대장이 의자에 앉은 깡마른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전방에 탱고. 대상 포착.」
「킹핀으로 추정되는 이종족 여성의 사체 발견. 반복한다.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의 시체를 발견.」
「감식반은 조속히 현장으로 들어오도록. <나인서클> 분들도 지금 당장 이쪽에 와주십시오.」
부대장의 호출에 따라 이내 법의관과 제퍼슨 브리즈가 연구소 안쪽의 현장에 들어섰다.
“어떤가요, 브리즈 씨?”
“……맞는 듯하군요.”
상태가 좋지 않아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제퍼슨 브리즈는 그것이 바르베이라의 주검임을 확신했다.
“죽은 지는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사망 추정 시간에 비해 부패 상태가 꽤 심합니다만.”
“사망 원인은요?”
“전신에 멍. 그리고 경부에 날붙이 따위로 깊게 찔린 자국이 있어요. 아무래도 살해당한 듯합니다.”
“<나인서클>을 죽였다니. 누가 이런 짓을?”
“글쎄요. 여기에 함께 있었던 누군가겠죠.”
제퍼슨 브리즈는 연구소 내부를 돌아보았다.
다소의 인체 실험이 있었던 듯한 처참한 흔적. 문득 바닥에 있는 피와 살점들 사이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몇 가지 특이한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이건……?”
느부갓네살의 열쇠. 멜키세덱의 성작.
라자로의 붕대. 잃어버린 시간의 자명종…….
아티팩트. 그것도 전부 흑마법 성물이다.
제퍼슨 브리즈는 의문을 가졌다. 이곳에서 진행됐던 실험은 흑마법과 관련되어 있었던 건가?
바르베이라는 무엇을 연구했던 거지?
도대체 어쩌다가 살해당하게 된 거지?
“…….”
성물의 종류와 수량이 매우 다양하다. 흑마법 성물은 한 사람당 하나씩밖에 계약할 수 없다.
확실치는 않지만, 실험체였던 흑마법사가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아마도 여러 명일 것이다.
“DNA 분석을 해보죠. 현장에 흔적을 남긴 이들 중에 바르베이라를 살해한 범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퍼슨 브리즈의 의견에 따라 법의관이 핏자국의 DNA를 채취했다. 최첨단 장비와 검시용 마법 주문을 통해 분석 결과를 즉석에서 뽑아낼 수 있었다.
“어, 저기,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요…….”
왜인지―
법의관은 매우 당황한 모습이었다.
“왜 그러죠? 검출이 되지 않습니까?”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는 한참을 더듬다 간신히 말했다.
“이게, 그, 현장에 있는, 여기 있는 핏자국이랑 시체들이, 전부 다…… 같은 사람 겁니다.”
제퍼슨 브리즈는 귀를 의심했다.
“실험체가 한 명뿐이란 말씀이십니까?”
“예에,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죠…….”
벽면과 바닥. 공간 전체가 핏물로 얼룩져 있다. 찌그러진 뼈, 시체의 살점 조각 따위가 마구잡이로 굴러다닌다. 어림잡아도 그 양은 거의 한 트럭이다.
“…….”
이게 단 한 사람의 흔적이라면.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한다면.
“무슨 괴물을 만들고 있었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