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Sunday Bloody Sunday (6)
“아니, 생각해 봐요. 나중에 깡통이랑 나랑 같이 만담 콤비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대성할지도 모르잖아요? 근데 그 기회를 걷어차 버리고 이렇게 유진 씨를 구하러 왔다 이거죠.”
“그래, 와줘서 참 눈물 나게 고맙다.”
“것보다, 유진 씨 지금 설마 <스카이워크>로 공중에 떠 있는 거예요? 으휴, 촌스럽긴. 요즘 누가 그런 구닥다리 비행 마법을 쓴대요? 자자, 제가 <페더라이크> 걸어 줄게요. ……어때요? 훨씬 편하죠? 완전 다른 세상이죠? 하여간 우리 유진 씨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으스대는 비너스 녀석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으니 참기로 했다. 지나의 분신을 연락책으로 써서 녀석과 타이퍼에게 도움 요청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주인님.」
「아리엘 님의 구조를 완료했습니다. 현재 안전이 확인된 가까운 빌딩의 피난처로 대피시켰습니다.」
그때, 반대편 하늘에서부터 눈 깜짝할 사이에 여기까지 날아온 타이퍼가 측면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행동을 대기 중입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한때는 고물이었던 깡통 로봇이 이제는 차세대 휴머노이드로서 내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날 죽이려고 했던 통수쟁이 사기꾼 마법사 녀석도 언젠가부터는 제법 말을 잘 듣는 편이다.
“흐흥. 나만 믿으라구요, 유진 씨.”
“제 밧데리 역할 잘 해낼 자신 있죠?”
왼쪽에는 타이퍼. 오른쪽에는 비너스.
최상의 조합은 아니지만, 뭐. 혼자보단 낫군.
“그래서, 우리 상대는 누구예요?”
비너스가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놈의 실루엣이 공중에 훌쩍 나타났다.
「흠.」
「프레야 앤더슨과 메이드 로봇 양.」
「숫자가 하나에서 셋으로 늘었군요.」
<나인서클>의 제4원. ‘기계해골’ 콘스탄틴.
최초의 위저드로이드. 드래곤조차 불가능한 초고도 술식의 연산 과정을 0과 1만으로 해내는 괴물.
「2진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둘 다 결국엔 1이지만 말이죠.」
기계해골이 붉은 안광을 드러냈다.
곧 비너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어머낭. 콘스탄틴이넹.”
“맞아. 저놈이 우리 상대야.”
“……그, 저번에 유진 씨가 <메이슨 타워>에서 저거 죽였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살아 있죠?”
“본체는 죽었어. ‘업화’의 몸을 안드로이드로 개조시켜서 본체의 메모리를 거기에 옮긴 모양이야.”
“……잠깐만요. ‘업화’라면, 설마 업화의 마도사? 부상으로 은퇴한 카미유 레이의 몸이라고요?”
“아까 내 몸에 붙은 불꽃 봤잖아. 틀림없는 최상급 레벨의 마도魔道였어. 아무래도 놈은 전설적인 화염 마도사의 힘을 고대로 쓸 수 있는 것 같아.”
“……그럼 저건, 콘스탄틴+카미유 레이란 거?”
“그래.”
“……어떻게 이겨요?”
“글쎄. 열심히 해봐야지.”
“……아니, 저기, 저거는, 으으음, 열심히 한다고 어떻게 될 상대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뭐, 또 배신하고 통수 치게?”
“스으읍. 둘 중 하나에 목숨 걸라고 하면…….”
비너스는 입술을 깨문 채 코로 숨을 뱉었다.
“그래도, 유진 씨한테 거는 게 맞겠죠.”
자신감 쭉 빠진 목소리에 쭈뼛거리는 동작.
그럼에도 신뢰받고 있단 기분은 얼추 들었다.
“뭐어, 어쨌거나 저쨌거나 일단 한 번 이겼던 상대이기도 하고? 유진 씨한테는 개사기 스킬인 <부름>도 있으니까, 승산은 이쪽에도 꽤 있다고 봐요. 어떻게든 접근해서 <부름>만 먹일 수 있다면…….”
비너스가 말하던 도중.
내가 살며시 끼어들었다.
“<부름>은 못 써.”
“느엥?”
“써도 안 나오더라고. 며칠 전부터.”
잠시 침묵.
“농담이죠?”
“농담 아닌데.”
비너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런다고 해서 진실은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지금 <부름>을 정상적으로 구사할 수 없었다.
……그날. 과거의 기억을 엿본 그때 이후로
……힘이 깃든 상자가 잠겨 버린 듯한 느낌.
단지 느낌뿐이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어쩌면 내 속의 악마가, 암귀가 이 힘을 쓰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저 그냥 배신하고 저쪽 편 가도 돼요?”
“서두르지 마. 이길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비너스의 말마따나 한 번 이겼던 상대다.
전략은 간단하다. 그때와 같은 방식을 쓴다.
“흐읍.”
미르각시가 내게 전수해준 비장의 기술.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언어로 만들어진 술식, 오직 나만을 위해 창조된 단 하나뿐인 마법.
무한대로 방출 가능한 자색 마력. 그 힘을 100% 있는 그대로 이끌어내는― 단순무식한 일격필살.
“<빛이 있으라>.”
단전에서부터 끌어모은 마나를,
뻗은 손끝에 오롯이 담아 내보냈다.
자색의 마나는 백색의 광채가 되어,
별이 폭발하는 순간에 발하는 빛을,
지구의 하늘에 가감 없이 쏟아냈다.
휘황찬란이란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되는 눈부심.
눈을 감을 필요는 없었다. 이 빛은 내 것이었다.
번쩌어어억―.
잠시간 누구도 보지 못할 빛이 있었다.
이윽고,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와, 미친, 씨, 이게 뭐야…….”
이후 한참 동안 어버버 말문이 막혀 있던 비너스가 가까스로 입을 열어 뒤늦게 감탄사를 쏟아냈다.
“이거 그거 맞죠? 그 테러 때 뉴스에도 나왔던 드래곤 최후의 브레스. 미르각시가 아니라 진짜로 유진 씨가 쓴 거였구나. 직접 옆에서 보니까 더 소름이네. 깝쳐서 죄송해요. 절대 배신 안 할게요.”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확실히 방금 그건 누구라도 오줌을 지릴 만한 위력의 마법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위화감이 남아 있었다.
“…….”
나는 마법을 날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마력 방출의 여파로 하늘에는 거대한 크기의 유사 에테르 구름이 형성되어 있었다.
콘스탄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희망 사항은 방금 일격으로 놈이 제압되었다는 쪽이지만…….
「적 반응 있음.」
당연히 그렇게 될 리는 없다고.
타이퍼가 내게 음성으로 알렸다.
「이런. 깜짝이야.」
「갑자기 무슨 짓입니까? 언질도 없이 선빵이라니. 두 번 죽는 줄 알았다고요! PTSD 왔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오른 구름을 헤치고 나온 콘스탄틴은 어깨 부분 파츠의 일부가 반파되었을 뿐. 기능하는 데는 문제라곤 없이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뭐, 두 번은 안 통하죠.」
「아무렴. <해체 술식>이 먹히지 않는 마법이라고 제가 방어를 아예 못 할 줄 아셨답니까?」
「더군다나 측정 결과 마나 출력 수치는 그때와 비교해 1/10도 안 되는 수준.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더군요.」
「그야 뭐 무리도 아니죠! 이미 한번 100% 방전된, 그것도 무한대에 달하는 마나가 며칠 사이에 완전히 회복될 리는 없으니까요! 쉽게 말해 약해져 있는 겁니다, 당신! 가엾게도! 이 콘스탄틴을 상대로! 만전을 기해도 모자랄 판국에 말입니다앗!」
콘스탄틴은 하이라이트 파트의 뮤지컬 배우처럼 과장적으로 성량을 높이며 거의 외치듯이 말했다.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놈이 혼자서 떠드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틈에 차선책을 준비해야 했다.
“비너스. 마력 얼마나 남았어?”
“으음, 여기까지 <페더라이크>로 날아오느라 소모한 거랑, 아까 유진 씨 몸에 붙은 불 끈다고 <절대영도>까지 썼으니까 대략…… 절반 정도요.”
“타이퍼. 지금 바디에 무기 장비는 뭐가 있지?”
「양 상완부에 슐츠 레네게이드 타입 내장형 기총과 7.62mm 분리철갑탄 100발. 그리고 연막탄, 섬광탄, 플레어를 각각 2회만큼 장비 중입니다.」
생각할 시간은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계획은 간단하게. 실현 가능한 범위로 세운다.
“어쩔 셈인데요?”
“치명타는 아니었지만, 놈은 방금 내가 한 공격에 분명히 데미지를 입었어. 근접 거리에서 정면에 제대로 먹인다면 끝장을 낼 수 있을 거야.”
「구체적인 계획은 있으십니까?」
“기본 삼방향 동시 공격. 다 같이 일제히 덤벼들되, 초반 전투의 중점 역할은 비너스가 맡는다.”
“저기, 마법전으로 이기는 건 절대 무리예요. <해체 술식> 때문에 유진 씨가 제 마법을 강화시켜 줘봤자 저놈한테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구요.”
“이길 필요는 없어. 시간만 벌면 돼.”
“얼마나요?”
“1분. 그 이상 버텨 주면 좋고.”
“허어, 대마법사를 상대로 1분씩이나 버텨 보라니, 거참 무리한 요구를 다 하시네…….”
우리는 각기 전투태세를 갖췄다.
때마침 콘스탄틴의 연설도 다 끝나 있었다.
「자아. 복수의 시간입니다. 미스터 유진 연.」
「당신 손에 죽은 이 콘스탄틴이, 암귀 손에 죽은 카미유 레이의 육신을 계승하여……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이란 존재를.」
기계해골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반짝였다.
「멸토록 하겠나이다.」
그리고 온 하늘이 고요해졌다.
천둥이 울리기 전의 적막이었다.
「<업화경業火鏡>.」
용암과 화염으로 된 벼락이,
사방에서 내리치기 시작했다.
「<게헨나의 광염>.」
***
1분.
콘스탄틴의 귀에 들렸던 시간이다.
「흠흠. 1분이라…….」
우연찮게도 그 1분이란 시간은, 현재 콘스탄틴이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한계 활동 시간에 가까웠다.
설마 그 짧은 사이에 눈치챈 것인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건 이쪽 역시 마찬가지란 점을.
「보여요. 당신들의 수가 뻔히 다 보입니다.」
「제가 싸울 기력을 잃을 때까지 버티면서 천천히 기회를 엿볼 셈이겠지요. 요 요 비열한 것들.」
시간을 끌면 불리해진다. 하지만 이쪽이 힘을 아껴 대충 상대한다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속전속결. 최대한 빠르게 끝낸다. 굳이 복잡한 연산을 거치지 않아도 곧바로 나오는 유일한 해답이다.
「불타 죽으십시오. 어리석은 조물주들이여.」
<업화경: 게헨나의 광염>은 천재라 불렸던 비전 마도사 카미유 레이가 창제한 염마도의 극의.
태양을 옮겨 놓은 듯한 강력한 화염 폭풍을 소환해 짧은 시간 동안 주변 지대를 초토화시킨다.
공기조차 태워 버리는 지옥의 열기는,
숨을 쉬는 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으리라.
「10초 경과.」
「아직 생명 반응이 있군요.」
콘스탄틴의 시야는 불꽃의 폭풍우로 가려져 있었다. 강력한 파괴 마법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제한된 시야. 당연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누군가 서프라이즈로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이미 상정해 두었습죠.」
아까 전에 유진이 날렸던 초대형 출력의 <빛이 있으라>. 단순 위력만 본다면 미르각시의 파괴술에 준한다. 근접한 거리에서 그걸 맞게 된다면 꽤나 골치 아파질 터. 접근을 허락한 순간 위험해진다.
<빛이 있으라>는 일직선으로 날아온다.
방호 마법 대기. 언제든지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번쩍―.
콘스탄틴이 우려했던 것처럼,
불꽃속에서 하얀 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틀림없이―
<빛이 있으라>였다.
「빙고.」
허나 말했다시피 대비하고 있었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라 할지라도 타이밍에 맞춰 알맞게 방어한다면 그 위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포스 디펜더>!」
두 번씩이나 관측한 마법이다. 때문에 콘스탄틴은 순간적인 초고도 연산을 통해 <빛이 있으라>를 완벽히 카운터 치는 방호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큼지막한 빛이 반짝였고,
콘스탄틴은 그것을 막았다.
….
….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
아니. 잠깐.
뭔가 이상했다.
뭐였지? 방금 그 빛은 이상했다.
위력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빛이 있으라>는.
「원래 파괴 마법이 아니잖아.」
그렇다. 최초의 마법 <빛이 있으라>.
그것은 마력을 광자로 바꿔 빛을 비출 뿐인 단순한 범용 보조 마법이다. 파괴력이라곤 원체 없다.
다만 유진이 쓰는 <빛이 있으라>는 달랐다.
무한한 마나를 소재로써 사용하는 그의 <빛이 있으라>는 원본과 완전히 다른 최강의 파괴 마법.
그러니까, 다시 말해…….
방금 그 <빛이 있으라>는…….
“내가 쓴 거지롱. 빠가사리 로보트야.”
순간.
청각 센서가 감지한 간지러운 목소리.
「아.」
그제야 콘스탄틴은 깨달았다.
그것은 비너스가 쓴 평범한 <빛이 있으라>였다. 단지 타이퍼의 섬광탄으로 위력을 증대시켰을 뿐.
그렇다면, 진짜는…….
「아.」
이때.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느껴진 생명체 반응.
「아. 아. 아아아아아!」
콘스탄틴은 뒤늦게 방호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번쩌어어억―.
그리고 빛이 내려왔다.
우주에서 가장 밝은 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