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Sunday Bloody Sunday (5)
웨스트록 6구역.
<겟세마네 보육원>.
당초 미르각시가 우려한 대로, 침공 사태를 일으킨 안드로이드들이 재차 보육원을 습격해 왔다.
바르베이라가 로봇들에게 내린 명령은 어디까지나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학살’이었으나, 그들의 메모리에 데이터로써 각인된 공포심― 최강자에 대한 불안 의식이 사살의 우선순위를 바꾸었다.
제아무리 미르각시라 해도 몰려드는 위협으로부터 자기 안전을 간수하는 것마저 버거운 상황.
보육원의 아이들까지 지켜 가면서 싸우기엔,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는 불가능함을 느꼈을 무렵―
“구하러 왔어. 쪼꼬미 드래곤 선생.”
유진이 보낸 지원군이,
늦지 않게 그곳에 도착했다.
“그대는……?”
“지나 드비토. 보스의 오른팔 겸 왼팔 겸 양쪽 다리…… 뭐어, 사지 전반을 몽땅 다 맡고 있지. 하여간 귀찮은 일은 죄 나한테 떠넘긴다니까, 진짜.”
똑같은 체구에 똑같은 차림을 한 수십 명의 바이커들이, 로봇들과 대적 중인 현장에 돌연 난입했다.
그들 각각의 전투력은 그리 우수하지 못했지만, 능숙한 기습에 이어 흡사 한 몸과도 같은 연계를 통해 안드로이드 하나하나를 차례차례 박살 냈다.
“여긴 ‘나’한테 맡기고, 당신은 ‘나’를 따라와. 용용 선생이 여기 있으면 애들까지 위험해지니까.”
“……신세를 지는군. 고맙구나.”
“감사 인사를 뱉을 거면 나중에 돈으로나 줘. 당신 드래곤이니까 엄청 부자일 거 아냐? 맞지?”
미르각시는 지나의 호위를 받으며 보육원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이미 도시 안에 안전한 장소 따위는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도심과 멀어지도록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뛰는 것뿐이었다.
쫓아 붙은 로봇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적어지다 못해, 드디어는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
지나 드비토는 무언가 이상을 감지했다.
그녀는 죽은 분신에게서 실시간으로 기억 전송을 받아, 되도록 적이 없는 경로로 미르각시와의 도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헌데 그 기억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그야 간단하다. 더는 분신이 죽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살벌한 폭음이 끊임없이 터져 대던 거리도 어느샌가 잠잠해져 있었다. 마치 사태가 끝난 것처럼.
그리고 이어서 잠시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능이 전부 정지된 상태의 안드로이드들을 발견했다.
“휴우. 보스의 작전이 성공한 모양이네.”
다행이란 듯이 안도하는 지나 드비토를 보고서, 미르각시는 유진이 뭔가를 해냈음을 직감했다.
사태가 끝났다면 이제 도망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숨을 고르며 살아 있음을 만끽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뿐.
터벅―.
발소리가 들렸다.
저 먼발치에서부터.
터벅. 터벅―.
그것은 마치 지옥의 종소리와도 같이.
땅속 깊이 울리는 불길한 메아리였다.
“저건…….”
미르각시와 지나 드비토는 앞을 보았다.
그들의 맞은편, 폐허가 되어 버린 거리의 타오르는 불길 한가운데,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백금색의 강철 육체.
죽음을 형상화한 듯한 창백한 푸른 칼날.
“안드로이드……?”
한때 최후의 검성이라 불렸던,
어느 늙은 검객의 비참한 말로.
용을 죽일 뻔한 자.
도그아이드 킴이었다.
***
화아아아아악―!
진홍의 불꽃이 내 몸을 잡아먹기 직전.
나는 눈치챘다. 이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큭!?”
피할 수도 없었다. 불꽃은 그대로 시야를 뒤덮고 전신을 감쌌다. 뼈까지 녹일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오빠!”
아리엘이 소리를 질렀다. 녀석은 불길에 휩싸인 나를 구하려고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 돼. 불꽃이 옮는다.
나는 그 애의 손을 뿌리쳤다. 소리치는 아리엘과 눈을 마주친 채, 속으로 ‘미안.’이라고 되뇌었다.
그러고 나서 허공의 마나 발판을 없앴다. 디딜 곳을 잃은 나와 아리엘은 하늘 밑으로 추락했다.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이대로 있다간 아리엘까지 불꽃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강화>로 버틸 수 있는 나와 달리 그 애는 순식간에 타버릴 터.
게다가―
“크으윽……!”
왠지 모르겠지만 이 불꽃은 뭔가 좀 다르다.
끈적거리는 걸로도 모자라 시종일관 꿈틀대며 날뛰고 있다. 마치 <부름>의 벌레처럼, 불꽃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일반적인 화염 속성 마법은 위력이 강한 반면 유지력은 낮다. 헌데 이 요상한 불꽃은 풀파워 <강화>로도 버티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주제에, 어째 불길이 사그라들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화탕지옥에서 꺼내온 것만 같은 맹렬한 불꽃.
설마, 이 말도 안 되는 화염 마법의 정체는…….
「<업화>입니다.」
화마에 휩싸여 추락하는 내 귓가에 대고,
기계해골 콘스탄틴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노여움의 불꽃.」
「전임 <나인서클> 제4원 ‘업화의 마도사’ 카미유 레이가 자랑하던 바로 그 염마도炎魔道지요.」
무방비 상태로 떨어지고 있는 내게 치명타를 날리는 것은 케이크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었겠지만, 놈은 그러지 않았다. 나를 놀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아, 메이슨 타워를 습격한 그 날 당신에게 본체를 잃은 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미르각시만 잡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암귀란 놈한테 그런 꼴이 날 줄이야! 것도 짭한테! 치욕입니다! 치욕!」
「하지만 로봇은 인간과 달리 매우 현명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절―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주인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선 당신부터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껴 왔던 이 SSS급 스페어 바디까지 땡겨 갖고 오면서 말이죠.」
「흠흠. 뭐어…….」
「이리도 싱겁게 끝날 줄은 몰랐지만요.」
콘스탄틴은 떨어지는 내 옆에서 팔을 괴고 눕는 시늉을 한 채 사람이라도 된 것마냥 하품을 했다.
「아참. 해킹된 안드로이드들의 기능 정지는 한 5분이면 풀릴 겁니다. 재해킹하면 그만이거든요.」
「소녀와 함께 분투하는 당신의 헛짓거리 쇼는 잘 보았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구경이었어요.」
나는 열기에 못 버텨 죽을 것 같은 지경에도 놈이 옆에서 수다 떠는 꼴을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공중에서 있는 힘껏 발길질을 휘둘러 콘스탄틴의 딱딱한 옆구리를 걷어찼다. 놈은 「맘마미아!」하고 비명을 지르며 차인 방향으로 훌쩍 날아갔다.
“젠장……!”
뜨겁다. 피부가 녹아 버릴 것 같다.
떨어지고 있다. 지면까진 그리 멀지 않다.
그리고 최악인 부분은― 지금 이 거대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존재가 나뿐만이 아니란 점이다.
“아리엘!”
추락하는 와중에 어떻게든 시선을 돌려 아리엘을 찾았다. 녀석은 나보다 더 낮은 곳에 있었다. 구하러 가야 했지만, 아직 몸을 감싼 불길이 여전했다.
―제기랄. 어떡해야 하지?
불은 결국에는 불이다. 열기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려면 온도를 낮추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옷자락에 묻은 이슬의 얼음, 그 ‘냉기’를 <강화>해 봤지만 <업화>를 꺼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없다. 곧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전에 나는 불에 타서 죽을지도 모른다.
내 시선은 끝까지 아리엘만을 쫓았다.
부디. 적어도 저 아이만큼은 무사해야 한다.
애타게 부르짖은 그런 나의 바람이,
천국에 있는 존재들에게 닿은 것일까.
반짝―.
한순간.
하얀빛이 보였고.
「목표 지점 도착.」
땅에서부터.
천사가 강림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천사는 기계로 된 날개를 가진,
금발 머리의 메이드 로봇이었다.
「구조를 시작합니다.」
타이퍼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 그대로 아리엘이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소녀를 캐치한 메이드 로봇은 곡예 같은 비행을 하며 다시 하늘로 돌아왔다.
“조금 시릴 거예요―.”
그리고 그때쯤.
치과 의사나 할 법한 대사를 내뱉으며 나타난, 천사와는 아무래도 다른 종류의 누군가가 있었다.
“<절대영도>.”
차가운 냉기가 몸을 감쌌다. 과할 정도로 싸늘한 기운이 열을 식히자 기분 좋은 고양감이 전해졌다. 곧 온몸을 덮었던 <업화>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아뜨뜨! 아우, 씨. 옮겨붙을 뻔했네.”
“…….”
“안녕, 유진 씨. 나 만나서 반갑죠?”
솔직히 말하자면.
졸라 반갑긴 했다.
“자, 개고생은 끝. 이젠 안심하세요.”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 초록머리 엘프는,
사알짝 경박해 보일 정도의 미소를 지었다.
“이 비너스 님이 구하러 왔으니까―.”
***
수 시간 전.
웨스트록의 한 거리.
“아휴, 일요일에 깡통 뒤치다꺼리라니…….”
비너스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그녀는 윌슨앤코의 인턴사원 ‘헬렌 스미스’로서, 회사 소유 안드로이드 타이퍼의 보호자 역할을 맡아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동행하고 있었다.
“야, 깡통. 너 오늘 뭔 시험 본다고 했지?”
「얼티메이트-튜링 테스트입니다. 3단계 이상의 자아 레벨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대상으로 로봇 인권을 지닐 권리가 적합한지 여부를 검사하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시험 쳐서 합격하면 뭐, 그때부턴 로봇이 아니고 사람이라 쳐주고 뭐 그러는 거야?”
「얼티메이트-튜링 테스트 결과 AAA급을 기록한 안드로이드는 법적으로 사이보그와 같은 지위에 설 수 있습니다. 주민번호를 부여받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생깁니다. 노동을 할 경우 합당한 임금을 받을 수 있으며 납세의 의무가 주어집니다.」
“흐음, 사람 취급받게 된다고 해서 막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 굳이 시험을 왜 칠라 그래?”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만. 제게 어느 정도의 자주적인 권리가 생기면 주인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께 봉사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바깥을 외출할 때마다 지금처럼 보호자의 동행이 필수적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 깡통 너, 설마 날 위해서? 기특하잖아!”
「다만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얼티메이트-튜링 테스트에 있어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부분은 ‘인간성’ 항목입니다. 저는 TYPE-R의 OS 특성상 감정 모듈과의 싱크로율이 정상 수치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말투와 행동거지가 사뭇 무감정해 보입니다. 이로 인해 자칫 인간성이 부족해 보일 염려가 있습니다.」
“근데?”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약한 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유머에 대해 연구해 보았습니다. 재미있는 창작 유머를 통해 심사위원에게 저의 창의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어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오, 유머라……. 좋아. 한번 해봐. 평가해 줄게.”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어덜트’로 삼행시를 해보겠습니다. 헬렌 님께서 운을 띄워 주십시오.」
“어.”
「어엄청난 미녀를 꼬셨는데.」
“덜.”
「덜렁덜렁.」
“트.”
「트랜스젠더였네.」
“…….”
「어떻습니까. 제 유머는.」
“쫌 저급하지만, 나쁘지 않은데……?”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키덜트’로도 삼행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운을 띄워 주십시오.」
“키.”
「키스를 하고 봤더니.」
“덜.”
「덜커덩츄우욱끼리릭콰앙아임옵티머스프라임.」
“트.”
「트랜스포머였네.」
“…….”
「어떻습니까.」
“‘어덜트’에 이어 ‘키덜트’, 살짝 비틀어 들어가는 콤비네이션……. 삼행시로서는 퀄리티가 꽤 높아!”
「감사합니다.」
“로봇이 치는 로봇 개그란 점에서도 센스가 엿보여. 이거 잘만 하면 심사위원 전원 빵 터뜨릴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없는 건 아냐. 일단 삼행시로 들어가는 과정에 대해서인데…….”
***
“그래서 타이퍼랑 같이 덜트 시리즈를 좀 더 연구해 보기로 했어요.”
“그게 뭔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