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Sunday Bloody Sunday (4)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오후의 하늘은 어두운 빛을 띠었다. 저 멀리 도심서 피어오른 불길한 연기가 상공을 덮고 있었다.
“아리엘, 비행기 타본 적 있어?”
“으응. 없어.”
“높은 곳은 안 무서워?”
“떨어지는 꿈은 자주 꿔서 익숙해.”
“좋아. 그럼 업혀.”
나는 곧바로 무릎과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아리엘이 혀를 메롱 내밀었다.
“싫어.”
“……?”
“업히는 거 싫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활짝 웃는 얼굴로 두 팔을 넓게 벌렸다.
“안아줘! 공주님처럼!”
생각한 방식에 의견차가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나는 아리엘을 등에 업는 대신, 내 양팔 위에 눕히듯이 사뿐히 올려 공주님 안기로 안았다.
“이거면 됐냐?”
“히힛. 완전 됐어.”
조그마한 손으로 내 목과 어깨를 꼭 잡아 끌어안으며 빨간 머리 소녀는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자아. 그러면.”
나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바로 그곳에 있었다.
“출발한다.”
발을 힘껏 굴려,
저 위로 나아갔다.
타앗―!
첫 번의 도움닫기로 30미터 이상.
두 번의 도움닫기로 100미터 이상 점프했다.
탓. 탓. 타아앗―!
발밑에 마력을 분사한 뒤 <강화>를 입혀, 그것을 발판 삼아 뛰어오르는 <스카이워크>의 응용.
그런 방식으로 수직 점프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저 높이 구름 위에 닿기 위해. 하늘을 달렸다.
“와아아, 난다, 날아! 날고 있어!”
뛸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 소리.
그리고 아리엘의 해맑은 웃음소리. 웬디와 함께 네버랜드로 모험을 떠나는 피터 팬이 된 기분이다.
과연 우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속도 올릴게. 꽉 잡아.”
“응! 우주까지 가 버리자!”
뭐, 갈 수 있을 때까진 가 보자고.
***
같은 시각.
시에라시티 지상.
「작전 계획 이행 중.」
「’생명체의 도주를 저지하라.’」
그곳은 학살의 현장이었다.
기계들이 사람들을 죽였다. 수천, 아니 수만 기에 달하는 안드로이드의 군세. 경찰도 군대도 무력했다. 현세대 최고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최악의 살인 무기들이 본연의 용도에 충실하고 있었다.
「현재 개체별 평균 사살 인원. 10.7명.」
「사전 목표 수치. 1,000명. 속행 처리한다.」
로봇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무차별 사살.
감정 모듈이 배제된 그들은 새로운 주인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분부에 충직히 따를 뿐.
도망치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보다도 그들을 쏘아 대는 총소리의 비율이 더 늘어나기 시작했을 무렵.
「….」
「….」
「움직임 감지.」
「미확인 사물 포착.」
한 로봇이 총질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억만 화소에 달하는 고정밀 안구 카메라가 구름 이외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하늘을 가리켰다.
삐빅. 지이잉―.
해당 지점을 확대하자,
상공의 물체가 드러났다.
「마력 반응 확인.」
「생명체 반응 확인.」
주변의 로봇들이 그 좌표를 수신받았다. 그들은 해바라기처럼 목을 꺾어 다 함께 위로 향했다.
「요격한다.」
***
“오빠. 저쪽에서 뭐가 와.”
상승 도중, 아리엘이 동쪽 방향을 가리켰다.
도심 쪽에서 흔들리는 불빛이 보였다. 작은 불빛은 점점 더 커지며 우리 쪽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
….
불빛의 정체는,
안드로이드였다.
“이런. 벌써 들켰나.”
불빛의 숫자는 여덟. 그 밑에 추가로 따라오는 게 아홉에서 열둘 정도. 다 합하면 대략 20기.
만만찮은 숫자다. 게다가 지상이라면 모를까, 이런 공중에서 저들을 상대하긴 아무래도 버거웠다.
그래도 뭐.
걱정은 없었다.
“아리엘. 부탁할게.”
“응.”
<인형 같은 걸 조종하는 능력>.
아니, 정확히 하자면 아리엘의 능력은 <사람과 닮은 사물을 조종하는 능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신은 자신을 본떠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은 자신을 본떠 로봇을 만들었다.
“모처럼 오빠랑 데이트하는데, 방해야.”
사람을 닮은 사람의 창조물. 안드로이드.
그들에게 아리엘의 능력은, 빗나가지 않는다.
“너네끼리 싸워.”
그 순간.
상공에 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던 안드로이드들의 비행 속도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샌가 상승을 멈추고 돌연 반대 방향으로 하강했다.
그러고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던 로봇 부대가 갑자기 적군을 만난 것처럼 도망치듯 산개했다.
비행 포메이션이 와해되자마자, 그들은 서로를 향해 총알과 미사일을 마구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타탕. 타타탕―!
슈우욱. 콰아아앙―!
최고급 연산 능력을 자랑하는 시스템마저도 자기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그야말로 난데없이 공중에 펼쳐진 난장판이었다.
“에헤헤. 어때? 나 잘했어?”
“네가 내 편이라서 참 다행이다.”
“히힛. 죽을 때까지 오빠 편 할게.”
로봇들끼리의 공중전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아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나는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속력을 높였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목표 고도에 도착했다.
구름 위.
상공 6km쯤.
“후우.”
콧속이 서늘하다. 허파가 욱신거린다. 높은 곳은 온도가 매우 낮은데다 산소까지 희박하다.
“아리엘, 몸은 괜찮아?”
“으응. 조금 춥고. 숨 쉬는 게 힘들어. 그리고 아까부터 귀가 계속 먹먹해.”
“귀 먹먹한 건 하품하면 조금 나아질 거야.”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멀쩡히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은 <강화>를 머금은 지상의 공기를 여기까지 끌고 올라온 상태라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아직 어린 아리엘은 여기서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발판을 만들었어. 내려와도 돼.”
“정말? 구름 밑으로 떨어지는 거 아냐?”
“괜찮으니까. 나 믿고 발 내려 봐.”
아리엘이 조심스럽게 다리를 허공에 내렸다.
그러자, 툭―. 녀석의 신발이 투명한 하늘에 닿았다. 보이지 않는 바닥이 거기에 분명히 있었다.
“우와.”
아리엘은 투명 발판 위를 사뿐히 걸었다. 신기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봐봐, 오빠! 나 지금 하늘에 떠 있어!”
“그러게.”
단순한 발판 제작 마법 같지만, 사실 이것도 꽤 고급 기술이다. 예전 같으면 자색 마력과 <강화>의 조합만으론 이렇게 튼튼한 발판은 만들 수 없었다.
“그대에게 부족한 것은 ‘상상력’이다.”
“마법은 전능하다.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대의 손으로 일으키는 것이 바로 기적임을 잊지 말라.”
미르각시의 지옥 훈련 덕이 크다.
물 위를 걷기 위해 ‘표면장력’을 <강화>했던 때 이후, <강화>의 영역이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선생님의 말마따나, 내가 뭐든지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든다.
“아리엘. 슬슬 시작하자.”
“응. 알았어.”
나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남쪽의 바다와 회색 성채, 시에라시티가 보인다. 도시의 대부분 지역이 불과 연기에 휩싸여 있다.
바르베이라의 친위대가 시에라시티를 장악했다.
만약 그녀가 이 도시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전투형 안드로이드들을 해킹했다고 친다면, 그 숫자는 아무리 못해도 2-3만을 가뿐히 넘길 터였다.
나 혼자서 그것들을 전부 막는 건 불가능하다.
통신까지 먹통인 만큼 경찰이나 군대가 나서도 단기간에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역부족일 터. 외려 공권력이 완전 제압당한다 해도 전혀 이상치 않다.
주동자인 바르베이라는 위치조차 모르는 상황.
이미 도시 곳곳에 널린 무수한 숫자의 로봇들을 전부 처리할 방법은,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까 말한 대로만 하면 되는 거지?”
“그래. 하지만 되도록 무리는 하지 마.”
“아니. 무리할 거야.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아리엘의 <인형 같은 걸 조종하는 능력>.
거기에 내가 달라붙어 <강화>를 부여한다.
초능력에도 <강화>를 부여하는 게 가능할까?
당연하지. 마법은 전능하다. 뭐든지 할 수 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응. 느껴져. 쓸 수 있어.”
아리엘의 능력 발동 조건은 ‘대상이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을 것’.
유의할 점은 ‘눈에 보여야 한다’가 아니란 점이다. 단지 보이는 위치에 있기만 하면 된다.
“아핫, 갖고 놀 인형들이 엄청 많네.”
아리엘이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불타는 도시를, 아주 행복한 눈으로.
“자아, 다 같이, 즐겁게~ 춤을 추다가~.”
바람 소리.
그리고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그대로.”
소녀의 붉은 눈이 반짝이며―
하늘 아래 땅을 광기로 비췄다.
“멈춰라.”
***
이스트포레스트 13구역.
시에라시티 시청 지상주차장.
“제기랄, 더 몰려왔잖아…….”
트럭 뒤에 숨은 남자가 신음을 뱉었다. 미사일 포격과 미친 로봇들의 급습을 피해 간신히 건물 밖으로 도망쳐 나왔건만, 바깥 역시도 지옥이었다.
“시장님, 시장님이라도 피하셔야 합니다. 제가 놈들 시선을 끌 테니, 그 틈에 도망치십시오!”
“그런 소리 말아요, 빈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우리 선거 캠프 때부터 내세운 슬로건인데, 지금 저 혼자 도망쳤다간 꼬락서니가 우스워지잖아요.”
“살 사람은 살아야죠! 슬로건이고 꼬락서니고, 도대체 이런 때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단 말입니까!”
“중요해요. 간직해 온 신념을 저버리고 살아가봤자 더는 그 삶에 의미 따윈 없으니까요.”
금발과 깨끗한 회녹색 피부를 가진 오크, 캐서린 스트로베리는 아련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가서 시민들을 지키세요. 빈스.”
“…….”
“시선 끄는 역할은 제가 맡도록 하죠. 콤플렉스긴 한데, 저는 덩치가 커서 눈에 잘 띄거든요.”
“잠깐만요, 시장님! 안 됩니다! 시장님!”
그녀는 남자의 애달픈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은신한 곳에서 빠져나와 트럭 앞에 나섰다.
곧 안드로이드들이 그녀를 포착했다. 주차장에 가득한 로봇들이 동시에 그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
도망칠 곳은 없었다.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그 역할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 같다. 정말이지 한심한 꼬락서니다.
“여기까지 와서, 개죽음이라니.”
아직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거늘.
미련만 잔뜩 남기고 끝날 줄이야.
타앙―!
눈을 감자 들려온 한 발의 총성.
그 탄환에 가슴 언저리를 꿰뚫렸다.
자, 이제 총알 세례가 퍼부어질 차례로구나.
캐서린 스트로베리는 화려한 죽음을 기다렸다.
….
….
그런데.
어째서일까.
“……?”
총알 한 발을 끝으로, 잠잠해졌다.
안드로이드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뭐야……?”
끼긱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더는 위협도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한순간에 기능이 정지된 것처럼.
“도대체, 이건…….”
해킹? 마법? EMP?
모르겠다. 안드로이드들이 갑자기 공격을 멈춘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지금. 누군가가.
이 도시를 구원했다―.
***
고요했다.
하늘 위에는 오로지 적막만이 있었다. 세차게 불어오던 바람 소리마저 어느덧 들려오지 않게 됐다.
“됐어, 오빠. 성공한 것 같아.”
여기 안착하고서 1분여쯤 지났을 무렵.
아리엘이 호흡을 정돈하며 내게 말했다.
“미션 컴플리트야. 오빠 예상대로 시스템끼리 연결되어 있어서, 정지 명령 내리는 건 쉬웠어.”
나는 시선을 내려 도시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아까 전과 비교해 그다지 바뀐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감각으로 확실하게 느껴졌다. 저 아래서 득시글대던 죽음의 기운이 얌전해진 것이 말이다.
“좋아. 잘했어, 아리엘.”
“에헤헤. 나 이제, 쉬어도 돼……?”
아리엘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강화>로 도왔다지만, 무리해서 능력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나머진 내가…….”
“잠깐만.”
내가 말하려던 그 순간.
아리엘의 표정이 변했다.
“…….”
“왜 그래?”
“……이상해. 능력이 안 먹히는 개체가 있어.”
아리엘의 눈동자가 점차 희미하게 떨렸다.
그 애가 내보인 감정은, 일종의 공포로 보였다.
“……어라…….”
순간.
뒷목이 오싹해졌다.
“……근처에, 있는데……?”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써프라―이즈.」
기계해골 콘스탄틴의 빛나는 면상이―
붉은색 화염구와 함께 내 앞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