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Sunday Bloody Sunday (3)
콰지직. 쿠우웅―.
놀이방 미끄럼틀에 전선 얽힌 금속 쪼가리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겨우 한 명의 어린아이를 처치하기 위해 달려든 로봇들의 최후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후우. 대충 정리됐나.”
꽃님반 티셔츠를 입은 초록 머리 꼬마― 붉은 눈의 미르각시가 가볍게 손목을 툴툴 털었다. 안드로이드의 사체와 잔해가 그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곧 구석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 와아 하고 기쁜 소리를 내지르며 그녀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자그마한 것들끼리 똘똘 뭉친 것이 마치 청개구리 친구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래, 그래. 나쁜 로봇들은 다 무찔렀단다.”
미르각시는 인자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보듬었다.
그러다 문득, 겉으로는 상처 하나 없는 손등의 안쪽이 돌연 욱신거리며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
역시나.
아직 육체가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
역린을 찔린 그 날로부터 3주. 내상 치료에 열중하기 위해 유년기 형태로 지내고 있다지만, 고작 서너 기의 안드로이드를 상대로 이 정도 데미지라니.
‘피지컬도 성체에 비해 빈약한 데다, 제대로 된 마법은커녕 단전에 마력을 응집하는 일조차 버겁다.’
‘방금 전 같은 전투를 한두 번 더 치르는 정도라면 극복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 이상은…….’
당장에 보육원에 들이닥친 위협 자체는 해결했다.
하지만 이대로 이곳의 안전을 계속 보장할 순 없었다.
‘일단, 테르마옌의 찌꺼기에게 요양 장소를 들킨 건 아냐. 녀석은 아직 내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어.’
‘허나 실시간으로 전투 데이터 보고를 받고 있다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시간문제.’
아이들을 두고 이곳을 떠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혼자 힘으로 지킬 수나 있을까.
‘도와줄 만한 녀석은…….’
유진에게서 비상용으로 받은 휴대전화를 꺼내 봤지만, 전파가 잡히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보육원의 어른, 유진의 부하들은 모두 리타이어 상태. 연락할 방법은 현재 어디에도 없다.
‘이거야 원. 느닷없이 핀치로군.’
지구 최강의 생물체인 드래곤임에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알고는 있느냐? 이쪽은 절체절명이다.’
뭐, 더는 어쩔 수도 없다.
그저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어떻게 좀 해 봐라. 제자 놈아.’
***
웨스트록 13구역.
<메이슨 월> 남부의 빈민가.
도시의 가장 구석 언저리에 있는 지역인 만큼 이쪽 근방은 안드로이드 습격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다. 적어도 이곳에 살고 있는 아리엘은 지금 안전하단 얘기였으니까.
“보스, 여기 들르는 건 오랜만이지?”
도로변에 바이크를 멈춰 세운 지나 드비토가 헬멧을 벗으며 내 쪽으로 말을 던졌다.
“10월 중순에 들렀던 게 마지막인가?”
“그래. 아마.”
“핑계 같은 느낌은 좀 있지만, 요즘 보스는 일이 워낙에 좀 많았잖아. 나도 요새 분신 숫자 부족해서 챙기기 어려웠고, 그나마 붙박이였던 체스터까지 집을 나가 버렸으니. 쨌든, 그 애가 많이 심심해했어.”
나는 바이크에서 내렸다.
핑계 같은 느낌은 좀 있지만, 전화는 자주 하긴 했다. 매번 다음엔 같이 놀자고 둘러대기만 했다. 그때마다 아리엘은 “응, 약속!”이라고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나는 약속을 안 지킨 지 꽤 되었다.
“사춘기 여자애는 한번 삐지면 오래 간다구.”
“…….”
“그러니까, 조심해. 보스.”
지나의 경고는 우스갯소리로 뱉은 말일 것이다.
허나 어째서일까. 내겐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가난한 마을 한구석의 다 쓰러져가는 목조 주택. <블랙 대거즈>의 아지트 앞에 나는 다가섰다.
뭔가 불안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도심과는 달리 이곳 주변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끼이에엑―.
나무 요정의 창자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낡은 문을 열어젖히고,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리엘은 지하실에 있을 터였다. 계단 아래 방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리로 향했다.
“…….”
문을 열고 지하실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공기의 방안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도무지 그곳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공주 침대.
그 반짝이는 핑크빛의 킹사이즈 침대 위에는, 벽 쪽에 붙어 웅크리고 앉아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어서 와. 오빠.”
하얀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린 소녀― 아리엘은 슬픈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내가 온 것을 진심으로 반겼지만, 왜인지 울고 싶어 했다. 그렇게 보였다.
“히힛. 오랜만이네. 놀러 와 준 거야?”
“……연락도 없이 미안해. 뭐 하고 있었어?”
“으응. 갑자기 테레비가 안 나와서. 그래서 잠깐 멍 때리고 있었어. 맞아, 안 그래도 오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나타났지 뭐야. 신기하다, 그치?”
나는 말없이 아리엘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아리엘은 거울을 보고 자기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아챈 것처럼, 더욱 씁쓸한 눈을 띠었다.
“나, 인형 놀이 하고 싶어!”
“…….”
“오빠랑 같이 놀려구, 새 인형도 잔뜩 만들어 놨어. 지금부터 우리 잔뜩 놀자. 하루 종일. 오늘 일요일이니까 회사도 안 가잖아. 응? 놀아줄 거지?”
놀아 달라고 조르는 것은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음에도, 어째서인지 눈물을 꾹꾹 참아 가며 간곡히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들렸다.
“아리엘. 실은,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
그리고 나는, 그런 식으로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 그 애의 심장에 기어코 비수를 꽂고야 말았다.
“사람들이 공격받고 있어. 네 도움이 필요해.”
“…….”
“미안해. 일이 다 해결되면, 그때 같이 놀자.”
아리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괴로운 듯이 눈동자를 아래로 슥 떨궜다.
“오빠는 항상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구나.”
바닥을 향한 채로.
그 애가 입을 열었다.
“있지. 난 그래도 괜찮아. 나도 오빠가 필요하니까. 오빠가 날 필요로 한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도와주고 싶었어.”
“…….”
“알아? 오빠만큼은 내 곁에 있어 줘야 해. 왜냐하면 오빠는 내 모든 걸 빼앗아 갔잖아.”
아리엘이 웃었다. 토마. 레오노프……. 내 손으로 죽이고 만 그 애의 친구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치만 아무 의미도 없었어. 난 그냥 같이 있고 싶었을 뿐인데. 오빤 그것마저도 못 해주는 거야?”
“아리엘, 난…….”
“다가오지 마!”
그 애가 소리치자,
움찔하고 몸이 떨렸다.
꾸욱―.
다리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아니, 보이지 않는 실에 묶여 있는 것처럼.
아리엘의 고함에 깜짝 놀랐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정말로. 물리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계속 같이 있어 주지 않을 거면,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나는 침대 위에 있는 아리엘을 보았다.
그 애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뚝 하고, 코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매트리스에 떨어졌다.
“……에헤헤, 봤지? 나, 오빠한테 도움 되려고 잔뜩 노력해서, 이렇게 강해졌어. <인형 같은 걸 조종하는 능력>으로, 이제 맘만 먹으면 사람도 조종할 수 있다구. 쓰고 나면, 조금, 어지럽지만…….”
그즈음, 침대에 있는 아리엘이 비틀거렸고, 내 몸을 묶었던 보이지 않는 구속의 힘이 약해졌다.
“토마. 레오. 모두 오빠가 죽여 버렸잖아. 나한테 남은 건 오빠뿐이야. 오빠까지 죽어 버리면 안 돼.”
“…….”
“근데, 근데 왜, 오빠는 왜 자꾸 죽어 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을 계속하려는 거야? 왜?”
아리엘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원망하는 그 눈동자에 무슨 말을 해줘야 했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구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하지.
“토마가 보고 싶어…….
“레오랑 같이 놀고 싶어…….”
“오빠도, 언젠가 떠날 거잖아…….”
나는 짊어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분명 이 아이의 외로움을 끝까지 책임져주지는 못할 것이다.
소녀의 진짜 친구를 사라지게 한 형벌로써.
지금껏 가짜 친구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살려낼게.”
내가 빼앗아 간 것들을,
이 아이에게 돌려줘야 한다.
“토마. 레오노프. 둘 다 다시 살릴 수 있어.”
그게 불가능한 헛소리라 해도.
어떻게든.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아는 꼬마 중에 시안이란 녀석이 있는데, 걔도 아리엘 너처럼 초능력자야.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그래서?”
“얼마 전에 나는, 의도치 않게 그 애의 어머니를 <부름>으로 죽이고 말았어. 그날 이후로 시안 그 녀석은 자기 능력으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 보려고 며칠 내내 애를 썼지만,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대.”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 내가 쓴 <부름>에 당해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걸 말이야.”
“…….”
“어째서 그들에게는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이 발동되지 않았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그들은 죽지 않았다’라고.”
미르각시도 말한 적이 있다.
<부름>은 입자의 시간을 극단적으로 가속시키고, 최후에는 입자들을 몽땅 초공간에 밀어 넣는다.
당연히 생명의 불씨는 꺼졌겠지만.
만약 영혼이란 것이 실존한다면, <부름>에 당한 이의 영혼은 필히 그 초공간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자주 못 놀러 와서 미안해. 사실은 그 시안이란 녀석의 어머니를 살릴 방법을 찾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어. 최근에야 그 방법을 겨우 알아냈고.”
“…….”
“그러니까, 그 두 사람도 살릴 수 있어. 분명히.”
확신을 갖고서 그렇게 말했다.
확신할 만한 단서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래야만 했다. 믿음마저 없었다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니. 바보 같아. 무슨 만화도 아니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어.”
“<소생술> 자체는 이론적으로 가능해. 나 말고 세계 최고의 마법사가 인정한 사실이야. 것도 둘이나.”
“……안 믿어. 오빠는 거짓말쟁이잖아.”
“으음, 미안. 그건 부정 안 할게.”
“……미워. 맨날 거짓말만 하구.”
그때쯤 아리엘은 뚝뚝 눈물을 흘렸다.
거짓말하는 게 미워서, 너무나도 미운 거짓말쟁이라서 흘린 눈물이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오빠 안 도와주면, 큰일 나?”
녀석이 지그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정말 염치없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리엘.”
지구 최강의 드래곤. 시간의 마도사.
이 도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급 인력들을 내팽개치고서, 나는 이 울보 꼬마 숙녀에게로 찾아왔다.
“으응. 뭘 하면 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네가 필요했으니까.
“인형 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