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90화 (190/201)

190화. Sunday Bloody Sunday (2)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앞에 지옥이 펼쳐졌다.

“맙소사.”

타오르는 불꽃과 연기.

검붉게 변한 잿빛의 하늘.

무너져 내리는 건물. 도로. 다리.

패닉이 된 채로 도망치는 사람들.

거리는 온통 쑥대밭이었다. 방금 전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폭발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 도시는 이미 현대전 다큐멘터리 속의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그때. 귀를 찌르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편의 도로변, 직선거리로 대략 20미터가 넘는 위치에 한 행인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행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무장 상태의 전투형 안드로이드.

지이잉―.

로봇이 쓰러진 행인에게로 총구를 겨냥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강화>를 먹인 발길질로 로봇을 후려 찼다.

퍼억. 콰지직―!

내 발차기에 상반신이 박살 난 안드로이드는 데굴데굴 공처럼 굴러 나가다 전봇대에 부딪혔다.

“이봐요, 괜찮아요?”

“가, 감사합니다…….”

“역 주변에 있으세요. 여기보단 덜 위험할 겁니다.”

행인은 벌벌 떨면서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아갔다. 주변에는 안드로이드에게 공격받고 있는 시민이 몇 명 더 있었다. 나는 그러는 것이 마치 내 의무인 것처럼, 늦지 않게 그들을 모두 구해냈다.

몸으로 빌어먹을 로봇들을 때려눕히는 동안, 머리로는 생각을 거듭하며 현 상황에 대해 파악했다.

최초의 폭발. 이어진 안드로이드의 습격.

비슷한 시추에이션을 두 번씩이나 겪었다. <슐츠 업그레이드 센터>에서. 그리고 <메이슨 타워>에서.

그때와 마찬가지로, 거리에 보이는 로봇들의 대부분은 해킹당한 <슐츠텍>의 전투형 안드로이드 기체.

다만 휴머노이드 타입이 아닌, <스테이트 아머리> 같은 타사의 배틀봇들도 일부 눈에 띈다.

“…….”

안드로이드에 의한 대규모 도시 침공 사태.

우연찮게도, 나는 이 사태의 전말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꽤나 자세하게 말이다.

이 세계의 근간, <사이버판타지>는 기본적으로 엔딩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지만, 플레이어의 선택이나 진행 과정에 따라 엔딩과 비스무리한 결과가 나타나는 시나리오가 몇 개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왕의 후예’ 에피소드.

현대에 살아남은 유일한 마족, <나인서클>의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이 쿠데타를 일으켜 도시를 혼돈에 빠뜨리게 하는 메인 스토리 최후반부 시나리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계 제국의 반란’.

<슐츠텍>을 주축으로 한 메가코프 연맹이 정부와의 갈등 끝에, 기업이 지배하는 새로운 체제의 국가 설립을 선포하며 전면전을 벌이는 에피소드.

단순히 내 지레짐작일지도 모르지만, 이번 건은 어쩐지 두 시나리오가 적절히 조합된 느낌이 든다.

본래대로라면 한참 뒤에 일어나야 할 사건들.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디테일이 너무나 딱 맞아떨어진다.

‘마왕의 후예’와 ‘기계 제국의 반란’은 서로 관계가 없다시피 한 에피소드이나, 결말은 비슷하다.

플레이어가 사태를 제대로 막지 못했을 경우, 혹은 사태를 일으킨 세력에 동조했을 경우, 최종적으로 게임의 양상이 눈에 띌 정도로 바뀌게 된다.

이를테면 NPC의 숫자가 1/10로 줄어든다거나. 맵의 일부 지역이 아예 사라진다거나 하는 식이다. 도시 전체가 거의 멸망한 상태에 가깝게 변한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그걸 ‘배드 엔딩’이라 부른다. <사이버판타지>에 엔딩은 없지만, 그렇게 되면 게임을 계속 진행하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지금 내가 당면한 이 상황의 마지막에는, 최악의 ‘배드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단 얘기다.

“제기랄.”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리고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바르베이라의 타깃은 미르각시와 나.

자신의 목적에 방해되는 가장 강력한 적인 미르각시를 없앰과 동시에, 노웨어맨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나를 확보하여 무한한 힘을 얻으려는 속셈이다.

바르베이라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최우선으로 구출해야 하는 것은 단연 미르각시다.

하지만 지금 위험에 빠진 이는 그녀뿐만이 아니다. 침공은 도시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에덴파크 모텔에는 시안과 스칼렛, 이가인이 있다. 페니와 집주인 할머니도 거기 있을 것이다.

회사 사람들. 스몰필드 씨는 알리시아가 지키고 있지만 나머지는 분명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터.

비너스는 뭐 지가 알아서 잘한다 치더라도, 사장님은? 타이퍼는 일상용 바디로 대처할 수 있을까?

<헬터 스켈터> 조직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전투원인 녀석들도 최신형 배틀로이드를 상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텐데. 지나는? 아리엘은? 체스터는?

지인의 대부분은 이러한 습격에 무방비한 일반인이다. <펍 미드나이트>의 주인장. 가면 장인 쥬 꼬맹이. 마법 상점의 여주인. 단골 식당의 점원…….

‘지금은 미르각시부터 먼저 구해야 해.’

‘하지만 여기서 제일 가까운 건 모텔이야.’

‘교통이 마비됐어.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이동은 뭘로 하지? 연락이 먼저인가?’

‘무엇을 해야 하지?’

‘무엇을 할 수 있지?’

생각. 생각. 그리고 생각.

생각만이 이어졌다. 생각을 하다 보면 생각 속에 또 다른 생각이 피어나 다시 또 생각을 지배했다.

모두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머리가 내린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30초도 안 돼서 상황 파악이 끝났다. 누군가를 구한다면 누군가를 구하는 데 그칠 뿐. 지금 내가 어느 쪽을 택한다 해도 이 사태를 막을 순 없다.

바르베이라의 군대는 기어이 온 도시를 점령한 상태다. 나 혼자서 아무리 동분서주를 한들 모든 안드로이드들을 쓰러뜨리기엔 당연히 역부족이다.

최악의 사태는 이미 벌어졌고,

최악의 결말 또한 다가오고 있다.

너무 늦었다.

불가능하다.

….

….

―정말로?

문득.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아무것도 못 한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아니.

그런 기분이 들었다.

누군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혼내고 있는 것 같은.

―그렇다면 다 포기한 주제에.

―왜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거야?

머리는 한참 전에 생각을 멈췄지만.

몸은 여전히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나는 계속. 내 힘으로 지키려 하고 있었다.

―너도 알잖아.

―아직 안 끝났어.

검게 휘날리는 머릿결 아래.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일어나.

그리고 정신을 차린 그 순간.

나는 거리 한가운데에 있었다.

“허억.”

숨이 차올랐다. 주변에는 내 손으로 부순 안드로이드의 잔해 따위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

머릿속에 들렸던 소녀의 목소리가 아직 잔향으로 남아 있다. 아마 곧 잊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후우.”

움직이자. 움직여야 한다.

뭐가 됐든 움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는, 움직일 수 있으니까―.

“좋아.”

나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아까 전에 감정적으로 집어 던졌던 휴대전화를 되찾았다. 다행히 이 시대의 전화기란 물건은 바짝 구운 달고나 사탕 레벨인 스마트폰과는 달리 매우 튼튼했다.

다만 기기가 멀쩡한 것과는 별개로 전파가 터지지 않아 연락은 불가능했다. 아마도 근처의 통신국 설비가 습격당해 망가졌다거나 뭐 그런 걸 테지.

모텔은 여기서 충분히 뛰어서 돌아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좀 더 가까운 거리에 연락책이 있다.

주변 상황 정리를 마친 나는 곧바로 달렸다. 목적지는 요 앞의 단골 식당. <호손 그릴 다이너>.

“지나!”

가게 문을 얼른 박차고 안으로 들어서자, 텅 빈 식당 내부가 드러났다. 곧 주방 안쪽에서 남색 단발머리를 한 보이쉬한 여자가 유유히 걸어 나왔다.

“헤이, 보스.”

<블랙 대거즈>의 주력.

분신 능력자 지나 드비토.

“밖에서 저 지랄 났을 때부터 보스가 여기 올 줄 알았어. 뭔 일 나면 맨날 나 먼저 찾잖아. 그치?”

지나는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확실히 내가 자주 믿고 쓰는 카드였다. 허나 이번에도 믿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넌 어느 쪽 편이냐?”

일단은 확인부터 할 필요가 있었다.

지나 드비토의 분신은 상시로 수백 명. 이 도시에 존재한다. 또한 그중 일부가 본체를 무시한 채 <블랙 대거즈>를 배신하고 유클리드 편에 붙었다.

“글쎄, 어느 쪽 편 같은데?”

“…….”

“너무 그렇게 째려보진 마. 나 어떤 년인지 잘 알잖아. 난 그냥 그때그때 돈 주는 쪽에 붙을 뿐이야. 지금은 보스 편에 들 수도 있다는 얘기지.”

보아하니 이쪽의 분신은 유클리드 쪽에 붙은 녀석인가. 아주 그냥 숨길 생각도 전혀 없구만.

뭐, 아마도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바르베이라의 단독 행동. 유클리드의 개입이 약간은 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대놓고 나를 방해하진 않을 터.

“……너도 알겠지만, 지금 전화가 먹통이라 어디에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야.”

“음. 그렇네. 무전도 안 터지는 것 같아. 아마 위성으로 방해 전파 같은 걸 쏘고 있는 모양이지.”

“너희 분신끼리 따로 연락 수단은 없어? 뭔가 그, 다 같이 연결되는 머릿속 단톡방 같은 거?”

“뭐어, 있긴 있어. 이래 봬도 초능력이니까.”

“잘됐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전달 좀 해줘.”

나는 지나에게 계획에 대해 빠르게 설명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얘기를 들었다.

“알겠어. 전달만 하면 되는 거지?”

“얼마나 걸려?”

“금방. 1초도 안 걸려.”

지나는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러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철컥―.

권총이었다.

장전된 권총.

이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총구를 자기 머리에 갖다 댔다.

“……잠깐, 이봐, 뭐 하는……?”

말릴 틈도 없이.

방아쇠가 당겨졌다.

타아앙―!

이내 탄환이 발사됐고.

지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경악하여 눈을 마구 끔뻑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 1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가게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들어왔다.

“헤이, 보스.”

오토바이 헬멧을 쓴 세 명의 바이커.

같은 체형. 같은 차림. 지나의 분신들이었다. 그들은 터벅터벅 가게 안으로 들어와 익숙하게 시체를 치웠다. 그중 하나가 헬멧을 벗고 내 앞에 섰다.

“미안. 놀랐어?”

“…….”

“살아 있는 분신끼리는 기억 공유가 안 돼. 대신에 분신 하나가 죽으면, 죽어 버린 바로 그 순간에 그 분신의 기억이랑 경험이 모두에게 전달되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연락 수단이란 게 설마 그런 거였나.

“바이크 필요하댔지? 어디로 갈까?”

지나의 분신이 내게 물었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구해야 할 사람이 있어.”

“누구?”

구할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아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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