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Sunday Bloody Sunday (1)
이스트포레스트 13구역.
시에라시티 시청 프레스룸.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모인 공간. 시청 대변인이 물러나자, 곧 스트로베리 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쭉 뻗은 다리와 황홀한 외모를 가진 하프오크 여인은 불과 3일 전에 벌어진 폭탄 테러의 피해자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그럼, 질문부터 받아볼까요. 물어볼 거리들이 많으실 텐데, 일단 전 멀쩡합니다. 보시다시피.”
캐서린 스트로베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 예쁘장한 미소는 몹시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아름다움, 그리고 강인함. 시민들이 그녀를 사랑한 이유였다.
“테러를 일으킨 범인은 찾으셨습니까?”
“아뇨. 아직 소재 파악 중입니다.”
“이번 테러의 원인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저를 싫어하는 분들이 저지른 짓 아닐까 싶네요.”
“일부에서는 도시 내의 강력 범죄 소탕을 위시로 한 시장님의 치안 정책에 대한 불만이 일련의 소동을 야기했다고 보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강력 범죄자는 당연히 강력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았다고 혼나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시장님은 조지 마르티네즈를 기억하십니까. 지난주 노스네스트 10구역에서 경찰 특수군이 비무장 시민을 대상으로 과잉 진압을 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조지 마르티네즈는 그 희생자였습니다.”
“알죠. 전과 11범의 마약 사범.”
“조지 마르티네즈는 체포에 응하지 않고 도망쳤다는 이유만으로 열두 발의 총격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는 무기도 없는 일반 시민이었습니다.”
“아니죠. 무기가 있을지도 모르는 도주 범죄자였죠.”
“불과 5일 전에도 웨스트록 8구역에서 경찰과 마피아 조직 간의 총격전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 총에 맞을까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가장 불안한 부분은 심지어 자기를 쏠지도 모르는 그 총의 주인이 경찰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는군요. 체포나 진압 과정에서 저희 시민분들께 가는 피해는 폭력 조직 탓이지, 경찰 탓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을 똑바로 정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시장님이 당선된 이후 6개월간 시에라시티 내의 강력 범죄 통계는 작년까지의 평균 대비 약 28%가 줄었습니다. 허나 범죄 사건이 줄어든 것에 대비해 시민 피해 신고 건수는 역으로 11%가 늘었죠. 시장님의 강경책은 역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다소의 피해는 대의를 이루는 과정에 있어 필요 불가결한 희생입니다. 조지 마르티네즈의 안타까운 죽음도 그렇고, 제가 폭탄에 당한 것도 그렇죠.”
캐서린 스트로베리와의 설전과도 같은 대담에 한껏 열을 올리던 기자가 별안간 입을 다물었다.
웃음기를 띤 시장의 눈빛에는 자기 자신의 피해마저도 불사하겠다는 각오와 의지가 느껴졌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범죄 없는 사회. 아픔 없는 세상. 선량한 시민이 계속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바로 그런 도시를 만들어 가려 합니다. 당장의 여론과 언론이 뭐라 하건 간에, 저는…….”
그리고.
바로 그때.
캐서린 스트로베리의 눈동자가,
어떤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프레스룸 중앙에 위치한, 기자 출입증을 메고 있는 한 젊은 남자가…… 품에서 자동권총을 꺼냈다.
그 총구가 향한 곳은.
단상에 서 있는 자신.
타앙―!
외마디 총성이 울렸다.
모두가 뒤늦게 반응했다.
제때에 반응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이른 타이밍에 반응한 사람은, 오직 캐서린 스트로베리뿐.
그녀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남자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단상의 마이크를 힘으로 뽑아, 그걸로 총을 든 남자를 겨냥해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슈우욱―!
던져진 마이크는 부메랑처럼 날아가 남자의 이마를 강하게 때렸다. 그 충격으로 총구의 방향은 위쪽으로 튕겨졌다. 발사된 총알은 천장에 박혔다.
캐서린 스트로베리는 아직 본능 속에 있었다.
그녀는 단숨에 번쩍 단상 위로 올라가 남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퍼어어억―!
224cm 98kg. 거구의 오크가 공중에서 날린 주먹이, 그대로 총을 든 남자의 인중을 박살 냈다.
….
….
정적이 찾아왔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이내 캐서린 스트로베리가 입을 열어, 단상에서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는 신경 안 씁니다.”
그녀는 피로 떡칠된 주먹을 반대쪽 손으로 가볍게 툭툭 털었다. 그리고 다시금 미소를 띠었다.
“질문 있으신 분?”
기자들은 아무 말도 뱉지 못했다.
“그럼, 회견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캐서린 스트로베리는 여유만만한 걸음걸이로, 자신이 쓰러뜨린 남자 곁을 지나 뒤쪽으로 돌아갔다.
사실―
이 남자 또한 불운한 희생자 중 하나였다.
프레스룸 입장 심사 과정에서 일부러 수색을 허술하게 했다. 남자가 무기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무시한 채 그대로 안까지 들여보냈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놔두었다.
범죄자는 위험하다. 그것을 보여주고, 직접 나서 처리한다. 그런 시장의 모습에 시민들은 열광한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다.
분명히, 그랬을 터였다.
“시, 시장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대기실에서 손에 묻은 피를 닦고 있던 캐서린 스트로베리에게, 시청 대변인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왜? 무슨 일 있어요?”
“고,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뭐? 공격당하다니, 어디를?”
캐서린 스트로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변인의 얼굴은 무척이나 하얘져 있었다.
“도시가, 공격당하고 있어요……!”
***
콰앙.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연쇄 폭발의 충격파가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야. 터지는 소리 한번 끝내주네.」
「바로 근처에 있었나 봐? 혹시 누구랑 같이 있었던 건 아니지? 설마, 어제 그 아가씨라든가―.」
전화기 너머 놈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네가 한 거냐?”
「응? 아니, 이번 거는 바르베이라야. 난 별달리 뭐 한 것도 없고, 그냥 통보만 들었…….」
잡담을 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나는 휴대전화 집어던진 뒤, 역 안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제발.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매캐한 연기가 눈과 코를 괴롭혔다. 계단 밑으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화재는 금방 번져 나갔다. 지하철역 내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스몰필드 씨!”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목청껏 외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과 벽면 여기저기에 폭발에 휘말린 사람들의 흔적이 보였다. 흩날린 핏자국과, 흩어진 뭔가의 조각들이.
“큭.”
연기 냄새보다도 피 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진다.
스몰필드 씨를 찾아야 한다. 반드시. 그녀가 무사하리라 믿고서,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불길한 상상이 결코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만을 사무치게 바라며, 이윽고 승강장에 다다랐을 무렵.
“아.”
플랫폼 기둥에 기댄 채 쓰러져 있는,
내겐 너무나 익숙한 옆모습이 보였다.
“스몰필드 씨!”
나는 넘어질 기세로 계단을 날듯이 내려갔다.
그러나 내가 그녀에게 닿기까지 아직 한참이 남아있을 때쯤, 기둥 위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붕괴된 콘크리트 더미가,
기둥 옆의 스몰필드 씨를 덮쳤다.
“안 돼!”
너무 멀었다. 막을 수 없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역부족이었다.
쿠구구구궁―!
기둥이 부서지고, 짧은 순간.
아득한 절망이 밀려온 그 무렵.
….
….
하얀빛이 보였다.
비눗방울 같은. 무색의 얇은 막.
천장과 기둥이 무너져 내렸지만, 균열 밑에 있던 스몰필드 씨의 주변은 어째서인지 멀쩡했다.
결계. 혹은 보호막. 보이지 않는 마나로 이루어진 어떤 신비한 힘이 그녀를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비전 마법의 원류―
아르카나 마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늦었네. 바로 옆에 있던 주제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그치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
“이러면 믿고 맡길 수가 없는데.”
순백의 엘프. 아르카나 마법의 계승자.
스몰필드 씨의 룸메이트, 알리시아 벨카폴리아가 쓰러진 스몰필드 씨를 자기 무릎 위에 껴안은 채 영 맘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어제 리타 몸에다가 몰래 결계 발동형 소환 술식을 걸어 놨어. 혹시라도 그쪽이 개자식일까 봐, 리터가 싫어하는데도 억지로 건드리거나 뭐 그러려고 했으면 확 그냥 죽여 버리려고 했지.”
“…….”
“뭐어, 그쪽이 신사다운 건 잘 알았어. 아주 쪼끔만 개자식이었으면 솔직히 덜 답답했겠지만.”
어느새 주변의 불길은 잠잠해져 있었다. 아르카나 마법의 결계가 이 공간을 보호 중인 듯했다.
“리타는 괜찮아. 기절했을 뿐이야.”
“…….”
“이번 일로 그쪽을 탓할 생각은 없어. 경솔했던 건 이쪽도 마찬가지니까. 설마 바르베이라 그년이 벌써부터 이따위로 미쳐 날뛸 줄은 몰랐거든.”
알리시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아하니 그녀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범인은 역시 바르베이라였나. 유클리드가 마지막에 전화로 한 얘기도 거짓은 아니었나 보군.
“폭탄이 터진 건 여기뿐만이 아니야.”
“뭐라고요?”
“방금 전에 <나인서클> 전용 텔레파시 회신으로 전해 들었거든. 지하철역. 관공서. 마트. 백화점. 수십 곳에서 거의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어. 벌써 이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 버렸단 얘기지.”
이야기를 들으니 대충 알 것 같았다.
바르베이라의 목적은…… 경찰력 분산.
흔한 테러 수법이다. 거사를 치르기 전, 그쪽으로 향하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방식.
바르베이라가 노리고 있는 것은 필히,
‘노웨어맨의 심장’과 미르각시의 죽음.
“자아, 슬슬 나타났네. 복병들이.”
그때쯤. 나와 알리시아는 불타는 승강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기계 전사들의 존재를 눈치챘다.
지이잉―.
족히 100기 가까이 되는 전투형 안드로이드.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의 수족임이 틀림없었다.
“가. 네가 지켜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
“…….”
“아니면 뭐야. 아무 사이도 아닌 여자 때문에 여기 남아있게? 그쪽은 그럴 자격 없는 거 알잖아.”
알리시아는 골리는 듯이 씨익 웃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럴 자격이 없던 것처럼. 허나 그럼에도 할 말을 골라야만 했다.
“……리타를 부탁드릴게요.”
“어머, 지금 이름으로 부른 거야?”
“……예전에 그렇게 하라고 본인한테 말을 들었거든요. 쑥스러워서 없던 일로 하고 있었지만.”
나는 시선을 살짝 내려, 알리시아의 품에서 눈을 감고 있는 스몰필드 씨에게…… 리타에게 말했다.
“금방 올게요.”
그러고 나서 달렸다.
내가 가야 할 곳으로―.
***
웨스트록 6구역.
<겟세마네 보육원>.
「전투 경과 보고.」
「대상 움직임 없음.」
지잉. 지이잉―.
바닥에 쓰러져 있는 어른들의 몸뚱이를 지르밟으며, 해골 얼굴을 한 안드로이드들이 걸어왔다.
「목표물 발견.」
「전원. 사살한다.」
보호자를 잃은 아이들은 놀이방 구석에 몰린 채 벌벌 떨었다. 살아생전 겪어본 적 없는 진짜배기 공포에 짓눌려 소리를 내지를 수조차 없었다.
“안심하려무나. 내 작고 귀여운 동무들아.”
그때.
울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작고 귀엽게 생긴 초록 머리 꼬마 여자아이가 앞으로 나섰다.
“꽃님반의 미르각시가 여기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