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The Next Day (4)
리타 스몰필드는 술이 약했다.
기본적으로 주량이 매우 낮은 편인데, 하필이면 소화 능력까지 몹시 뛰어나 위장에 알코올이 살짝만 들어가도 금세 꽐라가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식사 도중에 곁들인 와인 서너 잔이 그녀를 만취 상태로 만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다만 술을 조금만 먹어도 취하는 만큼, 막상 조금밖에 안 들어간 술은 생각보다 금방 깨곤 했다.
택시가 그녀의 집에 거의 도착할 때 즈음.
텐션이 떨어져 꾸벅꾸벅 졸고 있었을 무렵.
“에덴파크 모텔로 가주시겠습니까?”
그걸 들은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예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다.
반년 전 여름, 회식 때 만취가 된 리타 스몰필드를 유진이 어쩔 수 없이 모텔까지 데려간 그 날 밤.
당시 리타 스몰필드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자는 척 연기를 했으나, 하필이면 유진은 그때 급한 업무 연락이 와서 잠시 자리를 비운 데다, 이후 <윌슨앤코>의 범법 행위에 연루됐다는 오해로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당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
룸메이트 폴리 보일의 조언을 떠올려 보자.
“그 팀장이란 놈은 웬만해선 너 안 건드릴걸.”
“남자는 다 늑대라지만, 개중에는 쫄보인 녀석도 있거든. 내가 봤을 때는 그놈이 그쪽 과란 말이지.”
“만약에, 밥상 다 깔아 놔도 안 먹으면, 그때 너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 틈을 봐서―.”
“덮쳐.”
……실행에 옮기는 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스윽―.
유진은 취한 그녀를 등에 업은 채 택시에서 나왔다. 리타 스몰필드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렸다. 두근대는 소리가 들릴까 봐 일부러 잠꼬대를 내뱉었다.
208호 방 안에 들어서자, 그녀의 심장 소리는 더더욱 커져만 갔다. 유진은 리타 스몰필드를 침대에 다소곳이 눕혔다. 유진의 체취가 섞인 이불 냄새가 났다. 리타 스몰필드는 살며시 눈을 떴다.
“…….”
유진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채로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 모습을 실눈으로 지켜보던 리타 스몰필드는 어쩐지 알 수 없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뒤.
유진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 순간.
꾸욱―.
자신도 모르게 손이 먼저 움직였다.
리타 스몰필드는 유진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 상태로 가련하게 힘을 주며, 반쯤 술김에 속삭였다.
“가지 마요.”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보내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목소리가 전해졌다. 눈이 마주쳤다.
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
“금방 올게요.”
안심시키려는 목소리에 설득당한 건지, 옷자락을 붙잡은 손아귀에서 스르륵 힘이 빠져나갔다.
유진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서 그대로 방에서 나갔다. 혼자 남은 방은 이내 고요해졌다.
“히끅.”
그것은 딸꾹질 소리였을까.
아니면 울먹이는 소리였을까.
***
「계획대로 된 겁니까?」
제퍼슨 브리즈가 물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고쳐 잡고서 말했다.
“일단은요. 지금까지는 예정대로입니다.”
「당신 판단에 의하면, 그 유클리드라는 자가 바르베이라를 조종한 흑막이라는 것이잖습니까.」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닙니다. 애초에 흑막이라는 표현도 과해요. 아마 ‘노웨어맨의 심장’을 원하는 바르베이라가 최종적으로는 미르각시를 습격하도록 그런 방향으로 유도한 정도겠죠.”
<사이버판타지> 메인 스토리에서 ‘마왕의 후예’ 에피소드는 본디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이 신국가 설립을 위해 <나인서클>의 분열을 일으키는 스토리.
게임의 후반부 에피소드인 만큼 그녀의 쿠데타는 현시점에서 벌어져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원흉은 필시 플레이어의 개입으로 인한 전개의 변화. 그리고 이번 일에 개입한 플레이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지금쯤 유클리드는 아마 바르베이라와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했을 겁니다. 분명 어떤 식으로든 그녀가 목표를 이룰 수 있게 지원을 해주겠죠.”
“그럼, 그와 동맹을 맺은 이유는…….」
“떠본 거예요. 나는 다 알고 있는데 넌 어쩔 거냐. 그래도 해볼 셈이냐. 하고, 위협을 준 거죠.”
유클리드가 ‘게이머로서의 나’를 그대로 가져온 인물이라면, 속내를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뭐, 며칠 전에 나란 존재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입장에서는 심히 복잡한 심경이지만서도 말이지.
“저는 그놈을 잘 알거든요. 뭐랄까, 하는 짓도 그렇고, 사람 자체가 저랑 많이 비슷해서 말이죠. 하여튼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
“우리 목적은 시간 벌이입니다. 바르베이라건 유클리드건, 지금으로선 대비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그 의견엔 동의합니다. 적어도 각시님이 어느 정도 회복하실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니까요.」
제퍼슨 브리즈의 말대로, 쟁점은 미르각시의 복귀다. 현재 우리 쪽의 전력은 바르베이라 진영과 비교해 딱히 압도적이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선은 유클리드 쪽에 붙는다.
유클리드는 바르베이라를 지원하는 듯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론 그녀의 실각을 노리고 있다. 그래야지만 본인에게 이득이 될 테니까.
바르베이라의 목적은 심장을 가진 나.
고로 유클리드는 줄타기를 해야 할 것이다. 바르베이라와 나, 둘 중 어느 쪽을 포기해야 할지.
「계획은 알았습니다만. 정말 괜찮은 건가요?」
“…….”
「그 유클리드란 작자가 ‘메리’라고 하는, 당신 친구의 목숨을 앗아 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괜찮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부모를 살해한 원수와 포옹을 하고 싶어 하는 자가 과연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짓을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놈과 나는 많이 비슷하니까.
나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상황을 지켜보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끊기 전에, 하나만 더 묻죠.」
제퍼슨 브리즈가 말했다.
「우리가 <시간 역행>을 체험한 시간선에서 만났던 ‘진짜 암귀’ 말입니다만.」
“…….”
「정말로, 이쪽 세계에 건너오지 않았습니까?」
나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예. 그때 돌아온 건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내가 대답 전에 뜸을 들인 사실을, 제퍼슨 브리즈는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추궁할 여력이 남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서늘한 겨울밤의 공기를 들이마신 뒤 방으로 돌아왔다. 208호가 아닌. 옆옆 방 210호로.
스칼렛과 시안은 자고 있었다. 크고 작은 꼬맹이 둘이 더블 침대 하나를 몽땅 차지한 채로.
그리고 불 꺼진 방 안의 다른 쪽 구석에는, 베란다 바깥의 풍경을 보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의 절반을 하얀 달빛이 비쳤다.
“오라버니.”
이가인. 죽은 메리의 딸이자 내 여동생.
한때 ‘암귀’라고 불렸던, 내가 만든 괴물.
“왜 왔어?”
“방을 다른 사람한테 뺏겨서.”
“같이 밥 먹는다고 했던 그 사람?”
“응. 지금 내 침대에서 자고 있어.”
“그 사람이랑 같이 안 잘 거야?”
“음.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거든.”
“그렇구나.”
반짝이는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그럼 오늘은, 나랑 밤새 떠들자.”
방심했다가는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빛.
미소까지 겹쳐지니 그야말로 무적에 가깝다.
“그럴까.”
소중한 것들이 있다.
그렇기에 지키고 싶다.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정말로 뭐든지.
악마와 손을 잡는 일에는, 익숙했다―.
***
다음 날.
일요일 오전 11시.
“끄응…….”
리타 스몰필드는 부스스 잠에서 깼다.
열린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렌즈를 끼고 잔 모양이다. 눈알이 굉장히 뻑뻑했다. 그즈음 숙취와 두통이 밀려왔다.
“아흐으, 머리야…….”
어제는 천천히 먹었다 해도 와인을 반병이나 들이켰으니, 인생에서 가장 술을 많이 마신 날이었다.
포도를 거르고 남은 찌꺼기가 뇌 주름에 낀 듯 두개골 안쪽이 웅웅 울렸다. 몸을 일으키는 것도 한참이 걸렸다.
“…….”
여기는…… 모텔 방이다.
유진이 어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끝내 건드리지 않았다. 어젯밤은 아무 일도 없었다.
“하아.”
아무 일도 없었다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나저나. 그냥 길 가다 아무 모텔에나 들어온 줄 알았는데, 왠지 느낌상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어째 방에 사람 사는 흔적이 군데군데 보이는 걸로 봐선 여기서 꽤나 오래 생활한 듯 보였다.
똑똑―.
그때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스몰필드 씨? 일어나셨어요?”
유진이었다. 리타 스몰필드는 자기 상태를 살폈다. 옷이고 스타킹이고 자다가 죄 벗어 던졌는지 속옷 차림이었다. 그녀는 얼른 이불을 뒤집어썼다.
“으아, 드, 들어오면 안 돼요오!!”
“아, 예. 칫솔이랑 갈아입을 옷 챙겨 왔는데 일단 문간 앞에 놔둘게요. 일요일은 청소 시간이라 열두 시까진 방 비워야 되니까 그때까지만 나와 주세요.”
“네, 네에…….”
리타 스몰필드는 다시 한숨을 길게 뱉은 뒤 화장실에 가서 씻고 나왔다. 유진이 가져온 옷은 사이즈가 얼추 맞았다. 왜 여자 옷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화장실에 칫솔도 여러 개였지. 설마…….
“그만. 그만!”
으, 아냐. 깊게 생각하지 말자.
이러면 괜히 머리만 더 아프다.
리타 스몰필드는 가방과 어제 입었던 옷을 챙겼다. 렌즈 대신 안경을 쓰고, 화장기가 쏙 사라진 맨얼굴을 보고 나니,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유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난간에서 담배 개비를 물고 있었다.
“아, 스몰필드 씨.”
“…….”
“좋은 아침이요. 아니, 이제 점심인가.”
유진은 담뱃불을 끈 뒤 난간에 있던 재떨이에 궐련을 털었다. 평소와 같은 미소가 돋보였다.
“집에 가실 거죠? 택시 잡아드릴까요?”
“아, 아뇨, 저기, 전철 타고 갈게요…….”
“그럼 역까지 같이 가요. 바래다 드릴게요.”
거절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그렇게 둘은 거리를 걸었다.
일요일. 주택가는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겨울치고는 상당히 따뜻한 날이었다. 날씨가 워낙 좋아 시에라시티의 희멀건 공기조차 아름답게 보였다.
“저어, 팀장님.”
걷던 도중에 문득.
리타 스몰필드가 말을 꺼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녀의 물음에,
유진은 갸우뚱했다.
“갑자기 그건 왜요?”
“그, 저기, 담배 때문에…….”
“담배요?”
“기분 안 좋을 때만 피우시잖아요.”
그 말을 듣고서,
그는 흠칫 놀랐다.
“하핫. 예리하시네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누가 알아봐 주길 기다렸던 걸까.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스몰필드 씨.”
“…….”
“뭐, 딱히 별일은 없고요. 그냥 왠지 맘이 좀 꿍해서. 오랜만에 한 대 피워 봤을 뿐이에요.”
유진은 둘러대듯이 답했다. 얘기할 만한 화제가 더는 없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역에 다다랐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팀장님.”
리타 스몰필드는 꾸벅 고갯짓을 하고는 역으로 들어갔다. 유진은 그녀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즈음 몸을 돌렸다.
그때. 우우웅―.
휴대전화가 울렸다.
유진은 전화기를 꺼냈다.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했다.
“……!”
전화를 걸어온 이는…… 유클리드.
어제 받아온 그 번호로 연락이 왔다.
그는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헤이. 친구. 지금 바쁜가?」
약간 경박한 어조.
유클리드의 목소리다.
“별로. 무슨 일로 전화했지?”
「우리 친구한테 알려줘야 할 게 있어서.」
빙긋, 하고.
전화기 너머로 놈이 웃음 짓는 게 보였다.
「일단 동맹 제안은 고마워. 나는 그걸 승낙할 생각이야. 친구랑 나는 이제 한 팀이다 이거지.」
“……그렇군.”
「근데, 아침에 뉴스 봤나?」
……뉴스?
……무슨 얘기지?
“아니.”
「지금 혹시 밖이야?」
“그래.”
「허어, 타이밍이 나쁘네.」
유클리드가 혀를 찼다.
유진은 어쩐지 불안해졌다.
「역으로는 될 수 있으면 가지 마. 친구.」
“……뭐?”
「이거는 그 저기, 얘기하자면 좀 복잡한데.」
점점 불안감이 가속됐다.
전화기 너머에서 뭔가가 들렸다.
「폭탄이 터질 예정이거든.」
그리고.
바로 옆에서.
콰아아아아아아앙―!!
들리고 말았다.
거대한 폭발음이.
「어라?」
「거기 있었어?」
유클리드가 말했다.
마치 보고 있는 것처럼.
「아이고. 유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