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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84화 (184/201)

184화. The Death of You and Me (5)

“으응?”

에덴파크 모텔 208호.

침대 가장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진 유진의 손을 붙잡고 있던 시안이 돌연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왜 그래?”

“이상해. 목소리가 끊겼어.”

“뭐야, 무슨 장면이었는데?”

“그, 오빠가, 여기 있는 언니랑 같이…….”

시안은 눈을 감은 채 마지막 광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보면 안 돼.

“응아악!?”

화들짝 놀라며 뒤로 자빠진 시안.

옆에 있던 스칼렛도 덩달아 놀랐다.

“아씨! 깜짝이야!”

“미, 미안, 모르고 능력 풀어 버렸어…….”

“하 씹, 뭐 하는 거야, 병신아! 빨리 도로 써!”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겁지겁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야, 뭐 해?”

“…….”

“설마, 아니지?”

왜인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으으음, 망한 것 같은데…….”

시안은 마른 입술 사이로 혀를 깨물었다.

스칼렛의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오빠, 못 돌아올지도.”

***

흑마법은 술사의 잠재력을 이끌어낸다.

그 대가는 심장이다. 흑마법사는 언젠가 본인의 힘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필연적인 죽음이다.

<부름>은 이 필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의 마지막 발악이다. <부름>을 쓴 흑마법사는 기필코 바쳐야 할 대가를 타인의 목숨으로써 대신한다.

악마는 실존하지 않는다.

단지 죄책감의 허상일 뿐.

***

눈을 떴다.

텅 빈 고요. 침묵의 영역.

아무것도 없는 어둠의 공간.

흐릿하게 번쩍거리는 새하얀 빛이 보였다.

작은 텔레비전 앞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TV를 보고 있으면 말이야.”

소녀는 입을 열었다.

혼잣말을 속삭이듯이.

“지금 내가 TV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TV가 나를 보고 있는 건지, 가끔 헷갈리지 않아?”

“…….”

“물론 그건 다 착각이지. 왜냐하면 TV 너머에서는 나를 볼 수 없잖아. 그러니까 화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나는 신 같은 존재인 게 아닐까?”

소녀의 얼굴이 TV 화면에 반사되어 비춰졌다.

그리고 소녀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화면 너머에서 건너온 너는.”

나를 응시하는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소녀는 내게 물음표를 던졌지만, 그 눈빛에서 호기심 따위는 아주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신이 아니야.”

“그럼 뭔데?”

“게임 하다가 게임 속에 끌려온 인간.”

“반대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소녀가 말했다.

“화면 속에 있는 네가, 화면 너머에 있는 ‘신’을 끌고 온 거야.”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는 나도 잘 몰라. 강한 염원? 불같은 신앙? 우주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작동한 걸까? 어쨌든 너는 성공했어. 보잘것없고 하찮은 너에게 친히 신께서 내려오신 거야. 오래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강림한 메시아처럼.”

그대로 내 눈을 파고들었다.

“너는 처음부터 진짜 ‘유진 연’이었다는 거지.”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았다. 하지만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러니까, 남의 얘기 같은 게 아니야.”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죽였어.”

“메리. 토마. 이가인.”

“모두 다. 네가 죽인 거야.”

소녀가 나를 보았다.

역겨운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말해 봐. 어떻게 생각해?”

“전부 망쳐 버린 장본인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정말로 뭔가를 해도 된다고 생각해?”

소녀는 내게 물음표를 던졌다.

호기심 대신 느껴진 것은 의구심.

“뭐 어때.”

나는 그 의구심에다가,

냅다 이 말을 던져 줬다.

“수습하면 되잖아. 망쳤어도.”

소녀의 눈동자가 굳었다.

굳은 상태로 나를 보았다.

“그건 모순이야.”

“알아.”

“너는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모든 걸 알고 있는 척을 하지. 기억나지도 않는 과거를 위해서 미래를 바치겠다? 역겹기 짝이 없어. 가짜. 모순덩어리. 바보 같아. 거짓된 감정에 마음이 통째로 넘어가다니 참 한심해. 우스꽝스러울 정도야.”

“상관없어.”

“다시 또 누군가를 죽이게 될 거야. 죄책감을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해. 계속. 영원히. 끝도 없이.”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나는 말했다.

자신만만하게.

“괜찮을 거야.”

세상에 너와 나만이 남겨졌다고 해도.

우릴 기다리는 것이 죽음뿐이라고 해도.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말해줄 것이다.

괜찮을 거라고, 분명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구나.”

소녀는 눈동자를 살며시 떨어뜨렸다.

어렴풋이 미소를 지은 것 같기도 하다.

“선물을 줄게.”

소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주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아 줘.”

소녀는 내 뺨을 어루만졌다.

몽롱한 손길이 나를 간지럽혔다.

“알겠지?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오라버니.”

두근―.

심장이 들썩였다.

뭔가가 내 안에 들어왔다.

“안녕.”

닿은 손길의 따스함이 전해졌다.

어둠 속에서 살며시 눈을 감았다.

끊어졌던 기억이,

이어져 재생됐다―.

***

미래를 보았다.

내가 ‘암귀’가 된 미래였다.

그날 밤, 현장에서 검거된 나는 경찰의 작전을 방해한 일당 중 하나로 몰리게 되었다.

수사 도중에 내가 여동생을 죽였다나 뭐라나 횡설수설을 했다는 모양이다. 기억은 잘 안 난다.

유치장에 갇혀 지내는 동안 몇 번이고 같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미래의 나를 보았다.

미래의 나는 뭐든지 알고 있었다. 실수도 자주 했지만, 항상 모든 일을 어떻게든 해결했다.

그건 도대체 무슨 꿈이었을까.

미래가 과거를 결정한다, 뭐 그런 게 과학적으로 검증됐다고 어디서 주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예지몽 같은 걸 믿지는 않지만, 왠지 그 꿈에서 보았던 길을 따라 그대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유치장을 탈출했다. 쉬운 일이었다.

나중에 수감 중 탈옥 혐의까지 생겨 버려 징역 형량이 추가됐지만, 그딴 건 전혀 중요치 않았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

기반을 쌓아 둬야만 했다.

***

“뭬야? 100만 달러를 빌려 달라고?”

“예. 전액 현찰로요.”

“콧물도 다 안 닦인 애송이 놈이. 짜식아, 내가 뭘 믿고 니한테 그런 돈을 덥석 빌려주겠냐?”

“여기, 이거 받으세요.”

“음? 이건……?”

“흑마법 성물인 <카인의 단도>입니다. 보통의 암시장에서는 취급하기 꺼리는 물건이지만, 값어치 자체는 제법 나가니 담보로는 충분할 거예요.”

“흐으음, 찐퉁 같긴 한데…….”

“이걸로 100만 달러 대출. 가능할까요?”

“……거 시퍼렇게 어린놈이, 그 큰돈을 뭐에 쓸라고? 혹시 코인인가 뭐시기에 다 갖다 박을라는 거면 너 이 새끼 가만 안 둔다, 너.”

“조직을 만들 거예요.”

“뭬야?”

“정확히는 만드는 게 아니고 이미 있는 조직을 새로 재건하는 건데, 뭐 그런 게 있습니다.”

“…….”

“돈, 빌려주실 거죠?”

“……빌려주마. 100만. 하지만 전부는 안 준다. 수수료 선으로 제해서 66만 달러. 그리고 이 단도인가 뭐시기로 원금 34만 달러는 갚은 셈 쳐주마.”

“감사합니다. 도노반 선생님.”

“어디 튀지 마라. 걸리면 죽는다.”

“걱정 마세요. 10년 안에는 갚을게요.”

***

「여보세요.」

“지나 드비토, 맞지?”

「맞는데. 무슨 볼일?」

“그쪽을 고용하고 싶어.”

「그래? 나 좀 비싼데.」

“1년에 100만 달러 정도면 어떻게 가능할까?”

「……뭐, 백만? 아니 잠깐, 1년은 뭔 소리야?」

“<블랙 대거즈>에 단원으로 들어와서 10년간 활동해 줘. 그럼 1,000만 달러를 줄게.”

「……정신 나간 제안이네. 프리랜서 용병한테 천만씩이나 준다고. 당신 뭐 개쩌는 갑부야?」

“아니. 실은 돈이 모자라서 대출까지 땡겼어.”

「……당신, <블랙 대거즈> 보스인 거지? 거긴 대형 조직이잖아. 머릿수는 이미 충분할 텐데?」

“이제부터는 소수 정예로 돌아설 거야. 단원이 너무 많아져서 끄나풀을 걸러내기 어려워졌거든. 언젠가 인원수가 필요한 일이 생기겠지만, 분신술사인 그쪽을 영입하면 그 문제도 해결되니까.”

「……하아. 10년짜리 장기 계약인가. 이거 전화로 할 만한 얘기가 아닌 것 같은데.」

“걱정 마. 만나게 될 거야.”

***

“……그러니까, 나중에 암귀가 돌아올 테니까. <블랙 대거즈>는 너한테 넘겨줄 수 없어.”

「이야기가 다르다. 너는 내게 차기 보스 자리를 약속했다. 계약 내용을 멋대로 변경하지 마라.」

“미안해, 자그말렉. 그래도 내가 양심이 있으니까 이렇게 너 약 먹고 멀쩡할 때 알려주는 거야.”

「너는 본인의 태도가 우수한 척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너와 네 동생의. 암귀의 얼굴조차 모른다. 이반 레오노프와 함께 가장 조직에 헌신한 내가. 우리의 신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하다. 이 사실은 감정에 좋지 않다.」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어쨌든 암귀는 돌아올 거야. 그렇게 되면 네 자리는 그대로일 수밖에 없어.”

「암귀는 죽었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다. 죽은 암귀가 어떻게 돌아온다는 것인지 설명해라.」

“내기할래? 암귀가 돌아오면 죽빵 한 대 맞기.”

「돌아오지 않는다면 너를 찾아가 때리겠다.」

“좋아. 그러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선데…….”

「나 똥꼬에 털 잇슴.」

“아 이런, 약효 끝났네.”

***

수용소에서의 8년은 길었다.

정말이지 고된 세월이었다. 한때는 굳건하기 이를 데 없었던 의지가 나약해지기에 충분할 만큼.

복역이 끝날 때쯤엔 성격이 많이 더러워졌다.

사회에 나와서도 나는 그리 좋은 놈이 아니었다.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블랙 기업에 들어가 더러운 돈을 받았다. 하나뿐인 부하 직원은 모질게 하대했다. 누가 봐도 나는 천생 개자식이었다.

그러면서도 좋은 놈이길 유지하고 싶었다. <윌슨앤코>에서 받은 급여는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긴 채 전액 현찰로 뽑아 집 근처 보육원에 가져다줬다.

언젠가는 그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꿈에서 보았던, 미래의 내가 오는 날.

나를 구원해 줄 구세주를,

지옥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8년을 보냈다.

죄책감을 버티고 또 버텼다.

날이 갈수록 내 의지는 희미해졌다.

그러다 뚝, 어느 순간에 의식이 끊겼다.

….

….

그리고―

이상한 곳에서 눈을 떴다.

***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편안하게. 얕은 숨을 쉬면서.

긴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내가 아닌 누군가로 살아온 꿈.

“오라방, 오라방! 이거 눈 뜬 거 맞지?”

“아냐, 스칼렛. 사후경직일 가능성이 있어.”

“병신아, 경직인데 어떻게 눈이 떠지냐! 제발 아는 척 좀 쳐 하지 마! 오라방! 말 좀 해봐!”

침대 옆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주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

그리고 내 옆에는…… 그 애가 있었다.

꿈에서 보았던 아이. 검은 머리의 소녀.

“안녕.”

소녀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응. 안녕.”

나는 앞으로도 살아가야 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모두를 위해.

설령 모든 감정과 기억이 가짜일지라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괜찮을 거라고.

적어도 그것만큼은, 진짜였다―.

***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밤 10시경 캐서린 스트로베리 시장이 거주하는 자택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 직전 자결했다는 소식입니다. 경찰은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삑―.

TV 화면이 꺼졌다.

“대표님.”

정장과 안경 차림의 엘프 여자가 입을 열었다.

“뭔 짓을 하신 겁니까.”

“나? 내가 한 거 아냐!”

“구라 까지 마세요. 대표님이잖아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번에도 멋대로 시내 나가셔서 쌈박질 벌이시더니, 진짜 무슨 분노 조절 장애라도 있으십니까?”

“쯧, 모르는 소리. 이건 다 계획의 일환이야.”

“무슨 계획이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씩 웃었다.

“세계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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