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The Death of You and Me (4)
아버지는 실종으로 처리됐다.
경찰 쪽에서는 야반도주 혹은 자살로 사건의 결론을 내린 듯했다. 갑작스럽게 불어난 빚과 생활고가 원인이라 보았다. 최근 잦은 결근 탓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해 수양딸의 병원비 지불 능력을 상실했으며, 딸을 급히 퇴원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는 것이다.
시체는 물론 발견되지 않았다. 세상에 외로이 남겨진 두 아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열다섯이 되던 해였다.
법적으로 만 15세부터는 노동 가능 인구로 분류되어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생활 지원금이 점점 줄어든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즈음부터는 라면 몇 봉지 사 먹을 돈만 간신히 쥐여 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다.
나는 중학교를 대충 졸업하고, 이후 고등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에는 때려치웠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연명했으나, 곧 최저임금제란 것이 말 그대로 ‘최저’만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쥐꼬리가 웅장하게 보일 정도로 초라한 월급은 빌어먹을 아버지가 쌓아 놓고 간 산더미 같은 빚더미를 해소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숨만 쉬고 싶을 뿐인데도 돈이 필요했다. 그때쯤에서야 나는 이 도시가 움직이는 방식을 겨우 알아챘다. 시에라시티가 ‘죄의 도시’라 불리는 까닭은,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살기 위하여 새 길을 택했다.
돈을 훔치고, 또 물건을 훔쳤다.
노스네스트의 양아치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손장난의 요령을 많이 익혔다. 낮에는 소매치기. 밤에는 빈집털이. 어느새 나는 절도의 프로가 되어 있었다. 3년 정도 그 짓거리를 하다 보니 경찰에 붙잡힐 때도 있어 가끔씩 유치장을 들락날락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던 해의 어느 날 밤.
“오라버니, 어디 가?”
출근을 하려던 나를, 이가인이 불러 세웠다.
그날은 길 가다 만난 좀도둑 친구에게 우연히도 좋은 정보를 얻어, 이스트포레스트 외곽의 부자 동네에 단독으로 빈집털이를 하러 갈 계획이었다.
“나도 같이 갈래.”
나는 놀랐다.
동생이 내게 밖에 나가자며 보채는 것은 그날, 아버지가 사라진 날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그날을 경계로, 이가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태양 빛에 알레르기라도 있는 마냥 낮에는 커튼조차 걷지 못하게 했다.
결국 그 애는 5년 동안이나 집에 틀어박힌 채로 유유히 히키코모리 생활을 보냈다.
그랬던 녀석인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그래. 같이 가자.”
고민은 길게 하지 않았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5년 만의 외출이었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좀도둑 친구에게 받은 정보는 거짓이었다. 비어 있어야 할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예전에 내가 등쳐먹었던 갱단 그룹의 양아치들이었다.
그때 난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괜히 이가인까지 데리고 와서, 잘못 없는 동생까지 함께 위험에 빠뜨려 버렸다는 것에 대해 죽도록 자책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은은한 보라색 불꽃이 온 세상을 덮었다. 우리를 공격한 양아치들은 모두 그 불꽃에 휩쓸렸다.
남아 있는 것은 불타 죽은 시체들과,
멀쩡히 살아남은 나와 이가인이었다.
“괜찮아?”
동생이 내게 물었다.
나는 되물었다. 방금 그거, 네가 한 거냐고.
“응.”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사라진 날. 아버지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아버지를 사라지게 한 건 바로 동생이었다.
내가 동생의 심장을 ‘카인의 단도’로 찌른 그때. 동생은 악마와 계약해 흑마법사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그 집에서 나왔다.
동네를 벗어나, 언덕길을 내달렸다. 달리고 달린 끝에 어느 후미진 지점의 공터에 다다랐을 즈음.
“찾았다.”
열 명이 넘는 괴한들이 돌연 우리를 둘러쌌다.
위험해 보였다. 하나같이 평범한 양아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흥미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심장은 어느 쪽이지?”
“몰라. 일단 둘 다 죽이고 보자고.”
“조심해. 몸통 말고 머리만 날려. 머리만.”
그들의 손에서 저마다 각기 다른 색의 불꽃이 피어난 순간, 나는 그들이 마법사란 것을 알았다.
심장, 심장……. 아버지는 말했었다. ‘노웨어맨의 심장’이란 것이, 동생의 몸 안에 들어 있다고.
“좋아. 죽여.”
그들이 우리를 공격해 왔다. 나는 벌벌 떨며 엎드렸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최후를 기다렸다.
….
….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오라버니.”
이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생은 멀쩡히 거기에 서 있었다.
“괜찮아?”
무덤덤하게 물어보는 목소리.
그 낭랑한 목소리의 뒤쪽으로, 나는 우리를 공격한 마법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머리만 남아 빈 땅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그들이 내 눈에 보였다.
“네가, 한 거야……?”
“응.”
아까 전과 똑같은 문답이 오갔고.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이 느껴졌다.
“…….”
그래. 나는 그때 알았다.
내 동생이 괴물이란 것을.
“집에 가자.”
그날 이후 나는 흑마법에 대해 공부했다.
‘노웨어맨의 심장’에 대해서도 찾아보았다.
카인의 단도. 악마의 힘. 그리고 <부름>.
모든 마법사가 욕망한다는 무한한 마력.
그날 밤 공터에서 우리를 습격한 마법사들은 자색 마력의 불꽃이 일으킨 거대한 소란을 목격하고, ‘노웨어맨의 심장’을 가진 자가 나타났다고 판단. 그 심장을 빼앗기 위해 우리를 쫓아왔던 것이다.
그날 사건은 뉴스에까지 언급되어 전파를 탔다.
심장의 존재가 온 세상에 알려졌으니, 이제 도시의 모든 마법사들이 우리에게 찾아올 터였다.
“괜찮아.”
고민은 길게 하지 않았다.
나는 금세 결론을 내렸다.
“마법사를 전부 죽이면 돼.”
숨을 수 없다면.
차라리 드러내리라.
공포의 상징. 걸어 다니는 재앙.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
동생은 괴물이다.
괴물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
암귀闇鬼.
다들 그렇게 부른다.
얼굴 없는 자. 언디파인드. 파별성의 사신.
다양한 별칭들이 있지만, 이 도시의 모든 마법사들을 공포로 몰고 간 이름은 언제나 암귀였다.
그날의 사건으로부터 2년.
이가인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죽여야 하는 놈을 죽였고, 죽여도 되는 놈을 죽였다.
동생이 죽인 놈들은 전부 다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내 입으로는.
흑마법은…… 강력했다. 흑마법사는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동생은 전혀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특히 <부름>이란 것이 무시무시했다. 동생이 무어라 속삭이면 블랙홀 같은 걸 소환되는데, 그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잡아먹어 사라지게 만든다.
암귀의 소문이 무성해질수록,
더욱 강력한 상대가 나타났다.
상대의 강함이 아직까지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야 이가인은 말도 안 되는 괴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힘이 부족해질지도 몰랐다. 서포트를 책임진 나는 그런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암귀를 추종하는 자들과 시에라시티의 일부 반反마법 세력들을 모아 조직을 하나 창설했다.
마법을 증오하는 테러 단체. 마법사들을 찔러 죽이는 검은 단검― <블랙 대거즈>라 이름 붙였다.
명목은 보스였지만 무조건 익명으로 활동했다.
신상에 관해서는 끝까지 조심했기에, 나와 동생의 얼굴이 세간에 드러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이가인은…… 항상 내 말에 잘 따랐다.
무얼 시키든 대꾸도 않고 질문도 않았다. 딱히 그럴 맘도 없어 보였다.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을 때도 시큰둥했으며, 죽이는 순간에도 그랬다.
예전보다도 감정이 더욱 무뎌진 듯했다.
어렸을 때처럼 들러붙거나 하는 일도 꽤나 적어졌다. 왜인지는 몰라도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편했지만, 조금 아쉽기도 했다.
물론 그런 것들은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동생을 강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암귀로서의 명성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기 위해.
그리고 흑마법사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관련 서적 몇 권을 통해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것.
누군가 자기 심장을 바친다면 악마는 술사에게 추가적으로 힘을 준다, 라고 책에 쓰여 있었다.
허나 이는 흑마법의 계약에 따라 일종의 ‘모순’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위험하다고도 전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순’이라는 게 무엇인지.
나는 그저 위급한 순간에 내 심장을 바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깟 심장 따위 알 게 뭔가.
우리가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아직 미래가 창창해 보이던 때.
도시를 악몽으로 만든 대가는,
언질도 없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블랙 대거즈>와의 테러 실행 당일.
우리 쪽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던 것 같다.
첩자의 밀정으로 인해 경찰의 함정에 빠져, 이가인은 홀로 적진에 떨어지게 되었다. 더욱이 하필이면 거기에는 그 대단하신 <나인서클>의 대마법사가,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끼어 있었다.
제아무리 동생이라 해도 총력전을 펼치는 경찰과 <나인서클>의 협공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무전을 통해 멀찌감치서 지휘를 하고 있던 나는 동생의 위험을 느끼자마자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건물들. 전쟁 같은 싸움에 휘말려 죽어 나가는 사람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절망의 풍경이자 죽음의 메아리였다.
나는 동생을 찾아 불타는 거리를 내달렸다.
그러다 가장 위험해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가인아!”
동생은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부리나케 달려가 그 애의 상태를 살폈다. 온몸이 엉망진창이었지만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
하늘 높은 곳에는, 이 지옥의 주인― <나인서클>의 제4원 ‘업화의 마도사’ 카미유 레이가 있었다.
여기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 ‘시간의 마도사’ 제퍼슨 브리즈 또한 있을 터였다.
지금.
절망이 다가온다.
“괜찮아.”
나는 쓰러진 동생을 꼭 안았다.
게슴츠레 뜬 그 애의 눈을 보았다.
“괜찮을 거야.”
그래.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었다.
이가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악마에게 그 말이 들리도록.
“내 심장을 줄게.”
그때는.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다지만.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다.
동생은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악마가 바라 마지않는 ‘모순’의 정체를.
「말했구나.」
순간.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가장 소중한 존재가.」
「꼭 살아줬으면 하는 순간에.」
「그 목숨을 내게 바친 것이구나.」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도 계속해서 들렸다.
「이 아이는 너를 죽여야 하는데.」
「너의 목숨은 이미 내 것이 되었다.」
「고로 이 아이는 너를 죽일 수 없다.」
가슴이 저렸다.
심장이 조여져 왔다.
「모순이다.」
이가인의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렸다. 아련하게.
나는 눈을 감고 싶었다. 감아야 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그그그극―.
이가인의 몸에서, 벌레들이 꿈틀댔다.
자색 곰팡이 덩어리가 동생을 옭아맸다. 동생은. 그대로. 천천히. 내 앞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안 돼.”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안 돼. 안 돼. 안 돼!”
동생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하. 바보.
―아주 잘했어.
마지막에 들린 것은,
악마의 작은 속삭임.
―네가 죽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