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The Death of You and Me (3)
“……?”
나는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시안의 능력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인데, 정확히는 초상 공간에 잔존된 사념체의 어쩌구를 현실에서 실질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뭐시기인가, 아무튼 그런 거래. 그러니까 이 녀석 능력으로는 죽은 사람의 기억을 가져와서 재생시킬 수도 있다는 거야. 다만 산 사람한텐 효과가 없어.”
“그래서, 날 죽여서 기억을 꺼내겠다고……?”
“엉.”
스칼렛은 그게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짜 내 뒤통수에 권총부터 들이밀지 않았었나.
“저기, 진짜로 죽이려는 건 아니지……?”
내가 소심하게 묻자, 빨간 머리 소녀는 상어처럼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한껏 짜증을 부렸다.
“오라방 병신이야? 설마 진짜로 죽이겠어?”
“…….”
“대가리 좀 굴려 봐. 내 능력 뭔지 알잖아.”
그 말을 듣고서,
뒤늦게 깨달았다.
“아.”
<상대가 거짓말을 믿게 하는 능력>.
스칼렛이 나에게 그 능력을 써서,
내가 죽었다는 거짓말을 믿게 만든다.
“실제로 죽지는 않겠지만, 오라방의 뇌는 자기가 죽었다고 인식하게 될 거야. 그렇게 가상의 사념체가 생성되면 시안의 능력도 먹히게 되는 거지.”
“혹시라도 실패할 가능성은?”
“안심해. 절대로 실패할 리는 없어. <슬로터하우스>의 마루타 신세였을 때 좆같이도 많이 해본 작업이니까. 그 씹새끼들은 실패할 때마다 우리를 전기의자에 30분씩 앉혀 놓고 그랬지. 그치, 시안?”
민트색 머리카락을 가진 조그만 소녀, 시안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입을 열었다.
“근데, 부작용은 주의해야 해.”
“부작용?”
“초능력을 동시에 겹쳐서 받으면 뇌에 엄청나게 무리가 생겨. 운이 나쁘면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될 수도 있어. 실험체 중에 그렇게 된 예시가 몇 명 있었거든.”
경고로 하는 얘기 같지 않았다.
오히려 부추기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오빠를 믿어.”
“…….”
“스칼렛은 맨날 내가 머리 나쁘다고, 바보라고 뭐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도 알아. 오빠가 지금 노력하는 거, 마더를 다시 살리려고 그런다는 거. 그치만 그렇다고 해서 오빠까지 잃고 싶진 않아.”
시안은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약속해. 무조건 돌아오겠다고.”
변성기도 아직 오지 않은 아기자기한 목소리가, 어째서 그렇게나 강인하게 들릴 수 있었을까.
“그래.”
작은 마음속에 꼭 붙잡은 소망을 품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약속할게.”
이것이 단지 말뿐인 약속이 아니기를.
나는, 지금 내 안에서 굳건히 다짐했다.
‘작업’의 준비 과정은 간단했다.
침대에 가서 편안히 누웠다. 바로 옆에서 누워 자고 있는 이가인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준비됐어?”
스칼렛이 그리 물었고,
나는 눈짓으로 끄덕였다.
스윽―.
두어 번의 시선 교환 직후, 우리 모두 준비가 되었다. 곧 스칼렛이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당신은 죽었어.”
그리고 눈이 감겼다.
영영 깨지 않을 것처럼.
“목소리를 들려줘. 오빠.”
의식이 흐려지는 가운데.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떠올려봐.”
이어 몽롱하게.
최면에 걸린 듯이.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보육원에서 내 이름은 피터였다.
동갑내기였던 두 친구가 있었는데 걔네는 각각 존이랑 제인이었다. 보육원 고아들의 이름은 동네 똥개마냥 대충 정해지는 것이 당연하다시피 했다.
우리는 ‘세쌍둥이’라고 불렸다.
실제로 셋이 쌍둥이였던 건 아니다. 일단 존과 제인은 서로 쌍둥이가 맞았는데, 우연찮게도 내 생김새가 쌍둥이 중 남자애 쪽인 존이랑 엄청나게 닮았다는 모양이었다. 머리 색깔은 달랐지만서도.
아무튼 셋이 같이 자주 놀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랬던 것 같다.
존은 어떤 녀석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제인은…… 자주 아팠다. 매일 병원에 가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한 주먹씩 챙겨 먹고 그랬다. 나는 그게 몰래 받은 간식인 줄 알고 뺏어 먹으려다가 원장 선생님한테 꿀밤을 맞곤 했었다.
‘세쌍둥이’ 시절은 여섯 살에 종결 났다.
존과 제인이 먼저 입양을 가게 된 것이다.
쌍둥이를 입양한 부모는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노린 사기꾼 족속들, 흔히 있는 ‘애팔이’였다.
다만 약값을 감당 못 했는지, 나중에 제인 혼자 보육원에 다시 돌아왔다. 존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제인은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어느샌가 나는 그 애의 친오빠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열 살이 되던 해, 둘이 같이 한 가정에 입양된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우릴 입양한 부모님은,
좀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어스테이트에서는 드물게도 둘 다 한국계였는데, 실제 혼인은 안 한 사실혼 관계에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의 성씨가 달랐다. 부모님은 우리한테 새 이름을 지어주면서 각각의 성씨를 따로 물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연유진’이 되었고,
여동생 제인은 ‘이가인’이 되었다.
이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서류상의 편의를 위해 호적 이름을 서양식인 ‘유진 연’으로 등록했다.
허나 ‘이가인’은 그대로 ‘이가인’이었다. 열네 살쯤부터 잔병치레가 너무 심해져서 또래들처럼 학교에 가는 대신 병원 신세를 져야 했기 때문에, 서류상의 편의 따위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아버지는 의사였다. 그래서 병원비 걱정은 없었다. 게다가 신비 마법과 연금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마법사 출신이라, 이가인에게 현대 의학으로 가능한 최고의 치료를 지속적으로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년간의 치료를 받았음에도―
이가인의 병세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헌신적이고 희망에 차 있던 아버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지쳐만 갔다.
그럴 만도 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어머니 또한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까. 그 시절의 아버지는 자기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내를 살리지 못한 죄책감을 이겨내고자, 그녀가 남기고 간 딸을 살리려 애쓰는 것일 테지.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아버지는 온갖 방면으로 연구하고 궁리했다. 가끔씩 노스네스트의 암시장에서 이상한 도구나 서적 같은 것을 구해 오기도 했다. 그 방식은 점점 피폐해지고 어두워져 갔다.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찾았단다. 네 동생이 아픈 이유.”
마르고 수척해진 폐인 같은 모습으로,
그는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했다.
“심장. 심장 때문이었어.”
아버지는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가인의 몸에 있는 심장은 ‘노웨어맨의 심장’이라 불리는 것으로, 그것에는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 축적된 무한한 양의 마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네 동생의 육신은 선천적으로 비非마도체이기 때문에, 심장의 마력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했어. 그래서 체내에 응집된 마력이 위상 포화 상태에 빠져 신체에 에테르 중독 같은 증상을 일으킨 거지.”
“고칠 방법은, 있는 거야……?”
“있지. 그래. 있고말고.”
왜인지는 몰라도 그때 아버지는,
광대처럼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들. 아빠를 좀 도와주겠니?”
나는 여동생을 살리고 싶었다.
아버지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버지는 병원에 있던 이가인을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왔다. 왜 병원에서 치료를 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을 그는 이런저런 핑계로 얼렁뚱땅 넘겼다.
그날 밤, 마취 주사를 맞고 잠이 든 동생의 몸을 아버지와 나는 지하실의 침상으로 옮겼다.
지하실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곳은 동화책에 나오는 마녀의 더러운 실험실 같았다.
“저쪽 상자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렴.”
나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구석의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상자 안쪽을 살폈다.
거기에는, 보자기에 싸인 단검이 있었다.
검은색 칼날. 투박하게 깎은 나무 칼자루.
“아빠, 이거……?”
“맞아. 그거. 가져오렴.”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카인의 단도. 흑마법 성물.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불가해한 힘을 얻게 해주는 금지된 아티팩트.
―아아, 그렇구나.
동생의, 이가인의 몸이 아픈 원인은,
심장의 마력이 발현되지 못했기 때문.
정상적인 경로로는 마법을 구사할 수 없는 육체지만, 흑마법을 익히게 한다면 마력을 발현할 수 있게 된다. 마나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 거지?”
내가 물어보자,
아버지는 말했다.
“우리 아들. 똑똑하구나.”
“…….”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단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때 아버지는,
악마처럼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렵게 생각할 게 뭐 있겠니. 병의 원인은 바로 심장이니까. 단순하게. 심장을 꺼내면 되는 거야.”
“어, 근데, 그러면, 가인이가 죽잖아…….”
“동생이 죽어도 너무 상심해하지 말렴.”
그는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려울 정도로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대신 네 엄마를 살려줄 테니까.”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르겠니? 이 심장은 보물이야. 전설의 대마법사가 인류에게 남기고 간 마지막 보물.”
“무한한 마력. 그래. 그것만 있다면 이 세상의 어떤 마법이든지 재현해낼 수 있어.”
“신의 마법이라 불리는…… <소생술>까지도!”
라고 말하며, 아버지는 눈을 부라렸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나는 마법에 큰 재능이 없었어. 내가 이 심장을 가진대도, 노웨어맨의 마력을 다루지는 못할 거야.”
“그렇지만 흑마법사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 악마의 힘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어주니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는 동생의 심장을 꺼내,
자기 몸에 가져다 박을 셈이구나.
“너도 엄마가 보고 싶지? 아들?”
“…….”
“자아, 지금부터 이식을 시작할 거란다. 네가 옆에서 좀 도와줘야 할 거야. 아빠 말대로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푸욱―!
나는 들고 있던 단검으로,
아버지의 허벅지를 찔렀다.
“끄아악!”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꽂아 넣은 단검에 힘을 줘서 도로 빼냈다. 무딘 칼날이 뽑히며 주르륵 하고 피가 묻어나왔다.
“너, 이게, 무슨……!”
분노한 아버지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고, 나는 홱 하고 몸을 돌려 동생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숨이 차올랐다. 심장이 떨렸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여동생을 살리고 싶었다.
아버지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근.
손에는 칼 한 자루가 쥐여져 있었다.
칠흑처럼 빛나는 날을 가진 검은 단검이.
―두근. 두근.
칼을 들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부터 그러기 위해 온 것처럼.
―두근. 두근. 두근.
일말의 망설임과 후회도 없이,
침상에 누운 소녀의 심장을 찔렀다.
***
“─.”
무어라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의 입에서 나온 소리 같았다.
그 속삭임 직후에.
무언가가 일어났다.
허공에서 검은 구체가 튀어나와,
아버지의 몸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
….
이제 아버지는 없었다.
나와 이가인. 둘뿐이었다.
“괜찮아.”
나는 동생을 꼭 안아주었다.
세상에 우리만이 남겨졌지만.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