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Stop The Clocks (6)
메이슨 타워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체스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화장실에 갔다기에는 자리를 비운 시간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길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물 내부에 딱히 소란이 일어난 흔적은 없었다. 저녁 즈음의 약간 떠들썩하면서도 평화로운 공기만이 내내 감돌고 있었을 뿐.
투웅―.
그때.
기이한 자극이 전해졌다.
퉁. 퉁. 투웅―.
까딱하면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스쳐 지나갔을지 모를, 귀밑의 신경을 간질여 온 이질적인 감촉.
“이건…….”
어렴풋하게 확신이 든다.
나는 이 느낌을 알고 있다.
체스터가 <시간 역행>을 사용했을 때.
그때도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나의 시간과 세계의 시간이 서로 어긋난 순간에 흘러들어오는, 희미하면서도 익숙한 비현실의 감각.
그때처럼 시간이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주변의 상황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투우우웅―.
다만,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일어났다.
그 사실만이 뇌리에 똑똑히 새겨졌다.
….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무언가’를 포착했다.
“……?”
출입구를 오가던 방문객들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말이다.
심지어 그들 대부분은 걷던 도중 발이 공중에 머무른 상태 그대로 있었다. 그것은 일류 팬터마임 배우라 해도 유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자세였다.
“뭐지……?”
나는 의아함을 품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펼쳐진 것은, 더더욱 기묘한 광경.
도로의 자동차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흔들리는 시선이 곧 기묘의 절정과 마주쳤다.
길가의 가로수에서 이제 막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낙엽이, 어느새 추락하기를 단념한 듯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아무것도 없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시간 정지>.”
그즈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고 느껴지겠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지금 이건 어디까지나 <시간 감속>에 불과해요. 우주의 속력을 0에 가깝게 최소한으로 줄였을 뿐이죠.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회색 후드를 쓴 비밀의 남자, <나인서클>의 시간의 마도사― 제퍼슨 브리즈가 그곳에 있었다.
“의외군요. 더 놀란 표정을 지을 줄 알았는데.”
“…….”
“보아하니 각시님께 힌트라도 전해 들었나 봅니다만. 하긴 그녀라면 뭐, 10년 후의 자신이 벌일 짓거리 정도야 가뿐히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요.”
제퍼슨은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가만히 한숨을 지었다. 슬슬 전후 상황이 파악될 시점이었다.
“어떠셨나요? 시간 여행 체험은?”
“미리 좀 알려주지 그랬어요. 과거로 올 줄 알았으면 로또 번호라도 몇 개 외워 갖고 왔을 텐데.”
“죄송합니다. 비밀로 해야지만 당신이 진지하게 임할 수 있을 거라고, 각시님께서 그러셨거든요.”
솔직히 예상도 하지 못했다.
설마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모두 다, 미르각시가 설계해 놓은 ‘수업’의 일환이었을 줄이야.
“유진 연 씨. 당신의 목적은 <부름>의 각성. 즉 지금 가진 <시간 가속>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최종적으로는 <시간 역행>을 구사하고자 했던 거죠.”
“…….”
“시공 마법은 모든 마법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마법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조작한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술식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론적인 연구 따위보다도 그냥 직접 경험하는 것이 최고죠.”
“그래서, 제자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우리 선생님께서 그쪽 형제를 쌍으로 끌어들였다 이거군요.”
“저는 공범이 맞습니다만, 동생은 아닙니다. 그 애는 그냥 각시님의 장난에 불쌍하게도 휘말린 거예요.”
“체스터는 지금 어디 있죠?”
“원래 시간선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정을 설명할 시간이 없어 결국 얼굴도 못 마주쳤지만요.”
나는 찌푸렸던 인상을 조금이나마 풀었다.
의문의 습격자는 역시나 제퍼슨 브리즈였다. 영문도 모른 채 아군 손에 놀아난 셈이었지만,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심할 만한 일이었다.
“그럼, 저도 이제 집으로 보내주시는 겁니까.”
내가 무덤덤한 말투로 묻자,
그는 입꼬리를 슥 올려 보였다.
“아뇨.”
상냥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눈을 깜빡인 순간.
아니, 그보다도 더더욱 짧은.
0초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찰나.
제퍼슨이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멈췄던 세계는,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빠아아아아아앙―!!
15톤짜리 덤프트럭 한 대가.
나를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
미처 피할 틈 따위는 없었다.
그대로 나는 범퍼에 들이받혔다.
쿠당탕―!
몸뚱이가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충돌한 순간 <강화>를 전신에 두르긴 했으나 반응이 늦었다. 데미지를 조금 줄인 게 전부였다.
“으윽…….”
피부가 쓰리다. 뼈가 욱신댄다. 내장이 뒤집힌 기분이다. 뇌진탕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 감각은 진짜다. 트럭에 치이면 이세계로 날아가 버리는 클리셰가 어째서 생긴 것인지 이해가 갔다. 이건 진짜로 저세상으로 가버릴 충격이잖아.
아주 잠깐 바닥을 뒹굴다가,
간신히 몸을 가누고 일어서자.
번쩍―.
나를 덮쳤던 덤프트럭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뭣……!?”
이번에도 피할 틈은 없었다.
그대로 나는 트럭 밑에 깔렸다.
쿠구구구구구―!
트럭은 마치 중력을 수십 배로 받고 있는 듯했다. 지상의 나를 깔아뭉갠 것에 만족하지 않고, 수백 톤에 달하는 무게로 땅속에까지 뚫고 들어갔다.
“크으윽……!”
무겁다. 갈비뼈가 쪼개질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벌어지고 있는 건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우선 이 빌어먹을 트럭부터 치워야 했다.
“카인 나호르……!”
다행히 <부름>의 벌레들이 도움이 됐다. 평소보다 출력을 높여 끌어낸 자색 군체는 거의 코끼리만 한 크기로 튀어나와 트럭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안에 사람이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요.”
헐떡이는 숨을 겨우 바로잡던 중.
제퍼슨 브리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은 반응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본능적으로 움직이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는 부유 마법으로 공중에 떠오른 채, 깨진 아스팔트 사이에 파묻힌 나를 유유히 내려다보았다.
“혹시 제가 뭘 한 건지 궁금하신가요?”
“…….”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공간 좌표에 약간의 조작을 가해 사물의 위치를 바꿨을 뿐입니다. 다만 당신이 제때 반응하지 못한 이유는…….”
제퍼슨이 말하려던 도중에,
내가 입을 열어 말을 끊었다.
“<시간 정지>.”
그 상태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사를 뺏긴 놈은 빙그레 웃었다.
“맞습니다. <시간 정지>. 제가 ‘시간의 마도사’라는 과분한 칭호를 얻게 해 준, 저의 유일한 장기죠.”
“…….”
“멈출 수 있는 시간은 최장 5초. 시간이 멈췄는데 5초라 하는 건 이상하지만 어쨌든 5초입니다.”
제퍼슨은 미소를 유지한 채로 말했다.
“지금부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제가 시간을 정지시킨 5초 동안, 그 사실을 인지하고 탈출하는 겁니다. 멈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시간 정지>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오로지 <시간 역행>뿐입니다. <시간 가속>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경지란 얘기지요.”
“그리 간단한 것처럼은 안 들리는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신은 눈치도 못 챈 것 같군요. 지금 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도, 저는 벌써 스무 번 넘게 시간을 멈췄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눈빛이었다.
“……그쪽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내가 이룰 목표랑 그쪽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나는 입에 든 피를 뱉은 다음 놈에게 물었다.
“동생을 위해서입니다.”
제퍼슨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비로소 나에게 대답을 전했다.
“그 애는 특별합니다. 전 세계의 유일무이한 <시간 역행> 구사자라는 부담. 책임감. 자격지심……. 단지 조금 특별하다는 죄로, 죽기 전에는 결단코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에 갇혀 있는 겁니다.”
“…….”
“당신이 <시간 역행>을 쓸 수 있게 된다면, 그 애의 특별함을 조금은 바래게 해 줄 수 있겠지요.”
놈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너무 올곧아서. 무서울 정도였다.
“자,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아시겠죠? 당신은 당신의 <부름>을 일약 각성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로,
놈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죽지 않으려면요.”
그리고.
눈을 깜빡인 순간.
꾸욱―.
후두부를 조여 오는 통증이 느껴졌다.
어느새 내 목에는 밧줄이 칭칭 감겨 있었고, 교수형을 당하듯 전봇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컥……?!”
나는 공중에서 발버둥 쳤다. 기도를 누르는 압박에 숨이 막혔다. 목이 졸려 죽을 것 같았다.
<부름>을 써서 가까스로 밧줄을 녹여 빠져나왔으나, 생명의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화르르르륵―!
이번에 나를 맞이한 것은, 뜨거운 화마火魔.
전봇대에 매달렸다가 아래로 떨어지자,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지옥 같은 불길이 내 몸을 덮쳤다.
“사람들 사이에 대개 그런 말이 돌곤 하죠.”
“죽기 직전에 인생의 주마등을 보았다, 라는.”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제퍼슨 브리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죽기 직전, 시간을 인지하는 부분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생물적 한계치를 돌파한 수준까지 예민해집니다.”
“시공 마법의 감각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때는, 바로 생명의 불씨가 꺼지기 직전이란 얘기지요.”
시뻘건 죽음의 열기에 가둬져 있는 나를 골리기라도 하듯이,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모를 리가 없었다. 모른다면 바보였다.
지금 내가 고민할 부분은 단 하나였다.
“저는 당신을 죽일 겁니다. 진심으로요.”
살아남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
몇 번이나 시간을 멈췄을까.
모르겠다. 중간부터 세지 않았다.
‘실망이군.’
제퍼슨 브리즈는 그저 한탄하고 있었다.
멈춘 시간 속에서.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헛짓거리였어. 전부.’
유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수백 번이 넘도록 <시간 정지>를 구사할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멈춘 시간을 인지하지 못했다.
무얼 기대한 걸까.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을 텐데.
‘…….’
미르각시는 ‘죽일 각오로 해라’라고 하였다.
그녀 딴에는 제자인 유진이 전력을 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내 잘못은 아니지.’
제퍼슨 브리즈는 융통성이 없었다.
미르각시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끝낼까.’
<시간 정지>로 멈춘 유진의 테두리를,
황색 마력으로 이뤄진 칼날들이 에워쌌다.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칼날들은 유진의 몸을 꿰뚫을 터.
‘마지막 기회입니다. 친구.’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지금 움직여야만 했다. 죽지 않으려면.
….
….
5초는 영겁처럼 흘렀다.
멈춘 시간 속에서. 또 한 번 시간이 멈춘 듯했다.
….
….
그리고.
5초에 다다른 순간.
―움찔.
유진의 손가락이.
자그마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