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Stop The Clocks (5)
“돌겠네, 진짜.”
나는 뒤통수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10년 전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는 오해나 착각의 여지 따위가 없는 순수한 팩트였다.
플랫폼 벽면 게시판에 붙은 선거 일정 공시 포스터의 날짜 표기가 이를 대놓고 증명했다.
“그 후드 쓴 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 안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회색 후드를 쓴 그놈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에, 저쪽 구석 기둥 앞에 찌그러져 박혀 있는 체스터가 보였다. 나는 그리로 움직였다.
“어이. 괜찮아?”
“…….”
체스터는 펜타닐에 중독된 약쟁이마냥 헤롱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
멀쩡해진 체스터에게 우리가 10년 전으로 돌아왔음을 알리자, 녀석은 경악하며 석고대죄를 했다.
“으으으, 죄, 죄송합니다……!”
“뭘 또 사과까지 하냐. 새삼스럽게.”
“제가 겨, 경솔했어요. <상대 시간 역행>을, 그것도 즉발로 쓰는 건 5년 만에 처음이거든요……. 제가 미숙한 탓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뭐, 진짜로 어이가 없긴 해. 1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이라니, 무슨 옛날 SF 영화도 아니고 말이야.”
“저는, 저는 예전부터 구제불능이었어요. 할 줄 아는 거라곤 <역행>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잘 못해서……. 제가 더는 마법을 배우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도망쳐 나오니까, 그런데도 형님은, 저한테 괜찮다고, 응원하겠다면서…….”
말을 잇던 체스터는 턱밑까지 차오른 울분을 참지 못했는지 결국 꺼이꺼이 눈물을 쏟아냈다.
<나인서클>의 일원인 제퍼슨 브리즈의 동생.
게임 속에서는 크게 조명되지 않는 캐릭터라 자세한 설정에 관해서는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지만, 아마도 뭔가 깊은 사정이 있겠거니 싶었다.
“마법을 배우기 싫었다고?”
“…….”
“그래서 <블랙 대거즈>에 들어갔던 거냐? 마법이 싫어서, 마법사들도 다 죽이고 싶어졌다거나?”
“아, 아뇨! 아닙니다! 거기 들어가게 된 거는 그, 일자리를 찾다가 어쩌다 휘말려서, 입단 제의를 거절하면 죽을 것 같은 흐름이 돼서 그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군.
그래서 매번 도주를 시도했던 건가.
“그동안은 정말로 형님을 뵐 낯이 없었습니다. 기껏 집을 뛰쳐나와 된 게 테러리스트라니……. 한심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숨어서 살았죠…….”
“제퍼슨은 너랑 반대로 말하던데. 자기는 동생을 만날 자격이 없다고 말이야.”
“그건, 저랑은 달리 자격지심 같은 거겠죠……. 어쨌든, 형님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 저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역행>을 자동으로 발동시키는 결계도 사실은 형님 작품이나 다름없는걸요.”
체스터는 <시간 역행> 구사에 미숙하다.
그의 형인 제퍼슨은 <시간 역행>을 다루지는 못하지만, <나인서클>에 소속된 일류 대마법사인 만큼 불완전한 술식을 보완시켜줄 수는 있었겠지.
“……음……?”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체스터. 아까 우릴 습격한 놈 말인데.”
“예? 아, 예에…….”
“그놈은 1년 전으로 역행한 우리를 쫓아왔잖아. 설마 놈도 <시간 역행>을 쓸 수 있는 건가?”
“어어, 아뇨.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고위 시공 마법은 저희 브리즈 가문에만 전수되는 비술인데, 아버지께서는 그, <역행>을 구사할 수 있는 마법사는 전 세계에 저밖에 없다고 하셨거든요…….”
“그럼, 놈은 어떻게 과거로 이동한 우리 뒤를 따라온 거지? 네가 발동한 <상대 시간 역행>의 대상에 그놈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어, 그건…….”
“놈의 정체는, 네 형일지도 몰라.”
내가 진지하게 그렇게 말하자,
체스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혀, 형님이, 범인이라고요……?!”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역행>을 써서 과거로 날아간 우리를 쫓아왔다는 건, 적어도 시공 마법에 꽤나 조예가 있는 인물임은 틀림없어.”
“무, 물론 형님이라면, 제가 뚫어 놓은 경로를 따라 위상 술식의 이중 발동을 전개시켜 <역행>을 재구현하는 게 가능은 하겠지만……. 그래도, 혀, 형님이 저를 공격하다니……. 절대 아니에요! 저희 형님이 그런 짓을 할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야 모르는 일이지. 자기가 못 쓰는 <역행>을 너는 쓸 수 있으니. 뒤에서 너를 시샘했을지도.”
“혀, 형님이, 그럴 리…….”
“다시금 말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야. 일단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은 염두에 두란 얘기지.”
아직 그놈은 이쪽 시간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추격을 멈췄다고 보는 것은 희망적인 가정. 필히 시간의 미로 같은 곳에서 10년 전으로 날아간 우리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있다 봐야 할 것이다.
그보다도 지금 당장에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냐는 건데…….
제퍼슨 브리즈가 적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는 한, 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꺼려진다.
생각해 보자. 10년 전인 지금 시점에, 혹시 누군가 내게 도움을 줄 만한 인물이 있을까?
….
….
있다.
딱 한 사람.
“가자.”
“예? 가다뇨, 어디로요……?”
뭐, 사실.
사람은 아니지만.
“메이슨 타워.”
***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메이슨 타워>의 최상층 151층.
비밀의 방의 입구가 열리자, 세상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비경祕境. 드래곤의 둥지가 펼쳐졌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아무렇게나 흩어진 만화책.
적나라하게 드러난 오물창고.
그곳은 수십 세기를 살아온 지고의 신수이자 지구 최강의 마법사― 청룡 미르각시의 쉼터였다.
“손님을 부른 기억은 없는데.”
그리고 이 더러운 방의 주인은, 중앙의 크고 작은 쓰레기가 쌓여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빛깔의 언덕 위에서 휴대용 게임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허락도 없이 나의 터전에 불쑥 흙발부터 들이밀고 보다니, 꽤나 발칙한 방문객이로구나.”
사슴뿔이 달린 초록 머리. 붉은 눈의 미녀.
편안한 추리닝 차림이 아닌, 흑과 금의 조화로 이뤄진 퓨전 한복 풍의 고풍스러운 드레스.
“묻겠다. 그대는 당최 어디서 온 누구인가?”
살기 넘치는 눈빛이 나를 찌르고 들어왔다.
다분히 위협적인 경계심. 단지 시선을 받은 것만으로 심장이 마른 오징어처럼 쫄아든 느낌이다.
침착하자.
드래곤의 둥지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게다가 나는 이미 한 번 겪어봐서 알고 있다.
“이름은 유진 연. 저는…….”
그녀가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는.
예습으로 머릿속에 박아 둔 상태다.
“미래에서 왔습니다.”
자자.
이번엔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
나의 통산 두 번째 미래인 선언 직후.
미르각시는 내게 ‘전부’ 말하라고 요구했다.
전부는 말 그대로 전부였다. 10년 뒤의 내가 그녀와 만나고 나서부터 있었던 일들을 전부, 모조리, 하나도 빠짐없이 자기한테 전달하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전부 다 얘기했다. 혀가 말라붙을 때까지 말을 이어가는 동안 미르각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얘기에 계속 집중했다.
“흠흠. 그렇구먼. 제법 흥미로운 전개야.”
“참 쉽게도 믿어 주시네요. 예상은 했지만서도.”
“그거야 당연하지. 나는 재미있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그대가 하는 얘기는 꽤 재미있었고, 그대 또한 썩 재미있는 인간으로 보였으니까. 이 정도면 개연성이 충분하지 않은가? 진실 여부를 떠나서 재밌으면 장땡이지. 암.”
“뭐, 믿어 주신다면야 상관은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원래 시간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는데요. 혹시 청룡님께서 방법을 알고 계신다면…….”
“선생님이라고 불러라. 그대는 10년 뒤의 나를 그리 불렀다고 했지. 몰입감 좀 받아 보자꾸나.”
“……선생님께선, 뭔가 방법을 알고 계신가요?”
미르각시는 씩 웃었다. 틈날 때마다 원 없이도 보았던 드래곤 특유의 확신감 넘치는 미소였다.
“그대는 <부름>을 제어할 수 있는가?”
대뜸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한테 한번 써보거라.”
귀를 의심할 만한 대사가 들려왔다.
허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외려 올 것이 왔구나 싶은 태도를 보였다.
“…….”
그저 침을 한차례 꿀꺽 넘기고,
오른손을 뻗어 그 이름을 불렀다.
“카인 나호르.”
내가 부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 틈에서, 벌레들이 꿈틀댔다.
그그그그극―!
<부름>의 자색 군체가 미르각시를 덮쳤다.
그녀가 쉬이 <부름>을 파훼해 버리리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움찔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흐음. 그대 말대로군. 이건 <시간 가속>이다.”
미르각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팔에 달라붙은 벌레들을 휘릭 털어서 내던졌다. 피부 겉에 드러난 비늘들이 조금 바스러졌을 뿐, 그녀는 멀쩡했다.
“더군다나 혼합 술식의 형태를 띠고 있기도 해. 공간을 무매개로 비틀어 차원 전이를 시키는 건 <텔레포트>, 아니, <어비스 호라이즌>에 가깝나.”
“…….”
“극단적인 <시간 가속>으로 원자 미만까지 산화시킨 물질을 <어비스 호라이즌>을 통해 물리계에 간섭받지 않는 위상 차원의 초공간으로 날려 보낸다― 이것이 바로 그대가 쓰는 <부름>의 원리지.”
청룡이 나를 보며 말했다.
“즉, 그대가 지금까지 <부름>을 통해 현실에서 삭제시킨 모든 물질들은, 현재도 초공간에 기본 입자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니라.”
“그 말씀은……?”
“그대에게는 되살리고 싶은 자가 있다고 했지. 아마 잘하면 정말로 살릴 수도 있을 거다.”
순간.
가슴속에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메리를 살릴 수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역사상 최고의 마법사가 제시한 견해였기에, 신뢰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저기,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는 건……?”
“아참. 잊고 있었군. 그것 말인가.”
“돌아갈 방법이 있는 건 맞죠?”
“있기야 하지. <역행>의 반대는 <가속>. 말하자면, 그대의 <부름>으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예? 제가 해결할 수 있다고요?”
“허나 지금 상태론 불가능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부름>에 관한 그대의 숙련도가 너무 낮다. <시간 역행>을 거슬러 원래의 시간선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알맞은 파장으로 <시간 가속>을 구사해야 하는데, 그대는 그런 고급 기술을 쓰지 못하지 않나.”
“아…….”
“지금부터 수련을 시작한대도 10년 가지곤 모자랄 거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이거지.”
불가능하단 말에 내가 침울해 있는 사이.
미르각시가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무어, 자고로 시공 마법이란 이론을 이해하고서 노력하는 것보다는 본질적인 감각을 깨닫는 게 훨씬 중요하니, 필요한 것은 감각을 익힐 기회, 곧 술식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 만약 나였다면…….”
그리고 그즈음.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아하. 그런 거였군.”
경쾌한 소리를 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 전에 분명, 10년 전의 과거로 온 그대들을 따라 추격해 온 인물이 있다고 했었지 않나?”
“아, 예.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추격자의 정체는 제퍼슨 브리즈가 아닐까 하고 의심 중인…….”
“그대가 옳다. 고놈은 틀림없이 제프 녀석이다.”
미르각시가 말했다.
능글맞게 웃어 보이며.
“이 방을 나가면 조심하도록 하여라.”
어쩐지 그 미소는,
사악하게도 느껴졌다.
“시간의 마도사가, 그대를 죽이러 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