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Stop The Clocks (1)
웨스트록 6구역.
<겟세마네 보육원>.
교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스킨헤드에 인상이 더러운 젊은 남자가 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카이트 씨.”
애런 블런트. 우리 조직의 행동대장 겸 실질적 이인자인 녀석이지만, 지금은 <겟세마네 보육원>의 부원장이자 햇님반 선생님이다. 보다시피 해바라기 자수 뜬 앞치마가 의외로 참 잘 어울린다.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그냥. 애들 얼굴 좀 볼 겸 잠깐 들렀어.”
이 보육원은 우리 조직 <헬터 스켈터>에서 비공식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시설로, 재정난을 겪고 있던 중에 사회 복지 법인으로부터 양도받은 곳이다.
기본 용도는 후원금과 기부금 형식의 돈세탁.
일단은 내 사회봉사 시간 채우는 거랑, <윌슨앤코>의 조세 회피 포탈로도 종종 쓰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부모 없는 애들의 분유 먹일 돈까지 막 빼돌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곳 <겟세마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은 시에라시티에 있는 어느 보육원보다 나은 단연 최고의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다고, 원장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너한테 애들 돌보기나 맡겨서 미안해. 명색이 우리 조직 넘버2인데.”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 돌보는 건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린 동생들이 많아서 익숙하기도 하고요.”
“항상 고마워. 애들은 요즘 어때? 다들 잘 있는 거 맞지?”
“관리자로서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
“그 애는? 적응 좀 했으려나?”
“그 애라면…… 아아, 지난주에 카이트 씨가 데려온 아이 말씀이시군요.”
“어디 있는지 알아?”
“놀이방에 있을 겁니다.”
나는 애런과 함께 놀이방으로 향했다.
시끌벅적한 놀이방은 수십 명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놀기에도 거뜬할 만큼이나 널찍했다.
“저기 있군요.”
애런이 가리킨 방향은 방의 가장 안쪽 구석.
아이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 내내 혼자서 웅크리고 앉아있는 꼬마가 한 명 보였다.
나는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등 뒤로 슬쩍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선생님. 저 왔어요.”
꼬마의 어깨가 살짝궁 떨리며 반응하더니, 이내 고개를 슥 돌려 내 쪽으로 내보였다. 어쩐지 잔뜩 뾰로통해진 얼굴에 볼따구니까지 부풀어 있었다.
“일주일 만에 뵙네요.”
“…….”
“어떻게, 잘 지내셨어요?”
“……………….”
흠. 전에도 이런 표정을 본 적 있는데.
그때가 아마, 엄청나게 삐졌을 때였던가.
“혹시 여기가 별로 맘에 안 드시나요?”
“……맘에 들 리가 없지 않느냐. 여긴 최악이다. 게임기도 없고. 만화책도 없어. 따분함의 절정이야! 도대체 이런 척박한 데서 뭘 하며 지내란 게냐?”
“동화책은 꽤 많은데요. 예를 들면 여기 이거, ‘조선의 소드마스터와 청룡전설’, 이런 건 어때요?”
“내 얘기잖아! 다 아는 얘기! 것도 죄다 쓸데없이 유치한 구라가 섞여갖고 하나도 재미없다!”
“워워, 성내지 마세요. 그러다 마나 삐져나와요. 당분간 죽은 척하셔야 하는 거 잊으셨습니까?”
꼬마 미르각시는 입을 꾹 다문 채 씩씩댔다.
그 상태로 잠시 가만히 분을 삭이고는, 자기 목에 감긴 붕대를 단풍잎 같은 손으로 어루만졌다.
“후우. 이게 다 낫기 전까지는, 그대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며 선생 노릇을 하는 것도 못 하겠구나.”
“됐으니까 선생님은 회복에만 전념해주세요.”
“허나, 그대는 아직 포기 안 했지 않느냐.”
그녀가 말했다.
넌지시 나를 보며.
“<소생술>을 익히는 것을 말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이렇게 되물었다.
“전에 선생님께서 한번 얘기하신 적 있잖습니까. 제가 쓰는 <부름>의 정체에 대해서 말입니다.”
“…….”
“<부름>의 원리는 <시간 가속>. 그러니 만약 <부름>을 반대로 구사할 수 있다면, <시간 역행>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죠.”
미르각시는 침묵했다.
마지못한 긍정의 의미.
“그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이번에 돌아온 것은 침묵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학습 의욕 좀 끌어보려 뱉은 소리였는데.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인 겐가.”
허나, 그만큼 부정의 의미도 짙어져 있었다.
“흑마법으로 인해 벌어진 불상사를 흑마법으로써 막아보고자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진심이라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는 심정으로 응원해 줄 수만도 없겠구나.”
꼬마 미르각시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를 보며 언짢은 시선을 보냈다.
“알려주도록 하마. 대신 조건이 두 개 있다.”
“…….”
“우선 하나는, 도중에 본인이나 주변 인물이 위험해질 것 같다면 반드시 곧바로 그만둘 것.”
그녀는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다른 하나는…… ‘닌텐○’ 게임기랑 타이틀 CD, 그리고 ‘나루○’ 전권을 여기에 가져다 놓을 것.”
요구 사항이 좀 많지 않나 싶었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내 편인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기대해주세요.”
“너무 늦잖아. 이놈아.”
***
이스트포레스트 9구역.
샌제이비어 국립마법대학교.
세계 제일의 마법학교로 이름난 이곳은 전 지구촌에서부터 유수의 마법 유망주들이 모이는 장소.
입학하기도 어렵지만, 매년 졸업하는 학생보다 자퇴하는 학생이 더 많을 정도로 다니기 빡센 대학이란 듯하다.
재학생인 비너스의 썰에 의하면 대마법사 바로 아래 레벨인 가이우스급에 준하는 베테랑 학생들도 몇십 년째 졸업을 못 해 빌빌댄다는 모양.
그러니까 이런 학교의 교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지.
나는 방문증을 끊고서 본관 건물로 들어갔다.
예전에 스테파노 멜리에스 암살을 위해 비너스의 도움을 받아 이틀 정도 청강생 신분으로 수업을 들으러 와본 적이 있어 지리는 얼추 기억이 났다.
“여긴가.”
본관 건물 2층의 교수실.
똑똑―. 나는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안쪽에서 신사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로 이뤄진 현대적인 분위기의 교수실 내부가 드러났다.
그리고 이 방의 주인은, 교수라는 직함이 어울리지 않는,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금발에 푸른 눈. 키는 그리 크지 않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사람 좋은 인상의 미남. 그는 하얀 책상 앞 의자에 앉은 채로 나를 맞이했다.
“실례합니다. 브리즈 교수님 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나는 이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나인서클>의 제6원. 제퍼슨 브리즈.
통칭.
시간의 마도사.
“청룡의 소개로 왔습니다.”
그녀를 언급하자, 그가 흠칫 놀랐다.
하지만 경계는 잠시뿐. 곧 인상을 풀고서 다시 사람 좋은 미소로 웃어 보였다. 능숙한 변주였다.
“아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이쪽으로 오시죠. 유진 연 씨.”
제퍼슨 브리즈는 나를 교수실 밖으로 안내했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복도 끝 쪽에 있는 봉쇄된 철문, 그 너머의 비밀 실험실 같은 공간이었다.
“각시님께 얘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당신이 구사하는 <부름>이 시공 마법의 일종이라, 그것을 각성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하셨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자 하니 이 자는 내가 암귀라는 것까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저라도 괜찮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제 정체를 알면서도 상당히 협조적이시군요.”
“당신 정체도 알고, 당신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악한 인물이 아니란 것 또한 물론 알고 있습니다.”
“살인마 취급이 너무 상냥한 것 같은데요.”
“가짜잖습니까. 오히려 지금껏 당신이 죽인 사람들이야말로 모두 악인에 가까운 인물들이었죠. 멜리에스 교수도 그렇고요.”
“…….”
“어느 쪽이냐면 저는 응원하는 쪽입니다. 권선징악. 뭐 그런 걸 믿고 있는 순진한 사람이라서요.”
그는 나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미르각시와 동맹이기도 하니, 일단 믿어도 될 것 같았다.
“우선 당신의 흑마법, <부름>에 대해 좀 더 면밀히 파악하고자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할 건데요.”
“검사?”
“마나를 채취해서 술식 결합도 등을 조사할 거예요. 건강 검진 비슷한 거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검사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오른손에 부항 같은 요상한 장치를 매단 채로 타이밍에 맞춰 <부름>을 구사하자, 눈앞에 있는 커다란 유리 원통에 자색 마나의 결정이 모였다.
“어디……. 흐음……. 흥미롭군…….”
제퍼슨은 현미경으로 그것을 관찰한 뒤, 컴퓨터 모니터에 뜬 수치를 확인하고 화면 여기저기를 수차례 클릭, 그런 일들을 한 30분 정도 반복했다.
“각시님이 옳았네요. 당신의 <부름>은 <시간 가속>이 맞습니다. 술식 구성은 완전히 다르지만, 발동 원리만 보면 아예 동일한 마법인 수준이에요.”
“그렇다는 건……?”
“벡터의 방향을 바꾼다면 <시간 감속>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시간 정지>나 <시간 역행>도 이론상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그것은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
가슴이 뛸 만큼 아주 멋진 소리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발견한 게 있습니다.”
그는 프린트한 종이를 한 장 내게 건넸다.
처음 보는 용어와 숫자들. 허나 그럼에도 내가 주목해야 할 숫자가 ‘0’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당신의 <부름>은 접촉한 물체에 극단적인 <시간 가속>을 일으켜 물체의 엔트로피를 극한으로 증가. 고체, 액체, 기체, 플라즈마, 뭐든 가리지 않고 최종적으로는 원자 단위까지 산화시킵니다.”
“헌데 표를 보시면 알겠지만, 당신이 <부름>을 쓰고 나면 객체의 질량이 0으로 바뀝니다. 원자 하나 남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죠.”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부름>과 접촉한 물체는 그저 보이지도 않게 잘게 쪼개졌을 뿐, 어디로 없어진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듣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제퍼슨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부름>이 시공 마법의 일종이란 것을 토대로 추측컨대, 이 현상은 공간전이, 즉― <텔레포트>. 당신의 <부름>은 사라진 물체를 고유 차원 공간인 초공간에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잠깐, 그 얘기는 마치…….”
“<부름>이란 <시간 가속>과 <텔레포트>. 이 두 개의 마법이 혼합되어 있단 뜻이 되겠죠.”
……<부름>이 두 개의 마법이라고?
금시초문.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동안 수도 없이 <부름>을 써봤지만,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때.
왜인지.
두근―.
심장이 떨렸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심장 하나에 마법 하나.」
「불만은 없겠지?」
흑마법을 익힌 바로 그 순간.
최초에 들렸던 악마의 속삭임.
“저기, 브리즈 교수님.”
“제프라고 부르세요. 왜 그러시죠?”
“당신은, 진짜 암귀를 본 적이 있나요?”
내가 그렇게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8년 전. 암귀를 소탕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전에 <나인서클> 멤버들이 동원된 적이 있습니다.”
“…….”
“그때 당시 제4원이었던 ‘업화의 마도사’ 카미유 레이가 죽음 직전까지 갔고, 저도 죽을 뻔했죠.”
순간.
제퍼슨 브리즈는 눈썹을 찌푸렸다.
“음?”
그는 뭔가 떠오른 듯 기억을 더듬었다.
더듬은 끝에,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그러고 보니, 당신…….”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기시감을 감지한 눈빛이다.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