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Light My Fire (6)
월요일 오전 9시 30분.
시에라시티 경찰국 중앙본부.
“사건 경위에 대해 먼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제1 회의실에는 국장을 필두로 한 경찰국의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리가 마련된 원인은, 불과 몇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 오전 5시 38분. 이스트포레스트 1구역 <메이슨 타워>를 노린 테러 공격이 있었습니다.”
“현장에는 총합 2,000기 이상의 전투형 안드로이드가 출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메이슨 타워>를 포위했으며 300기 이상의 기체가 타워 내부에 침입했습니다.”
“조사 결과, 테러에 쓰인 안드로이드 기체는 전부 <슐츠텍>의 커스텀 배틀로이드로, 소유자는…… <나인서클>의 제7원, ‘라스트 오우거’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회의실의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인서클>이라고……?”
“대마법사가 테러리스트로 변했단 말이야?”
“<메이슨 타워>는 드래곤의, 미르각시의 처소가 있는 곳이 아닌가. 바르베이라는 제4원 콘스탄틴과 한편일 텐데. 설마, <나인서클>에서 내분이……?”
잠시 시끌벅적해졌지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지원팀의 한태경 경장은 브리핑을 계속 이어나갔다.
“테러의 주동자는 바르베이라 테르마옌.”
“사건 현장을 촬영한 방송국의 영상에서 ‘기계해골’ 콘스탄틴의 모습이 포착되어 이를 증명합니다.”
“또한 AAA급 수배자인 ‘미발흉검’ 도그아이드 킴 역시 이번 테러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살벌하기 그지없는 네임드들이 하나둘 언급되자, 회의실의 분위기가 몹시 심란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인서클>의 일원이 벌였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테러의 목적은 <나인서클>의 제2원 청룡 미르각시를 노린 습격. 즉, 암살 기도라 추정됩니다.”
“범행을 감행한 시간대가 늦은 새벽이었던지라 다행히도 민간인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사건 종료 시점부터 현재까지 미르각시는 행방불명. 그녀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회의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미르각시가 죽었다. <나인서클>의 대마법사이자, 현세대 최강이라 꼽히는 천하제일의 드래곤이.
“…….”
청룡의 사망 소식은 이미 더없이 충격적인 뉴스였지만, 지금 그들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거는 뭐였나?”
그때. 형사팀 부반장 아서 깁슨이 물었다.
다른 이들의 속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그거. 웨스트록 끝자락 15구역에 있는 우리 집에서도 보였다고. 무슨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어.”
“…….”
“거기서, 도대체 뭐가 일어났던 거야?”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서 깁슨이 말하고 있는 ‘그것’이 무엇을 가리킨 건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새벽. 잠든 도시를 일순에 깨운 그것.
하늘을 삼켜 버렸던 광대한 빛의 기둥.
“……경위님께서 말씀하신 그건, 오전 6시 58분, 일출 직전에 <메이슨 타워>에서 관측됐습니다.”
“레벨은 아우구스투스급 이상. 로만 임팩트 이후 현재까지 관측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괴 마법.”
“그 여파로 해당 지점의 궤도를 돌고 있던 인공위성 86체가 파괴, 어스테이트 전역에 원인 불명의 전파 장애가 발생했으며, 타워 주변 일대에서 전자 기기와 안드로이드의 고장이 대량 보고되었습니다.”
한태경은 프로젝터 스크린에 펼쳐진 사진과 기사, 목격담 등의 페이지를 슥슥 넘기면서 말했다.
“그리고, 해당 마법의 시전 이후, 테러 현장에 있었던 콘스탄틴과 도그아이드 킴이 동시에 실종.”
“…….”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가해진 마법 공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테러를 일으킨 범인들이 사망했다.
단 한 방의 마법에. 간단하게도 말이다.
“그 마법을 쓴 자는, 역시 미르각시인가?”
“아니요. 오늘 아침 현장에서 잔존 마나를 검출해 조사한 결과, 미르각시의 마나흔과는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색채가 맞지 않았어요.”
한태경은 잠시 머뭇거렸다.
“검출된 마나는 자색 마력.”
“색채와 출력으로 미루어 봤을 때.”
“추정 사용자는…… 암귀. 카이트입니다.”
그 이름이 나온 순간.
회의실의 웅성거림이 거세졌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부쩍 어수선해진 분위기의 틈바구니서,
아서 깁슨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암귀가 <나인서클>을 죽였다는 얘기잖나.”
“네. 정황상 그렇다고밖에는 볼 수 없겠죠.”
“대마법사님들도 죽이는 그런 괴물을 상대로.”
그는 물음표를 띄웠다.
헛웃음을 애써 참으면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순식간에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끝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
「빛이 있으라……?」
최초의 섬광이 반짝인 순간.
콘스탄틴은 당황하지 않았다.
「흠흠. 과연. 대충 알겠군요.」
「문법을 변형시킨 아케인의 아류인 것입니까.」
얼핏 무시무시해 보이나, 구성은 단순. 실상은 단지 출력이 좀 클 뿐인 파괴 마법에 불과하다.
마법을 구성하는 술식 자체를 와해시켜 버리는 <해체 술식>이라면 손쉽게 파훼할 수 있으리라.
「안타깝게 됐군요. 미스터 카이트.」
「나름대로 필살기라고 준비한 것 같지만.」
「누워서 식은 죽에 케이크 찍어 먹기랍니다.」
콘스탄틴에 탑재된 모듈은 바르베이라의 자신작으로, 최첨단을 몇 세대 이상 건너뛴 초超첨단.
그는 수백 대 이상의 슈퍼컴퓨터를 오버클럭으로 돌린 것 이상의 계산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진이 마법을 구사하고, 0.2초.
콘스탄틴은 즉시 연산을 마쳤다.
「…….」
계산 결과.
막을 수 없음.
「어라.」
***
하늘이 열렸다.
땅 위를 덮었던 먹구름은 이제 없었다. 광휘가 지나간 자리는 텅 빈 우주의 밑 부분이 내다보일 뿐.
자색만이 머물렀던 하늘에는, 곧 먼 발치에서 떠오르는 동틀녘의 태양이 새로운 빛을 비춰 왔다.
메이슨 타워의 꼭대기에서 그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나는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 내쉬었다.
“후우.”
이겼다. 살아남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내가 뭘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몸은 쌩쌩했다. 평소처럼 맥이 빠지지도 않았다. 체내의 마나를 전부 다 쏟아냈음에도, 어쩐지 한두 번은 더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힘.
나의 불꽃.
마치 새해 첫날 아침처럼.
너무나 상쾌한 기분이었다.
“좋은 경치이지 않더냐.”
그때쯤.
뒤편에서 미르각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진짜 마법사가 보는 풍경이다. 어둠이 아닌 빛이 새겨졌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지.”
그녀는 천천히 힘없이 비틀거리며 내 곁으로 걸어왔다. 나는 얼른 그녀 쪽에 다가가 거리를 좁혔다.
“그대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내가 앞에 서자마자,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아.”
쓰러지려던 미르각시의 몸을 붙잡았다.
차가웠다. 전신의 피부가 얼음장 같았다.
“선생님……?”
그녀는 콜록대며 기침을 뱉었다.
입가에는 핏물이 묻어나 있었다.
“괜찮다. 아직은 안 죽는다.”
“…….”
“그래도 진짜로 죽을 뻔하긴 했다. 가뜩이나 수명도 얼마 안 남은 몸인데, 너무 무리한 것 같구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건…….”
“아이구, 이놈아. 뭘 그리 또 쓸데없는 근심을 태우고 있느냐? 괜한 염려 마라. 그래 봤자 인간인 그대보다는 훨씬 오래 사느니라. 하여간에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걱정하는 꼴이로고.”
미르각시는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놀릴 기운은 있어 보여 다행이었다.
“놈들은 전부 물리친 겐가?”
“그런 것 같아요. 개눈깔 할배가 안 보이긴 하는데, 콘스탄틴 바로 근처에 있었으니까, 아마…….”
내가 쓴 마법이지만, 그 위력은 말이 안 됐다.
상대가 무라사메를 뽑은 도그아이드 킴이라 해도, 직격당한 이상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저한테 참 엄청난 걸 다 가르쳐주셨네요.”
“하루에 두 번은 쓰지 마라. 심장이 못 견뎌서 박살 날 테니까.”
“두 번 쓸 일이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요.”
서로 짧은 미소를 주고받은 직후.
미르각시는 다시 기침을 시작했다.
“테르마옌의 찌꺼기, 그 마족 계집은 아직 살아있다. 분명 또 나와 그대를 노리고 습격해 오겠지.”
“저야 그렇다 쳐도, 선생님은 역린을 찔리셔서 당분간 싸우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졸지에 짐이 돼버렸구나.”
“어디 숨어서 요양하시는 게 좋겠어요. 선생님은 <나인서클>의 시간의 마도사랑 친분이 있으셨죠? 그분한테 한번 도움을 요청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니다. 테르마옌의 찌꺼기가 나를 노리고 있는 마당에, 괜히 그 친구까지 휘말리게 할 수는 없다.”
“그러면…….”
미르각시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
적임자는 나밖에 없는 것 같으니.
“저희 집 오실래요?”
***
같은 시각.
어둑한 공간의 책상에 앉은 한 여자가, 수십 개의 모니터 사이에서 멍하니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죽어 버렸네…….”
모니터 화면 대부분이 비정상적으로 지직거렸다. 연결이 통째로 끊어진 것이었다.
특히나 중앙의 모니터.
콘스탄틴의 본체와 연결된, 그 모니터 역시, 한참 동안 제대로 된 화면을 비추지 못하고 있었다.
“…….”
실패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패.
“젠장! 젠장! 젠자아앙! 아아아아아아악!!”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은 분을 못 이겨 주먹으로 책상을 마구 내리쳤다. 노여움에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 손등 맡의 찢어진 상처에선 핏물이 흘러나왔다.
“죽여 버릴 거야. 다 죽여 버릴 거야…….”
혼자 남은 그녀는 의자에 웅크리듯 앉아 깡마른 자기 몸을 끌어안았다. 그 상태로 계속 울먹였다.
결국에 떨어져 내린 마족 소녀의 눈물이,
시야를 뒤덮고 턱 아래쪽을 적셨을 무렵.
띠링―.
컴퓨터에서, 효과음이 들렸다.
메신저 프로그램의 메시지를 수신했을 때 나오는 소리. 허나 그녀의 컴퓨터엔 메신저 따위가 없었다.
“……?”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은 고개를 들었다.
제일 구석 쪽의 스크린, 유일하게 멀쩡한 모니터 화면에, 작은 시스템 알림 창이 떠올라 있었다.
E : 안녕
그것은……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였다.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은 흠칫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설마 자기 컴퓨터의 보안이 뚫렸단 말인가?
E : 유감이야
E : 거사가 실패한 모양인데
E : 정말 아까웠다 그치?
“……누구야, 너…….”
E : 안심해
E : 나쁜 사람은 아니야
E : 사실 난 네 편이 되고 싶거든
“……뭐……?”
E :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E : 나랑 같이 일할 생각 없어?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을까.
E : 날 도와준다면
E : 네 소원을 들어줄게
아니면 그럴싸하게 들리는 악마의 유혹이었을까.
“…….”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은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녀가 믿는 것은, 오로지 분노란 감정뿐.
“자세히 말해 봐. 넌 뭘 할 셈인데?”
E : 얘기가 통해서 좋네
E :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
….
E : 나를
E : 암귀로 만들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