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Light My Fire (5)
“괜찮아요? 설 수 있겠어요?”
나는 쓰러져 있던 미르각시를 부축해 일으켰다.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낯빛과 깊게 찔린 목의 상처로 보아, 그녀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아 보였다.
“드래곤이란 양반이 참 호되게도 당하셨네요.”
“……그대야말로, 만신창이지 않으냐…….”
미르각시의 불안한 시선이 내 몸을 훑었다.
물론 나는 멀쩡했다. 도그아이드 킴의 검기에 옆구리가 절반 가까이 갈려 버리는 중상을 입었고, 지하에서 여기까지 올라올 동안 마주친 안드로이드들에게 몇 번 죽을 뻔한 거랑, 사실은 서 있는 것도 벅찬 지경이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뿐이었다.
“이건 그냥 긁힌 겁니다.”
“……’몬○ 파이튼의 성배’에 나오는 흑기사의 대사구나.”
미르각시는 힘없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런 상황에마저 진성 오타쿠들이나 알 법한 패러디를 시도하는 나나, 그걸 또 알아차리는 이 양반이나, 정말 답도 없는 스승과 제자구나 싶었다.
“야. 병신 새끼야.”
그즈음.
복도 저편에 선 노인의 상소리와 함께, 푸른 검기가 미르각시와 나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피캉!
나는 오른팔에 <강화>를 두른 <포스 배리어>로 그 공격을 가까스로 튕겨냈다. 허나 분명히 막았음에도 그 반동의 데미지는 오롯이 뼈에 전해졌다.
―아, 이거 두 번은 못 막겠다.
“살려 줬더니 뒤지러 왔네. 너 진짜 븅신이냐?”
“……글쎄요. 할배도 이럴 줄 알고서 살려준 거 아니었어요?”
“방해하면 죽인다. 비켜.”
개눈깔의 눈빛은 진한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무라사메를 뽑기 전의 그는 저렇지 않았다. 어쩌면 요도妖刀의 흉물스러운 기운에 잠식된 것일까.
“…….”
그나저나.
설마 미르각시가 당할 줄이야.
처음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긴 했다만. 상정했던 가장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고야 말았다. 청룡 미르각시라는 최강의 아군을 잃었고, 무라사메를 뽑은 도그아이드 킴이라는 최강의 적을 두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오, 당신은…… 유진 연! 암귀 카이트! 노웨어맨의 심장을 보관 중인 바로 그 흑마법사군요!」
「이거 대박이네요. 한꺼번에 드래곤과 암귀 둘을 몽땅 잡게 되다니! 꿩 먹고 알 먹고 일타쌍피! 로또 복권에 연금 복권까지 당첨된 기분입니다!」
할배 뒤에 있는 놈은 기계해골 콘스탄틴.
역시 예상대로다. 배후에는 저 녀석이 있었어.
「미스터 개눈깔. 저자는 죽이면 안 됩니다.」
“닥쳐. 좆같으니까 죽일 거야.”
「아, 음, 원하신다면야 뭐. 그러십쇼. 죽여도 되긴 하지만, 부디 심장만은 안 다치게 해주시길.」
상대는 도그아이드 킴과 콘스탄틴.
이쪽은 빈사 상태의 미르각시와 나.
“상황이 영 별론데요, 이거.”
“……어쩔 셈이냐……?”
“어쩌긴 뭘 어쩌겠습니까.”
싸움이 될 리가 없다.
당연히, 싸울 생각도 없다.
“배운 거 써먹어야죠.”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Rhedoszkma. Videihrenn…….”
그렇게 입에 담은 것은― 용언의 영창.
이내 왼손 검지에 끼워져 있는 보석 박힌 반지, 미르각시의 마력이 담긴 마도구가 내가 외운 영창에 반응해 서서히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Aaknim!”
주먹 쥔 왼손을 훅을 뻗듯이 앞으로 날렸다.
그러자 반지 끝에서 뿜어져 나온 투명한 연기가 복도 내부의 공간을 고래처럼 깡그리 집어삼켰다.
파아아아앗―!
시야 전체를 가득 메운 눈부신 빛.
이윽고 그 빛이 잠잠해진 순간, 도그아이드 킴과 콘스탄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쯧. 방금 걸로 마나 다 닳았구만.”
“지금, 그건……?”
“역소환 마법이에요. 놈들이 서 있던 공간을 뒤집어 차원 결계 안쪽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
“선생님이 맨날 저한테 쓰던 거잖아요. 어때요?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학생이라 기특해 죽겠죠?”
나는 일부러 과장적으로 활기 넘치게 말했다.
미르각시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였고, 그녀의 반응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는 성공한 듯했다.
“일단 한숨 돌리긴 했지만, 놈들을 가둔 결계가 뚫리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얻은 시간은 잘 쳐줘야 30분 내외. 서둘러 움직여야 해요.”
“……둥지, 내 방에 가면 마나의 정수가 남아있을 것이다. 그 마나를 흡수한다면 치료할 수 있다.”
“그러면 최상층으로 향해야겠네요.”
이미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의 안드로이드 군세가 <메이슨 타워>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기에 지상으로의 탈출은 불가. 미르각시의 판단이 정답이었다.
해킹 탓에 엘리베이터 사용은 불가능했다. 나는 혼자서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미르각시를 등에 업은 채 수십 층의 계단을 올랐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드래곤의 몸은 의외로 가벼웠다.
“……추한 꼴을 보였구나…….”
“말하지 마요. 숨 쉴 힘도 없으면서.”
“……미안하다. 그대에게는 아직, 가르쳐줄 게 많이 남았는데…….”
“시끄러워요. 선생님은 안 죽어요. 안 죽을 거니까, 그렇게 곧 죽을 것처럼 말하지 마시라고요.”
피와 땀을 뻘뻘 흘리며,
드디어 최상층에 도착했다.
“허억, 후우, 다 왔어요…….”
결계 마법이 풀린 미르각시의 방은 그저 어두컴컴하고 텅 빈 창고였다. 천장에 매달린 서너 개의 고장 난 백열등 조명만이 몇 안 되는 광원이었다.
“하아, 어서, 본인 옥체 치료하시고, 뒷일은 좀 부탁할게요. 미안하지만 전 여기서 리타이어…….”
“치료하는 건 내 몸이 아니니라.”
미르각시가 방의 중앙에 다가가 눈을 감은 채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에 붉고 푸른 반딧불이 같은 것들이 생겨나 꽃잎처럼 흩날리며 둥글게 운집했다.
“역린이 찔린 용의 몸은 밑창이 빠진 장독과 같아 마나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예? 그럼…….”
“이 몸을 낫게 해 봤자 무용지물이란 것이지.”
그녀는 그 빛들을 자기 입술에 모으더니, 곧 내 쪽으로 다가와 내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아니, 잠깐, 지금 뭐 하ㄴ……?”
“쉿. 가만히 있거라.”
어째서인지 숨을 쉴 수 없었다.
빛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걸로 그대의 몸을 얼추 회복시켰다.”
“…….”
“이제 나에겐 남은 마나가 거의 없구나. 고로 나는 싸울 수 없다. 한심한 부탁이라는 것은 알지만.”
미르각시는 말했다.
배시시 웃어 보이면서.
“나를 위해 싸워주겠는가.”
그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나는 거절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길 수, 있을까요……?”
현실감이 목덜미를 덥석 붙잡았다.
나 혼자서는 역부족임이 명료했다.
“정말이지. 의심 많은 제자인지고.”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미르각시가 한숨을 쉬며 눈짓을 날렸다.
“잊었나? 내가 그동안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대를 ‘최강의 마법사’로 만들어 주겠다고.”
“…….”
“최강의 마법사가 되기 위한 첫 단계는 바로 ‘마법’을 쓰는 것이다. 그대는 야매로 마법을 익힌 흑마법사. 아직 스타트라인에도 서지 못한 셈이지.”
그녀는 체내에 남은 마력을 쥐어 짜내 손가락 끝에 작은 빛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 빛을 잉크 대용으로 써서 창고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
아니.
그림이 아니라 문자다.
용언을 기초로 한 문자, 허나 완전히 새로운 미지의 언어. 그것이 분명 어떤 마법의 술식 중 일부라는 것을, 어째서인지 나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대는 지금껏 마법을 쓴 적이 없다.”
“마법인 척하는 가짜. 흑마법을 썼을 뿐.”
미르각시는 사납게 붓질을 이어 나갔다. 창고 바닥은 점점 붉은 빛의 마나 잉크로 칠해져 갔다.
“마지막 수업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배우는 것뿐.
“그대에게, ‘진짜 마법’을 가르쳐주겠노라.”
***
「<룬 브레이커>.」
콰아아아아아아앙―!
기계해골 콘스탄틴이 최상급 파괴 마법을 시전하자, 건물 외벽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흠흠. 여기들 계셨군요.」
붕괴된 잔해 너머로 그 안에 숨어 있던 도망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안쪽 기둥에 기대어 있는 미르각시와,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유진이었다.
「이거 참, 갑자기 결계 안에 가둬 버려서 깜짝 놀랐잖습니까? 그런 장난질을 하시면 안 되지요!」
“…….”
「두 번은 안 통합니다. 오는 길에 차원 결계로 향하는 틈새들을 전부 다 메꾸고 왔으니까요.」
유진은 흐린 하늘 아래에서 자신을 유유히 내려다보고 있는 콘스탄틴과, 어느새 자기 맞은편에 나타난 칼잡이 도그아이드 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적은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곧 수백, 아니, 수천 기에 달하는 안드로이드들이 공중에 나타나 <메이슨 타워>의 최상층 부근을 에워쌌다.
「이걸로 끝입니다. 미스터 카이트.」
완전한 포위 상태.
도망칠 곳은 없었다.
“…….”
그리고 당연하게도,
도망칠 생각 따윈 없었다.
“후우.”
배운 것을 실천한다.
그러면 이길 수 있다.
믿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드래곤이 호언장담했으니까.
두근―.
느껴지는 것은, 심장의 고동뿐.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는 끝났다.
“좋아.”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이 술식의 언어는 그대를 위해 창조됐다.”
“자색 마력을 지닌 마법사에 특화된 술식.”
“오직 그대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지.”
마법을 쓰는 방법은 간단하다.
술식을 적용하고, 마력을 방출한다.
마법의 위력은 방출한 마력량에 비례한다.
내가 낼 수 있는 출력의 한계는 이론상 무한.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의 100%를 내본 적이 없었다.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흑마법으로는.
자색 마력은 색채 특성상 통상의 술식과는 결이 맞지 않는다. 때문에 가지고 있는 본연의 힘을 전부 다 끌어내는 것은 그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대 심장에 들어 있는 무한한 마력.”
“무한은 말 그대로 무한. 아낄 필욘 없다.”
“모조리 끄집어내라. 한 톨도 남기지 말고.”
심장이 뛴다. 마치 흥분한 재규어처럼.
궁금해졌다. 내가 지금부터 무엇을 하게 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슨 광경을 보게 될지.
“마법 시전은 평소처럼 하면 된다.”
“술식을 적용하고, 마력을 방충해라.”
“그리고 영창으로 마무리. 간단하지.”
내가 배운 ‘진짜 마법’은,
사실 별것도 아닌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마나의 형태인 불꽃의 형 ‘테자스’를 극단적으로 <강화>시킨 범용 보조 마법.
다만 무한한 마나 출력에 의해, 단순히 빛을 비출 뿐인 마법에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부여된다.
미르각시가 가르쳐준 이 마법의 근원은,
‘태초의 마법’이라고도 불렸던 기초 마법.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온 세상을 덮어 버리고도 남을.
우주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빛이―.
“주의할 점을 몇 가지 알려주겠다.”
“조준은 반드시 지평선보다 더 위쪽으로.”
“절대로 태양과 달이 있는 방향은 노리지 마라.”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묻자,
미르각시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대 탓에 뭐 하나가 없어지면.”
“아무래도 곤란해지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