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Light My Fire (4)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생선회 뜨는 거랑 비슷하거든요.」
「준비물은 마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의 육체. 그리고 그 육체에 맞춤으로 제작한 전용 임플란트 바디. AI 모듈 등의 휴머노이드 파츠가 되겠네요.」
「이때 육체는 가능한 한 살아 있는 상태, 되도록 신선한 편이 좋습니다. 이런 점도 회 뜨는 거랑 비슷하죠.」
「자, 여기 싱싱한 사람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케즈쿠리’라는 걸 아십니까? 물고기를 산 채로 써는 생선회 뜨기 방식입니다.」
「신경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대가리를 잘라 내장을 제거하고, 회를 떠서 그대로 접시 위에 올리면, 아가미가 뻐끔뻐끔, 꼬리는 꿈틀꿈틀,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듯, 부들부들 힘없이 몸부림치지요.」
「물고기가 느꼈을 고통만큼 요리는 더욱 맛있어집니다. 예. 그것과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됩니다.」
「먼저, 숨을 쉬고 있을 동안 사지를 절개합니다.」
「다음으로는 뇌와 심장, 허파 이외의 불필요한 내장들을 제거합니다. 만약 이때까지도 숨을 그럭저럭 잘 쉬고 있다면 요리에 성공할 확률이 많이 올라간답니다. 약물을 좀 주입하면 일이 쉬워질 거예요.」
「이어서 제거한 부위들을 임플란트와 기계 파츠로 갈아 끼워 줍니다. 뇌와 허파도 교체해 주세요. 최종적으로는 심장만 남기고서. 전부. 다. 갈아 줍니다.」
「심장은 붙어 있는 상태에서 마나 핵으로 개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사람에서 기계로 다시 태어난 안드로이드는,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생명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 마침표를 마지막으로,
콘스탄틴의 연설이 끝났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위저드로이드 프로젝트’의 최고 걸작, 최초의 비생물 대마법사 콘스탄틴!」
「허나, ‘최고 걸작’이란 칭호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태어날 새 친구에게 넘겨줘야 할 성싶군요.」
콘스탄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냐하면…….」
이후 기계해골의 검고 깊은 안구가, 공중에서 마주한 미르각시를 향해 텅 빈 안광을 내비쳤다.
「새 친구의 재료는, 당신이 될 테니까요.」
위협조로 내건 그 선언에 대해,
미르각시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망상은 자유다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네놈에게는 무리다.”
화아아아아아악―!!
미르각시가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자, 콘스탄틴의 몸체가 사나운 불꽃 회오리에 삼켜지듯 휘감겼다.
“고작 <나인서클> 레벨로 비비려 들다니.”
“참으로 하찮기 짝이 없는 비밀 병기로구나.”
“날 죽이고 싶었다면…… 하느님 정도는 데려왔어야지.”
용의 으름장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반만년을 넘게 살아온 자타공인 행성 최강의 존재이기에 비로소 뱉을 수 있는, 진실된 답이었다.
「이런.」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그때.
불꽃 속에 사로잡힌 콘스탄틴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따위는 암만 애써 봤자 당신의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 입힐 수 없겠지요.」
「사실, 저는 어디까지나 들러리랍니다.」
「진짜 비밀 병기는…… 이쪽이거든요.」
그의 말이 끝난 직후.
미르각시의 육감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그것은, 뒷목이 순간 오싹해질 정도의…… 살기.
분노로 가득 찬 누군가의 의지가 다가오고 있다.
―아래쪽이다.
“……!”
그녀의 코끝으로 검격의 파동이 스쳐 지나갔다. 검기로 인한 공기의 세찬 출렁임만으로, 미르각시의 몸은 중심을 잃고 튕겨져 땅 위에 추락했다.
황무지 한가운데 착지한 미르각시의 정면에,
무시무시한 검기를 날린 칼의 주인이 있었다.
「늦었잖습니까. 미스터 개눈깔.」
검정색 도복을 입은 빼빼 마른 노인.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것은, 헐렁한 칼집에 꽂힌 무식하게 큼지막한 일본도 한 자루.
“…….”
연신 두근대는 고동 속에 전해지는 위압감.
누군지는 모른다. 허나 눈앞의 칼잡이가 ‘진짜’라는 것쯤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네놈.”
가늘게 풍겨오는 이 비릿한 철분의 냄새.
언젠가 맡아본 적 있는 아주 친숙한 냄새.
….
….
틀림없이 그것은.
유진의 피 냄새였다.
“내 제자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순간 미르각시의 동공이 뱀을 닮은 날카로운 세로 모양으로 변했다.
“글쎄.”
도그아이드 킴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숨은 안 쉬던데.”
정적.
침묵이 흘렀다.
영겁과도 같았던 기나긴 고요 속에서부터,
마침내 피어오른 자그마한 균열이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궁―.
지진? 아니, 좀 더 거대한 무언가다.
땅만이 아니라 하늘까지 흔들렸다. 온 세상이 진동했다. 모든 우주가 곧 박살 날 것처럼 요동쳤다.
번쩍―!
일순 새하얀 빛이 세계를 감쌌고,
그 빛에 공간이 그대로 쓸려나갔다.
….
….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1초도 채 흐르지 않았다.
철벅―
그때.
도그아이드 킴은 발에 닿은 물의 파동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잔잔한 수면 위에 서 있음을 알았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인 것은 바람과 물의 세상.
우주보다 더 높이 솟은 하늘.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이건…… 고유 차원 영역이로군요.」
「결계 속의 결계. 초공간에 가까운 아공간.」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는 초월급 마법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꿈만 같네요! 감격입니다!」
콘스탄틴은 물개 박수를 치며 말했다.
개눈깔은 초월급 마법이 어쩌고 하는 것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저편의 하늘에 자리한 위대한 존재에게로 향해 있었다.
붉게 물든 갈기와 푸르게 빛나는 비늘.
열 개의 뿔을 가진 옛 뱀, 천둥의 수호신.
지구상의 모든 드래곤의 대모代母.
청룡 미르각시― 그 본체의 형상이었다.
「웁스. 미스 청룡께서 개빡치신 모양인데요.」
「문헌에 의하면, 저분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은 근 4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 듯합니다만.」
「어떻게, 가능하시겠습니까? 미스터 개눈깔?」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콘스탄틴이 물었다.
도그아이드 킴은 청룡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서 답했다.
“해봐야지.”
「흠흠. 좋습니다. 서포트 해드리지요.」
기계해골이 한쪽 팔을 벌려 가로로 휘둘렀다.
그러자, 공간의 틈새로부터 차원문이 개방됐다.
「초월급 마법으로 이룩해낸 고유 차원 영역이라지만, 어쨌거나 한 번 부서졌던 결계의 안쪽.」
「위상 차원을 통한 소환술을 시전하는 것은, 여기서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서 열린 수십 개의 차원문으로부터, 수백 기의 안드로이드들이 영역 내부로 침입해 왔다.
이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로봇들이, 마치 별자리처럼 하늘에 펼쳐져 구름 아래를 수놓았다.
「드라고닉 특질 개조형 지크프리트 443기.」
「그리고 이 기계해골 콘스탄틴이 돕겠습니다.」
「자, 미스터 개눈깔. 당신의 임무는 용살龍殺입니다. 최강의 드래곤을 죽일 준비는 되셨는지요?」
그는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칼은, 언제든지 뽑을 수 있었다.
“그래.”
그 한마디를 기점으로,
드래곤 사냥이 시작됐다―.
***
“검의 어원을 아십니까?”
도그아이드 킴이 젊었던 시절.
네오에도의 대장간에서 만난 한 도공은, 검을 만들어 달라는 그에게 다짜고짜 그런 질문을 던졌다.
“옛사람들은 신神을 ‘검’이라 불렀습니다. 섬기고 받들어 마땅한 존재. 그게 바로 검이었습니다.”
뭔가 이야기를 더 길게 한 것도 같았지만, 대부분은 쇠 두드리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기억나는 거라곤, 마지막에 덧붙인 한마디뿐.
“검을 믿으십시오.”
그 도공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지금에 와서도 그 뜻을 알지 못한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알고 싶은 마음마저 있지도 않다.
단지,
불현듯 생각났을 뿐이다.
이 검을 만들어준 자의 목소리가―.
「미스터 개눈깔!」
콘스탄틴의 고함이 귀를 찔렀다.
도그아이드 킴은 반사적으로 칼을 비틀어 휘두름으로써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벼락에 맞부딪쳤다.
콰르르르! 투콰아아아앙―!!
「괜찮으십니까?」
“그럭저럭.”
「말도 안 나오는군요. 미스 청룡이 강하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전성기를 한참 지난 시점에도 이 정도라니…….」
숨을 쉴 틈조차 없었다.
한 방 한 방이 도시를 궤멸시킬 정도로 강력한 마법들이 초 단위로 온 천지에 쏟아져 내렸다.
이것이 드래곤의 힘.
청룡의 본래 실력인가.
“하.”
도그아이드 킴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어쩐지, 별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에.
“웃기지도 않네.”
무라사메를 뽑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도공은 죽기 직전 그렇게 말했다.
도그아이드 킴은 그의 말을 믿었다. 검을 뽑기 위해 한평생을 보냈으나, 전부 허송세월이었다.
“뭘 믿으란 거냐.”
다시, 그는 생각을 멈추고 싸움으로 돌아왔다.
청룡은 유유히 그 자태를 뽐내며 공중에 있다.
“…….”
눈앞에 있는 존재는 그야말로 최강.
죽이거나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신神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신을 믿지 않는다.
검을 믿지도 않는다.
믿는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삶.
“무장류 발검술.”
나는 살아 있도다.
검 또한 그러할지니.
“신거합新居合.”
헐렁한 칼집 속에 숨어 있던 빛.
무라사메의 푸른 날 끝이 반짝였다.
그 순간 벼락이 내리쳤고, 검이 맞받아쳤다.
폭발에 가까운 충격파가 공간을 흔들었다. 바다에 서 있던 늙은 칼잡이는, 어느새 하늘에 있었다.
3초. 아주 짧았던 부유의 시간.
개눈깔의 시선이 용과 마주했다.
그의 칼날이 노린 곳은,
청룡의 목에 붙은 겹비늘.
역린이라 칭해진 용의 약점.
미르각시의 단 하나뿐인 급소.
“이거 봐.”
새벽하늘처럼 푸른 광휘가 미끄러지며,
무라사메의 칼끝이 용의 목을 꿰뚫었다.
“별것도 아니잖아.”
***
땅이 갈려지며 하늘이 무너졌다.
차원 술식의 해제. 결계의 붕괴였다. 주변은 어느새 평범한 호텔 복도의 풍경으로 돌아와 있었다.
“……윽, 크흑…….”
미르각시는 목을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워했다.
방심했기 때문일까. 공연한 감정에 휘둘려 상대가 급소를 노리고 온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네, 도마뱀 양반―.」
그리고 그즈음.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이 역린을 찔린 것은 심장의 반이 잘려 나간 것과 같다던데.」
“…….”
「그쪽은 이번이 두 번째라지?」
600년 전, 백년전쟁 당시 초대 검성 잔 다르크에게 당했던 상처가 이제 막 조금 아물었을 찰나. 절대로 맞아선 안 됐던 공격에 당하고야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구나.
이래서야 그때랑 달라진 게 없거늘.
「여, 할아범. 회복하기 전에 얼른 끝내 버려.」
….
….
죽는 건가.
허무하지만 뭐, 나쁘진 않다. 오천 년이면 꽤 오래 살긴 했지. 벗들은 옛적에 다 죽어 버렸으니. 이제 그들이 먼저 간 길을 뒤늦게 따라갈 뿐이다.
“…….”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오랜만에 제자를 들였는데.
커 가는 것도 못 보고 가는구나.
미르각시는 살며시 눈을 감고자 했다.
고통이 얼핏 희미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썩 괜찮은 삶이었다고.
억지로 달래던 그 순간.
“죽으면 안 되죠.”
자색 마력의 불꽃이―
그녀의 주위를 휘감았다.
“아직 배울 게 한참 남았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