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Light My Fire (3)
드래곤.
지상 최강의 생물.
피부를 둘러싼 비늘의 단단함은 현존하는 가장 절삭력 높은 공구로도 결코 뚫을 수 없으며, 가장 강력한 파괴 마법도 능히 견뎌낼 수 있다.
허나 드래곤에게도 약점은 존재한다.
하나는 거꾸로 돋아난 비늘, 역린逆鱗.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동족의 적의.
드래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은 같은 드래곤의 발톱과 이빨, 그리고 용언 마법뿐이다.
그렇기에―
“널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폭발이 일어난 순간.
미르각시는 알 수 있었다.
“곱게 쳐 받아.”
그 폭발의 근원은 장난감 로봇.
로봇의 몸체에는 각종 ‘사악 마법’의 술식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원격 폭파 술식>.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폭음과 함께 날아든 유탄의 파편들.
그런데,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가 섞여 있다.
피비린내보다도 더 진하게 느껴지는.
지나간 과거의 향수…… 동족의 냄새.
드래곤의 발톱. 이빨. 그리고 비늘.
폭탄의 파편은 바로, 그 조각들이었다.
‘……!’
미르각시는 수백 년 만에 ‘위험’을 느꼈고,
그 순간에 반사적으로 차원 결계를 펼쳤다.
우주가 눈을 깜빡인 것처럼, 그녀 주변의 공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비틀렸다.
급조한 위상 차원 속으로 몸을 피신하여, 폭파의 영향력을 가까스로 비껴 나갔다.
“…….”
미르각시는 손가락으로 뺨을 슥 훑었다. 살짝 깎여 나간 피부에는 작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술식 전개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녀의 온몸에는 이빨과 발톱 조각들이 숭숭 박혀 있을 터였다.
“쯧.”
짧게 혀를 찬 이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동된 차원의 공간은 빽빽한 정글이었다.
여긴, 회색 용 돌로레스의 놀이터군.
전송 위치를 이쪽으로 하진 않았는데.
“주박술呪縛術인가.”
위상 개념에 마법적 해킹이 가해진 모양이다.
이것도 장난감 로봇에 새겨져 있던 마법일 테지.
「어때? 사냥감이 된 기분은?」
그때.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의 음성이 들려왔다.
「깜짝 선물은 맘에 들었으려나―?」
“…….”
「그거, 박물관에서 훔친 드래곤 화석이랑 암시장에서 구한 유물이랑 뭐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만든 거야. 것보다 우리 용님, 역시 파충류라 그런지 반사 신경이 장난 아니네. 설마 그 짧은 틈에 방호 마법도 아니고 결계 마법을 펼쳐 피할 줄이야.」
바르베이라는 키득키득 웃었다.
미르각시는 무언으로 반응했다.
「실망하지 마. 다 안 끝났어.」
「선물은, 아직 잔뜩 남았걸랑―.」
그 말이 끝난 직후.
용의 직감이 공중에 뜬 뭔가를 포착했다.
휘이이이잉―.
하늘에서부터 세찬 바람이 불어오자, 수풀에 숨어 있던 새들이 도망치듯 저편으로 날아갔다.
곧 바람이 멎고, 허공에 차원문이 열렸다.
거기서 몰려나온 것은, 10기의 안드로이드.
「Zk 시리즈 PRo-Type ″지크프리트″.」
「저번에 보니까 슐츠 놈들이 꽤 쌈박한 걸 만들고 있더라고. 슬쩍 갖고 와서 살짝 튜닝 좀 했지.」
각종 배틀기어로 점철된 전투형 휴머노이드.
마나의 핵 또한 느껴졌다.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이 그렇게나 자랑하는 ‘마법을 쓰는 기계’인 걸까.
그런데―
“…….”
어째서인지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느껴진다.
….
….
후각의 착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나같이 익숙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눈치챘어?」
그즈음.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크크큭. 좋은 재료가 잔뜩 들어갔지.」
「뭔지 알겠어? 네 소꿉친구들의 시체야.」
「용고기 함유 100%. 대對 드래곤 결전 병기.」
「바로 널 죽이기 위해 만든 기요틴이다. 청룡.」
역시나.
착각이 아니었다.
미르각시는 천천히 눈을 굴려, 푸른 하늘 아래에 있는 안드로이드들을 각각 하나씩 흘겨보았다.
……들린다. 그들의 목소리가. 금속 심장에 갇혀 버린 용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진다.
“네놈은.”
선을 넘었다. 몇 발짝이나.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거늘.
“정녕 후회할 짓만 골라서 하는구나.”
숨을 길게 내뱉었다. 분노는 일단 가라앉혔다.
감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흥분할 필요는 없다.
그저―
“얌전히 기다리거라. 테르마옌의 찌꺼기여.”
냉정하게. 냉랭하게. 냉혹하게.
뜨거운 감정을 철저히 죽이고서.
“네 차례가 머지않았으니.”
죽은 별처럼 차가운 심정으로.
놈을 끝장낼 준비를 할 뿐이다.
「닥치고 죽어. 도마뱀.」
이윽고 하늘에 뜬 안드로이드들이,
미르각시에게 일제히 포격을 가했다.
「Zi′egpahr. Rhedisaapd.」
영창의 기반은 틀림없는 용언― 드라고닉.
인간을 닮은 로봇이, 용의 마법을 쓰고 있다.
「Doghrphaeigka.」
그것은 <고모라의 불타는 혜성>.
<매직 미사일>의 상위 호환 마법.
투콰과과과광―!!
각기 다른 색채의 마나들이 상완 기계부에 장착된 에너지 웨폰의 강선을 거치며 플라즈마 입자포처럼 발사됐다. 단순 파괴력만으로도 이미 가이우스급 이상의 대마법사들에 준하는 위력이었다.
무엇보다도 위협적이었던 점은, 그것이 드래곤의 육체를 통과한 용언 기반의 마법이었다는 점.
용의 힘은 용을 죽일 수 있다. 같은 드래곤의 힘이었기에,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 될 터였다.
하지만.
미르각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날아오는 광선포의 궤적을 파악하고, 몇 걸음 움직여 공격을 피하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드래곤의 힘을 담은 용언 마법의 강력한 출력이, 애초에 그녀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왜나하면, 그녀는―
“Deierapind. Luzkiyliana.”
수천 년간 모든 용들의 정점에 군림했던.
역사상 최강의 마법사이자 최강의 드래곤.
“Veirnd.”
용의 사체로 만든 조잡한 기계 뭉치 따위로는,
감히 청룡에게 공포를 느끼게 할 수는 없으리라.
번쩍―!
붉은 섬광이 땅 위에 내리꽂혔다.
푸른 구름이 하늘 아래를 뒤덮었다.
적색과 청색. 태양을 닮은 태극의 형상.
두 가지 색채로 형성시킨, 이중 마나 극점.
한계 순도에 다다른 마나는 외부의 힘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한 개의 점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이것이 바로 극점의 형태. 마나 본연의 성질만으로 우주의 법칙을 조절할 수 있는 극한의 경지.
“<뇌격>.”
이중 극점을 머금은 술식이 피어나는 때.
모든 마법사들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
투명했던 하늘이 위아래로 요동치며,
붉고 푸른 벼락이 사방에서 내리쳤다.
극점의 태극이 곧 태양마저도 가려 버려,
그 빛이 너무 강한 탓에 어둠이 피어났다.
마른 어둠 속에서 무수히 몰아치는 번개.
안드로이드들은 거미줄처럼 칭칭 얽힌 낙뢰의 틈새를 날아다니며 미르각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용에게 닿은 것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안드로이드.
파앗―!
로봇은 미르각시를 노리고 칼날이 달린 오른팔을 거세게 휘둘렀다. 청룡은 그 공격을 가볍게 막았다.
“그대는…… 제르 페. 검은 빛이로구나.”
또 다른 안드로이드의 광검이 미르각시의 몸통을 끊임없이 찌르려 들었으나, 단 일격도 닿지 않았다.
“잘 지냈는가. 디쿠샤 에투크. 굶주린 고통.”
근접전을 시도해 온 두 안드로이드는 미르각시의 <뇌격>에 맞아 바스러지며 땅으로 추락했다.
곧바로 남아 있는 다른 안드로이드들이 공중에 머물러 있는 그녀를 빙 둘러싸고서 돌진해 왔다.
“랴프체스 우 리엔. 창공의 마귀.”
“벨 데혼 루크스. 스며든 어둠.”
“페 마쿤 에르큘. 핏빛 죽음.”
모두들 다 기억하고 있다.
아아, 당연히 기억하고말고.
“억지로 생명을 받아, 억지로 눈을 뜨인 겐가.”
딱하게도. 비참하게도. 치욕스럽게도.
어린 악귀의 손에 의해 되살아났구나.
“편히 가시게나. 벗들이여.”
입이 없는 그대들은 이제,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죽는 날까지.”
부디 명계의 바다를 건너.
새 땅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그대들을 잊지 않겠다.”
….
….
천둥이 멎었고,
하늘이 숨을 죽였다.
햇빛이 다시 땅 위에 내리쬐기 시작했다.
녹색으로 울창했던 정글은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열 마리의 용을 위한 작은 무덤이었다.
「이야―. 끝내주네―.」
「도마뱀, 졸라 세잖아!」
이어 그 무렵에 들려온 것은,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의 목소리.
「이거 10기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나?」
「에이, 뭐 그냥 서로 테스트한 셈 치자고.」
「어차피 이게 끝이라고는 생각 안 하잖아?」
마족 소녀의 키득거림이,
청룡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메인 디쉬는 지금부터인걸.」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 떠 있는 차원문에서부터,
한 안드로이드가 천천히 내려왔다.
「소개할게. 사실은 말이지.」
「진짜 비밀 병기는 이쪽이야.」
턱시도를 갖춰 입은 해골 머리의 로봇.
<나인서클>의 제4원. 기계해골 콘스탄틴.
「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위대하신 청룡님!」
「소인은 콘스탄틴이라고 하옵니다. 미스 바르베이라의…… 펫? 노예? 아무튼 그런 겁니다. 흠흠.」
미르각시는 공중에서 콘스탄틴과 마주 보았다.
“네놈이 그 새로 왔다는 로봇 마법사인가.”
「예. 그렇습니다만.」
“기계 주제에 마법이라니, 천 년은 이르다.”
「이런, 생각이 너무 꽉 막히셨군요. 인간도 300만 년 정도는 불을 다루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저희 안드로이드도 발전하기 전이라 그동안 마법을 다루지 못했을 뿐입니다. 한 30년 정도 말이죠.」
어쩐지 이번에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났다.
이건 분명, 드래곤이 아닌…… 사람의 체취.
“네놈의 재료는 인간인 게로군.”
「맞습니다! 정확히 맞히셨군요!」
짝짝짝짝짝―!
콘스탄틴은 과장스럽게 손뼉을 쳤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을 아십니까?」
「플루타르코스가 제안한 형이상학적 난제입니다만. 어떤 배에서 낡은 부품을 하나씩 새것으로 교체한다고 칩시다. 그러다 만약 배의 모든 부품을 새로 교체하게 됐다면, 그 배는 과연 처음에 존재했던 배와 동일한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로봇의 목소리는 마치 전쟁 영웅의 연설처럼, 바람을 타고 이 광활한 평야에 널리 울려 퍼졌다.
「저의 창조주 미스 바르베이라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본질은 절대. 절대 변치 않는다.’」
「자아, 이것을 한번 응용해 봅시다. 인간은 마법을 쓸 수 있지만, 기계는 마법을 쓸 수 없지요.」
「그렇다면, 기계가 마법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선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정답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
「…….」
「손 든 사람 없습니까? 아무도 없나요?」
「흠. 어쩔 수 없군요. 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자, 기계는 마법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마법을 쓸 수 있죠.」
「‘테세우스의 배 이론’에 의거하면,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란 얘기지요.」
「슬슬 답을 알 것 같지 않나요? 여러분?」
「그렇죠. 예.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기계가 인간처럼 마법을 쓰게 하려면.」
「인간을 기계로 만들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