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Light My Fire (1)
미르각시가 말했다.
“그대는 <부름>의 원리가 뭐라고 생각하지?”
“예?”
“<부름>도 어쨌거나 마법의 일종이지 않나. 이 먹성 좋은 곰팡이인지 거머리 떼인지 모를 수상한 녀석들이, 과연 어떤 종류의 마법으로써 탄생된 존재라 생각하는지,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명확히는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부름>이란 놈은 완전 미스터리투성이였으니까.
“……일단, 겉으로 보이는 비주얼만 보자면 정령술인 <스웜>이나, <베놈 클러스터> 같은 독성 마법 계열의 아케인과 얼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음.”
“하지만 공격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둘 다 아닌 듯한데……. 어쩌면, 확신이 가는 부분은 없지만, 1차로 받았던 흑마법 <강화>의 반대급부인 <약화>의 극단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음음. <약화>라. 그것도 괜찮은 추론이구나.”
“정답은 아니라는 말씀이시네요.”
청룡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음 지었다.
나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해 되물었다.
“뭡니까? <부름>의 정체라는 게?”
보채는 내 기색을 달래려는 듯,
그녀는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일종의 <시간 가속>이다.”
그걸 듣고서 잠시 멍해졌다.
어쩐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생뚱맞은 단어들의 조합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왔기 때문일까.
“그대의 <부름>은 반응성을 지닌 군체를 형성하고, 군체의 영향권에 접촉한 물질을 급속도로 산화시키지. 마치 흰개미가 먹이를 잡아먹는 것처럼.”
“…….”
“<부름>의 정체는 바로 <강화>다. 물질의 엔트로피를 극단적으로 <강화>함으로써 무질서도를 급격히 증가, 이내 원자 단위까지 물질을 쪼개 버리는 것이지. 쉽게 말하자면 엄청나게 빠른 노화 촉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시간 가속>이라 표현하신 거군요.”
“물론, 진짜배기 시공 계열 마법과는 조금 다르지만, 기본적인 원리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 소리이긴 했다.
겨우 눈앞에서 한 번 본 것만으로 <부름>의 구체적인 원리까지 파악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시공 계열 마법이라 함은 수많은 마법 중에서도 대표적인 ‘룰 브레이커’. 시전하는 것부터가 우주의 근간이 되는 법칙을 파괴하는 것을 전제로 두어야만 하는 초고난도의 마술이다. 그러니까 불가능의 영역인 <시간 가속>에 성공했다는 것은…….”
하지만 그럼에도 미르각시의 말에는 묘한 신뢰성이 있었다. 아무렴 세계 최강의 드래곤이 하는 말이기에, 그 울림에 절로 믿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잘하면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얘기지.”
나는 아마도,
그저 순수하게.
“가속의 방향을 거꾸로 한다면, <시간 감속>.”
“그리하여 속력이 0에 다다르면, <시간 정지>.”
“계속해서 이어져 마이너스를 뚫게 된다면…….”
단지―
그 말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시간 역행>.”
뒤통수를 몹시 강하게 얻어맞은 듯했다.
미르각시는 나더러 들으라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부름>은 물질의 엔트로피를 <강화>시켜 <시간 가속>과 같은 효과를 낸다. 만약 <시간 역행>을 구사할 수 있다면, 원자 단위로 분해된 물질의 잔해를 원래대로 복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무어,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이야기다만, 어쩌면 <소생술>을 익힐 필요까진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물질의 잔해를 원래대로 복구할 수 있다.
말인즉슨, 죽은 사람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
“가르쳐주세요. 제가 뭘 하면 되죠?”
“워워. 서두르지 말거라. 갈 길은 한참 멀었다. 아직 <부름>에 대해 전부 아는 것도 아니니라. 나중에 제프 녀석한테나 한번 보여줘 봐야겠구나. 타임즈 쪽으론 나보다 훨씬 전문가일 테니까.”
“…….”
“일단 지금은 훈련이 먼저다. 자극적인 희망 사항에 정신 팔려 있을 시간은 없지. 당장 그대는 자기 <부름>을 100% 제어할 줄도 모르지 않느냐?”
그 말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천생 애송이 흑마법사에 불과하다. 마법사로서의 성장이 우선인 것은 팩트.
“어디 보자, 오늘 마무리 훈련은……. 그렇지. 오랜만에 돌로레스를 불러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윽. 돌돌이랑 일대일입니까…….”
“후후, 데이트할 생각에 설레나 보군.”
미르각시는 웃으며 한 차례 손뼉을 쳤다.
그러자, 아늑했던 공간이 순식간에 기이하게 뒤틀리며 검은빛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파이팅이다. 제자야.”
“예예, 이따 봅시다. 선생님.”
곧 시야에서 미르각시의 모습이 사라지고,
동시에 내 몸체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공간 이동과 환시 작용을 거칠 때 이뤄지는 꿈을 꾸는 듯한 현상으로,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이다.
평상시에는 1~2초 안에 월드 생성 작용이 마무리되는데, 오늘은 어쩐지 템포가 좀 길어졌다.
….
….
아니.
뭔가가 이상하다.
한참이 지났음에도 검은빛이 그대로다.
나는 어둠뿐인 공허 속에서 보이지 않는 바닥에 홀연히 착지했다. 의식이 괴상하게도 뚜렷했다.
“저기요, 선생님?”
미르각시를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분명 <텔레파시>로 사념이 연결되어 있을 텐데, 평소처럼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뭐지……?”
이상했다. 잠들어 있는 사이에 누군가 침실 문을 슬쩍 열어젖히고서 내가 잠든 모습을 몰래 엿보고 있는 듯한 굉장히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졌다.
눈꺼풀에 작은 먼지가 낀 것 같은 이물감.
양말 속에 낀 자갈 같은 이 위화감은, 설마…….
치지직―.
그 순간.
눈앞에 노이즈가 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러자 펼쳐진 것은, 사뭇 낯선 풍경.
약간 낮은 천장과 어두침침한 조명.
유리벽 너머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새파랗게 빛나는 가짜 바다. 그 속에서 헤엄치는 해양 생물들.
여기는 <시에라시티 아쿠아리움>이다.
<메이슨 타워> 지하 1층에 위치한 대형 수족관. 와본 적은 없지만, 팸플릿을 봐서 대충 알고 있다.
……미르각시가 만든 새 던전인가?
……아냐. 느낌이 달라. 이건 진짜다.
아마도 미르각시의 결계가 깨졌거나, 아니면 내가 결계 밖으로 빠져나가졌거나, 둘 중 하나다.
그 결과 현실의 <메이슨 타워> 지하에 있는 이 수족관에 나 홀로 이렇게 떨어져 버린 것이다.
“…….”
평상시의 훈련 루틴과는 완전히 다르다.
무언가 잘못됐다.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아 살폈다.
조용했다.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은 폐장 시간인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즈음.
터벅―.
저 너머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붉은 조명이 켜진 원통형 복도 건너편, 상어들이 득실대는 유리 천장 아래,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냉랭한 은빛으로 휘날리는 백발과 긴 수염.
어둠과 별반 다르지 않은 흑색 일색의 도복.
이 시대 최후의 칼잡이― 도그아이드 킴이었다.
“……김씨 할배……?”
미르각시의 환각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뚜벅뚜벅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우뚝 발을 멈춰 섰다.
“…….”
“…….”
잠시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왠지 모를 적대감이 풍겨 왔다.
우웅―.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나는 살며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비너스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였다.
「할아방탱이 배신햇어요」
「드래곤 잡으러 간다는데」
「유진씨 심장도 노리는듯?」
「알아서 할수잇져? ㅇㅅㅇ」
「참고로 난 배신 안햇음 일단 그때는 살고 봐야 돼서 배신한척만 햇어요 진짜에요 실제로 배신한건 아니고 그냥 그런척만 한거임 내가 머 그쪽에 딱히 머 별로 대단한 얘기는 안햇고 그냥 머 유진씨 심장에 관한 거 쪼끔 진짜 쪼끔 얘기한 거밖에없어요 진짜 배신한거아니니까 젭라살려줘요 잘못햇엉요」
받은 문자들을 천천히 읽어 내렸다.
그러고 나서 휴대전화를 툭 덮었다.
“배신했다는 게 정말입니까, 할배?”
“…….”
“병원에 있던 헬렌이 납치당해서 할배가 구하러 갔다는 것까진 알았는데, 거참, 제가 자리 비운 사이에 별 해괴한 일이 다 있었던 모양이네요.”
비너스를 납치한 녀석은 틀림없이 이전에 <슐츠텍> 연구소를 습격한 녀석과 동일 인물.
내가 가지고 있는 ‘대마법사의 심장’을 비너스에게 있다고 착각한, <나인서클>의 ‘라스트 오우거’ 바르베이라 테르마옌과 ‘기계해골’ 콘스탄틴이다.
“날 죽이러 온 겁니까?”
놈들의 목적은 무한한 마나가 깃든 심장.
비너스가 전부 까발렸다면 심장의 소유자가 나라는 사실도 물론 들통났을 테지.
하지만―
“네놈한테는 볼일 없어.”
내 예상과 다르게도,
개눈깔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용을 죽이러 왔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미르각시를, 죽이러 왔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비켜.”
“잠깐만 기다려 봐요, 할배. 그야 제가 전에 드래곤이랑 맞짱 뜨게 해주겠다 약속하기도 했었고, 그 칼을 뽑고 싶은 맘이 급한 건 알겠지만…….”
“틀렸어.”
“뭐라고요?”
“하나도 급하지 않아.”
도그아이드 킴은 속삭이듯 말하며,
허리춤에 꽂힌 칼을 슥 어루만졌다.
“이젠 뽑을 필요가 없어졌거든.”
그가 칼자루에 손을 갖다 댄 그 순간.
나는 왜인지 뒷목이 섬뜩해짐을 느꼈다.
스으으―.
금속이 금속과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칼집에서 칼을 뽑을 때 나는 소리였다.
……설마.
……그럴 리가.
나는 정지했다. 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여지없이 살벌한 마찰음이 귓속을 가파르게 찌르고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뽑혀진 검의 자태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슬처럼 반짝거리는 투명한 도신.
검은빛을 머금은 하얀 어둠의 칼날.
―요도 무라사메.
“아.”
순간 넋이 나가 있던 동안.
움직임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서걱―.
보이지 않는 칼날에,
신체의 어딘가가 베였다.
아니. 사실은 어디도 베이지 않았다.
단지 베였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허억.”
호흡을 하기가 어려웠다.
뭔가에 짓눌린 느낌이었다.
칼집에서 뽑은 것만으로,
이 정도 위압감과 살기라니.
“다시 말하지만, 네놈한테 볼일은 없어.”
“…….”
“난 약속을 지키러 왔을 뿐이니. 비켜라. 얼른.”
굳이 계산하거나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 여기서 할배를 상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요도 무라사메를 뽑은 도그아이드 킴은, 세계관 설정상으로 미르각시와도 맞먹을 수 있는 최강자.
뭔가 해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개눈깔 앞의 나는 돌부리만도 못한 존재. 지금 나를 그냥 밟고 갈지 냅다 발로 차버리고 갈지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미안하지만.”
그러니까―
내겐 선택지가 없다.
“못 비키겠는데요.”
내가 그리 말한 직후.
개눈깔이 나를 노려봤다.
“그럼 죽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