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The Devil In I (5)
“그냥 물 위를 걷기만 하면 됩니까?”
정말로 별것도 아닌 주문이었다.
혹시나 싶어 되물어 보자, 미르각시는 어깨를 까딱거리며 자연스러운 침묵으로 이를 긍정했다.
“…….”
의도를 짐작기 어려운 훈련 내용이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나는 수영장 쪽으로 다가갔다.
물이 가득 담긴 풀에 살짝 발을 들이밀고서.
푸샤악―.
발밑을 쿠션처럼 감싸도록 마력을 방출.
마나의 발판을 만들어 그것을 <강화>시켰다.
타악―.
도약 마법 <스카이하이>의 원리를 응용한 기술.
마력을 방출하고 있는 동안에는 발판이 그대로 유지된다. 걷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뚜벅. 뚜벅. 뚜벅―.
한 걸음. 또 한 걸음.
물 위를 성큼성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너편 레인에 도착했다. 나는 마지막 발판에서 발을 떼고 풀 밖으로 슥 나왔다.
“자, 됐죠?”
“…….”
미르각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뭐 하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예?”
“어디서 감히 농간질인가. 나는 분명 그대에게 물 위를 걸어 보라 했다. 그대는 지금 발판 위를 걸은 것이지, 물 위를 걸은 게 아니지 않느냐.”
“예에?”
“다시 하라.”
발판을 만들지 말고,
물 위를 걸어 보라고?
“…….”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내가 쓸 수 있는 건 <강화>뿐인데. 뭔가 응용법이 또 있다는 건가.
……물 위를 엄청 빠르게 달린다거나?
……아니. 내 능력으로 그 정도의 <강화>는 불가능해. 게다가 그건 걷는 게 아니라 뛰는 거잖아. 또 트집 잡힐 게 뻔해. 뭐 다른 방법은 없나?
….
….
젠장. 아무 생각도 안 나.
도대체 뭘 하면 되는 건데?
“그대에게 부족한 것은 ‘상상력’이다.”
그즈음.
미르각시가 말했다.
“그대는 언제나 정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지. 그래서야 사고의 감옥에 갇히게 될 뿐이야.”
“마나의 굳기를 <강화>한다거나. 다리의 파워와 기능을 <강화>한다거나. 언제까지 그런 재미없고 뻔한 짓거리만으로 자신의 힘을 낭비할 텐가?”
“한계를 정하지 마라. 극한을 넘어서라. 무한한 것은 비단 그대의 마나 보유량만이 아니니라.”
“마법은 전능하다.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대의 손으로 일으키는 것이 바로 기적임을 잊지 말라.”
―상상력. 전능. 기적.
그 단어들을 듣자, 어쩐지 체온이 높아졌다.
용언을 배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전신의 세포에 또렷이 각인되고 있었다.
―생각하지 말고, 알아내라.
생각이 많은 것은 나의 나쁜 버릇이라고 그녀가 말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오직 생각만이 내 것. 생각하기에 나는 존재한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니게 된다. 고로 나는 생각해야만 한다.
―상상하라.
<강화>란 심플한 마법이다.
무언가를 강화한다. 단지 그뿐.
자색 마력은 쓰레기 같은 마력이다.
다만 어디든 잘 깃든다. 그런 특성이 있다.
<강화>와 자색 마력의 조합은,
어떤 것이든지 강화할 수 있다.
물 위를 걷기 위해 강화해야 하는 것.
물에 뜨게 만드는 힘. 부력. 표면장력.
그런 것까지도 <강화>할 수 있는 걸까?
모른다. 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여기서 더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생각이 끝났다면, 이제 알아낼 차례다.
“<강화>.”
발끝에 마나를 싣고, <강화>를 가했다.
그대로 수영장을 향해 발을 들이밀었다.
찰랑―.
신발 바닥에 닿은 수면이 일렁였다.
살그머니 힘을 주고서, 물을 밟았다.
….
….
빠지지 않았다.
발은 수면에 붙어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한 걸음. 또 한 걸음.
기적을 일으킨 선지자처럼,
나는 그렇게 물 위를 걸었다.
“바로 그거다. 요 똘똘한 녀석.”
풀 밖으로 걸어 나온 나를 보고서,
미르각시가 대견한 미소를 지었다.
“어쩜 이리 말을 잘 들을꼬.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래도 한 개 반만큼은 하는 녀석이었구나.”
“……칭찬 고맙습니다.”
“축하한다. 너는 이로써 메시아의 기적을 하나 재현해냈다. 최종 목표가 <소생술>이랬지? 뭐어, 솔직히 갈 길이 아직 멀고도 멀기는 하다만.”
그녀는 싱긋 웃더니,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려주도록 하지.”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생술>을 비롯한 소위 ‘선지자의 일곱 마술’, 고대 마법의 근본을 창시했던 메시아란 양반은, 사실 쓸 수 있는 마법이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
“그는 오직 <강화> 마법만을 쓸 줄 아는 마법사였다. 그리고…… 자색 마력의 보유자이기도 했지.”
나는 순간 움찔했고.
미르각시는 넌지시 웃었다.
“그대처럼.”
심장이 두근, 하고 떨렸다.
“어때, 자신이 좀 생기는가?”
“…….”
“꾸물거리고 싶지 않겠지. 시간은 자고로 유한한 법이니. 특히나 평범한 인간의 시간은 말이야.”
가짜 같은 생동감. 망상 같은 현실감.
꿈이 꿈이 아님을, 기적이 손에 닿는 위치에 있음을 깨달은 순간,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다.
<소생술>을 배울 수 있다.
죽은 메리를 살릴 수 있다.
“자아, 다음 수업을 시작하지.”
나는,
최강의 마법사가 될 수 있다―.
***
미르각시 밑에 제자로 들어간 지,
어느덧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슬슬 회사라든가 애들이라든가, 뭐 기타 등등이 걱정되는 한편이었지만, 이곳 드래곤의 둥지 안은 시간의 흐름이 바깥과는 다르다는 모양이었다.
“드래○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 같은 거지. 실제 시간은 아마 일주일도 안 지났을 거다.”
훈련은 매일 기묘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와이번과의 일대일 사투’나 ‘수영장 물 위 걷기’는 돌이켜 보면 가장 평범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내용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안 날 터였다.
훈련의 효과는…… 글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허나 명백하게.
강해지고 있었다.
“정지.”
미르각시가 말했다. 나는 그녀의 신호에 맞추어 방출시키고 있던 마력의 가공을 멈췄다.
“거기. 겹쳐진 부분에서 한 꺼풀만 벗겨내라.”
“……이렇게요?”
“그래. 그 상태로 침착하게. 손끝의 감각에 집중해라.”
오늘의 수업은 마나 형태 가공 훈련.
‘타트바’라 하는 마나의 다섯 형태 중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불꽃의 형 ‘테자스’를 물결의 형 ‘아파스’로 변형시키는 방법에 대해 교육받는 중이다.
“느껴지나?”
“…….”
눈을 감고서 의식을 잠몰시켰다.
불꽃 사이에 희미하게 숨어 있는.
첨벙―.
아주 작지만 미약한 파도.
물결 같은 일렁임이 있었다.
‘된 건가?’
성공을 향한 수줍은 기대.
허나 그것을 꺼내려는 순간.
푸샥―.
파도는 순식간에 잠잠해지고.
물은 다시 불꽃 속에 휩싸인다.
“이런, 또 실패인가.”
“…….”
“잘 나가다가 항상 막바지에 이러는구먼.”
제기랄. 이번에도 그르쳤다.
똑같은 수업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는데도 발전이 전혀 없다. 벌써 사흘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자색 마나 특유의 고약한 형질 탓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르치는 보람이 영 없군그래.”
“……죄송합니다.”
“쯧, 됐다. 선생이 학생 탓을 해서 뭐 하겠나. 결국 내 가르침의 수준이 모자란 탓이겠지.”
미르각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숨을 쉬고 싶은 것은 내 쪽이었지만, 내겐 그럴 염치조차 없었다.
“전에 물 위를 걸었을 때, 기억하느냐?”
“…….”
“그대는 아마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때 그대는 마나를 ‘아파스’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했었다.”
“……예? 제가요?”
“불꽃의 형인 채로는 물의 ‘표면장력’을 <강화>시키기 어렵다. 마력이 깃들어도 형태 상성 상 결합과 유지가 잘 안 되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그대는 무의식적으로 마나의 형태를 불꽃에서 물결로 바꾸었다. 생각하고서 한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말입니까.”
“하지만 이상한 일이군. 변형의 감각을 깨달은 지금은 의식하는 쪽이 오히려 능률이 더 좋아야 할 텐데……. 혹시 흑마법의 특성 때문이라면…….”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그대는 <부름>을 제어할 수 있는가?”
대뜸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체력이 충분하고 폭주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한테 한번 써보거라.”
….
….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이 양반이 뭐라고 한 거지?
“뭐 하고 있나? 얼른 <부름> 써보라니까.”
“아니, 잠깐만요. 선생님. 미쳤습니까?”
“요 녀석이 하늘 같은 선생한테 말대꾸더냐.”
“말대꾸를 안 하게 생겼습니까, 지금?”
“위험할까 봐 그러는 게냐?”
“당연하죠.”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부름>의 벌레들은 공명정대하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그것들 앞에선 한낱 먹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수많은 경험으로 똑똑히 알고 있었다.
“참으로 건방지구나. 나를 누구라 생각하는 게냐? 붉은 해가 뜨는 땅의 푸른 용. 고귀한 영성을 지닌 지고의 신수神獸. 청룡 미르가 바로 나다. 설마 이 내가 그깟 흑마법 따위에 당하리라고?”
“…….”
“걱정 마라. 그대가 후회할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잠깐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다.”
미르각시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좋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지구 최강의 드래곤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럼, 갑니다…….”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뻗고,
나지막이 그 이름을 불렀다.
“……카인 나호르…….”
익숙한 꿈틀거림이 손가락 틈에서 삐져나왔다.
<부름>의 벌레. 자색 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극. 그그극―.
미르각시는 목전에 있었다. 신선한 바깥 공기에 신이 난 군체는 단번에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선생님, 조심……!”
내가 반사적으로 외치기도 전에,
벌레는 그녀에게 이미 닿아 있었다.
카각. 카가가가각―!
케르베로스의 비명 같은 끔찍한 소리를 내지르며, 모든 것을 잡아먹는 악마의 벌레들이 미르각시의 왼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선생ㄴ……!”
“쉿.”
내 외침을 미르각시가 가로막았다.
그녀는 왼팔에 붙은 벌레들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낙엽이라도 내려앉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고는, 팔을 휘익― 펼쳐서.
아주 간단하게도 떨쳐내 버렸다.
“괘, 괜찮아요……?”
“으음. 그런 것 같다.”
미르각시의 팔에는 듬성듬성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비늘들은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띠었지만, 벌레에게 갉아 먹힌 부분은 하얗게 변색돼 있었다. 손으로 툭툭 건들자 조각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졌다.
“과연, 이 힘은 제법 특이하구나.”
데미지는 조금 입은 것 같지만, 멀쩡했다.
처음이었다. 위력을 약하게 조정하기는 했지만, <부름>을 맞고도 살아남는 것이 가능할 줄이야.
“대충 알겠군. 그대가 지닌 <부름>의 정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