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November Rain (3)
내가 그 말을 꺼낸 순간.
공기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소생술>을 말하는 것이냐.”
미르각시가 나를 흘겨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용기를 낸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금지된 비술이다.”
“예. 물론 압니다.”
“가볍게 떠들어 댈 것이 아니다. <소생술>은 메시아의 승천 이후 봉인된 ‘선지자의 일곱 마술’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도 위험한 마법. 우주의 법칙과 생명의 윤리를 모조리 거스르는, 감히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행위란 말이다.”
“그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흑마법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데다, 애초에 이천 년 동안이나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던 사술死術이다. 설령 귄터 그 마법 오타쿠 놈이라 해도, <소생술>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을진대.”
“그라면 분명 알고 있을 겁니다.”
“어찌 그리 확신하지?”
“저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용의 새빨간 눈동자를 마주 보며, 나는 말했다.
“저는 미래에서 왔다고요.”
이에 미르각시는 코웃음을 쳤다.
“아직도 그 컨셉으로 밀고 가려는 것이냐.”
“용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귄터 사지타리우스를 만나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정말로 <소생술>을 써먹을 생각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누구 소중한 사람이라도 죽어 버린 겐가?”
그녀가 물었고,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쩌면, 자기 손으로 죽여 버렸다거나?”
침묵을 지켰지만,
아마도 들켰을 것이다.
“<부름>을 사용한 대가를 치른 모양이군.”
“…….”
“이상한 일도 아니지. 그대가 계약에 사용한 ‘카인의 단도’는 악랄하기 짝이 없어, 그걸 쓴 흑마법사들의 끝물이 좋지 않음을 나는 자주 목격했다.”
“저 말고도, 있었던 겁니까……?”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최근 그대 전에 두 명이 더 있었다. 한쪽은 군인이었고, 다른 한 녀석은 살인마였지. 살인마 쪽은 그대도 잘 알지 않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없었다.
암귀. 혹은 언디파인드. 사상 최악의 흑마법사.
“지금은 그대가 암귀 행세를 하고 있다지.”
“…….”
“비록 행세에 불과하다지만, 행보만 보면 그대는 암귀의 재림을 매우 훌륭히 연기하고 있다. 문제는 그대의 연기력이 너무 뛰어났다는 점이니라. 지금 그대는 진짜 암귀나 다를 바 없다. 암귀는 이 나라 모든 마법사들의 주적. 귄터는 아마 그대를 보자마자 그대의 대갈통을 냅다 부숴 버리려 들걸.”
“그 점은 용님께서 어떻게 중재를 잘…….”
“싫다.”
정적.
침묵이 흘렀다.
“예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대 대갈통이 귄터 손에 터지든 말든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인데?”
“아니, 자리를 주선해 주신다면서요?”
“갑자기 그러기 싫어졌다.”
“예에에?”
“네놈이 알아서 해라. 난 모른다.”
뭔가 미르각시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곧 이것이 살면서 꽤나 자주 겪어본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
뾰로통해진 표정.
딴 데를 보는 시선.
삐죽 튀어나온 입술.
“저기, 혹시 삐지셨습니까?”
“…….”
대답이 없었다.
허나 조금 뒤에.
“나한테 마법 배우고 싶다고 했으면서…….”
“실컷 놀아줬더니, 귄터한테 가겠다고……?”
“이게 그 NTR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그녀가 뭐라 중얼대는 게 들렸다.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진 않았지만.
“삐지셨군요.”
“시끄럽다. 말 걸지 마라.”
삐진 것이 틀림없었다. 미르각시는 알기 쉽게 투덜대면서 괜히 애먼 게임기를 만지작거렸다.
“애당초 묻는 순번이 잘못됐다. 마법에 관한 화제에 어찌 이 나를 거르고 귄터에게 쪼르르 달려갈 생각을 했단 말인가? 세일○문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웨딩피○를 보고 앉아 있는 꼴이지 않느냐!”
“아뇨, 그거는 그, 귄터 사지타리우스가 <소생술>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서…….”
“흥, 모르는 소리. 귄터 그놈은 600년도 살지 못한 천상 애송이다. 고 어린 것이 2,000년 전의 비술에 대해 알아봤자지. 아무렴 당시에 그 마법이 행해진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던 나만 하겠느냐.”
“……잠깐만요. 직접 보셨다고요?”
“그때 그 선지자란 작자가 국제적으로 워낙 핫했어서 말이지. 로마에 머무는 동안 신분을 숨기고 그의 제자로 들어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봤던 마법사들 중에서 단연 최고였지. 정말로 신의 아들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용은 잠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은 듯 아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어, 비슷한 수준이 한 사람 더 있지만…….”
그러고는 슬쩍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 영감탱이는 은퇴해서 말이야.”
어쩐지 그녀의 시선은,
내 심장 쪽에 향해 있었다.
“아무튼, 그대의 목적이 <소생술>이라면, 구태여 귄터에게 향하는 귀찮은 짓을 할 필요는 없느니라. 내가 있으니까. 나한테 물어보면 그만인 일이지.”
“…….”
“일단, 나름대로 권위자로서 한마디 하자면―.”
미르각시는 말했다.
“인간이 <소생술>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주 똑 부러진 어조로.
“<소생술>은 일반적인 마법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억지로 계통을 따지자면 혼효 마법에 가깝긴 하지만, 그건 세계 제일의 요리사가 만들어낸 궁극의 퓨전 요리를 동네 중식집 삼선짬뽕이랑 같은 메뉴판에 집어넣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이지.”
“…….”
“자, <소생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조금만 생각해 볼까? 먼저, 생명이 깃들 육체를 만들기 위한 알케미와 엘리멘탈. 죽은 영혼을 불러오기 위한 오컬틱과 스피릿. 금지된 영창을 외기 위한 데모닉과 미스틱.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마술적 반동을 막기 위한 아케인과 디바인……. 각 계통의 마스터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갈아 넣어야지만 평생에 한 번 쓸 수 있을까 말까 한 각각의 명작 마법들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술식으로 조합해야 한다.”
건방진 나를 꾸짖듯이.
단 몇 마디로 일갈했다.
“나조차도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에 덧붙인 한마디는,
포기하란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러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라는 것처럼.
악마의 유혹 같은 말을 내게 던졌다.
“배우고 싶으냐? 마법.”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덥석 물어 버렸다.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었다. 태생이 이런지라.
할 수 있다면,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그대의 스승은 분명 <나인서클>의 제5원인 알리시아 벨카폴리아, 그 아이렷다?”
“예. 맞습니다.”
내게 마법을 가르쳐줬던 ‘마녀’의 정체는 스몰필드 씨였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이쪽 일에 휘말리게 될 경우를 막기 위해 그 사실은 숨기기로 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아르카나 마법 특유의 학습 방식 탓인지 그대가 마법을 쓸 때는 정석적인 기믹이 너무 심하게 엿보인다. 보통의 마법사라 친다면 그게 그리 나쁜 버릇이라곤 말 못 하겠지만, 그대는 어디까지나 자색 마력을 지닌 흑마법사. 왕도를 걷는 것으로는 결코 단기간 내에 성장할 수 없다.”
“…….”
“그러니까, 내 방식대로 가도록 하지.”
드래곤의 방식.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듣기만 해도 왠지 식은땀이 나는 것은 필연 정상적인 수순일 터였다.
“그럼.”
그때.
우우웅―.
“바로 시작해 볼까.”
발밑이 떨려 왔다.
진동? 아니, 다르다.
….
….
없다.
바닥이 없어졌다.
“……?”
순식간에 텅 비어 버린 공간.
반응할 틈 따윈 없었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검은 구덩이 아래로, 내 몸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으악?!”
떨어진다. 끝도 없이. 낙하하고 있다.
방향 감각이 사라지고 속이 울렁였다. 마치 우주 공간의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기분이었다.
「이건 시련이다.」
블랙홀로 떨어지는 틈바구니에서,
용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대가 할 일은 단지 버티는 것뿐.」
「버틸 수 있다면 어디 버텨 보거라.」
「만약 끝까지 버티는 데 성공한다면…….」
기이하게 들리는 목소리다.
마음을 흔들어 오는 목소리.
「그대를 최강의 마법사로 만들어주겠다.」
역시나―
그것은 틀림없는 악마의 유혹이었다.
***
기계해골 콘스탄틴.
<나인서클>의 일원이자 천재 기술자인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이 만들어낸 마법공학의 집약체.
미발흉검 도그아이드 킴.
검을 뽑지 못하는 검객. 뽑히지 않는 검으로 모든 것을 베어 넘기는 현세대 최강의 칼잡이.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
그 둘이 맞붙는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본 비너스에 의하면, 그것은 단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인외마경人外魔境.
그저 쓰인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인간이 아닌 두 사람의 싸움이었다.
무수히 오가는 검격과 마격의 부딪침.
무한히 계속되는 힘 싸움. 그 속의 심리전.
각 분야에서 최강의 경지에 이른 강자끼리의 대결이란 과히 싸움의 차원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비너스는 감탄을 넘어서 본인의 작음에 개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으로서는 감히 그 싸움의 한 수 앞을 읽는 것조차 불가능하고 또 무의미했다.
그리고 그런 미사여구가 무의미하게도.
결과는……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어이. 해골빠가지.”
타오르는 갈색 불꽃 사이에,
도그아이드 킴이 서 있었다.
“더 할 테냐?”
그을린 피부와 상처.
허나 치명상은 없었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군요.」
「아무래도 제가 진 것 같습니다.」
반면 바닥에 내팽개쳐진 콘스탄틴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두부 파츠가 대부분 망가져 안쪽의 전선 따위가 드러나 있었다.
「역시 데이터란 건 믿을 게 못 되네요. 검도 뽑지 않은 양반이 설마 이렇게나 강할 줄이야.」
“마법 좀 쓴다꼬 깝치지 말았어야제.”
「흠훗. 궁금해지는군요. 만약 그 검을 뽑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로 강해질지 말입니다.」
콘스탄틴은 지직거리며 스파크가 튀는 부서진 안구를 움직여, 도그아이드 킴의 허리춤에 매단 칼집 속의 검― 요도 무라사메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뽑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로봇이 그렇게 말하자,
개눈깔이 눈을 부릅떴다.
“니 지금 머라 캤노.”
「그쪽이 싸우는 목적은 결국 그 검의 봉인을 해제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아니고 우리 주인인 미스 바르베이라가 도와드리겠지만요.」
“니는 뭘 바라고 그딴 소릴 해 쳐 쌌는데.”
「그쪽한테 바라는 건 많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저와 제 주인님은 그저 호기심의 괴물일 뿐이라서요. 궁금한 건 못 참을 뿐이라 이겁니다.」
“마, 잡소리 빼고 단디 말해라잉.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기 먼데. 함 들어나 보자, 이 새끼야.”
도그아이드 킴이 으름장을 놓으며 말했다.
콘스탄틴은 찌그러진 입꼬리를 슥 올려 보였다.
「같이 드래곤을 죽여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