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Cry Baby (4)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이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구나 싶었던 일.
“……방을 빼야 한다고요?”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괴물 트롤과의 모종의 사건을 겪고 나서, 감방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지 한 달쯤 됐을 무렵.
“네에, 아저씨. 오늘은 여기서 못 주무세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모텔 관리인 아가씨 페니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잘은 모르겠지만 주거 환경 뭐시기 법이란 게 바뀌어서, 이제부터 3급 숙박업소에서의 장기 투숙을 전면 금지한다고 하더라구요.”
“아니, 이렇게 갑자기요……?”
“원래 저희 모텔은 단속 대상 아니었는데, 서부 경찰서에서 그저께 공고가 떨어져서요. 하여간 그래서 30일 이상 숙박한 사람들은 다 지금 쫓겨나 있어요. 뭐, 그래 봤자 내일 하루만 넘어가면 되지만요.”
“그러면, 저는…….”
“오늘은 딴 데서 주무셔야 할 거예요. 일단 저희랑 제휴 맺은 다른 모텔 숙박권 한 장 드리긴 할 건데, 아마 사람들 거기로 다 몰려가서 방 없을걸요.”
“…….”
“암튼 청소해야 하니까 10시까진 방 비워 주시구요. 건드리면 안 되는 물건은 옷장에 넣어 놔요.”
프런트에 앉은 페니는 피곤한 듯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피곤한 걸로 따지면 나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아…….”
방에 돌아가 물건을 정리했다.
침대에 눕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그랬다간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아 불굴의 의지로 참았다.
그나저나 오늘 밤은 어쩌면 좋지.
어디 근처 호텔에서라도 묵어야 하나.
“…….”
문득―
옆옆집에 사는 그녀 생각이 났다.
가끔씩 언질도 없이 내 방에 찾아오는 여자. 자기가 내 엄마인 줄 아는 헤까닥 뱀파이어, 메리.
210호에 찾아가 방문을 두드려 봤다. 똑똑―. 두드리고서 한참을 기다렸다. 조용했다. 반응은 없음.
“……없나 보네.”
딸이 두 명인가 있다고 들었는데.
잘 있으려나? 괜스레 걱정이 됐다.
왜 메리가 신경 쓰이는 건지 참 이상했다.
실제로 그녀는 나랑 아무런 관계도 아닐 텐데.
어쨌거나 그날은 고심 끝에 회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이번에 새로 옮긴 사무실은 종합적으로 상태가 영 별로긴 했지만, 바로 아래층에 있는 경비원용 숙직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부분이었다.
갈아입을 옷가지 정도만 챙기고서 방을 나와, 졸음과 피로를 꾹 참아가며 회사로 돌아갔다.
전철이나 택시였다면 그나마 편했겠으나 내일 일정 탓에 미리 빌린 렌터카를 직접 끌고 가야만 했다.
회사 건물 4층의 숙직실에서 불편하게 쪽잠을 잤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벌써 오전 7시였다.
대충 씻고, 어제 하던 일 마무리하고, 타이퍼가 타준 커피 한잔 마시고, 슬슬 배가 고파졌을 무렵.
“아.”
그때서야 뒤늦게,
나는 깨닫고 말았다.
“지갑 놓고 왔다.”
모텔 방에다 지갑이랑 폰을 두고 와 버렸다.
옷가지를 정돈하고 챙기면서 생각 없이 탁자 위에 올려놨다가 깜빡 잊어먹고 그냥 온 것이었다. 어젯밤은 적잖이 피곤했던 탓에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즉―
현재 수중에 한 푼도 없다.
“허어…….”
은행이나 ATM에서 돈을 찾고 싶어도 가지고 있는 카드나 신분 증명 수단이 없기에 불가능.
지금 당장 모텔로 돌아가 찾아오는 게 최선, 허나 한 시간 뒤에 중요한 거래처와의 미팅 일정이 있다.
“도와줄 사람은…….”
스몰필드 씨와 비너스가 출근하기 전에 미팅 장소로 출발해야 하는 상황.
하인즈 사장이 앞으로 30분 안에 회사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고.
평소에 쓰는 대포폰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헬터 스켈터>나 <블랙 대거즈>와도 연락할 수 없음.
“…….”
이거, 오늘 하루는 쫄쫄 굶게 생겼네.
멍청한 실수에 한탄하고 있을 틈조차 내게는 없었다. 앞서 말했듯, 중요한 미팅이 코앞이었으니까.
거래처와의 미팅은 예상보다 더 길어졌다.
대금 지불 방식을 논의하는 과정에 서로 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쪽에서는 선입금 액수를 최대한 줄이고 싶어 했고, 물론 이쪽은 반대였다.
결국 오전 10시에 종료될 예정이었던 회의는 그렇게 11시, 12시……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끝날 기미는 도통 보이지 않았다.
……피곤한 건 둘째치더라도.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다.
어제저녁도 제대로 먹지 않았으니, 아침부터 점심까지 못 먹은 밥이 연속으로 세 끼. 따지고 보면 장장 하루 종일을 굶고 있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꼬르륵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도,
지겨운 말씨름을 이어가고 있던 도중.
“실례합니다. 유진 연 씨 계신가요?”
회의실 문이 열리며, 한 여직원이 들어왔다.
“아, 예. 접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지금 이쪽에 방문하신 외부인이 한 분 계신데, 유진 연 씨한테 전해드려야 할 게 있다고 하셔서요.”
“예? 누가요?”
“그게, 어떤 여성분인데…….”
여직원은 바깥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자기가 그, 엄마라고…….”
나의 시선 또한 여직원을 따라 움직였다.
회의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저 너머 사무실 입구 쪽에, 어쩐지 익숙한 실루엣의 여인이 있었다.
“…….”
처녀 귀신마냥 부스스한 검은 머리카락에,
소복처럼 보이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메리.
“뭔데, 저거.”
무슨 내 눈에만 보이는 유령인 줄 알았다.
엄청나게 쭈뼛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걸로 봐서 유령은 아닌 듯하다.
나는 잠시 회의실 밖을 나가 메리를 만나러 갔다. 메리는 내 얼굴을 보더니 화색이 되어 소리쳤다.
“아들!”
순식간에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이제 사람들의 힐끔거림은 내게도 동등하게 쏘아지고 있었다. 나는 졸지에 남의 회사 사무실에서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성과의 모자지간 상황극 플레이를 즐기는 세기말적 변태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아……. 왜 왔어요?”
이런 걸 허락한 적은 없었다.
혼자 있을 때 다가오는 거라면 몰라도, 사생활의 영역까지 침범해 오는 것은 원치 않았다. 하물며 내 생계가 걸린 일 아닌가.
내가 한숨을 내쉬며 진심으로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메리는 한껏 위축된 모양새로 움츠러들었다.
“……이거…….”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손에 든 것을 내게 건넸다.
“……?”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쇼핑백에 담긴 플라스틱 반찬통이었다.
“아침에 저기, 아들 방에 갔다가, 지갑 두고 간 게 보여서……. 만약에 돈 없으면 밥도 못 사 먹으니까, 아들 배고플까 봐, 그…… 도시락 만들었어…….”
“……예?”
“아들한테 줄려고, 회사에 찾아갔는데, 안경 쓴 예쁜 사람이 여기 왔다고 알려줘서, 여기 왔어…….”
나는 벙쪄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안경 쓴 예쁜 사람이라면, 스몰필드 씨를 만난 건가.
“그, 근데 나, 나 그래도, 그 사람한테 이상한 소리는 안 했어! 내가 아들 엄마라고도 안 했고!”
“뭐라고 했는데요, 그럼?”
“괜찮아! 새엄마라고 했어!”
“…….”
“친엄마라고 하면 오해하니까!”
나는 말없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슬슬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뭐라고 얘기는 더 해야겠지만, 그건 남의 회사 사무실에서 할 만한 짓은 못 됐다.
“밖에서 기다려요. 곧 나갈 테니까.”
“……응…….”
다행히 회의는 그 뒤로 금방 끝났다. 사무실에 들이닥친 메리의 임팩트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회사 건물 밖에서는 메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 맡에 쪼그려 앉아 있던 그녀는 입구에서 내가 나오는 걸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
“…….”
우리는 서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메리는 내 눈치를 살폈다. 대화를 하려면 아무래도 내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할 성싶었다.
“민폐에요, 이런 거.”
“…….”
“도시락 갖다준 건 고맙지만, 연락도 없이 이렇게 대뜸 회사로 찾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무정하게도 말했다. 메리는 고개를 숙인 채 내 말을 들었다.
“솔직히 그쪽이 제 엄마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거나 아들 타령하는 걸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아요.”
“…….”
“단지, 알잖아요. 뭐가 됐든 적당히 해야 한다는 거. 내가 진짜로 그쪽 아들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아들을 좋아하는 엄마.
그런 엄마가 귀찮은 아들.
정말로 그러한 관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가짜에 불과했다.
“미안해.”
그녀도 그걸 알았기에,
사과할 수밖에는 없었다.
“엄마가 엄마여서 미안해.”
진짜가 되지 못한 가짜의 사과.
만들어진 관계의 한계다. 여기서 더 나아갈 수는 없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이리 글러 먹은 가짜 엄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도시락, 아직 안 먹었는데.”
대단한 말 따위는 해줄 수 없다.
나 역시 가짜 아들에 불과하니까.
“요 앞 공원 가서 같이 먹을래요?”
그저, 위로가 될 수 있는 한마디.
어쩌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응. 그러자.”
충분했을 것이라고,
그렇다고, 믿고 싶다.
***
떨어진 것은 눈물 한 방울.
그리고 거짓말처럼 텅 빈 공간.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고,
목이 메 더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메리는 웃었다. 괜찮다면서 웃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다.
비춰진 달빛이 시간의 틈새에 끼었다.
웃고 있던 메리는, 이제 여기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기분이 어때?”
어둠만이 깔린 짙은 고요 속에서,
불현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말했잖아.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소녀의 목소리.
꿈에서 들었던가. 아니면 언제였던가.
“왜 이렇게 된 걸까, 이유가 궁금해?”
아, 그래. 기억났다. 그 마을에서다.
청룡 미르각시가 만들어낸 환상의 마을, 던스타. 1408호. 호텔 옆방에서 들려왔던 바로 그 목소리다.
“너는 아직도 헷갈리는 모양이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전혀 모르고 있어. 바보같이.”
나는 고개를 올리려고 했다.
허나 왜인지 머리가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가볍게 짓눌려진 듯, 원하는 대로 잘 올라가지 않았다.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가짜든 진짜든 상관없지.”
“인연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비로소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고,
나는 목소리의 주인과 눈을 맞댔다.
새까만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
검은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
“너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메리와 똑 닮은 얼굴.
“누구야……?”
소녀는 싱긋 웃었다.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이가인.”
그러고는 말했다.
스며드는 목소리로.
“네가 죽인 여동생이야.”
***
비좁은 골목.
「대표님?」
“어, 그래, 나야. 엘리.”
유클리드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벽에 기대어 섰다. 전화기 너머 비서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괜찮으십니까? 바이탈 레벨이 한때 치명적인 수치까지 떨어졌었는데요.」
“하핫, 말도 마. 이번엔 진짜로 죽을 뻔했어. 사실 멀쩡한 척 허세 부리느라 지금도 뒤질 맛이걸랑.”
「카이트와의 거래는요?」
“실패야. 그거 만나 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미친놈이더라. <부름>의 파괴력도 비교가 안 돼. 기껏 흑마법까지 익혀 왔더니 원, 불합리해서 못 해 먹겠네.”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겠군요.」
“아니. 그 반대지. 게임이란 건 원래 난이도가 높을수록 깨는 맛이 있는 거라고.”
「현실은 게임이 아닙니다만.」
“나한텐 게임이야. 불합리한 현실만큼 재밌는 것도 없으니까.”
그는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신 뒤 후 하고 내뱉었다.
“얼레, 나 지금 심장 너무 빨리 뛰는 것 같은데.”
「잘 아시네요. 대표님이 무리하게 날뛰시는 바람에 센서가 망가져서 프로세스 재조정이 필요합니다. 자체 홍채 인식을 위해 AR 렌즈를 벗어주세요.」
“예이, 예이.”
유클리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양 눈에 낀 렌즈를 빼냈다. 렌즈의 컬러는 노랗게 빛나는 황금색이었다.
“자아, 그럼.”
어두운 밤의 밑바닥에서,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컨티뉴는 언제쯤 이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