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Cry Baby (3)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 있는 것은 익숙했다. 삶의 방식에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전과 같은 고초는 더 이상 겪지 않았다. 식사의 수준은 더 나아졌고, 쫄쫄 굶는 일도 적어졌다. 피의 수급도 원활해져 금단 현상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단지―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이가 만들어주던 비프스튜와 비교해, 생으로 뜯어 먹는 쥐의 살코기가 얼마나 맛이 없는지.
누군가를 안고서 잠이 들 때의 따스함과 포근함이, 외로운 잠자리에 있어 얼마나 그리워지는지.
행복의 달콤함을 너무 많이 맛봤기에,
불행의 씁쓸함을 견디기가 어려워졌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해도 괜찮다 생각했건만, 겨우 한 달도 안 돼서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무치는 후회에 괴로워하다, 홀로 모포를 뒤집어쓴 채 잠이 들어 있던 어느 한겨울의 늦은 밤.
―엄마.
꿈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슬피 우는 듯이 여린 목소리가.
―살려줘.
가녀린 속삭임으로,
그녀를 불러 깨웠다.
“……!?”
메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섬과 동시에, 시야의 일부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지금부터 그녀가 가야 할 길을 일러주듯이.
그것은 뱀파이어 특유의 매서운 육감이었을까.
아니면 모성애가 일으킨 일종의 기적이었을까.
어느새 그녀는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두고 온 보육원을 향해.
“하아, 하아……!”
보육원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열두 개의 블록과 일곱 개의 모퉁이를 지나, 한적한 거리에 위치한 녹색 벽돌로 쌓은 건물.
“하아…….”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
….
어둡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밤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깜깜했다.
아니, 검은색이었다. 완전히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곳 주변은 기이할 정도로 검정 일색이었다.
빛이란 개념 자체가 사라진 듯한.
이쪽 세계와 분리된 암흑의 세계.
거미줄처럼 펼쳐진 ‘무언가’의 막. 혹은 결계.
보육원 건물은 틀림없이 그 안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그대로 잡아먹힐 듯한 흑색 공간의 안쪽에.
“…….”
그리고 아이들 또한 이 안에 있을 터.
메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검은 결계의 안쪽으로 지체 없이 한쪽 발을 들이밀었다.
다행히 결계는 그녀를 잡아먹지 않았다.
검은 막의 내부는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기묘한 공간이었다. 마당의 잔디를 밟아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으며, 몸 바깥의 공기를 마시지 않고서도 어째서인지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보육원 건물로 들어가, 복도를 통과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1층. 복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방.
열려진 문의 틈새로, 누군가가 보였다.
검은 로브를 입은 노년의 남자.
얼굴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방의 중앙에 놓인 아기 침대 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두 아이 중 하나를, 두꺼운 왼손으로 살포시 들어서 꺼냈다.
“안 돼!”
메리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노인이 반응했다.
“…….”
이내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노인은 후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시선을 그녀에게 쏘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거 놀랍군. <시간의 틈>에서 움직이다니.”
감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계 해석법을 아는 놈이라 봤자 브리즈 가문의 애송이 아니면 그 썩을 미꾸리 녀석뿐일 텐데. 헌데 보아하니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모양이고.”
“…….”
“그러고 보니 결계를 만들 적에 법칙 적용 예외에다 ‘피붙이’를 조건으로 넣었었지. 보육원에 있으니 당연 친족 하나 없는 고아인 줄로 알았는데.”
노인이 말했다.
“그대는 이 아이들의 어미인가.”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자신이 진짜 어머니라는 사실을 긍정하고 싶었다.
“돌려줘.”
용기를 내어, 돌려달란 말을 뱉었다.
“그래도 괜찮겠나?”
그러자,
노인이 물음표를 띄웠다.
“그대와 함께한다면 필연 불행해질 터이니, 기껏 낳은 쌍둥이를 여기 두고 떠난 것이 아니었는가.”
움찔―.
메리는 그의 말을 듣고서 당황했다.
“무어, 불행 중엔 다행인 일이야. 혹 아이들마저 흡혈귀로 태어났더라면 고생깨나 할 뻔했어. 애비의 피가 옅어서 선천 전염은 되지 않은 모양이지.”
정곡을 찔린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마치 자기 기억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마법사로 보이는 노인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일까.
“걱정 말게. 해코지하려는 것이 아니니.”
“…….”
“슬슬 떠나려던 차에, 마침 좋은 그릇을 찾아 들렀을 뿐일세. 자색 마력을 가진 영아는 흔치 않거든. 모쪼록 어미인 그대에게 감사를 표해야겠군.”
그렇게 말한 뒤, 노인은 한쪽 팔에 짊어 안은 아기의 가슴팍에 자신의 반대쪽 손을 가져다 댔다.
“뭘, 하려는 거야……?”
메리가 물었다.
노인은 곧장 답했다.
“저주. 그와 동시에 축복.”
이어, 노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은은한 보라색 불꽃이 부드러운 담요처럼 아기를 감쌌다.
“이 아이는 내 심장의 그릇이 될 걸세.”
그것은 당장이라도 아기의 숨통을 끊어 놓을 것같이 위태로우며, 영광과도 같이 찬란한 희망의 빛.
“내 심장을 물려받은 그대의 아이는 심연의 왕이 되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불리게 되겠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알 수 없는 전율감이 마음을 통째로 울렸다.
“공허한 태초부터 미래영겁에 이르기까지.”
“시작만이 무한히 이어지는 끝없는 만화경.”
“빛이 없는 그림자. 어둠으로써 만들어 낸 빛.”
한순간 미래가 보였다.
반드시 찾아오게 될 미래가―.
“암귀闇鬼.”
***
유진을 처음 보았을 때.
그때와 같은 울림을 느꼈다.
두근―.
그리움이 속삭이는 소리.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감각.
“엄마야, 아들.”
드디어 찾았다. 찾아내고야 말았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아이와, 사반세기의 세월을 거쳐 이렇게 다시 만났다.
삶이 그 둘을 갈라놓았음에도,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놈은 당신 아들 아니야.”
정말로 그럴까?
정말로 유진은 자신의 아들이 맞는 걸까?
그 수수께끼의 노인은 심장을 물려받은 아이가 미래에 ‘암귀’라 불리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암귀는 벌써 옛날에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과연 유진은 진짜 암귀인 것일까. 아니면…….
“당신 아들은, 어디에도 없어.”
모든 것이 그저 멍청한 착각이었을 뿐.
그녀의 아들은 이미 세상에 없는 게 아닐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유진은 언제나 자신에게 상냥했다.
마치 사랑했던 그이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자신을 위해 헌신해 주었다. 그 따스함만은 진짜였다.
……하지만, 그 따스함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관계가 가짜였다는 것을.
스칼렛의 능력이 아니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날 밤.
메리는 208호 방 안의 침대에 누웠다. 미약하게 남은 유진의 냄새. 그러나 전처럼 짙지는 않았다.
유진이 없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소중한 아이가 사라진 무렵.
어미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찾으러 가야 해.
메리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순간에, 우연찮게도 같은 타이밍에 유진 또한 집을 나서고 있었다.
서로의 동작이 겹쳤지만,
그들은 인지하지 못했다.
제일 먼저 모텔 프런트에 방문했다.
두 사람이 계산대 앞에 서자, <에덴 파크 모텔>의 주인 할머니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았다.
“왜.”
유진이 할머니를 설득하려 애쓰는 동안, 메리는 한참 동안 우물쭈물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저 유진이 어디로 갔는지 알기 위해 CCTV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아무래도 후달리는 소통 능력 탓에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CCTV는 장식이라 보여 줄 거 없어.”
“……?!”
메리는 당황했다. 노인이란 족속들은 죄다 사람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재주라도 있단 말인가?
“그 아가씨 일로 온 거여?”
할머니가 말했다. ‘그 아가씨’라는 건, 아마도 딸인 스칼렛 아니면 시안을 얘기하는 거려나. 메리는 입을 여는 대신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야그는 들었어. 전에 <신월교단> 끄나풀 놈이 여꺼정 쳐 기어들어 와서는 말썽을…….”
뭔가 얘기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냥 유진이 어디 있는지 묻고 싶었을 뿐인데.
“볼일 더 있어?”
결국 메리는 입을 열지 못하고 단념했다.
생각해 보면 스칼렛의 <거짓말 능력>으로 몇 달째 집세 없이 공짜 숙박을 하고 있는 주제에, 괜히 애먼 사람한테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유진을 찾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몫.
엄마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서로의 관계가 가짜였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때 그이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냈던 것처럼.
그저 하고 싶은 일에 불과했다고 해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그녀는 믿었다.
메리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사라진 유진을 찾아서. 도중에 괴이 사냥꾼들이 모인 <신월교단>의 본거지인 <가버나움 예배당>을 지나치기도 했다. 뱀파이어인 그녀로서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드문드문. 눈을 깜빡일 때마다 문득.
콧잔등에서 얼핏 유진의 냄새가 났다.
왜인지 그가 바로 옆에 있는 것만 같았다.
가로등 아래 멈춰 서서 손을 뻗었다. 닿을 리는 없었지만, 닿아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깊은 밤의 모험은 계속됐다.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게 느껴지는 유진의 기척에 이끌려 마침내 그녀가 당도한 곳은, 주택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의 한 버려진 공사장.
―이곳은 위험하다.
그곳에 들어섰을 때 든 생각은 딱 그거였다.
이 이상 안쪽으로 들어간다면 돌이킬 수 없다. 뱀파이어로서의 육감이 신경을 진하게 자극했다.
“…….”
명백히 보이는 죽음의 공포. 끝내 공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그때.
투웅―.
갑작스레 뒷목에 가해진 충격에, 그녀는 쓰러졌다.
“윽……?”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쓰러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헬멧을 쓴 바이커.
이윽고 눈이 스르륵 감겼다. 감각이 흐릿해지며 잠들어 있던 무의식이 곧 전신을 지배했다.
….
….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의식이 돌아왔다.
―뜨겁다.
종이가 타는 듯한 냄새. 거센 열기에 숨이 막히고 어질어질하다. 무엇보다도 아프다. 온몸이 따끔하다.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진 느낌이다.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여긴 혹시 지옥인 걸까? 나는 죽어서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걸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의식을 잃었다 되찾았다를 반복한 끝에.
비로소 불길이 잦아들었다.
차가운 산소가 허파를 정화했다.
메리는 감겨 있던 눈을 지그시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유진의 모습.
“아.”
그립던 얼굴. 그립던 냄새.
드디어 찾았다. 이렇게 다시 만났다.
“아들. 여기 있었네.”
메리는 속삭였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