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Cry Baby (2)
“안 돼, 안 돼, 안 돼…….”
식은땀이 온몸을 뒤덮었다.
나도 모르게 연신 중얼댔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 나와선 안 돼.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아도 소용없다.
―그극. 그그극.
손가락 사이서 죽음이 꿈틀거린다.
악마의 벌레들이 먹이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먹이는…… 내 앞에 있는 그녀.
아무것도 모른 채 두 눈을 감고 있는, 메리.
“안 돼……!”
짓눌린 입술 틈으로 힘겹게 외쳤다.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죽이러 온 게 아니라고.
“멈추라고, 젠장……!”
허나 벌레들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는 듯이 점점 더 날뛰어만 갔다. 악의적인 농담처럼 형체를 비틀고 몸집을 부풀렸다.
이윽고 <부름>의 군체가 서서히,
메리의 피부를 갉아 먹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돌이킬 수 없다. 멈춰야만 했다.
설령 내 오른손을 박살 내는 한이 있더라도.
“크으윽……!”
젖 먹던 힘을 다해 왼손에 <강화>를 부여.
최대 출력의 <폭렬파>까지 더하여, 그대로 오른손을 힘껏 내리쳐 <부름>째로 짓뭉개 버리려 했다.
그러나―
“왜……”
왼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명령을 내렸음에도, 거부했다.
“왜, 도대체 왜…….”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감각.
이것이 악마에게 심장을 바친 대가인가.
―카가각! 카하하하학!
―크카캬카카카칵!
<부름>의 벌레들은 계속해서 증식했다.
사탄의 웃음소리 같은 끔찍한 소음을 내며.
“제발…….”
나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말을 속삭였다.
눈을 감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떨리는 시선으로 이 참상을 바라보는 것뿐.
죽이고 싶지 않았다.
죽게 두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기를 아무리 바라고 또 바라도,
내 바람은 이루어질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제발……!”
나는 왜 울고 있는 것일까.
이 사람이 나한테 무엇이길래, 죽이고 만다는 사실에 이리도 격정적으로 슬퍼하고 있는 것일까.
그 사실만큼은 마지막까지도 알지 못했다.
고통 틈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을 무렵.
문득―
메리가 눈을 떴다.
***
그녀의 첫 기억은,
차갑고 딱딱한 돌바닥.
축축한 공기. 까진 무릎의 곪은 상처.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껴지는 하수구 냄새.
웨스트록과 노스네스트의 경계에 위치한 빈민굴.
거지나 노숙자마저도 눌러앉기를 주저하는 이곳의 가장 깊은 곳, 시궁창으로 이어지는 굴다리의 비좁은 통로야말로, 그녀가 택한 최후의 거처였다.
하수도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물을 받아 마시고, 골목의 쓰레기통을 뒤져 주운 오물 덩어리 따위로 배를 채웠다. 졸려지면 죽은 것처럼 잠을 잤다. 그녀는 줄곧 고독 속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사춘기 이전의 기억은 진작 퇴화되어 지워진 지 오래였다. 이제 와서 떠오르는 것이라곤 아픔과 쓰라림뿐. 적어도 지금의 삶에 불행은 있을지언정, 어린 시절과 같은 무정한 고통은 없음에 감사했다.
지옥과도 그다지 멀지 않은 밑바닥 인생.
악몽의 주역처럼 꾸역꾸역 살아가던 어느 날.
“이런, 놀라라.”
그녀는 첫새벽의 거리에서 한 사내를 만났다.
여느 때처럼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던 자신에게 다가온, 낮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가진 젊은 신사. 그의 등 뒤로는 푸르른 여명이 비춰 오고 있었다.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
“사람이었구나. 너.”
그들은 수유 서로를 마주 봤다. 그녀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평소 사람과 마주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던 그녀임에도, 어째서인지 그랬다.
“쓰레기통에서 뭘 꺼낸 거야?”
“…….”
“이봐, 그런 거 먹으면 배탈 나.”
그녀는 두 눈을 지릅뜨고는 자기 손에 든 것을 꽉 쥐었다. 절대로 그것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듯.
“마침 아침 먹기 전인데.”
허나 신경도 쓰지 않고서,
사내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집 올래?”
처음 보는 낯선 인간이 들이민 상냥한 태도.
경계해야 했다. 이 도시에서 ‘친절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녀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친절을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배가 고팠으며, 추운 겨울 아침의 그 손길은 너무나도 따뜻했기에.
“들어와.”
사내의 집은 주택가에 위치한 큰 저택이었다.
그는 넝마 차림의 더러운 그녀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뜻 집 안에 데리고 들어왔다. 음식물 쓰레기와 하수구 냄새가 진동함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배고프지? 금방 다 되니까 앉아 있어.”
“…….”
“손 씻는 거 잊지 말고.”
그는 마치 부모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잠시 후, 식탁에는 냄비와 접시와 수저가 차례대로 놓여졌다. 상당히 먹음직스러운 비프스튜였다.
먹어도 되는 건가, 그런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내내 공복 상태였던 그녀는 결국 냄새와 비주얼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냠―.
고기와 국물을 같이 떠서, 입 안에 넣었다.
…
…
맛있다.
제대로 만든 요리 같다.
“맛있어?”
“…….”
“천천히 먹어.”
그녀는 정신없이 스튜를 퍼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어쩌면 이런 정상적인 음식 자체를 처음 먹는 것일지도 몰랐다.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처음으로 느낀 ‘행복’이란 감정.
“참고로 공짜로 준 건 아니야.”
“……?”
“실은 말이지, 이 넓은 집에 혼자 살기 적적해서 그런데, 혹시 나랑 여기서 같이 살지 않을래?”
“…….”
“밥은 매일 해줄게. 넌 그냥 옆에만 있어 줘.”
그녀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는 몰라도, 이 남자 옆에 있으면 앞으로 좀 더 많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때로 그런 종류의 ‘행복’을,
더러 ‘사랑’이라 부른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언젠가는 알게 될 터였다.
사내는 그녀에게 메리Merry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크리스마스에 만났으니까, 라는 게 이유였다.
사내는 뱀파이어였다. 정기적으로 사람의 피나 고기를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었기에, 필요할 때마다 메리가 나서서 그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단순히 돌봐주는 대가로 피를 제공하는 정도의 관계에 그치지 않았음은 서로가 알았다.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더없이 즐거웠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그야말로 축복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물론…… 행복이 영원하지는 않았다.
수년 뒤의 어느 날, <신월교단>의 괴이 사냥꾼들이 집에 들이닥쳐, 사내는 무참히 살해당했다.
메리는 도망쳤다. 숨 가쁘게 오열하며.
살아야 했다. 그가 그러라고 말했으니까.
도망친 끝에 다다른 곳은, 자신이 원래 살던 곳.
그 누구도 찾지 않는 버려진 터전. 하수구 통로.
그렇게 그녀는 지옥으로 돌아왔다.
다시 꾼 악몽은 기억보다도 비참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느샌가 그녀 역시 뱀파이어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없이 그에게 목을 깨물렸고, 사모하는 마음이 동조한 까닭이었다.
달빛이 비치는 밤이 올 때마다, 그녀의 몸은 한사코 피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는 일정 시간 이상 피를 섭취하지 않으면 이성과 자아를 잃게 된다.
혈귀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레서 뱀파이어는 노블 뱀파이어에 비해 그 주기가 매우 짧았다.
예전처럼 썩은 빵 쪼가리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시궁쥐를 잡아 생살을 뜯어 먹으며 버텼다. 다행히 뱀파이어로서의 삶에도 점차 요령이 생겼다.
하수구에서의 삶에 다시금 익숙해졌을 즈음.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쯤이었다.
“우읍.”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찾아오는 구역질.
배 속에 채워진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물감.
―아이를 밴 것이다. 이젠 세상에 없는 그이,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을 했던 사내의 아이를.
그녀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하루가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다달이 지났다.
말라빠진 몸에 어울리지 않게 산만큼 돋아난 배. 양수가 터진 순간, 곧 시작되리란 것을 알았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틀림없었다. 사내와 만난 날이었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고통을 안고 이겨내는 것은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쌍둥이였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두 아이 모두 자신과 똑 닮은 보라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쌍둥이를 끌어안았다. 갓난아기의 몸은 여름날의 햇살보다 더 따스했다.
불행했지만 행복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것 역시 사랑일까.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웃음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메리는 결심했다. 살아가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자고, 그리 마음먹었다.
설혹 사랑하는 그이가 다시 살아나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 해도, 그 결심이 흔들릴 일은 없었다.
깨끗한 물을 구하고, 유통기한이 남은 통조림을 찾아내, 아이들에게 먹였다. 자신은 굶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들을 굶기지는 않았다. 그녀의 모성은 강인했다. 거듭 말하지만, 결코 흔들릴 일은 없었다.
그러나―
“……어……?”
흔들리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저지르기 직전까지 눈치도 채지 못했다. 서럽게도 질러 대는 울음소리가 귀를 때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기의 목덜미에 새겨진 이빨 자국.
퍼렇게 송곳니를 세우고 있는 자신.
“흡.”
그녀는 화들짝 놀라 얼른 입을 다물었다.
소름이 끼쳤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아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 자식을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피 냄새를 참지 못해, 뱀파이어로서의 본능대로 행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그녀의 두 눈에 현실이 보였다.
두 아이의 엉망으로 부르튼 입술과 드러난 갈비뼈, 덕지덕지 때와 곰팡이가 묻은 빳빳한 피부.
공기가 독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이곳은 빈민굴의 오염된 하수구다. 젖먹이를 기르기에는 도저히 적합하지 않은 쓰레기 같은 환경이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이런 곳에서는 아기를 키울 수 없다. 키우겠다고 결심한 것 자체가 용서받지 못할 욕심이었다.
왜 이제야 깨달은 걸까. 지금껏 자신은 갓 태어난 두 아이를 정성을 들여 학대한 것에 불과했다.
머지않아 이 아이들은 죽고 말 것이다.
무능하고 나약한 어미 탓에, 지상의 햇빛을 보는 일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곧 죽어 버리겠지.
메리는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선택해야 했다. 올바른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그날, 해가 지고서 두어 시간쯤 지났을 무렵.
그녀는 어느 보육원 입구에 아이들을 두고 떠났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면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살아만 있어 준다면.
그래,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