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Cry Baby (1)
3일 전.
에덴 파크 모텔.
쿠웅―.
거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메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밖으로 나가 버렸고, 이제 방 안에는 심통이 난 소녀만이 남아 있었다.
“아이씨, 일 났네…….”
스칼렛은 뒷머리를 박박 긁었다.
쓸데없이 저지르고 말았다. 딴 사람이라면 몰라도, 마더한테만큼은 초능력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뭐, 능력은 해제하면 그만이니까.
것보다 마더는 또 가출해 버린 건가.
……찾으러 가야겠지.
지난번처럼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고 그러면 곤란하다. 밥 문제는 고사하고, 어디 이상한 데 가서 괴이 사냥꾼한테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치만 용써서 집에 데려와 봤자.
……또 지 아들내미한테 가버릴 텐데.
마더가 미웠다. 마더의 애정을 몽땅 뺏어간, 그 암귀인가 뭔가 하는 아들자식은 더더욱 미웠다.
그렇다고 뭐 어찌할쏘냐.
힘 약한 어린아이인 자신은 그저 엄마를 찾아 부르짖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으으응, 스칼렛? 어디 가?”
“마더 찾으러.”
“마더는 어디 갔는데?”
“몰라. 넌 잠이나 쳐 자고 있어.”
철컥―.
스칼렛은 시안을 내버려 두고 방에서 나왔다.
그즈음, 문간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뾰로통한 표정의 붉은 머리 소녀에게 스리슬쩍 말을 걸었다.
“안녕.”
스칼렛은 움찔했다.
이 남자는, 아까 집 앞에서 마더와 대화를 주고받았던 그 녀석이다. 왜 아직도 여기에 있지?
“엄마 찾으러 가니?”
“…….”
“우리 친구, 참 기특하네. 걱정 말렴. 아저씨는 나쁜 사람 아니니까. 적어도 너랑 네 엄마한테는.”
웃는 얼굴이 묘하게 사악했다.
저번에 얼핏 보았던 마더의 아들, 208호에 사는 남자와 상당히 분위기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또,
왠지 모르게.
“아저씨가 도와줄까?”
메리와도 닮아 있었다―.
***
<현혹>.
정신 조작계로 분류되는 사이오닉 마법.
그것은 이름 그대로, 대상자에게 일시적으로 감정상의 혼란을 일으켜 현혹시키는 마법이다.
일반적으로 <현혹>은 그다지 강력한 마법이 아니다.
우선 비전투용 마법, 소위 ‘데일리 매직’들이 으레 그렇듯 전투 중에 활용한다는 건 불가능했기에, 실전성을 추구하는 마법사들의 외면을 받았다.
또한 <현혹>의 원리는 술사의 매력, 혹은 술사가 펼치는 논리의 설득력을 올려주는 일종의 페로몬 상승 패시브에 가까웠기에, ‘마법’이란 이름값에 걸맞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예외는 있었다.
유클리드 진.
뱀의 혀를 지닌 마인魔人.
“그래. 그동안 참 힘들었겠구나, 스칼렛.”
<현혹>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누구라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그의 말을 들은 모두가 감명을 받고 이성을 지배당했다.
“엄마를 되찾고 싶은 거지?”
“…….”
“모두가 행복해질 방법이 있어.”
이브에게 선악과를 건네준 뱀처럼.
“내가 알려줄게.”
그는 그렇게, 달콤한 유혹을 속삭였다.
***
<상대가 거짓말을 믿게 하는 능력>.
스칼렛이 가진 그 힘은, 단순히 대상이 어떤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데서만 그치지 않는다.
그 능력의 진가는,
‘인지 조작’에 있다.
인간의 뇌는 인지에 따른 경험을 한다.
만약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어떤 물체가 시야에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것이 거기에 있다고 인지한 순간에야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코가 보이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뇌는 시야 중심에 위치한 코의 존재를 인지했고, 이제는 왼쪽 아래와 오른쪽 아래에 있는 희미한 콧등의 실루엣이 보일 것이다.
스칼렛의 능력은 거짓을 진실로 바꾼다.
이는 곧, 인지 자체를 통째로 변화시킨다.
“그놈은 당신 아들 아니야.”
“당신 아들은, 어디에도 없어.”
두 번의 거짓말. 진실이 된 거짓.
스칼렛의 능력으로 인해, 메리의 인지는 이렇게 변했다.
―유진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다.
―아들은 어디에도 없다. 사라졌다.
인지의 상실은 존재 자체의 상실을 낳는다.
그 결과, 메리의 눈에는 더 이상 유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다. 인지에 맞춰 사라진 것이다.
유클리드는 스칼렛을 꼬드겼다.
그는 소녀가 유진에게 접근하도록 시켰다. 그리고 초능력을 발휘해, 유진의 인지를 바뀌게 했다.
어젯밤. 늦은 새벽.
스칼렛은 조심스럽게 208호 방 안으로 들어섰다. 유진은 침대에서 곯아떨어진 채로 있었다.
“…….”
그리고,
바로 옆에는 메리가 누워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아들의 흔적을 따라, 보이지 않는 아들의 옆에서, 그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스칼렛은 그녀가 미웠다. 그녀의 애정을 몽땅 뺏어간, 눈앞에 있는 아들자식은 더더욱 미웠다.
“움직이지 마.”
전부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남자가 시킨 대로만 한다면.
“이건 권총이야. 움직이면 쏠 거야. 고개 돌리지 말고 그대로 있어. 내 허락 없이는 숨도 쉬지 마.”
<상대가 거짓말을 믿게 하는 능력>.
리모컨을 들고서 ‘이건 권총이다’라는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게 한 순간, 능력의 대상에게 있어 해당 리모컨은 실제로 권총이 된다.
“마더가 사라졌어.”
메리가 사라졌다고 믿게 한 순간.
유진의 세계에서, 메리는 사라졌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단지―
서로가 보이지 않았을 뿐.
***
불꽃이 이글댔다.
타오르는 자색 광염 사이로, <부름>의 벌레들이 봄철 끝자락의 벚꽃 잎처럼 광활하게 흩날렸다.
그 중심에는…… 메리가 있었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장소였다.
“안 돼!”
나는 반사적으로 외침과 동시에 손을 뻗쳐, 뿜어져 나가던 불꽃과 벌레를 도로 불러들이려 했다.
―크카칵!
―카가가가각!
허나 <강화>를 머금은 <부름>은 쉽사리 제자리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벌레들은 정글짐에 매달린 사고뭉치 악동처럼 이를 악물고 거세게 버텼다.
“크으으윽……!”
점차 폭주하기 시작한 <부름>의 군체가, 이윽고 땅바닥에 있는 메리에게 쏟아져 내리기 직전.
“젠자아아앙……!!”
나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전신의 마력을 손끝에 뭉쳤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귀를 때리는 강한 울림과 함께,
거대한 섬광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하늘로 쏘아 올린 <폭렬파>.
자폭이나 다름없는 한계 출력.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불꽃이 통째로 증발했다. 폭발에 휘말린 <부름>의 벌레들은 허공에서 갈 데를 잃고 방황하다 이내 아지랑이처럼 스러졌다.
“허억.”
시야에 다른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폭렬파>의 반동으로 제 몸에 받은 대미지 따위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는 메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앞길을 막아섰다.
“안 되지, 한눈팔면.”
<투명화>로 숨어 있던 유클리드.
놈이 공격해 온다. 정면에서 오는 건가?
―아니. 뒤쪽이다.
검은 그림자는 연막탄으로 만든 디코이.
진짜 공격은 뒤에서 올 것이다. 나는 타이밍에 맞게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방어 태세를 취했다.
역시나.
놈은 내 등 뒤에 있었다.
“오호?”
피캉―!
왼팔에 두른 <포스 배리어>로 후두부를 찌르고 들어온 유클리드의 검격을 가까스로 튕겨냈다.
놈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벌어진 틈새로 곧바로 이어 권총 사격.
탕. 탕. 타앙―!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 지근거리에서의 저지 및 살상을 위한 교과서적인 모잠비크 드릴.
물론 그리 쏠 것을 알고 있었다.
총격에 대비해 <강화>를 한 점에 뭉쳐 집중적으로 방어. 웬만한 마탄도 이것을 뚫지는 못하리라.
완벽한 수비 다음은 반격할 차례.
언제나 그렇듯이, 마력은 충분하다.
“카인 나호르.”
다시금 꺼내든 <부름>.
군체가 먹이를 향해 달려들기 직전, 놈은 무언가 이상을 감지했는지 곧장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밤을 시끄럽게 달궜던 불길이 멎고,
이제 차갑기 그지없는 고요가 흘렀다.
“…….”
“…….”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마주만 보았다.
나는 오른손의 <부름>을 거두지 않고 기다렸다.
유클리드는 한참을 침묵 속에 가만히 머물다가―
“하핫.”
나직하게 웃는 소리로써, 길었던 정적을 깼다.
“신기한 기분이야. 아까부터 너한테 내 속셈을 완전히 간파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정작 나도 네가 뭘 할지 전부 다 훤히 보이고 있거든.”
놈은 손에 쥔 권총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우린 서로 정말 닮았어. 어쩌면 아주 어렸을 적에 생이별한 형제 사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
“그러고 보면, 나랑 너랑은 이름도 꽤 비슷한 느낌이잖아? 나는 유클리드Euclid. 너는 유진Eugene. 둘 다 ‘Eu’가 중복되는 거, 이게 정말 우연이려나? 맞아, 한국인의 이름에는 형제끼리 공유해서 같이 쓰는 돌림자라는 게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저 혼자 신이 나서는 뭐라 뭐라 궁시렁궁시렁 떠들어 대는 놈의 말을 도중에 내가 끊었다.
“그 유진 아니야.”
“음?”
“한국식 이름인 유진Yujin이다. ‘E’가 아니라 ‘Y’를 쓰고, ‘gene’ 대신 ‘jin’이라 쓰지.”
내 말에 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 알다시피 나는 괜한 타이밍에 굳이 TMI를 꺼내서 분위기를 박살 내는 재주가 있는지라.
“개소리 집어치우고 덤비기나 해, 개자식아.”
이번엔 내 쪽에서 도발해 주었다.
최대한 알기 쉽게. 정성을 담아서.
―놈을 죽이고, 메리를 구한다.
계획은 지극히 단순했지만,
일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싫어.”
놈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한마디.
“……뭐?”
“글쎄, 몇 번을 말해? 난 여기 싸우러 온 거 아니라니까. 그리고 내 목적은 진즉에 다 이뤘거든.”
어쩐지 대놓고 놀리는 듯한 어조.
그러나 놈이 하는 말은 진심이었다.
“오늘은 나와 줘서 정말 고마워.”
“…….”
“아무렴. 덕분에 확신이 생겼어.”
유클리드의 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놈이 쓰는 흑마법, <투명화>의 신호였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친구.”
―이대로 놓칠까 보냐.
나는 사라지는 놈의 얼굴을 노려 오른손을 힘껏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손에서 뿜어져 나온 <부름>의 벌레들이 빠르게 솟구치며 그리로 날아갔다.
….
….
하지만.
닿지 않았다.
놈이 모습을 감춘 지 10초도 되지 않아, 곧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주변 어디에서도 불온한 위협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비로소 평화로워졌다.
“…….”
그리고 놈의 존재가 없어지자마자 이내,
내 머릿속은 한 가지로만 꽉 차게 되었다.
“메리.”
고개를 휙휙 돌아보며 주변을 살폈다.
공터 한가운데의 모래밭에 그녀가 있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음박질하여 그쪽으로 향했다.
“메리!”
쓰러진 그녀의 용태를 다급하게 살폈다.
의식은 없지만 숨은 쉬고 있다. 살갗은 군데군데 심한 화상을 입어 엉망이었지만, 이외에 달리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만 기절해 있을 뿐이었다.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메리는 뱀파이어라서, 은제 무기나 신성 마법에 당한 상처가 아니라면 금방 낫는다고 들었다.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다.
하마터면 내 손으로 그녀를 죽일 뻔했다.
<부름>이 제때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미안해요, 메리.”
나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죄책감을 담은 한마디였다.
자, 이젠 돌아갈 시간이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하는데.
두근―.
….
….
뭔가.
뭔가가 이상했다.
두근―.
속이 뒤집혀 메스껍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다.
두근. 두근. 두근―.
누군가 속삭이고 있다.
들은 적 있는 목소리다.
언젠가.
내가 이야기했었지.
머릿속에서 울리는,
불길한 과거의 목소리.
너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꼭 살아 줬으면 하는 순간에.
듣고 싶지 않았다.
들어서는 안 됐다.
네 손으로 죽여 달라고.
뭔가가 이상했다.
뭔가가 잘못됐다.
기억하고 있느냐?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그것이,
지금이다―.
….
….
허나 매정하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두근―.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슬렁거리는 죽음의 촉감.
“아.”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느릿하게,
벌레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