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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53화 (153/201)

153화. You Know My Name (2)

밤하늘 아래.

정적이 흘렀다.

“웁스.”

유클리드 진은 살짝 벙찐 표정이었다. 아무렴 자기 혓바닥 놀림에 넘어가지 않은 상대는 그동안 만나본 적이 별로 없을 테니 벙찌는 것도 당연한가.

“거절한 거야, 지금?”

“그래. 네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어.”

“하핫, 이건 또 의왼데. 당연히 수락할 줄 알았더니.”

놈은 피식 웃었다.

“역시 날 못 믿겠어서 그러는 건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놈의 말이 정답이었다.

―잊지 말자. 저 녀석이 ‘나’라는 것을.

놈의 행동 원리가 게임 속 내 모습 그대로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놈을 믿어서는 안 된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는 항상 상대의 뒤통수를 어떻게 후려쳐야 잘 후려쳤다고 소문이 날까를 고민하고 다녔던 망나니 쓰레기였기에.

사기와 배반. 속임수와 야바위.

폭력. 살인. 학살. 죽이고 또 죽이기.

현실이라면 결단코 하지 않았을 온갖 미친 짓거리들을, 게임 속의 나― ‘유클리드 진’은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는 것마냥 일상적으로 해냈다.

적으로 둬서는 안 되는 놈이지만,

아군으로 둬서는 더더욱 안 된다.

“뭐, 하긴 오늘 처음 보는 놈이 다짜고짜 자기 대역을 해주겠다 나서면 의심부터 드는 게 필연이지. 지금으로서는 신용이 부족한 것도 팩트고.”

“…….”

“내친김에 하나만 더 물을게. 혹시 어떤 식으로든 나랑 같이 일할 생각은 전혀 없는 건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의미는 전달되었다.

“정말이지 아쉽게 됐네. 그쪽이랑은 꽤 좋은 비즈니스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유클리드는 혀를 차며 혼잣말하듯 속삭였다.

“하여간 이제 서로 볼일은 더 없겠군.”

목소리의 끝자락에서,

나직한 살기가 느껴졌다.

“대화는 이걸로 끝이야. 유진 연.”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한 공격적인 분위기. 싸움의 전조가 특유의 비릿한 냄새로써 달아올랐다. 이곳이 전장이 되기까지 앞으로 금방임을 알았다.

“자아, 그럼…….”

살기는 이제 거의 눈에 선명할 정도.

나는 놈이 기습해 올 것에 대비했다.

….

….

허나.

기습은 없었다.

“다음에 보자고, 친구!”

막상 날아온 것은 보조개 띤 미소와 작별 인사뿐. 분위기 또한 순식간에 평화로운 느낌으로 변했다.

나는 가만히 유클리드의 동태를 살폈다. 놈은 빈틈투성이였다. 싸울 의도는커녕 아예 싸움이 일어날 거란 가정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

“설마 내가 제안을 거절당했다고 선빵이라도 날릴 거라 생각했어? 거참, 사람을 뭘로 보고! 나 지금 그쪽이랑 싸우러 온 거 아니거든? 얘기했잖아. 난 그냥 대화가 하고 싶어서 왔을 뿐이라니까.”

놈이 툴툴대며 말했다.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당장 여기서 나와 한바탕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으니까.

일단, 내가 걱정한 것보다 유클리드 진이 사실 좋은 녀석이었을 가능성은…… 아마도 전무.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하자면, 현재 놈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지 않은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지금 나와 붙어서 얻을 게 없으니까.

내가 놈을 경계하고 있는 만큼, 놈도 나를 경계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껄끄러운 상대. 최소한 적으로 두고 싶지는 않은 존재.

어쨌든 나에게도 나쁜 흐름은 아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유혈 사태 없이 상황을 좋게 좋게 마무리하고, 천천히 추후를 대비할 수 있을 터.

“…….”

그렇지만, 한 가지.

아직 해결할 게 남아있다.

“메리는 어디 있지?”

“응?”

“그녀가 없어진 것도 네가 한 짓이라며.”

유클리드는 고개를 까딱댔다.

“아아, 맞아. 깜빡할 뻔했네.”

“…….”

“잠깐만 있어 봐. 금방 알려줄게.”

그렇게 말하더니, 놈은 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여유로운 동작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난데. 그 모텔에 사는 뱀파이어 아가씨. 어. 지금 어디에 있어?”

통화는 길지 않았다. 놈은 전화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고는 나를 바라보며 슬쩍 눈짓을 날렸다.

“근처에 있다는군.”

“…….”

“따라와. 이쪽이야.”

유클리드는 발걸음을 돌려 공사장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간격을 유지한 채로 놈의 뒤를 쫓았다.

우리가 다다른 곳은 처음에 있었던 장소보다 월등히 널따란 빈터였다. 원래는 공사용 자재를 보관하는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새벽녘의 은은한 달빛을 머금은 회색빛의 휑한 모래밭일 뿐이었다.

모래밭 중앙에는 사람 두 명이 서 있었다.

헬멧을 쓴 바이커. 지나 드비토의 분신 2체.

나와 유클리드가 온 것을 보자마자, 두 명의 바이커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녀들이 서 있던 곳의 바닥엔,

무언가 뭉툭한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다.

자갈로 대충 쌓아 올린 작달막한 돌무더기.

중앙 부근에 철제 십자가가 꽂혀 있는, 무덤.

그것은 분명 <신월교단>의 ‘괴이 사냥꾼’들이, 괴이종을 사냥하고 난 뒤에 세우는 표식이었다.

“저기야.”

그 무덤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놈이 말했다.

“……뭐?”

나는 아주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봐. 저기에 있잖아. 네가 찾는 그녀가.”

내 시선은 저 끝에 보이는 무덤에서 멈췄다.

“왜 그래? 안 보여? 저기에 있다니까?”

돌무더기의 주변에는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검붉은 핏자국들이 여전히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사냥꾼들은 표식으로 쌓은 무덤 맡에 사냥감의 머리카락과 같은 잔재를 남겨 놓는다고 한다.

메리의 머리카락은 따로 염색한 것처럼 진한 검은색이었다. 실오라기처럼 가녀리지만 한번 손가락으로 어루만져보면 의외로 탄탄한 감촉의 직모.

흙바닥 위에 외롭게 떨어져 있는,

저 머리카락 뭉치는 그녀의 것일까.

“표정이 왜 그래?”

옆에 있는 놈이 넌지시 물었다.

나는 그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웃고 있었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양.

숨길 기미도 없이 대놓고.

무척이나 값싼 도발이었다.

효과적이었음은 부정치 않겠다.

“카인 나호르.”

나는 이미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

아지랑이.

혹은 기이한 꿈틀거림.

유클리드가 목격한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어렴풋이 들린 속삭임에 이어, 상대의 손아귀에서 아른거린 보랏빛의 무언가가 얼핏 보였을 뿐.

시각이 미처 다 확인하지 못한 정보를,

육감은 그걸 본 순간 단번에 파악했다.

―죽음.

뇌간에서부터 찌릿한 감전이 느껴졌다.

몸의 주인에게 세포가 보내는 경고였다.

‘온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관한 판단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유클리드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타앗―!

그는 발치에 힘을 주어 뒤로 펄쩍 뛰어올랐다.

약 10미터. 한 걸음의 뜀박질로 단숨에 상대와의 거리가 벌어졌다. 이 정도면 안전한 거리였다.

거리를 벌린 직후 생겨난, 미세한 방심의 틈.

어느샌가 날아온 불꽃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화아아아악―!

자색 마력으로 형성된 불꽃 탄환.

화염 속성의 파괴 마법 <버닝 샷>.

불꽃 탄환의 개수는 대략 예닐곱 개.

피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유클리드는 가벼운 동작으로써 <버닝 샷>의 세례를 무마시켰다.

그리고.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유클리드의 눈에 그것이 보였다.

그그그그극―.

아지랑이. 혹은 기이한 꿈틀거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죽음의 벌레.

그그극. 그극―!

그 벌레는 기괴하게 울부짖으며 허공을 날았다.

일렁이는 분노의 대상은…… 바로 유클리드였다.

카가가가가가각―!

형언할 수 없는 공포. 자색 군체가 마치 휘둘러진 채찍처럼 날카롭게 뻗쳐지며 그를 덮쳤다.

피할 수 없는 각도였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란 사실이 명백했다.

유클리드는 상체에 걸치고 있던 외투를 신속하게 벗어 군체가 있는 방향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음은 금세 드러났다.

벌레들은 유클리드의 얼굴 대신 그의 재킷을 먹는 데 만족해야 했다. 옷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젠장, 비싼 코트인데.”

유클리드는 짧게 신음했다.

겉으론 여유로운 행색이었으나, 실상 그의 머릿속은 내색지 않는 와중에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방금 그게 <부름>인가.’

소문만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암귀의 흑마법. 가장 위험한 비술.

<부름>을 눈앞에서 보고도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기에, 어떤 마법인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이렇다. 그 흑마법은, 오직 상대를 죽이는 것에 두려울 정도로 특화되어 있다.

‘일단 보아하니, 닿은 물체를 순식간에 녹이는 마법. 아니, 그보다는 산화시키는 것에 가깝나?’

‘<버닝 샷>에 <부름>을 섞었어. 혼효 마법도 아니고 그냥 억지로 같이 날려 보낸 것에 불과해.’

‘그렇다는 건, 애당초 <부름>은 원거리에서 효과적으로 먹힐 만한 공격 수단이 아니란 얘기겠지.’

유클리드는 저만치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부름>을 쓴 흑마법사, 유진은 불길한 보랏빛으로 뭉글거리는 곰팡이 구름에 휩싸여 있었다.

‘워우, 가까이 갔다간 뼈도 못 추리겠는데.’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는 위협적인 전투태세. 섣불리 다가가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흐음.’

유클리드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곧이어 저 멀리 떨어진 상대를 조준했다.

탕. 탕. 타앙―!

세 번의 총성과 함께 발사된 세 발의 총알.

그러나 탄환이 유진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날아간 권총탄은 <부름>의 군체에 그대로 잡아먹혔다.

‘양이 부족한가?’

유클리드는 품에서 다른 권총을 한 자루 더 꺼내, 양손에 아킴보 형태로 쌍권총을 쥐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상대를 향해 총을 마구 난사했다.

타탕! 타타탕! 타타타타탕―!

수십 발의 총성. 그리고 수십 발의 총알.

하지만 결과는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몇 발이 쏟아지든 상관없이 군체는 총알을 전부 집어삼켰다.

‘양이 아니면, 질적인 문제려나?’

유클리드는 난사를 잠시 멈추고, 오른손에 쥔 권총에 따로 은색으로 빛나는 탄을 한 발 장전했다.

<마법 돌파 술식>을 머금은 S클래스 잭슨 할로우 매그넘 마탄. 한 발에 3,000달러가 넘는 고가의 탄환으로, 역사 속 수많은 대마법사의 대가리를 꿰뚫은 전과가 있는 유서 깊은 대對마법전용 병기다.

‘어디.’

타아아아앙―!

방아쇠를 당긴 순간, 은빛 광휘가 폭발했다.

마탄은 영롱한 직선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다.

탄환은 공기를 찢어발기고 밤하늘을 낮처럼 밝게 비추었지만, 끝끝내 자색 군체를 통과하진 못했다.

빛줄기의 마지막은 여지없이 보랏빛 암흑. 그 무엇도 유진의 <부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하핫.”

실로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

오랜만에 느끼는 벅찬 감정이었다.

“재밌겠는데.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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