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Vampires Will Never Hurt You (3)
나는 우선 <에덴 파크 모텔> 210호 방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은 뒤, 잠시 혼자 내 방으로 돌아왔다.
“…….”
방 안에 혹시라도 남아 있을 라벤더의 잔향을 맡으려 애썼으나, 느껴지는 향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우웅―.
그때쯤 울린 휴대전화 진동.
「헤이, 보스.」
「표식을 찾았어.」
「보스가 말한 대로, 확실히 <신월교단> 애들은 종교적인 메모랄까, 괴이종을 사냥한 뒤에는 반드시 그 자리에 흔적을 남기는 게 일종의 루틴인 모양이야.」
지나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일단 지금까지는 두 군데.」
「폐건물과 공사장에 각각 돌무덤이 세워져 있었어. 달빛이 비추는 곳에선 꼭 보이게 해놨더라고.」
「두 곳 다 하루 이틀쯤 지난 핏자국이 있었던 걸로 봐서는, 뭔가 피 튀길 만한 일이 벌어졌었단 얘기겠지.」
작업을 맡긴 게 불과 한 시간 전인데, 생각보다도 훨씬 빠른 일 처리 속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 주소 첨부해서 메시지로 보낼게.」
「수고비 입금은 현찰 다이렉트로 부탁~.」
괴이 사냥꾼의 표식이 있다는 장소는 모텔에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만약 메리가 실종된 것이 <신월교단>과 관련돼 있다면, 높은 확률로 이곳에 단서가 있을 터였다.
허나 들르는 것은 나중의 일.
당장은 가까운 곳 먼저 시작하자.
“실례합니다.”
나는 모텔 프런트에 방문했다.
이 시간이면 보통 집주인 할머니의 손녀인 페니가 계산대를 보고 있곤 했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마주치게 된 이는 의외로,
집주인 할머니 본인이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사장님.”
“…….”
날카로운 눈매. 얼음장 같은 시선.
<에덴 파크 모텔>의 주인 할머니는 뭐라고 해야 하나, 예전부터 인상이 참 무뚝뚝하시구나 싶었다.
“뭣 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들렀는데요.”
“…….”
“방 앞 복도에 CCTV가 있던데, 혹시 녹화된 영상을 좀 볼 수 있을까요?”
할머니의 반응은 글쎄…….
별로 그렇게 곱지는 않았다.
“왜.”
그나마 고무적인 건,
목소리를 들었다는 점.
페니네 할머니가 말을 하는 장면을 포착한 것은 이 모텔에서 지낸 6개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CCTV를 보려는 이유, 말인가요…….”
‘사라진 메리를 찾기 위해서’라는 말을 쓰는 대신, 어떻게든 할머니한테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다. 전부 다 설명은 못 해도, 최소한의 설득은 해야만 했다.
“중요한 일입니다.”
“…….”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경찰을 부르거나 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런 식으로 괜히 소란이 벌어지는 건 사장님께도 물론 폐가 될 테니까요.”
집주인 할머니의 시선이 나를 슥 훑었다.
“CCTV는 장식이라 보여줄 거 없어.”
“……아. 그런가요.”
위아래 다음은 양옆으로, 그 이후에는 꼭 내 옆에 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눈길을 그쪽에 두었다.
“그 아가씨 일로 온 거여?”
흠칫―.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맞습니다.”
정곡을 찔렸다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기야 어쭙잖게 숨길 필요도 없었던 걸까.
“야그는 들었어. 전에 <신월교단> 끄나풀 놈이 여꺼정 쳐 기어들어 와서는 말썽을 쪼매 피웠다지.”
“…….”
“머 인자 걱정은 말어. 여 묵는 아들 중에서도 교단 놈이 한 놈 있는디. 고놈헌티 나가 잘 말해 뒀응께. 거 아가씨 주변엔 다씨는 얼씬도 못 할 기여.”
집주인 할머니는 메리가 <신월교단>의 괴이 사냥꾼에게 습격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그녀의 정체가 실은 뱀파이어라는 것 또한 당연하다시피 인지하고 있다는 이야기.
메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수상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볼일 더 있어?”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평범한 모텔 주인 할머니가, 도대체 어떻게 상황을 이만치로 꿰뚫어 보고 있는 걸까.
“…….”
다만 지금 꺼내진 말들로 미루어 보아, 아직 그녀가 실종됐다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는 듯했다.
“……아뇨.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드리고 프런트 밖으로 나왔다.
구체적인 정황은 모르겠지만, 집주인 할머니는 메리의 안전을 여러모로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머 인자 걱정은 말어. 여 묵는 아들 중에서도 교단 놈이 한 놈 있는디. 고놈헌티 나가 잘 말해 뒀응께. 거 아가씨 주변엔 다씨는 얼씬도 못 할 기여.”
……<신월교단>의 짓이 아닌 건가?
……아니. 할머니 말이 진짜이긴 한가?
주인 할머니가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하지만 완전히 신뢰할 수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를 속일 이유는 없다 치더라도, 현재 상황을 100% 파악하고 계시진 않은 모양이었으니까.
파악과 판단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단서가 없으므로 단서를 찾아야 했다.
찾을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
웨스트록 11구역.
<가버나움 예배당>.
한적한 주택가의 외곽 동산에 자리한 오래된 옛 교회 건물. 첨탑과 십자가. 성모 마리아의 동상.
나는 물이 흐르지 않는 배수로 옆 돌계단을 따라 교회 정문을 향해 똑바로 걸었다. 면류관을 뒤집어쓰고서 꿋꿋이 나아가는 순교자의 행군처럼.
끼익―.
교회의 나무 문은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던 것같이 뻑뻑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자, 성경책 냄새가 진하게 콧속을 누볐다. 곧 촛불보다 조금 더 밝은 정도의 달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와 내부를 비췄다.
중앙의 단상 앞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회갈색 머리의 신부.
벽면에 매달린 붉은 십자가 아래에 초라하게 굽어 있는 그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나약해 보였다.
잠시 후.
내가 그쪽을 향해 다가가자, 곧 신부가 일어섰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도하러 오셨습니까.”
가볍게 미소 지은 얼굴.
의외로 젊은 인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가 옆으로 살며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걸어가 대신 단상 앞에 섰다.
“먼저 가면을 벗으시지요.”
“…….”
“‘얼굴 없는 자’는 아버지를 뵐 수 없습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가면을 벗어 바닥에 내려놨다.
“무릎을 꿇으시기 전에, 헌금을 내셔야 합니다.”
기도를 올리기 직전, 신부가 다시금 나를 제지했다. 눈짓이 향한 곳에는 봉헌함이 놓여 있었다.
“꼭 필요한 과정인가?”
“5초간의 무릎 꿇기와 50센트 동전 하나. 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비용치고는 제법 싼 편 아닙니까.”
이번에도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헌금을 내고서 무릎을 꿇었다. 기도는 짧았다.
“당신은 이 짓을 몇 번이나 했지?”
“자주.”
“소망이 이뤄진 적은 있었나?”
“전혀.”
“아직도 신이 있다고 믿나?”
“그럴 리가요.”
“근데 왜 이런 데서 일하지? 봉급이 좋은가?”
“보험입니다. 제 믿음이 틀렸을 경우를 대비한 또 다른 믿음이죠. 자기가 암에 걸릴 거라 굳게 믿어 마지않아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듣고 보니 합리적이군. 내 보험도 하나 부탁하지, 보험설계사 양반.”
“가입 조건이 되려나 모르겠군요.”
신부는 웃으며 말했다.
“수천의 생명을 앗아간 사탄이 죽어서 가게 될 곳은, 아무래도 지옥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나는 말없이 있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암귀 카이트.”
가면 쓰고 있던 것만으로 알아챈 건가.
뭐, 이젠 나도 인지도가 꽤 생겼나 보군.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성경 말씀에 대해서입니까?”
“너희 교단에 대해서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신월교단>의 교주― 알드리히 신부는 가만히 선 채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웨스트록 7구역의 <에덴 파크 모텔>에 거주하고 있는 한 여자 뱀파이어가 최근에 실종됐어.”
“…….”
“너희들이 한 짓이냐?”
신부는 잠깐 동안 침묵했다.
그러고 나서 물음표를 던졌다.
“묻고 싶은 건, 그것뿐입니까?”
“그래.”
어쩐지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그는 큭큭 하고 소리 내 웃었다.
“난 또 뭐라고. 괜한 걱정을 했군요.”
“…….”
“글쎄요. 그런 보고는 들은 적 없습니다. 몇 달 전 그곳 근방에서 베테랑 사냥꾼 한 명을 잃은 뒤로는, 교단 차원에서의 작업은 진행하고 있질 않거든요.”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애당초 지금 그가 나를 적대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전혀 없었다.
“모텔 주변에서 교단 쪽 사냥꾼이 괴이종 사냥을 마친 흔적이 있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거지?”
“말씀드렸듯 그것 역시 교단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사냥을 하는 쪽이지만, 이따금 반대로 괴이종에게 습격을 받을 때도 물론 있기에, 아마 그렇게 벌어진 피치 못할 싸움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정당방위의 경우죠.”
“…….”
“제가 더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집주인 할머니와 마찬가지다.
메리가 사라진 것과의 관련은― 없다.
“아니.”
나는 그 말을 뱉고서 몸을 홱 돌렸다.
확인을 끝낸 이상, 이곳에 용무는 더 없었다.
“교회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
“당신이 암귀라고 해도, 분명 잠깐 정도는 기도를 들어주실 겁니다. 우리의 신은 쿨하니까요.”
알드리히 신부는 그리 말했고,
나는 대답 없이 그곳을 떠났다.
***
결국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괴이 사냥꾼들이 메리의 실종과 얽혀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일까.
“어디로 간 거야, 대체…….”
밤거리를 홀로 거니며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녘의 달빛은 눈이 아플 정도로 밝았다. 나는 가로등 아래 멈춰 서서 잠시 그 누런빛을 피했다.
“…….”
문득.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하여간에. 그땐 완전 패닉이었지.
입에 피를 잔뜩 묻힌 웬 미친 여자가, 자기가 내 엄마랍시고 떠들어 대며 나한테 막 다가왔잖나.
….
….
잘 모르겠다.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메리는 왜 나를 자기 아들이라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녀를, 나의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후우.”
얼핏 라벤더 냄새가 났던 것도 같다.
그녀가 지금 내 옆에 있는 것만 같다.
일단 마지막으로, 지나가 찾아냈다는 괴이 사냥꾼의 표식이 있는 장소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쩌면 <신월교단>이 벌인 짓일지도 모르니까.
휴대전화로 현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 먼저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갓 토목을 끝내고 건물 기틀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 공사장.
허나 무엇인지 모를 문제로 작업이 오랫동안 멈춰 있었던 탓에, 가뜩이나 생기가 없이 썰렁한 공터가 이제는 거의 멸망한 세계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
….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그림자.
아무도 없어야 할 장소에,
누군가가 서성이고 있었다.
“오, 드디어 왔네.”
텅 빈 공사장의 한가운데.
모래사장 위에 선 한 남자.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다고. 이 친구야.”
남자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어쩐지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목소리였다.
“누구야, 너.”
“거참, 뭘 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
달빛이 그의 실루엣을 비추자,
남자의 얼굴이 넌지시 드러났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
―번쩍이는 황금빛 눈동자.
그때 왠지 모르게 나는,
뒷목이 섬뜩해짐을 느꼈다.
“내 이름 알잖아.”
기분 나쁠 정도로.
나를 닮은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