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Vampires Will Never Hurt You (2)
심야 재연 드라마 같은 상황이었다.
불빛 하나 없이 그저 어두침침한 방 안.
침대 위에는 누군지 모를 불청객의 실루엣.
“너…….”
“조용.”
꾸욱―.
텔레비전 리모컨 같은 느낌의 딱딱한 물건이, 옆으로 돌아누운 내 왼쪽 뺨을 지그시 짓눌렀다.
“이건 권총이야.”
“…….”
“움직이면 쏠 거야. 고개 돌리지 말고 그대로 있어. 내 허락 없이는 숨도 쉬지 마.”
그때 내리 왼뺨을 누르고 있는 차가운 감촉의 정체가 실은 자동권총의 총구란 사실이 명백해졌다.
“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
권총의 주인이 내 귓가에 대고 말했다.
까끌까끌하지만 앳된 음색이 돋보이는 미성. 갓 사춘기나 됐을 법한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넌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인 악마니까, 살인 한두 번 더 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지. 그치?”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 이유는 비단 여자아이 손에 들린 권총이나 으름장 따위에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부탁이야.”
다만―
그 가냘픈 손끝과 자그마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마더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죽여줘.”
아이가 그렇게 말한 순간, 여태껏 가까스로 참고 있었던 울분이 터질락 말락 하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마더’라는 호칭을 듣고 나서야, 나는 뒤늦게 총을 든 녀석의 정체를 대강 알아챌 수 있었다.
“너, 210호 사는 아이니……?”
옆옆집에 사는 자칭 엄마 뱀파이어, 메리는 나이 어린 두 딸을 홀몸으로 키우고 있다고 들었다.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언젠가 메리에게서 그녀의 아이들에 대해서 전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그녀를 더러,
‘마더’라고 부른다 했다.
“마더가 사라졌어.”
총을 든 여자아이가 말했다. 그리고 그즈음, 콧속을 맴돌던 라벤더 향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전부 너 때문이야…….”
“…….”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
조금씩 울먹이던 목소리는,
급기야 울음을 참지 못했다.
***
오전 12시 30분.
<호손 그릴 다이너>.
모텔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이 24시 카페테리아는 내가 즐겨 찾는 단골 식당이다.
늦은 시간, 가게 안에는 쓸쓸한 밤중의 출출함을 해결하고픈 연금쟁이 노인이나, 오전과 오후가 뒤바뀐 점심을 먹으러 온 야간 노동자 몇몇이 보였다.
“오빠야, 감자튀김 더 시켜도 돼?”
맞은편 자리에 앉은 민트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말했다. 입가에 햄버거 소스를 잔뜩 묻힌 채로.
“그만 좀 처먹어, 돼지 새끼야.”
“배고픈데 어떡해.”
“하여간 니가 허구한 날 그따위로 분별없이 처먹어 대니까 우리 집 살림이 거덜 난 거잖냐. 등신아.”
“스칼렛은 맨날 잔소리야. 미워.”
민트 머리 꼬마 옆에는 덥수룩한 빨강 머리에 뾰족뾰족한 치열이 돋보이는 소녀가 앉아 있었다.
“괜찮으니까. 먹고 싶으면 더 시켜.”
“정말? 아싸! 오빠야가 최고다. 히히.”
“어휴, 그래. 넌 걍 먹다 뒤져라. 븅신.”
“스칼렛. 시안한테 너무 그러지 마. 동생이잖아.”
“동생은 무슨. 나랑 이년이랑 생일도 6개월밖에 차이 안 나거든? 조또 모르면서 뭔 아는 척이야.”
입이 험한 언니 쪽의 이름은 스칼렛.
어쩐지 불량한 분위기에, 겉보기에는 고등학생이라 해도 믿을 것같이 어른스러운 인상이었으나, 실제로는 열두 살밖에 먹지 않은 꼬맹이에 불과했다.
“조아써, 나 그럼, 감자튀김이랑, 레몬 타르트랑, 그리고, 여기, 이…… 다이트 콜라? 도 먹을래.”
“다이어트 콜라 말이지. 그래.”
“야, 오라방. 적당히 하는 게 좋을걸. 시안 이 새끼, 밥 열심히 맥여 봤자 어차피 금방 토하니까.”
“오늘은 토 안 할 거야. 참을 수 있어. 여차하면 삼키면 돼.”
“으엑, 디러.”
눈이 맹한 동생 쪽의 이름은 시안.
스칼렛과는 반대로 본래 나이보다 다섯 살은 더 어려 보이는, 거의 유치원생에 가까운 외견이었다.
나는 점원을 불러 몇 가지 메뉴를 추가로 주문했다. 잠시 후 나온 음식들을 시안은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하는 것처럼 맛있게 쩝쩝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칼렛은 언짢다는 듯이 마구 혀를 찼다.
“…….”
생김새도 분위기도 완전히 다른 두 소녀.
이 아이들이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너희들, <슬로터하우스> 출신이지?”
<슬로터하우스>란 비공인 에스퍼 양성 기관.
실체가 파악되지 않은 흉흉한 소문만이 무성한 곳으로, 각종 인체 실험을 통한 비자연적인 방식을 통해 초능력자를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진 시설이다.
<사이버판타지>에 등장하는 초능력자 NPC, 즉 에스퍼 캐릭터들은 대부분이 <슬로터하우스> 출신.
그곳에서 태어난 실험체들은 특징적인 모발 색깔과 더불어 그 색에 따른 이름을 부여받는다고 한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이들처럼 말이다.
“맞아.”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은 먹는 데만 집중했다.
“너랑 시안 둘 다 초능력자겠군.”
“잘 아네. 역시 어른이라 그런가.”
“지인 중에 거기 출신이 몇 명 있어서.”
블랙 대거즈의 분신 능력자, 지나 드비토.
그리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전 보스 토마 역시, <슬로터하우스>에서 만들어진 후천적 에스퍼였다.
“…….”
시설에서 나고 자라야 했을 아이들이, 어쩌다 뱀파이어인 메리와 한 가족이 되어 살고 있는 걸까.
그 호기심을 채우는 것은 나중이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욱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메리가 사라졌다고 했지.”
“…….”
“자세히 말해 봐.”
내가 물었고, 스칼렛은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안도 그때쯤엔 잠시 먹는 것을 머뭇거렸다.
“며칠 전에, 어떤 남자가 찾아왔어…….”
시계 분침이 한 바퀴를 돌 때쯤에야,
상어 이빨 소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마더랑 아는 사이 같았어. 집 앞에서 둘이 엄청 오래 얘기를 나눴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안 들려서 몰라. 남자가 돌아가고 나니까, 마더는 갑자기 엄청 떨면서…… 널 찾으러 가겠다고 집을 나갔어.”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날……?”
“너 요새 집에 안 붙어 있었잖아. 마더는 맨날 그쪽 208호에 틀어박혀서 오라방만 기다렸어. 그러다 너가 결국 안 오니까 찾겠답시고 나가 버린 거라고.”
스칼렛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녀석이 보인 분노의 대상은 물론 나였다. 자기 엄마를 사라지게 만든 원흉. 이웃집의 후레자식.
“……실종된 이유가, 나 때문이란 거지.”
“그래. 그니까 빨랑 마더를 찾아오란 말야.”
“저기, 아까 전에, 나한테 메리를 죽이려는 사람들을 죽여 달라고 했던 건 뭐야? 그놈들은 누군데?”
“마더는 웬만해서는 집 밖으로 잘 안 나가. 특히 밤에는. 뭐시기 교단의 뱀파이어 헌터인지 뭔지 하는 쓰레기 놈들이 와서 마더를 막 죽이려고 하거든.”
그러고 보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신월교단>의 괴이 사냥꾼이라고 했던가.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도시의 괴이종을 사냥하는 헌터 조직. 그들 중 하나가 메리를 유인해 습격했었지.
……나는 그때 놈을.
……그 사냥꾼을 죽였다.
왜 그렇게까지는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녀를 죽게 놔두고 싶진 않았다.
“네가 가서 그 뱀파이어 헌터 놈들을 다 죽여줘.”
“…….”
“오라방은 암귀잖아.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열두 살 꼬마로부터의 살인 의뢰.
그것도 조직 하나를 몰살시켜 달라는, 업계 기준으로도 말도 안 되는 규모의 무보수 의뢰였다.
“우리도 도울게.”
“……뭐?”
“나랑 시안은 에스퍼니까. 분명 쓸모가 있을 거야. 다 같이 가서 그놈들을 박살 내자.”
갑작스런 참전 선언에 빨대로 다이어트 콜라를 보글보글 들이켜고 있던 시안이 깜짝 놀라 캑캑댔다.
“켁, 우켁…….”
“시안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쉽게 말해 접신인데, 어디서든 영혼의 목소리가 들린다나 봐. 아마 지금도 듣고 있을걸.”
“우윽, 나 지금 토할 뻔했어어…….”
“뭐, 시도 때도 없이 토하는 것도 사람들 뒤지는 소리를 맨날 라이브로 듣고 있으니까 그런 거지.”
스칼렛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내 능력은…….”
“<양치기 소년의 세 치 혀>.”
녀석이 말하려던 찰나.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상대가 거짓말을 믿게 하는 능력이지.”
잠시 침묵.
스칼렛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알았……?”
“글쎄. 어른이라 그런가.”
나는 녀석이 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슬로터하우스>와 관련된 퀘스트를 깨다 보면 연구소의 기밀문서 따위를 차근차근 열람하게 된다.
대개는 게임 플레이와 거의 상관없는 TMI였지만,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기에 한 번씩 읽어보곤 했다.
‘양치기 소년 프로젝트’의 실험체 ‘스칼렛’은 실패작으로 분류되어, 폐기 처분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불법 인체 실험 따위를 자행하던 놈들이니 ‘폐기 처분’이란 것은 아마 실험체를 죽였다는 의미일 터.
하지만, 지금 내 앞에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는 빨간 머리 소녀 ‘스칼렛’이 있었다.
또 내 영향으로 이 세계의 미래가 바뀌어 버리고 만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도 일종의 업보인 셈인가.
어쨌거나.
“메리가 집을 나간 게 정확히 언제야?”
“그게, 으음, 3일 전.”
딱 내가 퇴원하기 직전이군.
과로로 입원해 있었단 건 관리인 아가씨한테 전해 달라 얘기해 놨으니 그녀도 알고 있었을 텐데…….
병원까지 찾아오던 중에 실종된 건가?
그렇다고 한다면 동선을 예상하기가 의외로 쉽다. 메리는 어딜 가든지 무조건 도보로만 이동하니까.
나는 손을 들어 점원을 불렀다.
곧 명랑한 인상의 웨이트리스가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직원이 물었고, 나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일 좀 맡길게.”
그녀의 명찰에는 ‘지나’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손님. 일하는 중에 일 얘기는 곤란한데요~.”
“지금 움직일 수 있는 분신은 몇 명이나 있지?”
“채용 문의신가요? 저희 점포는 전국 가맹 매장에 총 800명 이상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에덴파크 모텔에서 골든호프 병원까지의 경로에 <신월교단>의 사냥 완료 표식이 있는지 확인해줘.”
“넵. 알사탕 100개 포장에 10달러 되겠습니다~.”
“다섯 장으로 해. 50명만 써도 충분하잖아.”
지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계산대로 돌아갔다.
블랙 대거즈의 머슴꾼인 그녀는 적절한 수고비만 쥐여 준다면 말 그대로 뭐든지 다 해준다.
시에라시티에는 몇천 명이 넘는 그녀의 분신들이 존재한다. 풀페이스 헬멧을 뒤집어쓰고서 거리를 쌩쌩 누비고 다니는 배기바지 차림의 바이커를 본 적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지나 드비토의 분신이다.
“스칼렛. 시안. 너흰 집으로 돌아가.”
“뭐? 싫어! 우리도 같이 갈…….”
“너 집에서 화장실 청소 네가 하냐?”
내가 묻자, 스칼렛은 적잖이 당황해했다.
“아니잖아. 너 똥 싸고 물만 내리잖아.”
“…….”
“애들이 하는 일은 그거면 돼.”
싼 티 나는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뜻은 잘 이어주었다고 보았다.
“걱정하지 마.”
나는 말했다.
진심을 담아서.
“엄만 내가 반드시 찾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