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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49화 (149/201)

149화. Vampires Will Never Hurt You (1)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공기를 감쌌다.

「방금 뭐라고 했죠?」

“그 심장 주인, 저 말고 딴 사람이에요.”

기계해골 콘스탄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신이 아니라고요?」

“아니,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

의자에 구속된 비너스가 말하고 있던 그 순간, 콘스탄틴이 대뜸 그녀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뻥치지 마십시오!」

에코를 받아 울린 고함 소리와 살벌하게 빛나는 해골의 붉은 눈동자가 비너스를 움찔하게 했다.

「6월 14일 금요일 13시 02분, 당신은 <톤토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고위 마법을 구사했죠.」

<톤토 파라다이스 호텔>이라면 분명, 몇 달 전에 정치인 호위 임무 수행을 위해 들렀던 장소.

임무 도중 ‘화이트데스’라는 저격수의 습격을 받아, 동료였던 유진과의 실랑이 끝에 결국 팀을 맺어 저격수를 물리치고 그곳을 벗어났었는데…….

「자색 마력과 녹색 마력을 결합한 다중 색채 마법. 당시 사용한 파괴 마법의 위력은 최상위 클래스인 아우구스투스급에까지 비견되는 레벨이었습니다. ……게다가! 현장에서 측정된 에테르 수치는 무려 183만! 놀라운 숫자죠! 대마법사 수십 명을 끌어모아도 그 정도 양은 절대 나오지 않으니까!」

그때 마법을 구사한 건 자신이 맞지만, 끝도 없는 마력을 바탕으로 한 <무한 강화>를 사용해 폭발적인 마나 방출을 이끌어낸 인물은 유진이었다.

「최근 노스네스트에서도 몇 차례 그때와 같은 에너지 준위의 마나흔을 발견했습니다.」

“…….”

「당신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프레야 앤더슨. a.k.a. 비너스. 노웨어맨의 심장을 가진 자여.」

비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대는 유진의 행적을 그녀의 것으로 오인해 심장의 주인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나 죽겠는데……?’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나인서클>의 기계해골 콘스탄틴이 유진의 심장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

바르바이라 테르마옌의 지시일까?

아니면 <나인서클> 전체의 방침?

‘일단, 오해부터 좀 풀어야겠어.’

비너스는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여기서 유진의 정체를 까발렸을 경우, 훗날 날아올 후폭풍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그때야말로 유진 씨가 날 죽이겠지.’

‘악마 같은 인간인지라 가차 없으니까.’

‘통수 친 걸 들켰다간 곱게는 안 끝날걸.’

….

….

‘근데, 지금 바로 눈앞에 콘스탄틴이 있잖아?’

‘적어도 바르베이라가 배후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그러니까 유진 씨는 <나인서클>의 필두로 꼽히는 괴물을 최소 둘 이상 적으로 둔 셈이야.’

‘이럼 그림이 뻔하지. 놈들을 뭔 수로 이겨?’

….

….

‘그런데…… 진짜로 못 이기려나?’

‘유진 씨도 꽤 강한 편이잖아. 가짜 암귀긴 하지만, 전투력이랑 임팩트만 보면 아주 그럴싸하고.’

‘도그아이드 킴까지 같은 편인데다, 뒷배에는 알리시아 벨카폴리아까지 있는 것 같던데.’

‘잉? 그럼 해볼 만한 거 아닌가? 이쪽에도 <나인서클>이 있는데? 거의 호각? 아니, 어쩌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의 연속.

그녀는 도통 해답을 짚어내지 못했다.

‘…….’

어느 쪽 편에 서야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망설여졌다.

‘좋아.’

기나긴 고심 끝에―

비너스는 결정을 내렸다.

‘배신하자.’

따지고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당장 죽을 위기인데 무엇을 고민할까. 현재가 아슬아슬한 마당에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사치였다.

더욱이 이곳 시에라시티를 살아감에 있어,

배반과 속임수는 그야말로 필연적인 미덕.

뒤통수치는 것은 본인의 특기가 아니던가.

비너스는 씨익 엉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틀렸어요. 기계해골 씨.”

「……?」

“그니까아― 잘못 짚었다구요. 계속 말했다시피, 그쪽이 찾는 심장의 주인은 제가 아니거덩요.”

콘스탄틴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그즈음 그의 안구 카메라에 내장된 표정 감지 센서가 비너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포착해냈다.

「호오. 그렇습니까.」

안드로이드는 점잖게 목을 뒤로 뺐다.

「그렇다면 심장의 주인은 대체 누구죠?」

“…….”

「노웨어맨의 심장은, 누구한테 있는 건가요?」

로봇이 질문했고,

비너스가 입을 열었다.

“그건 바로, 암ㄱ…….”

대답을 하려던,

바로 그 찰나에.

쿠구궁―.

벽면을 타고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왠지 바닥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

그리고.

잠시 후.

쿠우우우웅―!

우렁찬 굉음을 품은 충격과 동시에,

부서진 천장 위에서 나타난 한 사내.

“무장류 납검술.”

칼집에 꽂힌 검을 휘두르는 검객.

백발의 노장― 도그아이드 킴이었다.

“납상참納狀斬.”

한 줄기 번개처럼 푸른 검기가 내리꽂혔다.

번쩌억―. 희미한 형광등 조명에 의존했던 어두컴컴한 공간이 단번에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투콰아아아아앙―!!

검기의 칼날이 콘크리트를 반으로 쪼갰다.

균열이 생긴 지점 바로 옆에 있던 비너스의 구속 의자가 부서지며, 와해된 바닥 밑으로 추락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고성을 지르는 그녀의 입을,

노장의 손바닥이 틀어막았다.

“귀 아퍼. 이년아.”

“읍끅쁘브읍……!?”

도그아이드 킴은 공중에서 한 팔로 비너스를 낚아채 끌어안듯이 붙잡고는 그대로 낙하했다.

그의 검기가 일곱 층이나 되는 바닥을 모조리 박살 내 버린 터라, 착지는 한참 나중의 일이었다.

타악―.

부서진 잔해 사이에 도그아이드 킴이 거칠게 발을 디뎠다. 비너스는 자신을 안고 있는 노년의 사내를 휘둥그레진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하, 할배……? 구하러 온 거예요……?”

“그래. 암귀가 시켰다. 니 감시하라고.”

“…….”

“쪼매 늦었는디. 머 다친 덴 읎어 뵈네.”

“……있잖아여, 할배. 나 지금 세월의 격차를 뛰어넘어 할배한테 반할 뻔했어여…….”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

살면서 그런 순간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어째서인지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근데 방금 전에 둘이서 머라 카는지 다 들었는데. 니 중요한 거 뭐 까발릴라고 했던 기 아이가?”

“아, 크흠, 그, 저기, 아직 그, 미수…….”

“마, 됐다. 니는 쩌그 물러나 있그라잉.”

도그아이드 킴은 손에 쥔 칼을 고쳐 잡았다.

“점마는 내 알아서 할 테니께.”

저만치 떨어진 곳에, 붕괴로 인해 퍼뜨려진 먼지 틈으로, 기계해골 콘스탄틴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눈깔의 검기를 정면으로 맞았음에도, 그 안드로이드는 긁혀진 부분 하나 없이 멀쩡했다.

「불청객이 찾아왔군요.」

기계해골과 개눈깔이 서로를 마주 봤다. 그들의 눈빛에는 그저 차가운 살기만이 담겨져 있었다.

‘워우…….’

콘스탄틴과 도그아이드 킴.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의 대결.

비너스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장난 아닌 싸움이 되겠는데, 이거.

‘이, 이기는 편 우리 편……!’

***

오후 7시.

윌슨앤코 사무실.

“……아씨, 진짜아! 답답해 죽겠네!”

스몰필드 씨가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내내 참고 있던 분노가 기어코 터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구요! 중간점부터는 마력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요!”

“……미, 미안해요. 스몰필드 씨.”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할게요. 이번엔 똑바로 해요. 알겠죠? 저 진짜 속 터져 죽을 거 같으니까.”

말투가 진심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주머니 속에 한참 동안 넣어 둔 영수증마냥 구겨져 있었다.

“또! 또! 또! 거기서 마력 합치면 안 된다니까 또! 진짜 뭐예요? 일부러 말 안 듣는 거예요?”

“아니, 그게, 내 맘대로 잘 되지를 않…….”

“실수도 정도껏 해야죠, 정도껏!”

가짜 타이퍼의 정체가 스몰필드 씨였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전처럼 다시 마법을 배우고 있다.

“하아, 팀장님 재능이 형편없다는 건 진즉 알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녔던 것 같은데…….”

다만 문제는, 심화 단계에 들어서면서부터 나의 쓰레기 같은 실력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

“아무튼 이래서야, 단기간 내에 ‘테자스’ 이외의 형질 변환을 습득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이네요.”

“…….”

“물결의 형 ‘아파스’는 자색 마력으로도 그나마 구현하기 쉬운 형태일 텐데, 이건 마나 특성의 문제라기보다 그냥 궁합 자체가 안 맞는 것 같아요.”

스몰필드 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멋쩍게 있었다.

“저기, 팀장님은 흑마법을, <부름>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을 때까지 강해지는 게 목표라 하셨죠?”

“……예.”

“지금 단계에서 제가 팀장님한테 가르쳐드릴 수 있는 건 복잡한 술식 해독법 아니면 이론에 입각한 노하우 정도예요. 이대로 팀장님이 원하는 수준까지 강해지려면 아마 몇십 년이 걸려도 모자랄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는 무리다―.

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만약 팀장님이 서둘러 강해지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마법 회로 전수를 받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실력 있는 마법사로부터, 그 재능과 노력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란 얘기였다.

“스몰필드 씨는 마법을 전혀 못 쓰는 건가요?”

“네. 저는 마력 보유량이 0에 가까워 사실상 마력 비보유자인 데다, 팀장님처럼 기타 색채거든요.”

스몰필드 씨는 시험 삼아 자신의 마나를 살짝 방출해 보였다. 색깔은 마젠타에 가까운 짙은 핑크색. 통상적으로 ‘도색 마력’이라 일컫는 색채였다.

“색깔이 제 자색 마력이랑 조금 닮았네요.”

“마나로서의 특성은 비슷하게 안 좋아요. 그나마 마력량이 높아지면 5대 색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나아진다고 하지만, 저랑은 상관없는 얘기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입꼬리를 올렸다. 수많은 좌절을 겪은 끝에야 나오게 되는 씁쓸한 미소였다.

“어쨌든, 제 말은, 그러니까…….”

“다른 스승을 찾아보란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쓸모가 없다고 강변한 그녀를 위로해줄 수도 없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간신히 내뱉은 말은 잘 가라는 인사뿐.

그렇게 우리는 긴 밤을 끝내고, 퇴근했다.

“…….”

스몰필드 씨의 강의는 분명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녀가 말한 것처럼, 지금 내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악마와의 계약. 흑마법을 사용한 대가.

<부름>은 언젠가 술사를 지옥 같은 절망에 빠뜨린다고 한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스승이라…….”

사실, 후보가 한 명 있기는 했다.

개인적으로 걸리는 부분이 있어 특정 날짜 후로는 도통 먼저 접근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뭐, 오늘 당장 일을 벌일 필요는 없겠지.

최근에 안 그래도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은 데다, 회사 일감까지 늘어서 적잖이 피곤한 와중이니.

나는 마음을 다잡고 퇴근길을 걸었다.

에덴파크 모텔 208호. 정겨운 우리 집.

“후우.”

침대에 눕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저녁 먹은 지 한참이 지나서인지 뱃속이 뭣 좀 달라고 난리였다.

“비프스튜, 먹고 싶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메리가 안 보이네.

메리는 옆옆방 210호에 사는 여자다.

자기가 내 엄마인 줄 아는 뱀파이어다.

일주일에 몇 번씩 집에 들러서 밥을 차려주곤 했는데, 퇴원하고 나서는 한 번도 얼굴을 못 봤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니, 내일 210호에 들러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잠자는 게 먼저였다.

감겨진 눈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새벽쯤.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났다.

기억에 있는 향. 메리의 냄새였다.

꿈에서 얼핏 그녀를 보았던 것도 같다.

깨어났을 때도 그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눈을 뜬 순간.

“움직이지 마.”

침대에 올라탄 누군가가,

내 머리를 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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