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That’s Not Me (6)
「지금 막 경찰당국에서 발표가 나왔습니다.」
「폭발의 원인은 외부에서부터의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 추정. 이는 즉 다시 말해, 테러입니다!」
「소방 인력과 특수부대 차량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별다른 움직임 없이 입구 주변에 대기한 상태로만 있습니다. 내부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인 걸까요…….」
상황은 다분히 심각해 보였다.
리타 스몰필드는 와들와들 떨리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자꾸만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구해야 해.
유진은 제법 강한 마법사다. 스승으로서 그의 성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기에 확신할 수 있다.
허나, 왜인지 불안했다. 지금 저 연구소에서 느껴지는 악의 기운은 그 규모가 예사롭지 않았다.
……구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필터를 거친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번뜩인 것을, 그대로 이행할 뿐.
“폴리!”
방으로 달려가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건너편 방에 있을 룸메이트를 큰 소리로 부르며 외쳤다.
“나 좀 도와줘!”
***
<슐츠텍>은 ‘프로젝트 이브’라고 명명된 차세대 안드로이드 개발 사업을 비밀리에 진행 중이었다.
리타 스몰필드는 실험체로 자원한 타이퍼의 상태를 살피고자 연구소에 여러 차례 방문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 연구의 목적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슐츠는 아르카나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어.”
그들은 AI에게 데이터화된 술식을 학습시켰고, 마법의 구사를 위한 장비와 모듈을 새로 부착했다.
슐츠의 차세대 안드로이드는 아르카나 마법을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개발은 거의 막바지 단계였으니까, 재현에 성공한 모델이 연구소 내부에 하나쯤은 있을 거야.”
리타 스몰필드의 예상은 완벽히 들어맞았다.
연구소 시스템에 접속 허가를 받아낸 뒤, 곧 원격 제어 가능한 안드로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프로젝트 이브의 프로토타입 기체였다.
“허, 이것 좀 보게. 메흐데리트 석판의 고대 정령어 문자열에, 셴바토 아케인 디스크 해석본 전문까지……? 아주 그냥 별거를 다 쑤셔 박았네.”
노트북 화면의 프롬프트 목록을 들여다본 폴리 보일은 상상치도 못했던 내용에 혀를 내둘렀다.
“OS 설치가 다 끝나면 바로 명령어 입력을 시작할게. 폴리, 결속 융화 술식을 전개해 줘.”
“잠깐, 확실히 이 정도 조건이 갖춰져 있다면 기계라도 아르카나 구현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아직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마법을 구사하려면 술사가 술식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정통 아르카나 마법의 술식은 ‘아이에르 방언’으로, 컴퓨터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다.
“괜찮아. 내가 번역해서 입력하면 돼.”
“잠깐. 설마, 실시간으로 번역할 셈이야?”
사전적 의미조차 불분명한 고대 방언을, 컴퓨터 언어의 코드 데이터로, 암산으로 변환시킨다……?
“해봐야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폴리 보일은 이내 의심을 접었다.
“좋아. 믿는다.”
아무렴.
감히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어쩌면 역사상 최강의 대마법사가 됐을지도 모르는 천재, 마르가리타 벨카폴리아의 계획이니까.
그녀들의 구출 작전은 보란 듯이 멋지게 성공했다.
화면 너머,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유진을 바라보며, 리타 스몰필드는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
「……마녀, 맞지……?」
말없이 노트북을 닫았다.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정말로 마지막임을,
그때서야 그녀는 직감했다―.
***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후련한 기분은 조금도 없었다.
유진의 반응은 어땠을까.
돌아온 것은, 미묘하게 차가운 눈빛.
“시간이 늦었네요.”
“…….”
“회사에서 봅시다.”
그리고…… 무미건조한 두 마디.
그게 전부였다. 그저 딱딱하게 말을 툭 던지듯이 내뱉고는 곧장 등을 돌려 그 자리를 떴다.
어쩐지 그 말들이 영원한 작별 인사처럼 들렸지만, 리타 스몰필드는 떠나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먼저 떠났던 것은 자신이었기에.
붙잡을 자격 따윈 없음을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죽을 것같이 아팠던 몸은 거짓말처럼 멀쩡해져 있었다. 너무 쌩쌩한 탓에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했다.
회사원이니까. 어른이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스몰필드 씨.”
사무실에 들어서자 유진이 인사를 건넸다.
다정한 목소리. 엷게 띤 미소.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어쩐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듯했다.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객쩍은 육감이나 경험론 따위에 근거한 괜한 자격지심이었을지도.
“메일 보셨죠? 부산항 선적 들어가기 전에 말레이시아 FTA 관련해서 이슈 체크 좀 해주세요.”
“아, 네.”
“밤비타운 토지 측량 건으로 하청 쪽에서 클레임 들어왔다는데 그것도 한번 확인해 주시고요.”
그날은 굉장히 바쁜 날이었다.
그동안 밀렸던 업무와 더불어 아침부터 쏟아지는 일거리에 그야말로 쉴 틈 없이 파묻혔다.
“스몰필드 씨. 신용장 사본이 누락됐는데요.”
“……앗, 죄송합니다. 금방 찾아서 드릴게요.”
“제일 중요한 서류를 홀라당 빼먹으면 어떡합니까. 이런 기본적인 부분만큼은 똑바로 하셔야죠.”
“……죄송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혼나기까지 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100% 본인 실수였다.
“어제 각 지사에 벌써 일괄로 묶어 전송한 건데, 이러면 서류 재점검해서 다시 보내야겠군요.”
“…….”
“아랍권은 금요일이 휴일이고 일요일이 평일이니까, 쿠웨이트 지사에 보낼 팩스는 오늘 보내지 말고 일요일 아침에 가도록 예약 걸어 두세요.”
“…….”
“듣고 있습니까, 스몰필드 씨?”
“네에…….”
“지금 딴생각했죠.”
윽. 들켰다.
“스몰필드 씨. 저 없는 동안에 혼자 애쓰시느라 피곤하신 건 알겠지만, 오늘처럼 바쁠 때는 될 수 있으면 일에만 집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때마저도 쓸데없이 다정다감한 남자다.
항상 이런 식이다. 바보처럼 착각을 하게 만든다. 예전부터 유진의 그런 부분이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무리하진 마시고요.”
“…….”
“또 아프시면 안 되잖아요.”
….
….
항상 착각하게 만들어서.
그런 부분이 정말 싫었다.
“일이 많아서 잔업을 할 수밖에 없겠네요. 혹시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하거나 그러신가요?”
“……아뇨…….”
“그러면 오늘은 조금 늦게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리타 스몰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말은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모든 것을 털어놓았는데도.
우리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냥 끝나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
아마도 유진이 원하는 게 그런 것일 테지.
지금 이런 관계의 붕괴를 원하지 않으니까.
‘그래.’
특별한 관계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괜찮아.’
특별한 존재이고 싶었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이대로도. 나는 괜찮아.’
리타 스몰필드는 책상에 돌아가 앉았다.
일거리는 잔뜩 쌓여 있었다. 고맙게도 말이다.
그녀는 일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와중에도 일을 했다. 계속 일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후우.”
오후 9시쯤이 돼서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마지막 엔터를 친 뒤, 리타 스몰필드는 묵혔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 뱉었다. 그즈음 카페인에 가려졌던 피로가 뒤늦게 성난 물소 떼처럼 몰려들었다.
“수고했어요.”
그때. 유진이 그녀의 책상 옆으로 다가왔다.
다크 서클이 짙은 눈 밑, 부르튼 입술과 까칠한 피부, 그는 자신보다 몇 배는 더 피곤해 보였다.
“네. 팀장님도 고생하셨어요.”
“그, 저기, 근데, 스몰필드 씨? 간신히 일 다 끝낸 마당에 이런 말씀 드리기 좀 미안한데…….”
리타 스몰필드는 갸우뚱했다. 가만 보니, 유진의 손에는 엄청나게 두꺼운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이것 좀 도와줄래요?”
설마 또 일거리를 가져온 건가.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도리도 없었다. 그야 여긴 회사고 자긴 말단 계약직이니까. 까라면 까야지.
투욱―.
유진은 책상 위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리타 스몰필드는 종이의 내용을 살폈다.
….
….
그런데 그것은.
일거리가 아니었다.
“……?”
분명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문장들이었다.
그 내용은 필히, 자기 손으로 작성한 문서.
“……이거……?”
본인이 직접 쓰고 검토까지 한,
수십 페이지짜리 마법학 교과서.
가짜 타이퍼 시절, 제자였던 유진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숙제이자 선물이었다.
“그거요, 세 번 정도 독학했는데 아직도 제대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끝부분에 있는 기출 문제는 여태 한 개도 못 풀었고요.”
“……네……?”
“좀 치사하지 않습니까. 작별 인사도 없이 요거 하나 달랑 던져 놓고 냅다 튀는 게 어디 있어요. 난 또 나쁜 놈한테 속은 건가 하고 오해했잖아요.”
리타 스몰필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
“어쨌든 간에, 한번 제자로 들였으면 끝까지 책임지셔야죠. 스몰필드 씨. ……아니, 스승님.”
짧은 침묵.
“……?!”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무테안경 너머의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엇, 저어, 티, 팀장님은 그, 마녀의 정체가 저라서, 시, 실망하신 거, 아니었어요……?”
“내가 실망을 왜 해요? 오히려 스몰필드 씨라서 좋았는데?”
“누ㅖㅆ?! 저, 저라서 조, 좋았따꼬욧……?!”
“사실 조금 삐지긴 했습니다. 속인 건 그렇다 쳐도, 말도 없이 사라진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돼요.”
다 큰 어른이. 자기가 삐졌다고.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말하겠지만, 책임은 지셔야죠.”
“…….”
“당분간 야근 확정입니다. 아시겠어요?”
리타 스몰필드는 가만있었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입을 다문 채로,
얼마나 지났을까.
“아하핫.”
참고 있던 웃음이 터졌다.
아마, 눈물도 터졌던 것 같다.
***
어두운 공간.
비너스는 잠에서 깼다.
“……응……?”
그곳은 병원이 아니었다.
개인 특실에서 잠이 들었을 터인 그녀는, 어째서인지 와본 적도 없는 낯선 장소에서 눈을 떴다.
―꾸우욱.
몸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팔다리를 포함한 전신이 딱딱한 철제 의자에 완전히 구속돼 있었다.
“……으으응……?”
그리고.
바로 그때쯤.
「호오. 일어나셨군요.」
기계음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해골 같은 머리에 턱시도를 갖춰 입은 안드로이드였다.
「반갑습니다. 내 이름은 콘스탄틴.」
“…….”
「보시다시피, 당신을 납치해 왔습니다.」
……뭐야?
……납치라고?
어째서 이런 꼴이 돼 버린 걸까.
비너스는 자신을 납치할 만한 인물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다. 뒤통수를 치거나 해서 사이가 좋지 않은 놈들이……. 흠,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었다.
머리를 끙끙 싸매고 앉아 있는 비너스에게, 기계해골 콘스탄틴이 사뭇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 참 묻고 싶군요. 노웨어맨의 심장, 무한한 마나를 가진 심정이란 당최 어떠신지요?」
….
….
이후 상당히 긴 침묵이 흘렀다.
비너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거, 저 아닌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