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That’s Not Me (5)
리타 스몰필드는 서둘러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결국 휴대전화는 놓고 와야만 했다.
“하아, 후우…….”
범죄 장면이라도 목격한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 광경에 계속해서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안에 홀로 있던 유진과,
펑 하고 터져 오른 보라색 불꽃.
“자색 마력…….”
마법을 쓰지 못하는 기타 색채.
유진은 마법사가 아니다. 무지막지하게 허둥댔던 꼴을 봐서는 아마 자기가 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오늘에야 알았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때 방출했던 불꽃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 아예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설령 <나인서클>의 일원인 대마법사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라 해도, 그 정도 크기의 불꽃은…….
“…….”
리타 스몰필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심장은 여전히 시끄럽게 쿵쿵대고 있었다.
“후우…….”
아니야. 신경 끄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오늘 일은 그냥 못 본 셈 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최선이었다. 어찌 됐건 빌어먹을 상사 놈과는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
○ yjy343
안녕하세요.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조금 질문할 것이 있어 댓글을 남깁니다.
만약에 마나 보유량이 무한대에 가까운 보라색 마력의 소유자가 강화 마법을 익혔다 가정한다면, 그걸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
며칠 뒤.
<마녀일기> 블로그에 올라온 댓글을 보고, 리타 스몰필드는 이마를 감싸 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그 인간이잖아…….”
역시나 자기 블로그를 참고하고 있었다.
하긴 초짜 마법사가 그나마 마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인터넷 말고 어디 있겠는가.
그나저나,
<강화> 마법을 익혔다고?
자색 마력 보유자가 어떻게 마법을 익혔을까. 그야 답은 뻔하지. 틀림없이 흑마법을 익힌 거다.
그깟 마법 때문에 악마한테 자기 심장을 갖다 바치는 무리수를 두다니, 얼간이나 할 짓을…….
“…….”
아니야. 신경 끄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댓글에 답글은 달지 않았다.
그냥 없던 일로 칠 심산이었다.
그러나.
“강화 마법.”
그녀는 또다시 목격하고야 말았다.
대낮에 일하다 말고 사무실 복사기에다 <기능 강화>를 시도하고 앉아 있는 유진의 꼬락서니를.
“스몰필드 씨. 복사기가 고장 난 것 같아요.”
“……아, 네. 주문해 둘게요…….”
아무 일도 없었단 듯 태연하게 다시 일하러 가는 유진을 보고, 리타 스몰필드는 부아가 뒤집혔다.
‘뭐 하는 거냐고, 진짜……!’
왜 대놓고 저러지? 숨길 생각이 없는 건가?
애초에 회사에서 저 지랄을 하면 안 되지 않나?
“…….”
아니야. 신경 끄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복사기는 새로 주문했다.
그냥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
그날.
회사에 새 식구가 생겼다.
「나니니시마스까?」
고물 안드로이드 TYPE-R. 통칭 타이퍼.
리타 스몰필드는 예전부터 최신 기술, 특히나 안드로이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스몰필드 씨. 퇴근하셔도 돼요.”
“아뇨, 조금만 더 회사에 있을게요. 타이퍼 초기 설정만 해 놓고 가려구요.”
타이퍼의 관리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 시스템 설정을 정상화하는 데만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녀는 기본 OS를 쓰는 대신, 소위 ‘탈옥’이라고 불리는 비공식 소프트웨어 해킹 툴을 이용했다.
‘……!’
지잉―.
노트북 화면에 드러난 흑백 사무실 전경.
‘됐다!’
원격 조종 연결 성공.
리타 스몰필드는 침대에 앉은 채 만세를 불렀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씨름한 보람이 있었구나.
‘어디, 제대로 움직이려나?’
터치패드를 만지작거리자 로봇의 고개가 돌아가며 시야가 움직였다. 제어 콘솔에 명령어를 입력하자, 로봇은 약간의 텀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야를 이리저리 돌리다 문득, 사무실 책상들 사이에 홀로 앉아 있는 유진의 모습이 보였다.
‘저 인간, 아직도 퇴근 안 했네.’
유진은 한창 일하는 중이었다. 그는 아직 타이퍼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깜짝 놀래켜 줘야지.’
리타 스몰필드는 타이퍼를 조종해 탕비품 팬트리로 향했다.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종이컵에 믹스커피 한 잔을 조제하는 데 성공했다.
‘조심, 조심.’
종이컵을 들고서 유진의 자리로 갔다.
가까이 다가서자 비로소 그가 반응했다. 유진은 타이퍼가 건넨 커피를 받아들고는 홀짝 마셨다.
「고맙다.」
화면 너머의 유진이 미소를 지었다.
쓸데없이 잘생긴 미소에 살짝 움찔했다.
「너 혹시 복사도 할 줄 아니?」
“…….”
「아니다. 중요한 서류라 못 맡기겠다.」
……어째 로봇이랑 대화하는 말투인데.
……안에 사람이 들었단 걸 눈치 못 챘나?
유진은 커피를 쭉 들이켠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몇 장 가지고 복사기 앞으로 이동했다. 리타 스몰필드는 타이퍼를 조종해 유진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그즈음, 왜인지 복사기 앞에 선 유진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그는 천천히 손을 올리더니,
복사기에 그대로 가져다 댔다.
……설마.
……아니겠지.
「강화 마법.」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 유진의 목소리에,
리타 스몰필드는 순간적으로 반응해 버렸다.
“멈춰요!”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
마이크와 더불어 음성 인식 기능까지 켜두었던지라, 그녀가 외친 목소리는 화면 너머 유진에게 타이퍼의 지지직거리는 기계음으로 바뀌어 전해졌다.
「뭐?」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
침착하자. 지금 들키면 절대 안 돼.
로봇처럼 말해 보는 거야. 로봇처럼…….
“그. 렇. 게. 하. 는. 거. 아. 닙. 니. 다.”
리타 스몰필드는 입을 열었다.
화면 너머 유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주인님은. 너무. 구조적으로. 접근했. 습니다.”
“마법이란. 그런. 식으로. 다루는 게. 아닙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른다.
어쩌다 보니 제대로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됐다! 이야, 고맙다! 깡통 로봇아!」
“…….”
「너 정체가 뭐야? 어? 마법을 왜 이리 잘 알아? 어디 대마법사 저택 청소 로봇 출신이냐? 엉?」
‘으아아. 뭐라고 대답하지…….’
두 사람의 기묘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나. 나니니시마스까?”
***
리타 스몰필드의 하루는 여느 때와 같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씻은 다음에 저녁을 먹는다. 그러고 나서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취미로 하고 있는 <마녀일기> 블로그 운영.
거기에 최근 새로운 일과가 하나 더 생겼다.
“주인님. 좋은 밤입니다.”
그녀는 매일 밤 로봇 겸 가정교사가 된다.
고물 안드로이드 타이퍼를 조종하여, 심야의 사무실에 남아 있는 유진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는 일.
“오늘은 ‘타트바’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타트바’란 마나의 다섯 가지 형태 분류로…….”
낮에는 부하 직원. 밤에는 마법 선생.
진짜 정체를 숨긴 채로 있는 이중생활.
당연하지만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아니었다.
재미있어서 하는 거냐면 그렇다기도 애매했다.
어쩌면 동질감이 들어서였을까.
마법사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과, 흑마법사가 된 유진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러 차례 고민해 봤지만, 정체는 끝까지 밝히지 못했다. 그가 실망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니까.’
자신은 단지 평범한 실패자에 불과했기에.
간단한 기초 마법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뭐라도 되는 양 마법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 자격지심을 들게 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전부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정체도. 연모하는 감정까지도.
‘이대로도 괜찮아.’
이중생활의 끝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
“팀장님. 센터 예약 잡아 놨어요.”
“그래요? 타이퍼 보내는 날이 언제죠?”
“토요일이요. 아침에 업체 사람이 들른다고 하네요.”
타이퍼의 업그레이드 날짜가 마침내 정해졌다.
이제 그 골동품마냥 오래된 로봇은 고물 신세를 벗어나 현대적 안드로이드로 재탄생될 터였다.
“…….”
다만 그것은 그다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바디 모듈과 OS가 최신형으로 교체된다는 것은, 현재 시스템의 탈옥 상태가 해제된다는 것.
그렇게 되면 지금 같은 원격 조종은 할 수 없어진다. 최신 OS는 보안이 까다로워, 접속 시도만 해도 분명히 IP 주소와 기록이 모두 남게 될 것이다.
즉, 정체를 숨긴 채 타이퍼 안에 들어가 선생 노릇을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
“팀장님.”
“예?”
“저어…….”
리타 스몰필드는 머뭇거렸다.
말해 버릴까. 내가 사실 타이퍼라고.
“…….”
허나.
결국 입술을 똑바로 떼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겁이 났다. 말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의 관계마저도 부서져 버릴까 봐.
그날 밤도 그녀는 타이퍼 안에 들어갔다.
평소처럼 유진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지막 강의였다. 앞으로 가르쳐주지 못할 분량을 몽땅 교재로 만들어 그걸 프린트로 뽑아서 건네주었다.
“마법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부름>의 힘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셔야 합니다.”
정말 마법사로서 강해지고 싶다면,
악마의 힘 따위에 의존하지 말라고.
“주인님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인고의 시간이 걸릴지라도,
꼭 해낼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럼, 월요일에 보자. 스승님.」
유진은 별생각 없이 미소를 지었다.
“네.”
그리고 리타 스몰필드는 말했다.
화면 속 유진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때 봬요.”
***
여전히.
리타 스몰필드의 하루는 여느 때와 같다.
변한 것은 그리 많이 없었다. 굳이 찾아보자면, 예전에 비해 좀 더 일찍 잠들게 된 것 정도다.
유진과의 관계도 그대로였다. 스승과 제자란 묘한 콘셉트는 이제 아무도 모를 이야기가 됐을 뿐.
상사와 부하 직원.
짝사랑 역시 그대로.
변한 것은 많이 없었다.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뒤.
“열이 높네. 오늘은 쉬어야겠는데?”
“……으응.”
“대신 회사에 전화해줄까? 안녕하세여, 저 리타 친군데여, 리타 오늘 아파서 회사 못 가여~.”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몸살 탓에 병가를 낸 리타 스몰필드는 룸메이트 폴리 보일의 간호를 받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픈 걸 제외하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병 기운도 오후 무렵엔 제법 나아진 상태였다.
“수프 끓여 놨는데, 갖다줄까?”
“아냐. 나가서 먹을게.”
거실에 나온 그녀는 습관처럼 TV를 틀었다.
정겨운 고향 맛이 물씬 풍기는 엘프풍 야채수프를 한입 떠먹으려던 그 순간.
「긴급 속보입니다.」
「방금 전인 오후 1시 28분, 시에라시티 이스트포레스트 6구역의 <슐츠 업그레이드 센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게이트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요.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습니다.」
다급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리타 스몰필드의 귀를 찔렀다.
“……?”
TV 화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곳은 분명, 타이퍼를 맡긴 <슐츠텍>의 연구 시설. 그녀가 직접 몇 번이고 들렀던 곳이다.
“아.”
오늘은 내가 병가를 내서.
팀장님이 대신 가셨을 텐데……?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