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46화 (146/201)

146화. That’s Not Me (4)

그 한마디를 들은 순간.

‘드디어’란 느낌이 고스란히 온몸을 감쌌다.

“내가 했어.”

그것은 틀림없는 자백이었다.

더 이상 추궁할 필요조차 없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구태여 한 번 더 캐물었다.

“그쪽이, 정말로 가짜 타이퍼가 맞다고……?”

쓸데없이 병적인 확인 절차.

공연히 던진 질문에 불과했다.

그리고,

상대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글쎄.”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는 듯,

내 의심에 다시금 불씨를 피웠다.

“그날 연구소에서 당신을 구한 건 나야.”

“…….”

“당신이 말한 것처럼, 그 ‘타이퍼’인가 뭔가 하는 안드로이드를 조종해서 아르카나 마법을 조금 썼지. 그건 분명 내가 한 일이 맞아.”

여자,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는 말했다.

“하지만.”

비스듬히 치켜뜬 고양이 같은 눈으로.

“당신이 찾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나를 응시하며, 그렇게 속삭였다.

“……뭐?”

뒤통수를 가볍게 얻어맞은 듯했다.

허나 충격이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그 노트북. 내 거 아니거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리타 스몰필드는 불현듯 잠에서 깼다.

‘으응…….’

창밖은 어둑했다. 이제 슬슬 저녁인 걸까.

딩동―. 초인종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누구지……?’

폴리가 퇴근하려면 아직 좀 멀었는데.

택배나 우편이 원래 이 시간에 오는 건가.

딩동―.

다시 또 보채는 듯이 울리는 초인종.

리타 스몰필드는 낑낑대며 침대에서 나왔다.

“네에. 나가요.”

다행히 열은 꽤 내렸고 몸살 기운도 옅어져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가누며 현관까지 향했다.

벌컥―.

“누구세…… 어?”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팀장님?”

유진이었다.

그는 넥타이가 조금 흐트러진 정장 차림에,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든 채로 문 앞에 서 있었다.

“깜짝이야. 또 오신 거예요?”

“…….”

“어, 근데, 저 이제 괜찮은데…….”

미안한 듯 말하면서도, 내심 기쁜 맘에 살짝 헤벌레한 표정으로 웃음 지은 리타 스몰필드에게.

“가짜 타이퍼는 밤에만 나타났어요.”

유진은 말하기 시작했다.

어딘가 초연한 목소리로.

“……네?”

“거의 매일 밤, 사무실에 내가 혼자 있을 때면, 타이퍼 안에 들어가 저한테 마법을 알려줬어요.”

어리둥절한 표정의 리타 스몰필드.

유진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스몰필드 씨랑 같이 야근을 하는 날에는 마녀가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었죠.”

“…….”

“가짜 타이퍼가 나타나는 시간은 항상 스몰필드 씨가 퇴근하고 두 시간쯤 지나서였고요.”

가짜 타이퍼는 답변이 곤란한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나니니시마스까’라고 둘러댔던 기록이 있다.

고물 시절 타이퍼의 말버릇이었던 ‘나니니시마스까’를 알고 있는 것은, 같은 사무실 사람들뿐.

“그 블로그 주인, 세실리아 화이트럼은 내가 쓴 댓글을 일부러 무시하고 나를 차단까지 했어요. 다시 말해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거실에 있는 노트북을 열어 보았을 때.

바탕화면에 사무용 프로그램들이 잔뜩 깔려 있는 것을 봤으면서도, 나는 멍청하게도 착각을 했다.

“가짜 타이퍼의 정체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뻔한 이야기였는데도 말이다.

“스몰필드 씨였던 거죠.”

***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는 천재였다.

수천 년에 걸쳐 숱한 대마법사를 배출시킨 엘프 공동체 <아이에르 비트>에서도, 마법사로서 그녀의 재능은 역사상 최고라 칭해도 손색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름 높은 순혈 하이엘프 일족 벨카폴리아의 영애가 아니던가.

핏줄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다음 세대 아르카나 마법의 계승자는 그녀가 되는 것이 당연했다.

허나―

“왜 제가 계승을 받게 된 거죠?”

정작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늘 같은 원로회 앞에서,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는 당당하게 목소리를 깔고 정면으로 대들었다.

“너 말고 다른 후보는 없다.”

“개소리. 마르가리타가 있잖아요.”

마르가리타 벨카폴리아.

하프엘프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엘프.

태어나자마자 양친이 사고로 죽은 탓에 곧장 마을로 보내져, 벨카폴리아 가문에서 거두어 키운 수양녀. 알리시아의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다.

“잡종은 계승자가 될 수 없다.”

“그 애는 나보다 훨씬 뛰어나요. 마력은 없는 수준이지만, 아르카나 적합성은 나 따위랑 비교도 안 된다고요. 계승은 마르가리타가 받아야 해요.”

“엘프의 피는 고작 반의반밖에 들어 있지 않은 가짜다. 용의 왕좌를 도마뱀 새끼한테 줘서야 되겠느냐? 이치에 맞는 게 무엇인지 알도록 하여라.”

“…….”

당연히 원로회는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늙다리 꼰대 자식들 같으니. 그래, 어디 지들 맘대로 하라지. 나도 내 맘대로 해주겠어.

아르카나 마법의 계승자는 본래 세계수의 수호자로서 공동체에 남아 한평생을 헌신해야 했다.

하지만 계승식이 끝나고,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는 마을의 모두가 까무러칠 선택을 하고야 말았으니.

“리타. 같이 도망가자.”

친구와 손잡고 마을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열여섯밖에 먹지 않은 두 소녀의 반란이었다.

역대 최초로 벌어진 아르카나 계승자의 탈주.

마을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때로는 반강제적인 수단까지도 동원해 가며 도망자들을 꾸준히 괴롭혔다.

몇 년간 이어진 소모적인 멱씨름 끝에,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는 거래를 시도했다.

자신이 <나인서클>에 들어가, 이후 정부로부터 받게 되는 모든 특혜와 권리를 마을 측에 양도하겠다, 그 대신에 우리 좀 얌전히 살게 내버려 둬라―.

거래 결과는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원로회는 알리시아의 제안을 승낙했고, 두 소녀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됐다.

이름을 바꿨다. 집을 빌렸다.

대학에 갔다. 일자리를 구했다.

평범한 삶이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시에라시티는 소시민이 살아가기에 더없이 끔찍한 도시였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뭐 해, 리타?”

“응? 아, 인터넷.”

“<마녀일기>, 세실리아 화이트럼의 마법 연구소……. 뭐야, 이거? 블로그 하는 거야?”

“으응. 마법 강의 같은 포스팅 올리고 있어.”

“이걸로 돈이라도 벌려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좀 심심해서.”

“우와, 조회수 엄청 많이 나오네……. 이거 수익 창출 신청하면 돈 꽤 될 텐데, 진짜 안 하게?”

리타 스몰필드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재능은 차고 넘칠 만큼 있었지만, 마법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그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선천적인 마나 보유량의 한계.

술식 이해도가 아무리 높다고 한들, 그 술식을 발현시킬 마나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만약 아르카나 마법을 계승했더라면, 마나 보유량이 적은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응.”

그러나 원로회에서 정한 계승자는 그녀가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마법사가 되는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괜찮아.”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마법 따위가 없다고 해도,

인생은 충분히 마법 같았다.

“오오올, 리타! 취직 성공했네! 윌슨앤코면 대기업이잖아!”

“에헤헤, 계약직이지만…….”

“그래, 너는 똑똑하니까, 동네 카페서 알바나 하고 있기엔 아깝지. 좀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구.”

그전까지는 꽤 행복하게 살아왔지만…….

사실 그런 긍정적인 마음도, 윌슨앤코에 취직하고 나서부터는 왜인지 조금씩 망가져 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계속되는 고달픈 노동. 그에 반해 쥐꼬리만 한 봉급. 무한한 상사의 괴롭힘…….

사회에 첫발을 내민 이후, 리타 스몰필드는 본격적인 인생의 쓴맛을 나날이 체험하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죽고 싶은 날이었다.

15일 연속 출근. 7일 연속 야근. 2일 연속 철야. 일주일째 감기로 개고생 중이었던 어느 하루.

“뭐 해요, 안 가고?”

그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조퇴건 병가건 모조리 퇴짜를 놓던 악덕 상사 놈이, 어쩐 일로 집에 보내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가, 감사합니다아…….”

회사 밖으로 나온 지 한참이 지난 뒤에도, 리타 스몰필드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었다.

‘뭐지? 이게 대체 뭔 상황이지?’

‘저 쓰레기가 뭘 잘못 처먹었나?’

‘갑자기 왜 이렇게 상냥해진 거야?’

돌아가는 내내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집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인데 집에 있다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범죄 아닌가, 이거?

“…….”

의문이 지나고 나자,

곧 해방감이 몰려왔다.

……나 지금 퇴근했다!

오후 1시에! 집에 왔다!

“어예!”

옷도 안 갈아입고서 그대로 침대에 점프해 하릴없이 뒹굴거리기를 두어 시간.

포근함과 안락함에 기분 좋게 취해 있던 그녀는, 문득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아, 핸드폰 놓고 왔다…….”

주머니에도 가방에도 휴대전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회사에 폰을 두고 온 모양이었다.

“으, 도로 회사 가긴 싫은데…….”

신기하게도 집에 오자마자 감기는 금방 나았다.

사무실에 돌아갔다가 멀쩡해진 모습을 상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퇴근이 번복되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하아.”

어쩔 수 없었다.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현대인은 휴대전화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생물이니까.

“옷 안 갈아입길 잘했네.”

주섬주섬 가방만 챙겨 집을 나왔다.

집에서 역까지 걸어서 15분. 지하철 타고 15분. 다시 역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15분. 총 45분.

오후 4시 무렵.

리타 스몰필드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마주치기 싫은데, 어쩌지…….”

그녀는 사무실 문 앞에서 한참 동안 뻐겼다.

빼꼼 문을 열어 안을 보니, 역시나 유진이 자리에 있었다. 모니터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후우우…….”

심호흡을 하고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놓고 온 게 있어서요. 아하하.

“……’아하하’는 빼자. 쪼갠다고 시비 걸라…….”

제발 회사에 남으란 소리만은 하지 말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며, 사무실 문을 연 순간.

―푸샤악!

눈 깜짝할 사이에, 파르르 떨리는 보라색 불꽃들이 연기처럼 흩날리며 온 사무실을 뒤덮었다.

“……?!”

리타 스몰필드는 화들짝 놀라 문을 다시 닫았다.

“으아아, 뭐야 이거!?”

사무실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났다. 유진이 허겁지겁 소화기를 찾아 들고 허둥대는 소리였다.

시간이 지나자 곧 조용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만이 사무실 앞 복도를 메웠다.

‘…….’

리타 스몰필드는 문고리를 꽉 붙잡았다.

잘못 본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지금…….’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쿵쾅댔다.

‘회사에서 지금 뭐 하는 거야, 저 인간……!?’

그것은 분명, 마력을 방출하는 장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