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That’s Not Me (1)
이스트포레스트 2구역.
<세계수 신전> 조화의 방.
“특별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나선 계단의 중심에 자리한 공간. 국가 지정 최강의 마법사 단체 <나인서클>의 회동 장소.
크리스털 원탁에서 근엄한 목소리로 회의 시작을 알린 인물은 제3원. 귄터 사지타리우스였다.
“오늘 결원은 ‘천년마녀’ 한 분뿐이군요.”
원탁에 앉은 모두의 시선이 한군데로 쏠렸다.
사슴뿔이 돋아난 녹색 장발, 붉은 두루마기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두문불출의 히키코모리 드래곤.
“청룡이시여.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스터 귄터. 그간 별고는 없었는가?”
“소인의 삶에 별고랄 게 무어 있겠습니까. 그저 강녕 끝에 찾아올 갈 날만을 기다리는 중이지요.”
“죽을 날만 기다린다라……. 훗. 그 점은 미천한 인간인 그대도 나와 다를 바 없군그래.”
제2원 ‘청룡’ 미르각시는 ‘아케인 마스터’ 귄터 사지타리우스와 짤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 둘로 말할 것 같으면 나폴레옹 전쟁이 발발했을 적부터 알고 지낸, 꽤나 오래된 인연이었다.
“총회장인 저로서는 이 조촐한 모임에 청룡께서 이리 몸소 나와 주심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안건이 안건이니만큼, 이번만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의견을 듣고서 판단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귄터 사지타리우스는 원탁을 슥 둘러보았다. 다른 여섯의 대마법사는 그의 시선을 내리 흘렸다.
우뚝―.
노인의 시선을 오롯이 가져간 자는,
“바르베이라 공.”
제7원. ‘라스트 오우거’ 바르베이라 테르마옌.
염소 뿔과 사자 눈. 칠흑처럼 검은 머릿결과 그보다 진한 다크서클을 지닌. 이 시대 최후의 마족.
“이틀 전. <슐츠텍>의 연구 시설인 <슐츠 업그레이드 센터>가 불의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제4원 콘스탄틴 공을 닮은 신원 미상의 안드로이드들이 습격을 해 왔다 하더군요. 게다가…… 그 안드로이드들은 마법을 썼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
“마법을 쓰는 기계― ‘위저드로이드’는 바르베이라 공의 발명품이지요. 즉, 이번 습격 사건의 범인은 당신이란 얘기가 됩니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나인서클> 소속으로서 민간 대상의 테러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엄금된 사항입니다. 제명은 물론, 상황에 따라 즉결처분까지도 가능한 행위지요.”
「어, 음, 마스터 귄터? 고정하시고, 그, 미스 바르베이라의 말도 한번 들어보는 것이…….」
“콘스탄틴 공. 귀공 역시 처벌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귀공을 탄생시킨 이는 바르베이라 공이니, 둘은 모자지간 같은 사이 아닙니까.”
「잠깐, 뭐요? 모자지간? 설마 저 또라이년이 내 엄마란 말입니까? 우, 우욱! 저딴 게 날 낳아준 엄마일 바에야 차라리 아빠 몸에서 태어나고 말지!」
“……바르베이라 공. 할 말 있습니까?”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은 발뺌하지 않았다.
증거가 워낙 명확했던 것도 있고, 구질구질하게 변명해 봤자 본인에게 이득이 될 부분이 없었기에.
“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오히려 당당하게 목소리를 깔고 나갔다.
그녀의 뻔뻔한 태도에 귄터 사지타리우스의 주름 깊은 눈살이 더욱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해야 할 일을 했단 게 무슨 소리지요?”
“노웨어맨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알았거든.”
움찔―.
귄터 사지타리우스는 순간 마시던 숨을 멈춰 세웠다. 다른 이들 또한 눈썹을 치켜뜨며 반응했다.
“노웨어맨의…… 심장……?”
<나인서클>의 영구결원. 제9원. 노웨어맨.
이름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사나이. 무려 반만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는 역사상 최강의 대마법사.
노웨어맨의 심장에는 무한한 마력이 깃들어 있다고 하며, 그는 어딘가에 자신의 심장을 숨겼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가슴 뛰는 이야기. 허나 진실로 밝혀진 적은 없는 전설이었다.
“산타클로스처럼 뻔―한 구라일 게 당연한데도, 다들 그 심장을 찾고 싶어 안달이잖아. 그치?”
“그것을 귀공이 찾았단 말입니까……?”
“알고 보니 산타는 실존했다 이거지.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낸 건 나뿐만이 아니야.”
라고 말하며,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은 눈을 홱 돌렸다. 일부러 강조하듯 시선을 꽂아 넣은 것이다.
“어이. 가짜 마녀.”
그녀의 시선이 노려본 곳은 두 칸 옆자리.
제5원.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를 향해서였다.
“너도 거기에 있었잖아.”
“…….”
“설마 모른 척하려는 건 아니겠지.”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얗게 곱슬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휘휘 감기만 할 뿐.
“바르베이라 공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건은 지금 바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군요. 정말로 노웨어맨의 심장을 지닌 이가 도시를 떠돌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재앙입니다.”
귄터 사지타리우스가 말했다.
“바르베이라 공. 일단 이번 테러 용의는 불문으로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오예―.”
“심장 수색에 대해서는 향후 정부 측과 상세한 협의하에 결정하는 것으로, 당분간은…….”
물귀신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의제의 중점은 어느덧 ‘테러’에서 ‘심장’으로 비껴 나간 뒤였다.
“이상.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특별총회가 끝났고, <나인서클>의 일원들은 각자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각시님.”
그 무렵 홀로 회의장 밖을 나가는 중이었던 미르각시를, 제6원 제퍼슨 브리즈가 불러다 세웠다.
“무슨 일인가. 제프.”
“어쩌실 셈인가요. 노웨어맨의 심장은, 전에 봤던 그 가짜 암귀 친구에게 있는 거잖습니까.”
그는 누가 들을까 목소리를 낮췄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어쩌긴. 나만 알고 있어야지.”
“계속 숨기실 작정이십니까?”
“그대도 공범일세. 협조하게나.”
“정말이지. 못 말릴 분이시라니까.”
제퍼슨 브리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그 한숨에 부정적인 의미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문제는 바르베이라겠군요. 그녀가 헛짚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친구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시간문제예요. 암귀 이슈까지 연관됐으니, 아마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척살 요청이 내려오겠죠.”
“분명히 그렇게 되겠지.”
“진심으로 그 친구를 돌보실 거라면, 제일 먼저 바르베이라를 어떻게 손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나는 오우거보다 마녀 쪽이 신경 쓰이는군.”
미르각시의 말에 그가 갸우뚱했다.
“알리시아 말씀이신가요?”
“그래. 오우거가 말한 대로라면, 그 마녀란 엘프 녀석도 유진 연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인데…….”
미르각시는 그녀를 수상하다고 여겼다.
수상하다 생각한 이유 따위는 딱히 없었다.
“궁금하구먼.”
지상 최강의 생물.
드래곤의 감이었을 뿐.
“내 장난감이랑 당최 무슨 관계일지.”
***
테러 사건이 벌어지고 이틀이 지났다.
<슐츠 업그레이드 센터>가 공격받은 일은 당시 긴급 뉴스를 통해 TV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됐다고 한다. 스몰필드 씨와 사장님도 그때 그걸 보고서 우리들 걱정에 아주 전전긍긍했다는 모양이다.
비너스는 입원했다. 전치 6주 판정이었는데, 다친 것에 비해 입원 기간이 좀 길게 나온 편이었다. 본인은 산재 처리된다고 하니까 만족해하더라.
타이퍼는 조금 더 <슐츠텍>에 머물게 되었다. 프로토타입 기체의 구동에 성공한 것은 최초라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기존 연구 시설은 박살이 난지라 샌제이비어 쪽으로 옮겨졌다.
나는 뭐,
평소랑 같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전 9시.
사무실에 들어온 스몰필드 씨에게 내가 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벙찐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팀장님? 왜 여기 계세요?”
“왜라뇨. 회사원이니까 출근은 해야죠.”
“아, 아니, 그건 맞는데, 그게 아니라…….”
스몰필드 씨는 매우 당황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저께 죽을 뻔한 일을 겪어 놓고 태연하게 출근한 꼴이 그녀를 놀라게 한 듯했다.
“이번에 신규 사업 들어갔잖아요. 바빠지는 마당에 저까지 빠져 버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치만…….”
“걱정 마세요. 저는 헬렌처럼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찰과상이랑 근육통이 전부니까요. 이 정도면 그냥 파스 몇 개 붙이면 나아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스몰필드 씨는 어딘가 언짢은 기색이었다.
“자, 일합시다.”
“…….”
“커피 드실래요? 오늘은 왠지 믹스가 땡기는데. 타이퍼가 없으니까, 오랜만에 제가…….”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품 팬트리로 향하던 중.
어질―.
시야가 빙글 하고 돌았다.
눈앞이 흔들리다가, 컴컴해졌다.
“……?”
어라.
갑자기 왜 이러지.
호흡이 덜컥 막히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스르르 넘어졌다.
책상을 쓸어 젖히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쿠당탕―!
“티, 팀장님?!”
깜짝 놀라 내게 달려온 스몰필드 씨. 정신이 흐릿한 와중에 차가운 손길이 어깨와 이마에 닿았다. 그제야 내 몸에 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일어나거나 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의식을 잃었다.
***
웨스트록 1구역.
골든호프 종합병원.
“과로입니다.”
의사의 소견은 그러했다. 나는 가만히 침대에 누운 채로 나이 많은 의사의 말을 경청했다.
“하루에 평균 몇 시간 주무시나요?”
“그게, 두세 시간 정도…….”
“수면 부족이 겹친 과다 피로 증상 같네요. 최근에 겪으신 사건도 정신과 육체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줬을 겁니다.”
“그렇군요…….”
“지금 환자분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요. 피도 많이 묽고, 빈혈도 심하고, 간 수치도 높고. CT 보니까 뼈랑 관절도 무슨 운동선수 수준으로 상해 있어요. 하여간에 성한 부분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그렇게 무리해서 일을 하니 당연히 쓰러질 수밖에 없죠.”
인생을 너무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였다.
혼절해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까지 실려 왔던 것치고는 소박한 진찰이란 생각이 들었으나…….
“죽을 수도 있어요.”
흠칫―. 의사의 경고에 순간 바짝 쫄았다.
그냥 한 말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넘겨들을 수는 없었다. 확실히 최근 들어 무리를 하긴 했으니까.
“일단은 무엇보다도 안정이 최우선입니다. 입원부터 하시고, 내일 다시 검진받도록 하세요.”
“아, 예…….”
의사는 곧 병실에서 나갔다.
그 뒤, 바깥 복도에서 쭈뼛거리며 서 있던 스몰필드 씨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파스 붙이면 낫는다면서요.”
염려 반 심통 반의 뾰로통한 표정.
나는 멋쩍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스몰필드 씨.”
“회사는 당분간 쉬시는 거죠?”
“그렇게 됐네요. 의사 선생님 말씀을 안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신규 사업 건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세요.”
“……혼자서 괜찮겠어요?”
“문제없어요. 원래 팀장님 오기 전까지는 사무실에 저 혼자뿐이었는걸요. 저는 그동안 많이 쉬기도 했고, 여차하면 사장님이라도 부르죠, 뭐.”
“…….”
“저기, 그, 면회도, 자주 올 거니까요…….”
스몰필드 씨의 당찬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슬슬 같이 일한 지 반년이 다 되어 가기에, 부하 직원으로서 그녀의 능력은 신뢰할 수 있었다.
“스몰필드 씨.”
“……네?”
“항상 고마워요.”
그즈음 피로가 몰려와 눈을 살며시 감았다.
얼핏 스몰필드 씨의 얼굴이 살짝궁 붉어진 게 보인 것 같기도 하지만, 기분 탓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