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Take the Power Back (5)
“권한 부여 완료. 포트 포워딩 연결.”
“해커가 저희 시스템에 접속했습니다.”
지하 B3 플로어 보안실 메인 컴퓨터.
안경 쓴 직원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IP 주소는……. 시에라시티군요.”
“디도스 공격이나 백도어 생성 시도는?”
“아직까진 없습니다.”
임시 책임자인 알랭 그루너 또한 그 옆에서 진지한 눈으로 모니터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구소 시설을 붕괴시킨 크래킹 테러 이후, 느닷없이 ‘HELP’를 외치며 접근해 온 또 다른 외부 IP.
정말로 선량한 해커라면,
뭔가 도움을 주려고 할 터.
“앗,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때, 수수께끼의 해커가 인트라넷 메신저를 통해 그들에게 대화 신청 메시지를 보내왔다.
“수락할까요?”
“그러죠.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알랭 그루너는 직원 대신 자기가 직접 컴퓨터 앞에 앉은 뒤 해커와의 대화를 시작하려 했다.
허나,
그가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전에,
「HELLO.」
띠링―.
해커로부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접속을 허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쪽의 상황은 대충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
엄청나게 빠른 타자 속도였다.
이쪽에서 미처 답변을 하거나 질문을 날릴 틈도 없이, 대화창은 신규 메시지로 속속들이 갱신됐다.
「일단 현재로서 가장 큰 위협은 해킹된 보안용 안드로이드들의 오인 사격이라 파악됩니다.」
「전체 해킹을 해제하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므로 즉각 폐기 처분 조치를 권장합니다.」
「신속한 처리를 위해 지금부터 원격 제어 가능한 전투형 안드로이드 1기를 배치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어진―
해커의 뜬금없는 요청.
“원격 제어……?”
지금은 시설 내의 모든 안드로이드들이 해킹 상태라 어떤 식으로도 제어가 불가능했다.
다만 해커가 언급한 ‘원격 제어 가능한 전투형 안드로이드’가, 딱 한 대 존재하기는 했다.
「프로젝트 이브.」
「현시점 알파 버전 프로토타입 기체에는 OS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해킹을 당하지도 않았겠지요.」
알랭 그루너는 흠칫 놀랐다.
‘프로젝트 이브’는 <슐츠텍> 내에서도 아는 이가 드문 극비 사항인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클라우드 라이브러리에 타이퍼의 백업 데이터가 있으니 그것을 해당 기체에 설치해 주십시오.」
「관리자 권한을 수여받았으니 시스템 동기화와 최적화는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로젝트 이브’의 프로토타입 기체가 존재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구동에 있어 TYPE-R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까지도 꿰뚫어 보고 있다.
「이상.」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지나가던 선량한 해커치고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
알랭 그루너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누구죠……?”
기나긴 침묵 끝에,
메시지가 돌아왔다.
「마녀입니다.」
***
이브EVE.
향상된 다용도 개체Enhanced Versatile Entity.
현세대 최고의 기종인 ‘아담 시리즈’를 대체할, <슐츠텍>의 미래형 안드로이드 개발 프로젝트.
8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된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어디까지나 시범 운용을 목적으로 한 기체였다.
플랫폼 베이스는 기존 아담 시리즈와 공유. 섀시 역시 일반적인 휴머노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탑재 장비는 2세대 배틀로이드와 동급.
군용 제트팩과 에어리얼 디펜서가 기본 내장돼 있지만, 총기 등의 살상 무기는 빠져 있었다.
「방호 시스템을 유지합니다.」
「유지 가능한 시간은 1분 3초.」
끝도 없이 쏟아지는 펄스 캐논의 포화 속에서, 무표정한 금발의 메이드가 읊조렸다.
유진은 넋이 나간 눈으로 그 아름다운 안드로이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주인님. 몸을 피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
죽은 줄 알았던 녀석이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허나 감격의 포옹 따위를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었다.
30기가 넘는 안드로이드들이 공격을 해 오고 있고, 습자지보다도 얇아빠진 D필드 하나만이 포격으로부터 그들의 목숨을 간신히 지켜주는 중이었다.
「방호벽 해제까지 남은 시간 47초.」
이대로라면 시간을 조금 벌었을 뿐.
패배라는 결말은 변하지 않을 터였다.
‘마법을 써야만 해.’
유진은 생각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자기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로봇들의 포위를 돌파해야만 했다.
‘써야, 하는데…….’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마나가 나올 기미는 없었다.
‘젠장……!’
장마철의 저수지만큼이나 몸 안에 넘쳐흐르는 마력을, 어째서인지 코딱지만큼도 뱉어낼 수가 없다.
<부름>을 남용한 대가였다.
흑마법으로 지나치게 과열된 신체는 이제 평범하게 움직이는 것마저도 심히 버거워했다.
―방법은 없었다.
「방호벽 해제까지 남은 시간 30초.」
“…….”
「주인님. 제트팩 연료가 소진되어 비상 탈출이 어렵습니다.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유진은 끝내 절망을 수용했다.
“……타이퍼. 미안. 몸이 안 움직인다.”
해탈한 목소리로 좌절을 내뱉었다.
메이드 로봇은 고개를 돌려, 주인의 후들거리는 팔과 다리를 보았다.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로이드는 말했다.
「어머니께서 함께하십니다.」
알쏭달쏭한 한마디를 뱉은 직후.
로봇의 핑크색 눈동자가 번쩍였다.
「원격 제어 가동. 사용자 업데이트.」
「드라이브 모드 변경. MODE-EVE.」
위잉. 철커덕. 키이잉―.
배부에 돌출돼 있던 메카닉 윙 파츠가 다시 체내로 돌아가고, 잠시 안구 부위의 빛이 사라졌다.
“타이퍼……?”
조금 뒤.
안드로이드가 다시 눈을 떴다.
「…….」
아까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그리고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lhi de ber dŏlor witsæger…….」
미지의 언어.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
형용하지 못할 기묘한 감촉이 느껴졌다.
[……zeke mesición ti drewünschen…….]
단어 하나하나가. 발음 하나하나가.
그 자체가 독립된 언어로 전해졌다.
두근―.
심장이 떨려 왔다. 왜인지 유진은 그 순간 세상 모든 것들의 운명이 뒤틀린 듯한 기분을 받았다.
마치,
처음으로 <부름>을 쓸 때와 비슷한 느낌.
「meina bola de Aier.」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힘.
그것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
아르카나 마법.
비전 마법의 원류로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하이엘프 공동체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의 비술.
마법이란 마력과 술식의 조화를 뜻한다.
그러나 옛적의 마법사들은 마력이 아닌 자연에 존재하는 우주의 힘을 빌려 마법을 부렸다고 한다.
마법이 아닌 마법. 이치를 거스르는 힘.
그 본질은 이미 불가능의 영역에 있노니.
「위상 술식 전개.」
파동이 광장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그 울림은 거대한 파도로 변했다.
화륵―.
태어난 불꽃의 색은, 투명한 순수의 표상.
다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무색 마력.
불꽃에는 실체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존재했다. 실재하는 거짓. 만질 수 있는 상상. 마법魔法.
고대의 하이엘프는 영혼이 깃든 존재만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법이 비로소 존재에 영혼을 깃들게 하는 것이라 믿었다.
즉,
그들에게 있어 마법은― 신이었다.
「<신염神炎>.」
공간이 그 자체로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그 불꽃은 망나니처럼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태우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엄정한 하느님의 손길과도 같이, 지나가는 동안에 주변의 사물들을 하나씩 어루만지며, 각자에게 딱 맞는 천벌을 내렸다.
보이지 않는 연옥. 세상의 종말.
하늘에서 떨어진 무색의 불꽃이 대지를 강타했고, 죄를 저지른 기계들은 한순간에 녹아 없어졌다.
***
눈부시게 투명한 빛줄기 사이에서,
그 안드로이드는 고고히 서 있었다.
“…….”
유진은 타이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안에 든 존재는 타이퍼가 아님을 알았다.
문득.
로봇이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유진과 안드로이드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 상태 그대로, 시간이 십여 초간 흘렀다.
“……당신…….”
아르카나 마법의 계승자는 단 한 명.
그 시대에 가장 뛰어난 엘프 마법사가 이전 시대의 계승자로부터 힘의 원천을 물려받는다.
현세대의 계승자는 <나인서클>의 제5원.
벨카폴리아의 마녀. 알리시아 벨카폴리아.
“……마녀, 맞지……?”
유진이 물음표를 띄웠다.
로봇은 아무 말이 없었다.
「…….」
그저―
싱긋 웃어 보였을 뿐.
「원격 제어 해제. 임시 사용자 권한 복구.」
「동기화 상태 정상. 노말 모드로 기동합니다.」
그 미소가 마지막이었다.
기계적인 알림이 몇 차례 들리더니, 얼마 안 가 안드로이드 타이퍼의 자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인님. 다치신 덴 없으십니까.」
“…….”
로봇의 물음에, 유진은 침묵했다.
한결같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있다가,
“응.”
비로소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구해줘서 고맙다. 타이퍼.”
유진은 웃었지만 타이퍼는 웃지 않았다.
아직 감정 모듈의 표현력이 약한 탓이었다.
***
같은 시각.
어두운 공간의 책상에 앉은 한 여자가, 여러 개의 모니터 사이에서 갑자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이씨, 뭐야. 다 죽었네.”
화면 한쪽 리스트에 ‘제어 불능’이란 말이 우수수 올라왔다. 해킹한 안드로이드들이 모두 부서져 버렸다는 뜻이었다.
「쯧쯧쯔. 결국 실패한 모양이군요.」
머리를 박박 긁으며 짜증 내는 여자의 곁으로, 해골을 닮은 안드로이드가 다가와 혀를 찼다.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누가 좀생원 아니랄까 봐, 돈 아끼겠답시고 싸구려 복제품들이나 쳐 보내시더니 꼴좋네요.」
“입 닥치지 못해, 고물 새끼야.”
「전파 차단을 하느라고 데이터 전송도 못 받았지요? 남 똥 못 싸게 하려다 지 똥구멍까지 막은 꼴이로군요. 실로 유쾌해요. 흠하하하하하핫!」
“이 씹새가 진짜.”
여자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나저나 어쩌시려는 겁니까? 생존자가 있으니 증언이 나올 테고, 그러면 날 닮은 로봇이 <슐츠텍>을 습격했다는 게 세간에 알려질 텐데요.」
“어쩌긴 뭘 어쩌겠어. 시치미 떼야지.”
「만약 <나인서클> 회의 때 안건으로 올라온다면, 저도 쉴드 많이 못 쳐드린다는 것만 알아 두십시오. 친애하는 병신 주인님.」
“그 점은 걱정 없어. 딱 좋은 핑계를 발견했걸랑. 여기 함 봐봐.”
해골 로봇은 주인 놀리기를 잠시 멈추고는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보이지? 시설 내에 거대한 마력 반응이 있었어. 하나는 자색 마력. 또 하나는 무색 마력이야.”
「오호, 그렇다는 말씀은……?」
“알리시아. 그 썅년이 연루돼 있단 말씀이시지.”
전설의 대마법사 ‘노웨어맨’의 심장.
그것을 노리는 게 자기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난 아직 포기 안 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