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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40화 (140/201)

140화. Take the Power Back (3)

나는 감정 이입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슬픈 영화를 보고 울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게임을 할 때 정든 캐릭터가 죽어도 별 감흥이 들지 않았다. (사실은 심지어 내가 죽이는 쪽이었다.)

그래서일까.

눈앞에서 타이퍼가 죽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음에도, 슬프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다만,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뿐이다.

푸샤아아아악―!

절제하지 못한 노여움이 마나를 폭발시켰다.

심호흡만으로는 진정이 안 될 정도로 열이 뻗친 상태였으나, 이후 내린 판단은 지극히 냉정했다.

방출된 마력을 한 점에 모아 발사.

쏘아진 불꽃에 그대로 마법을 담았다.

“<강화>.”

상대는 전투형 안드로이드 3체.

기계를 무력화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기능 강화 실패>를 유도하는 것.

<슐츠텍>의 경비용 안드로이드들은 마법 공격에 대비한 안티스펠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침입자로 보이는 저 3체의 로봇들에겐 그런 게 없었다.

놈들의 마법 방어 능력은 전무할 터이니,

<강화 실패> 한 방에 나가떨어져야만 했다.

그러나―

“……?”

내 마법이 로봇들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정상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던 자색 마나의 불꽃은 일순, 눈 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어진 다음 순간.

「<엑셀러레이션>,」

3체의 안드로이드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나를 향하여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때 어렴풋한 찰나에 들려온 짤막한 영창과, 주변의 공기를 에워싼 마나 불꽃의 공명을 보고서, 나는 그놈들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폭렬파>.」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그 기술이,

로봇들의 손아귀에서 울려 터졌다.

콰아아아아앙―!!

<포스 배리어>로 방어를 시도하면서 똑같이 <폭렬파>로 응수하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실패했다.

두 번의 마법이 모두 불발되었다. 내 신체에 직접 적용한 <강화>만이 가까스로 불발을 피했다.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폭렬파>는 근접한 상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효율의 공격력을 자랑한다. 내가 허구한 날 그 기술만 우려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안드로이드 놈들의 마나 출력은 단일 개체로만 따져 봐도 결코 어중이떠중이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3체의 연계로 동시 구사된 트리플 <폭렬파>의 위력은, 조금의 과장도 없이 흡사 대마법사 레벨.

충격파의 압력은 통로의 벽을 몇 개씩 뚫어 젖히고 광장 에어리어까지 내 몸뚱이를 날려버렸다.

코앞에서 가이우스급 파괴 마법에 직격당한 결과, 몸이 아예 산산조각 났다 해도 이상치 않았다.

그런데.

“허억.”

의외로 나는 멀쩡했다.

눈에 띄는 큰 상처는 하나도 없고, 여기저기에 쓸려 생긴 생채기 몇 개가 약간 따끔거릴 뿐이었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상황.

허나, 정말로 기적이 맞는 걸까.

공격을 받은 순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로봇 놈들이 나에게 <폭렬파>를 날렸을 때, 나는 <강화>를 두른 팔로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다.

….

….

그때.

묘한 감촉이 있었다.

그그극. 그극―.

피부를 옥죄어 오는 질척한 살기.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

내게서 흘러나온 것은,

<부름>의 벌레들이었다.

“후우우.”

울컥한 심장을 달래려 숨을 몰아쉬었다.

산소가 공급되자, 곧 침착해질 수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름>이 발현됐다.

……나를 지켜준 건가? 악마의 힘이?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음을 떠올렸다.

<톤토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저격수 화이트데스의 총알이 내 눈을 관통할 뻔했을 때, 그때도 이런 식으로 느닷없이 <부름>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총알을 먹어 치워준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가.

벌레들은 여전히 손가락 사이에 남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주인인 내가 칭찬해 주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끈적한 소음을 내며 잔망을 떨었다.

“…….”

두 번 다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제어할 수 없는 힘이니까. 제어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한 아이를 죽이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악마가 속삭인다.

<부름>을 써도 괜찮다고.

내 귀에 대고 유혹해 온다.

―써도 되는 게 아닐까?

―써야 하지 않을까?

자그맣게 피어난 의문은 곧 합리화로 변했다.

마냥 틀려먹은 생각은 아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해골 로봇 놈들에게는 내가 쓰는 마법이 일체 통하지 않는다. 무슨 버그라도 걸린 것 같다.

그렇지만 <부름>이라면 반드시 통할 것이다. 수도 없이 그 힘을 써 왔던 내게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악마의 벌레들이야말로 진정한 버그니까.

그럼에도,

물음표를 다 지우진 못했다.

―또 그때처럼 폭주한다면?

―내가 그걸 제어하지 못한다면?

겁이 났다. 그래서 망설여졌다.

지금 <부름>을 써도 되는 걸까.

….

….

문득,

타이퍼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부름>은 왜 쓰지 말라고 한 거야?”

녀석이 아직 고물이었던 시절의 기억이다.

개낡은 깡통이자 마법 선생 타이퍼였던 시절.

「저번에 설명드리지 않았습니까. 흑마법은 위험한 마법입니다. 설마 그새 까먹으신 겁니까.」

“아니, 악마의 힘이니까 위험하다는 그 얘기의 뉘앙스는 알겠는데, 근거가 좀 빈약한 느낌이랄까.”

일단은 편의상 타이퍼라 칭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때 그 녀석의 정체는 타이퍼가 아니었다.

내게 마법을 가르쳐 준 이는 추정컨대 ‘마녀일기’라는 블로그의 주인장. 세실리아 화이트럼.

“예를 들어, 난 벌써 <부름>을 쓰는 대가로 악마의 소원을 이뤄주겠다고 계약을 해버렸단 말이지?”

「자랑이십니다.」

“좀 들어봐, 인마. 아무튼 나는 언젠가 악마한테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입장인데, 굳이 힘들게 배운 스킬을 일부러 안 쓰고 묵혀둘 이유는 없지 않아?”

물론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어쨌거나 그 녀석은 내게 있어 까칠한 과외 선생이자 심심한 야근 타임의 좋은 말동무일 뿐이었다.

「<부름>을 쓰신 적이 있다고 하셨지요.」

“엉.”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끔찍했어.”

「만약 주인님께서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해 버리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상상해 보십시오.」

“졸라게 끔찍해지겠지.”

「흑마법은 술사의 재능과 노력 따위와는 무관하게 습득된 일종의 치트 능력입니다. 이는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의 손에 자동소총을 쥐여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술식의 세기에 비해 술사의 재간이 형편없으므로, 그것을 똑바로 다루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흐으음…….”

「주인님께서는 요 근래 마법사로서 꽤 성장하셨지만, <부름> 같은 강력한 힘을 다루기에는 아직 모자랍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은 쓰는 게 아닙니다. 술사 자신은 물론, 뜻하지 않게 주변에 있는 다른 사물이나 사람들에까지도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늘 그랬듯, 타이퍼 안의 마녀는 멍청한 질문을 하는 내게 <부름>을 써서는 안 된다며 겁을 주었다.

강해지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그 시기의 나는 <부름>이라는 치트키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녀석은 아마 그런 내 속내를 알아챈 걸까.

「반대로 말하자면.」

언제나와 같은 채찍 대신,

당근을 하나 쏙 건네주었다.

「주인님께서 충분히 강해지신 뒤에는, <부름>을 쓰신다 해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악마의 속삭임은 듣지 않았다.

유혹 따위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카인.”

내가 이 힘을 제어할 수 있을까.

확신은 없다.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녀석의 말을 신뢰할 뿐이다.

“나호르.”

***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중력. 지하 광장의 대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감각한 금속 피부를 가진 안드로이드라 해도 단번에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그 변화는 요연했다.

싸늘한 냉기가 묵직하게 오금을 감싸왔다.

움찔―. 발밑에 있던 덫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해골 로봇들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정지했다.

「…….」

그 로봇들에게는 통증을 인지하는 기능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컴퓨터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감촉이 회로에 오류성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대상 데미지 없음. 예상외.」

「진행 상황에 일부 이상점 발견.」

「전투 경과 확인. 시뮬레이팅 시작.」

그들은 마치 인간처럼 두려워하며, 상황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 못한 채 공포의 원인을 찾아 애썼다.

「승리 확률 계산 완료. 현재 99.9%.」

그러나 변수는 없었다.

누가 봐도 결과는 뻔했다.

3:1의 싸움. 숫자로만 따져도 이미 우세.

한쪽은 마법을 봉인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

「격도 조정 불필요. 전투를 재개한다.」

<나인서클>의 위대한 일원, 기계 해골 콘스탄틴의 레플리카인 그들은 각각의 개체가 고위 마법사 이상. 연계를 가정한다면 가이우스급 대마법사에 준했다.

더욱이 마법전을 대비해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시켰으며, AI의 압도적인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바로 그 <해체 술식>의 실전 사용을 실현케 했다.

반면 유진은 마법사와의 전투를 그다지 많이 겪어보지 못했다. 초짜 시절 비너스와 겨뤘던 것과, 최근 시온에서 님로드 스톤을 장비한 마총사 펩을 상대했던 것 정도가 그의 얼마 안 되는 마법전 경험이었다.

마법사로서의 강함만을 단순하게 비교해 본다 해도, 유진은 해골 로봇 1체를 이길까 말까 한 수준.

출력과 보유량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불리했다. 유불리를 차치하고서라도 <해체 술식>이 문제였다.

이론적으로 <해체 술식>은 ‘마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비전 마법을 완벽하게 카운터 친다.

특히나 유진이 쓰는 마법은 자색 마력과 <강화>를 활용한 비전 마법의 그럴싸한 재현에 불과했기에, <해체 술식>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가,

이길 수 있는 방법 따윈 없었다.

「방해 대상을 제거한다.」

로봇들은 유진에게 다가갔다.

승률 99%의 계산 결과를 믿고서.

「<페이탈 볼텍스>.」

「<국지성 대폭풍>.」

「<프로미넌스 번>.」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파괴 마법의 3연발.

콰과과과과광―!!

강철 소나기, 세찬 바람, 넘실거리는 불꽃, 무시무시한 삼색의 소용돌이가 광장 중앙에 휘몰아쳤다.

그것은 한마디로 재앙이었다. 겨우 한 명의 인간을 죽이기 위한 마법치고는 너무나도 장엄했다.

거센 충격으로 인해 흡사 지진이 난 것처럼 지하 시설 전체가 지반째로 마구 요동쳤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받아낸 이가 살아 있을 리는 만무했다. 시체라도 건진다면 다행이었다.

허나 시체는 없었다.

거기에 있었던 것은…….

그극.

그그극―.

커다란 보라색 구름.

흐물거리는 곰팡이 떼.

주변을 에워싼 마법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갉아먹으며, 미치도록 거대하게 성장한 자색의 군체.

「긴급. 위험 요소 발견.」

안드로이드들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시스템적으로 볼 때, 그것은 오류에 가까웠다.

「전투 경과 확인. 시뮬레이팅 시작.」

「승리 확률 계산 완료. 현재 50.2%.」

「긴급. 격도 상향 요청. 긴급. 긴급. 긴급!」

「격도 조정 실패. 현재 최고 레벨에 도달했다!」

악마를 마주한 그들로서는,

목청껏 외칠 수밖에 없었다.

「격도 상향 요청!」

「격도 상향 요청!」

「격도 상향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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