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Take the Power Back (1)
파앗―!
섬광이 번쩍였다.
안드로이드의 손끝에서 피어난 노란 불씨는 곧 거미줄처럼 촘촘히 엉키며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파지지지직―!
폭발하듯 솟구친 번개의 마수가,
이내 비너스와 타이퍼를 덮쳤다.
그것은 틀림없는 아케인 파괴 마법.
전격 속성 주술 <라이트닝 블래스트>.
‘온다!’
마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나 배리어>를 써서 막을까?’
‘아냐, 저 정도 위력은 감당 못 해.’
‘그렇다면, 여기서 최선의 선택은……!’
비너스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샌드박스>!”
가쁘게 뱉은 영창과 단숨에 몰아친 스펠 캐스팅.
휘두른 손짓에 맞춰 쌓아 오른 푸석한 모래벽이 시전자의 주위를 방파제처럼 빙 둘러 감쌌다.
치직. 버서석―.
황색 마나의 번갯불은 그대로 모래 방벽에 부딪혀 개미지옥에 빨려 들어가듯 힘없이 삼켜졌다.
‘좋아. 잘 막았어.’
방호 마법을 쓰는 대신에 상성 마법을 활용한 효율 좋은 받아치기. 그야말로 마법전의 정석.
허나 빈틈없었던 임기응변에 만족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이제 겨우 1합을 주고받았을 뿐이었으니.
‘그나저나…….’
비너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법을 쓰는 안드로이드라고……?’
누차 말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식의 한에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무생물은 마법을 쓸 수 없다.
마법이란 본디 영혼을 가진 생명체에게만 허락된 것. 영혼이 없는 존재는 그 안에 ‘의지의 힘’이 깃드는 일이 없기 때문에, 결코 마법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그 상식을 깨뜨린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르카나 마법.
비전 마법의 원류로서, 숲의 요정 엘프 종족이 고대 룬 언어를 기반으로 완성시킨 현묘의 비술.
아르카나 마법은 하이엘프 공동체의 최고회의에서 지정한 단 한 명의 계승자만이 다룰 수 있다.
현 시점에서의 계승자는 <나인서클>의 제5원 ‘벨카폴리아의 마녀’ 알리시아 벨카폴리아.
당연하지만 알리시아 벨카폴리아는 지금 눈앞의 로봇 마법사랑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애초에 ‘마법을 쓰는 안드로이드’라고 하면 <나인서클>의 다른 인물이 먼저 떠오르는 게 정상.
로봇 대마법사. 기계 해골 콘스탄틴.
바르베이라 테르마옌의 문제적 피조물.
‘설마 저게 콘스탄틴은 아닐 거고.’
비너스는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로봇이 썩 대단한 실력자가 아니란 것쯤은 금방 알아챘다.
술식의 안정성은 꽤 뛰어나나 숙련도 자체는 평범. 마나 출력은 자신보다 약간 더 나은 수준.
‘충분히 해볼 만해. 문제는…….’
마법사로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놈이 <해체 술식>을 구사했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마나의 결합 구조 자체를 와해시키는 이론상 최강의 안티스펠. 두 번씩이나 자신의 마법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 비단 우연의 산물은 아닐 터였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MP 이슈.
선제 공격으로 시전한 두 차례의 전격 마법.
그리고 상대 마법을 막기 위해 쓴 <샌드박스>.
세 번의 마법을 구사한 뒤인 지금, 비너스는 이미 최대 마나의 절반 가까이를 소모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풀파워로 날린 여파가 좀 컸다. 결국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고.
‘어쨌든 버티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해체 술식> 때문에 공격은 무리. 받아치는 것뿐이라면 마력 소모를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
저쪽의 마나가 이쪽보다 먼저 다 닳거나,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에 부디 경비가 나타나 주기를.
“자아, 덤벼 봐. 해골바가지.”
비너스는 싸울 태세를 갖췄다.
안드로이드의 붉은 안구가 빛났다.
「목표 확보를 위한 전투 재개.」
섬뜩한 기계음의 선언과 동시에,
다시금 치열한 마법전이 시작됐다.
―마법사끼리의 결투는 카드 게임과 비슷하다.
세심한 심리전과 무수한 수 싸움이 교차하는 노름판. 서로가 가진 패를 하나씩 꺼내 보이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확률을 계산하고, 때때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과감한 움직임을 취해야 한다.
출력의 차이는 센스로 덮을 수 있다.
이를테면, 상성을 활용한 카운터 스펠.
「<프로미넌스 번>.」
10의 힘을 가진 화염 마법이 날아든다면,
“<서리매의 날갯짓>!”
3의 힘을 가진 빙결 마법으로 받아칠 수 있다.
카운터 스펠은 비속성 마법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 다만 대응법은 술사의 재량에 달렸다.
비너스의 카운터 스펠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속성 파괴 마법에는 약점 속성으로 대처. 비속성 마법에 또한 기술적인 응수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신계 주술 <브레인 쇼크>가 가해졌으나 자기 자신에게 구사한 <블랙아웃>으로써 이를 무마.
광역 재앙 마법 <저주구름>은 의외로 범용 마법 <치유의 손길>에 의해 손쉽게 무력화된다.
―경험이 만든 차이였다.
‘응. 생각한 대로야. 이대로라면 문제는 없어!’
상대는 그리 약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비너스는 마법전에서만큼은 확고한 자신이 있었다.
수십 년 이상 지속해 온 용병 생활. 그동안 마법사와의 전투는 질리도록 겪어 봤다. 자기보다 훨씬 강한 마법사와 겨룬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출력. 마나 보유량. 숙련도. 장비 성능.
그 어느 것 하나 앞서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아 그저 압도당할 뿐인 상황에서도, 그녀는 절대로 완패한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유진과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매번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비법은 별거 없었다.
정말로 별것도 아니었다.
단지 미친 듯이 달달 외운 마법별 상성표와, 열나게 익힌 수백 종류의 카운터 스펠 덕이었으니까.
‘난 약골이야. 그건 팩트니까 인정해야지.’
완드 없이는 마나 관리도 못 하는 얼간이.
영창을 외거나 수인을 맺지 않으면 기초 마법조차도 제대로 캐스팅할 수 없는 사상 최악의 둔재.
‘그래도…….’
그나마 가진 재능은 여러 종류의 마법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는 트릭스터로서의 재주와, 바닥을 기는 자존감으로부터 비롯된 악바리 근성이었다.
‘이 비너스 님이 로봇 따위한테 질 것 같냐!’
지지 않는다는 자신은, 객관에서 우러나온 확신.
마법사 경력 50년의 관록이 비너스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 싸움은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목표 저항에 따른 격도 상향 조정.」
「지금부터 레벨2 전투에 돌입한다.」
해골 로봇이 기계음으로 무어라 중얼댔다.
곧이어 놈의 분위기가 방금 전까지와는 명백히 달라졌음을, 비너스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라이트닝 블래스트>.」
아까 전에 구사했던 전격 마법.
허나 달랐다. 출력도. 위압감도.
파지지지지지직―!!
찌릿거리는 번갯불이 자그마한 폭풍처럼 주위에 휘몰아쳤다. 일반적인 <라이트닝 블래스트>와 비교하면 거의 몇 단계는 높은 수준의 파괴력이었다.
‘출력이 두 배, 아니, 세 배로 뛰었어.’
‘레벨2 전투란 게 이런 의미였나?’
‘이건, <샌드박스>로 못 막아……!’
강력한 마법을 코앞에 둔 순간.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너스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굳이 막을 필요는 없지.’
영창은 하지 않았다.
스펠 캐스팅도 없었다.
비너스는 마법으로 공격을 받아치는 대신, 그저 맨몸으로 전격 마법의 한가운데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의 행동은 흡사 삶을 포기한 정신병자의 선택처럼 보였지만, 그런 류의 의도는 일체 없었다.
“역시 로봇. 멍청하긴.”
엘프 마법사는 씨익 하고 웃었다.
번갯불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면서.
“네 전격 마법은 벌써 두 번이나 봤어.”
마법사이기 이전에, 그녀는 용병이었다.
숱한 싸움을 거쳐 온 베테랑의 눈에는 당연하게도 보였다. 상대가 쓰는 마법의 크나큰 허점이.
<라이트닝 블래스트>란 번개 형태로 감싸 만든 마나의 불꽃을 가로로 길게 쏘아 발사하는 마법.
하지만 해골 로봇의 전격 마법은 가로가 아닌 세로로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라이트닝 볼트>를 먼저 배운 초보자들이 으레 보이는 나쁜 버릇이었다.
놈의 마법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힌다.
오는 방향을 알고 있다면 피하는 것은 쉽다.
그러니 막을 필요가 있을까. 타이밍을 맞춰 피한 다음에, 정면으로 유유히 지나가면 되는 것을.
―경험이 만든 차이였다.
비너스는 안드로이드의 마법을 그대로 통과했다.
이어 체내에 남아 있던 마력을 몽땅 오른손에 채워 넣었다. <해체 술식>으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단순 무식한 범용 마법.
“<강화>.”
단 한 방에 전심전력을 담아낸 필살의 주먹.
안드로이드는 왼손에 장착된 칼날을 휘둘러 그것을 방어하려 했다. 똑같이 <강화>를 두르고서.
AI의 판단은 정확했다. 통상의 조건으로 근접에서 양쪽이 격돌한다면 비너스에게 승산은 없었다.
단지,
주먹을 뻗는 게 아주 조금 더 느렸을 뿐이다.
퍼어어어어억―!!
금속 머리가 찌그러지며 박살이 났다.
로봇의 두개골 조각과 부품 쪼가리들이 어두운 복도 공간에 흩날리고는 바닥에 투두둑 떨궈졌다. 주요 장치 부근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받은 안드로이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기능이 정지됐다.
“흐끄으아하악…… 내 손뼈어어……!”
비너스는 잘못 뜯은 랩마냥 잔뜩 구겨진 얼굴로 자기 오른손을 붙잡고는 덜덜 떨며 신음했다.
마법사라고 해도 근접전 대비는 해 놓는 것이 좋다며 <강화> 연습을 추천했던 유진이 얄미워졌다. 하여튼 이딴 막무가내 주먹질 따위는 역시나 지성을 지닌 마법사가 따라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끙끙 아픈 소리를 내고 있던 사이, 멀찌감치 숨어 있던 타이퍼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헬렌 님.」
“아으으, 안 괜찮거든……. 진짜, 너만 없었으면 그냥 나 혼자 냅다 튄 건데, 아우, 진짜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헬렌 님께서 저를 챙기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저희 안드로이드보다는 헬렌 님과 같은 사람의 생명이 우선시되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아우, 진짜 드럽게 시끄럽네, 이 깡통 새끼. 내가 뭐 너가 이뻐서 안 두고 간 줄 알아?”
「그럼 무슨 이유로 저를 챙기신 겁니까.」
“뭐어, 지 소중한 애완 로봇 두고 튀었단 이유로 어느 싸패 씨한테 죽고 싶진 않으니까. 그리고.”
비너스는 저편에 쓰러진 기계 해골의 잔해와 타이퍼를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가만히 읊조렸다.
“저 망할 로봇탱이, 잘은 모르겠지만 너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아. 일부러 살살 봐주면서 싸운 이유도 다치게 하면 안 되니까 그랬던 거겠지.”
그러자,
타이퍼가 끼익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닙니다.」
“뭐?”
「헬렌 님의 추측은 틀린 것 같습니다. 정황상 저는 그 안드로이드의 목표물이 아니었습니다.」
“네가 노려진 게 아니었다고?”
「예. 제가 보기엔…….」
그리고 그때.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방해하려는 듯.
철컥―.
어디선가 기계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비너스는 움찔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복도 쪽을 보았다.
갈림길 너머에서 안드로이드가 나타났다.
철컥.
철컥.
철커덕―.
하나. 하나. 그리고 또 하나.
해골을 닮은 안드로이드가, 도합 3기.
「목표 확인.」
「최근 전투 결과를 인계. 격도 상향 조절.」
「지금부터 레벨3 전투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