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36화 (136/201)

136화. Electric Warrior (4)

「나니니시마스까?」

잘못 들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나를 꾸짖기라도 하듯, 미녀 로봇은 한 번 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타이퍼가 깡통 로봇이었던 시절을 알고 있는 내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대사였다.

“저기, 그루너 씨? 이 안드로이드가 혹시…… 저희 타이퍼인가요?”

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묻자,

“예리하시군요. 어떤 의미로는 맞습니다.”

그루너 씨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답했다.

허나 어쩐지 좀 애매한 느낌의 대답이었다.

“이 기체는 신형 아담 5 휴머노이드 타입 바디에, 여러분께서 대여해주신 TYPE-R의 AI 데이터 프로필을 일부 복사해 탑재시켰습니다.”

“복사요……?”

“예. 하지만 호환성 문제로 언어 모듈 등 시스템 장치에 심각한 오류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나니니시마스까?」

“결국 대화형 AI의 알고리즘 자체가 망가져, 이런 식으로 특정 문장밖에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죠. 아마도 TYPE-R에 내장된 임베디드 시스템의 특징 같긴 한데, 하여튼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미녀 안드로이드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B1 플로어에는 현재 신구 기종 간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호환을 연구하고 있는 랩이 많은지라, 저렇게 테스트 중인 기체들이 자주 돌아다닙니다.”

“그렇군요…….”

“메인 랩은 이쪽입니다. 따라오시죠.”

그루너 씨는 우리를 연구소 안쪽으로 안내했다.

원래대로라면 보안상의 이유로 외부인은 시야를 제한시키는 AR 안경을 착용해야 했지만, 우리는 그루너 씨의 제법 짬이 넘치는 배려 덕에 맨눈으로 시설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기계 설비들 사이로 쭉 뻗은 복도와 거대한 공장 같은 구획을 지나쳐, 마침내 다다른 곳은― 대학교의 강의실 같은,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공간.

우리는 단방향 거울 너머로 방 안을 보았다.

스무 명가량의 안드로이드들이 책상에 앉아, 원격 녹화 영상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유독 눈에 띄는 새하얀 컬러를 가진 보급형 안드로이드 기체, 타이퍼도 있었다.

“이곳은 스터디룸입니다. 현행 2단계 테스트룸으로, 안드로이드의 학습 능력을 검사하는 곳이죠.”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건가요?”

“주로 이과 쪽 학문이죠. 저렇게 보여도 꽤 고난도의 훈련을 받고 있는 겁니다. 빅 데이터와 집적회로 효율을 최대한 억제시킨 환경에서 AI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기르는 중인데, TYPE-R의 경우 고전 방식의 머신러닝 AI로 운용되기 때문에, 딥러닝 알고리즘 없이는 정보 분별이 힘들 수밖에 없거든요.”

그루너 씨의 말대로, 수업을 듣고 있는 타이퍼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상당히 초조한 기색을 띠었다.

강의를 받는 내내 집중이 어려운 듯했다.

하긴 회사에서도 일에 집중을 못 해서 나한테 자주 혼나곤 했었지.

부드러운 인간의 관절과 피부를 지닌 최신형 휴머노이드와는 달리, 돌처럼 단단하고 동그란 손가락으로는 펜을 붙잡고 있는 것마저 버거워 보였다.

“아휴, 우리 불쌍한 깡통 친구 좀 봐. 완전 쭈구리가 됐네. 쯧쯔. 괜히 이런 데 끌려와갖고. 아니, 끌려온 게 아니고 제 발로 온 거였지, 참?”

“……그러게. 사서 고생이라니까.”

비너스가 끌끌거리며 혀를 차는 동안, 나는 타이퍼를 계속 눈으로 좇았다. 로봇 녀석이 분투하는 광경은 알게 모르게 기특해 보이기까지 했다.

“테스트가 끝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 기다리시는 동안에…… 미스터 연?”

“예?”

“잠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미스 스미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여기서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뭐어, 전 괜찮아여. 다녀오셔요, 두 분.”

“고맙습니다. 그럼, 미스터 연. 이쪽으로.”

느닷없이 그루너 씨가 나를 데리고는 테스트룸에서 나와 반대쪽 복도로 휙 돌아나갔다.

“저기, 어딜 가는 거죠?”

“가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한참을 걷자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우리는 그걸 타고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갔다.

“미스터 연. 전에 제가 TYPE-R 대여를 요청했을 때, TYPE-R을 빌리려 하는 이유가 저희 회사의 신기술 연구와 관련돼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아, 예.”

“지금부터 당신에게 보여드릴 것은, 바로 그 신기술이 탑재된 <슐츠텍>의 미발표 제품입니다.”

“어, 저한테 그걸 왜 보여주시려는 거죠?”

“왜겠습니까. 그야 저는 아직 당신을 스카우트하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요.”

“아하…….”

“물론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당신과 윌슨앤코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되도록 뒤통수를 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군요.”

나는 억지로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루너 씨는 반쯤 농담으로 한 얘기였겠지만, 내가 실은 뒤통수치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를 테지…….

잠시 후.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B3라고 쓰인 그 구획의 보안은 연구소 입구보다도 훨씬 더 삼엄했다. 그루너 씨는 카드 키와 홍채 인증 등을 거쳐 철통같은 게이트들을 통과했다.

게이트 내부는 생각만큼 넓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지하 연구 시설이 대형 백화점이었다면, 여긴 한적한 골목길의 구멍가게 정도.

어두컴컴한 통로가 몇 안 되는 갈림길로 초라하게 이어져 있었고, 그 길목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어느덧 금세 가장 안쪽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슐츠텍>은 원래 무기와 배틀기어 제조를 주업으로 삼았던 방산 기업이었습니다.”

“허나 <슐츠텍>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것은 바로 안드로이드죠. 아담 시리즈의 출시 이후 슐츠는 이 분야를 선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안드로이드를 보다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서 수십 년을 할애했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죠. 아담 시리즈는 ‘가장 사람을 닮은 안드로이드’로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목적지까지 향하는 동안에,

그루너 씨가 웅변하듯 말했다.

“현대의 안드로이드는 사람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차세대 안드로이드의 개발 목표는 이제, 사람을 능가하는 것.”

“사람은 할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는 할 수 없는 게 딱 한 가지가 있죠. 그게 뭔지 아십니까?”

그가 물었고,

나는 입을 열었다.

“마법인가요?”

“예. 정답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마법을 쓰기 위한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술식에 맞는 마력, 마력에 맞는 술식, 그리고― 마력과 술식을 토대로 마법을 구사하는 ‘의식의 힘’.”

“이 ‘의식의 힘’이란 것은 천문학의 암흑 물질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수수께끼의 개념이죠.”

“오직 살아 있는 생명만이 ‘의식의 힘’을 지니기에, 기계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것이 정설이었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루너 씨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과거형으로 말한 이유는 물론 존재했다.

“<나인서클>의 제4원. ‘기계해골’ 콘스탄틴.”

“마법을 쓰는 안드로이드, 그것도 <나인서클>의 멤버로 발탁될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모두의 생각은 변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안드로이드 마법사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그와 같은 <나인서클>의 일원.

과학적 마법론의 대가이자 이 시대에 유일한 순혈 마족, 그리고 돈에 미친 매드 사이언티스트.

제6원. ‘라스트 오우거’ 바르베이라 테르마옌.

“그녀는 콘스탄틴을 통해 기계 또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습니다.”

“방법은 미스터리였지만, 어쨌거나 가능성이 확인됐으니 그것만으로 도전할 여지는 충분했죠.”

“저희는 차세대 안드로이드, 마법을 쓸 수 있는 안드로이드의 개발에 돌입했고,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결실이라 할 만한 것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루너 씨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수많은 안드로이드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같은 방이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푸른색 조명이 중앙에 놓인 하나의 안드로이드를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소개하죠. 이것이 바로 그 결실.”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된 것은,

인형 같은 생김새의 안드로이드.

어깨에 살짝 닿는 금발 머리.

신비해 보이는 핑크색 눈동자.

클래식 빅토리아풍 메이드 복장.

“차세대 안드로이드― 이브EVE입니다.”

외양만으로 눈길을 끌게 하는 그것은, 확실히 분위기 자체는 일반적인 안드로이드와 달라 보였다.

“근데, 왜 메이드복이죠?”

“개발자의 취향입니다.”

하여간에.

비주얼은 둘째치고.

“그러면 이 안드로이드는, 사람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서 스스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까?”

지금까지 들은 설명을 토대로 하면,

눈앞의 로봇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아뇨.”

….

….

정적.

침묵이 흘렀다.

“이건 그냥 컨셉 아트로 뽑은 전시용 모델이라서요. 기계 사물의 마법 구사 같은 경우, 실험 단계에서는 극히 낮은 확률로 성공을 하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환경에서의 시현은 아직까진 불가능합니다.”

“아, 그렇군요…….”

“아무튼, 이번 프로젝트에 있어서는 귀사에서 대여해준 TYPE-R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 호환 문제에 있어 구형 모듈의 실시간 데이터 구축 상황을 살펴보는 것에 의의가 크거든요. 실제로 최근 실험 성과로 인해 프로젝트 연구 일정이 꽤나 앞당겨지기도 했고요.”

그루너 씨는 한참 동안 타이퍼의 중요성에 대해 성심껏 설명했고, 그 뒤 대여 기간을 조금 더 늘릴 수 없겠냐는 부탁과 동시에, 은근슬쩍 나에게 <슐츠텍>으로의 이직에 관한 의사를 떠보기도 하였다.

뭐, 일단 타이퍼 쪽의 부탁은 수락했다.

연구 자체도 당초 걱정했던 것만큼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은 것 같고, 무엇보다 본인이 업그레이드에 대한 열망이 매우 크니까는 말이다.

이직 관련해서는 미안하다고 전했다.

회사가 망해서 일자리가 없어지면 그때는 생각해 보겠다고도 말했다. 그루너 씨는 그러면 앞으로 일거리를 주지 말아야겠다고 농담으로 말했다.

……농담이어야 한다.

회사 상황상 농담이라 해도 벌벌 떨릴 만한 얘기였다. <도노반퓨처스>와의 계약으로 자금이 들어올 때까지는 아직 몇 주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시콜콜한 잡담을 대충 끝내고.

슬슬 타이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던 무렵.

“이런, 잠시만요. 호출이 왔군요.”

그루너 씨가 작은 무전기를 꺼내 들며 말했다. 과연 <슐츠텍>. 무전기 디자인까지 깔쌈하군.

그는 잠깐 동안 무전을 주고받았다. 상대로부터 뭔가를 듣더니, 순간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스터 연. 죄송합니다. 갑작스럽지만, 급하게 관리실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 전 괜찮습니다만, 무슨 일이죠?”

그가 말했다.

“실은 지금, 연구소 컴퓨터가 해킹을 당ㅎ…….”

말하던 도중.

어디선가 둔탁한 소음이 울리며.

투우웅―.

동시에.

방 안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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