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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35화 (135/201)

135화. Electric Warrior (3)

갑작스러운 그루너 씨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무실 사람들 모두가 놀란 기색을 보였다.

“……빌리다뇨? 타이퍼를요?”

“예. 물론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부탁이 아니었다.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협력 제의를 하는 것이라고, 그루너 씨는 분명하게 덧붙였다.

나는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드로이드와 관련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슐츠텍>에서, 굳이 타이퍼를 빌려 가려 한다고?

“저기,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당사의 신기술 연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신구 기종 간의 소프트웨어 호환과 최적화 연구를 위해 구형 안드로이드 기체가 여럿 필요한 상황이라서요.”

“그러면, 연구 용도란 말씀이신 거군요…….”

“TYPE-R 기체는 상당히 오래된 기종이라, 초기형 순정 모듈을 유지한 채로 이 정도까지 보존 상태가 좋은 물건은 저희 연구소 쪽에도 없거든요. 게다가 10년도 훨씬 넘은 AI 시스템에 일부 최신형 소프트웨어가 적용된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아마 그 가동 데이터를 참조한다면…….”

그루너 씨는 타이퍼가 특별한 이유에 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전문적인 용어가 남발되어 나는 그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하지 못했으나, 옆에 있던 스몰필드 씨만은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경청했다.

“빌려 가신다면,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한 일주일, 아니, 가능하다면 2~3주 이상이요.”

스읍.

생각보다 좀 긴데…….

“억지로 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도 어디까지나 부탁드리는 입장에 불과하니까요.”

“으음…….”

“혹시 이 안드로이드가 일주일 이상 사무실을 비우게 되면 곤란해지는 상황입니까?”

그루너 씨가 물었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타이퍼한테 맡겼던 업무가 있었지. 그때의 기억을 한번 되새겨 보았다.

“타이퍼. 이리 와 봐.”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내가 어제 너한테 미션을 줬는데, 기억하니?”

「예. 내달 국제무역박람회 때 공용 부스에서 진행할 청소년 워크숍 관련 서류 작업이었습니다.」

“그래. 근데 이게 네가 쓴 행사 계획 보고서다. 제목 한번 읽어봐. 맨 앞에다 뭐라고 써 놨지?”

「청소부 아주머니 인력 소개소.」

“‘청소년 워크숍’이 어떻게 ‘청소부 아주머니 인력 소개소’가 된 건지 설명해 볼래?”

「주인님께서는 실무 현장에서 축약어 사용에 관해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머천다이저는 MD.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RM. 때문에, ‘청소년 워크숍’ 역시 일종의 축약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은 ‘청소’와 ‘년’을 합친 말로써, 이중에 ‘년’은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단어입니다. 즉 ‘청소년’이란 ‘청소하는 여성’, 곧 ‘청소부 아주머니’를 뜻하는…….」

“그만. 거기까지.”

「하지만 ‘워크숍’이 ‘인력 소개소’가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 드리지 않았습니다.」

“설명 안 해도 되니까 저리 꺼져.”

다른 건 또 뭐가 있더라.

선물 구매 넣으랬더니 생일 선물용 케이크 주문한 거, 재단 행사 때 입을 포말한 복장 필요하다고 했더니 포스트 말론 코스프레 복장 가져온 거…….

음. 확실해졌군.

타이퍼는 쓸모가 없다.

“2~3주 정도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예, 뭐, 근데 나중에 돌아왔더니 부품 몇 개 빼돌려져 있다거나, 그럴 일은 없겠죠?”

내가 농담 삼아 던진 말에, 어째 그루너 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조용히 안경을 고쳐 썼다.

“처음 상태 그대로일 거라곤 장담 드릴 수 없습니다.”

“예? 그 말씀은……?”

“연구 진행에 따라 주요 모듈을 교체하거나 시스템 코드를 수정하는 일이 잦습니다. 구형 기체인지라 정비 자체가 어려운 건 둘째치더라도, 과부하를 받으면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테죠.”

그는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스몰필드 씨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혹시나 그렇게 될 경우 보상은 섭섭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만, 다소 위험성이 존재하는 만큼 거부감이 드시는 것도 당연하리라 생각합니다.”

“…….”

“미스터 연?”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역시 안 되겠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스몰필드 씨는 조금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그루너 씨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으나, 내심 실망한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습니까.”

“매번 저희 쪽 편의 봐주시는데, 보답을 드리지 못하는 점 거듭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하군요. 이번 일은 더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미팅이 끝난 뒤, 그루너 씨는 돌아갔다.

책상에 앉아 다음 업무를 시작하려던 찰나.

「주인님.」

타이퍼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녀석은 나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드릴 말씀’을 전했다.

“……가고 싶다고? 슐츠텍 연구소에?”

타이퍼의 고개가 철커덕 소리를 내며 앞뒤로 끄덕여졌다.

「시스템 체크 중에는 수면 상태였지만, 블랙박스를 통해 슐츠텍 매니저분과 나누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 얘기 제대로 들은 거 맞냐? 놀러 가고 그런 거 아니거든? 실험체로 끌려가는 거라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고 싶습니다.」

로봇 녀석이 말했다.

답지도 않게 자기주장이란 것을 품고서.

「저는 주인님과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 상태로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건 그렇긴 하지만…….”

「슐츠텍에서 다양한 실험을 받게 된다면 본 기체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적인 성능 상승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

「위험하다는 사실은 똑바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영구적인 기기 손상 역시 각오한 바입니다.」

「(Ò ‸ Ó)」

기합이 잔뜩 들어간 표정.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았다.

「보내주시겠습니까. 주인님.」

“……스몰필드 씨가 싫어할 텐데…….”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설득 시도의 결과는,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스몰필드 씨는 자기가 매일 현장에 가서 타이퍼의 상태를 직접 체크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녀석의 출가를 허락했다. 고집 센 안드로이드의 승리였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님.」

“나 말고 스몰필드 씨한테 고맙다 해야지. 가뜩이나 요새 바빠졌는데, 자의로 1일 1출장을 감행하면서까지 널 보살펴준다잖아. 이 정도면 거의 엄마 아니냐.”

「주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리타 님은 저에게 있어 두 번째 어머니라고 여겨집니다.」

“……두 번째?”

「네. 첫 번째 어머니는 마녀님(가칭)입니다. 주인님의 예전 마법 스승님 말입니다.」

“뭔 소리야. 그 녀석이 왜 네 엄마야?”

「제 말투 등의 행동 양식은 그분이 제 안에 계셨을 적에 입력된 데이터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자아 생성 메커니즘에 따른 유전적인 의미로써, 저는 그분의 딸이나 다름없습니다.」

“넌 또 왜 아들이 아니고 딸인 건데?”

「여성으로 추정되는 어머니의 성향을 닮았기에 당연히 딸인 것입니다. 성별이 생물에게만 주어졌다고 믿는 것은 구시대적인 젠더론입니다.」

“아, 그래.”

그렇게 타이퍼는 <슐츠텍>으로 떠났다.

이제 당분간은 녀석이 타준 커피를 못 마실 거고, 혼자 야근하는 날에는 조금 심심해질 터였다.

타이퍼는 쓸모없는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없으면 안 될 녀석이긴 했다.

일주일 뒤.

로봇 녀석이 없는 텅 빈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날은 웬일로 스몰필드 씨가 늦는구나 싶었다.

10시 무렵에 회사 전화로 전화가 왔다.

「팀장님……?」

스몰필드 씨였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저어, 죄송한데, 저 오늘 병가 좀…….」

“이런, 감긴가요?”

「죄송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게, 일어날 수가 없어서…….」

“괜찮습니다. 푹 쉬시고, 다 낫기 전까지는 회사 나올 생각하지 마세요.”

「죄송해요…….」

스몰필드 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일곱 번쯤 되풀이하고서 힘겹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근태 내역에 그녀의 병가 처리를 넣은 뒤 금일 일정을 확인했다. 운이 좋게도 오늘은 일상적인 사무를 제외하곤 별로 일이 없는 날이었다.

“흐음.”

오전에는 시간이 꽤 널널한 편인데.

스몰필드 씨 대신 타이퍼한테 가볼까?

좋아. 마침내 결정한 나는 화장실 청소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도그아이드 킴에게 말했다.

“할배, 잠깐 출장 좀 다녀올게요.”

그는 하품을 했다가 잠시 멈칫.

뚱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어이. 암귀야.”

“예? 저 불렀어요?”

“니, 혹시 형제 있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없어요.”

“친척 중에 비슷한 또래라든가, 아무도 없어?”

“아마 없을걸요.”

“시온에서는 유클리드란 이름을 썼었제. 고건 누구 행세를 한 거냐?”

“아니, 누구 행세를 하고 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제가 대충 지어낸 가명인데요. 문제 있어요?”

개눈깔은 내 동태를 살폈다.

그러고선 시선을 도로 물렀다.

“걍 심심해서 물어본 기다.”

“…….”

어째 알쏭달쏭한 반응이었다.

도통 저의를 알 수 없는 질문들.

“저한테 뭐 묻고 싶으신 건 더 없고요?”

“됐다, 마. 퍼뜩 니 볼일이나 보러 가그라.”

얼마 전에 이 양반에게, 드래곤을 만나게 해준다는 약속을 못 지킬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랬더니…… 상관없다고 말했다. 자긴 이대로 <헬터 스켈터>에 계속 몸담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도그아이드 킴은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다만 그게 뭔지는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

뭐, 일단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최강의 전력이 내 편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니.

안타깝게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가실 땐 문단속만 잘해 주세요.”

“옹야.”

‘유클리드’란 이름에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는 사실을―.

***

이스트포레스트 6구역.

<슐츠 업그레이드 센터> 앞.

“저기, 왜 나까지 데려온 거예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초록 머리의 엘프 인턴 헬렌 스미스― 비너스가 볼멘소리로 물었다.

“내일 또 스몰필드 씨가 아파서 못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네가 혼자 여기 와야지.”

“에잉, 쯔. 귀찮게시리.”

“넌 어차피 별로 하는 일도 없잖아.”

“받는 돈이 별로 없으니까 당연하죠.”

“말대답할 때마다 월급 삭감이다.”

“노동청에 신고할 거예요.”

둘이서 티격태격하는 것도 잠시.

“오셨군요. 미스터 연.”

연구소 입구에서 작업복 차림의 그루너 씨가 나와 비너스를 마중 나왔다. 서너 개의 보안 게이트를 통과한 뒤,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여러분께는 중대한 기밀 유지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연구소 안에서 보시는 것들에 대해서 향후 언급하거나 기록할 경우, 계약상 책임이 따르게 되니 주의해주십시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연구소의 전경이 드러났다.

그곳은 대기업의 연구소라기보다도 마치 어트랙션이 넘쳐나는 거대한 놀이공원 같았다.

유리 돔으로 둘러싸인 드넓은 공간. 자유로운 분위기의 각종 연구 시설. 난생처음 보는 기구와 장비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응?

실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긴 머리의 여성형 휴머노이드.

그 로봇은 나를 보고서 싱긋 웃었다.

「나니니시마스까?」

환히 지은 미소 가운데 한마디.

너무나 익숙한 대사를 내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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