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Dragon Night (4)
깡패들 눈에는 어떻게 비쳐 보였을까.
여리여리한 회사원과 교복 차림의 젊은 여자.
최소한의 호신용 무기 따위도 지니지 않은 채, 노스네스트의 으슥한 밤거리를 거닐고 있는 두 남녀.
얼핏 봐도 좋은 사냥감이다. 별안간 시비를 걸기에는 그야말로 딱 적당한 상대로 보였을 것이다.
사내놈은 흠씬 두들겨 패준 다음 지갑이나 뺏고, 계집애는 저들끼리 진탕 가지고 놀면 그만이리라.
그들이 배운 오늘의 교훈:
만만해 뵈는 낯선 사람, 특히 위험한 동네를 버젓이 돌아다니는 여고생에게 대뜸 시비를 걸지 말자.
드래곤일지도 모르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미르각시는 어물쩍 고개를 돌리고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무슨 얘긴가?”
“동네 양아치들 상대로 이중 마력 극점 형성에다 초월급 용언 마법까지 써 가면서 진심으로 작살내려 하지 마시라고요.”
“흥. 사자는 물벼룩을 상대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노라. 그보다 먼저 시비 걸어온 건 그놈들인데, 그대는 왜 나를 더러 이리 나무라는 것이냐?”
“제가 안 말렸으면 이 동네 절반이 지도상에서 지워질 뻔했잖습니까.”
“거 비약이 좀 심하지 않으냐. 무어, 나도 반성은 하고 있다. 나에리쨩은 매지컬 폼에서도 주로 체술 위주로 싸우는데, 하물며 노멀 폼으로 마법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고증에 어긋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잿빛여왕 코스프레를 하고 올 걸 그랬구나.”
미르각시는 자연스레 주제를 삼천포까지 끌고 갔다. 용 님의 감성은 역시나 평범한 인간과는 사뭇 다른 편이었기에, 대화를 나누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아무튼 부탁이니까 필요 이상으로 날뛰는 건 자제해 주세요. 지금 가뜩이나 눈에 띈단 말입니다.”
“알겠으니 길이나 똑바로 안내하거라.”
걱정이 됐다. 또 누가 시비를 걸어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심정이었으나,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경매장이 위치한 마켓 중심지에는 양아치도 많았지만 치안을 관리하는 경비원도 많았다.
무거운 분위기의 정장을 갖춰 입은 이탈리아인들. 모두 <페르골리치 패밀리>의 조직원이었다.
더욱이 초췌한 회사원과 명랑한 여고생 콤비는 노스네스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조합이었기에, 눈에 띄는 만큼이나 경각심까지도 심어주었다.
마치 고인물 커스터마이징 같은 효과랄까.
위협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겉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미스터리한 위협으로 작용한 것이다.
어쨌거나―
별문제 없이 경매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해피 베이 옥션>
온갖 색상의 네온으로 반짝이는 카툰 캐릭터 모형과 간판. 놀이동산 입구처럼 화려한 외양의 건물.
안에 들어서자,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고풍스러운 연회장 같은 분위기의 내부가 드러났다.
“과연, ‘언차○드4’에 나왔던 곳이랑 비슷하구나.”
“여긴 일단은 합법 경매장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업시간 내에 이뤄지는 일반 경매에 한해서죠.”
오전 2시부터 시작되는 특별 경매에선 일반적으로 구매가 불가능한 별의별 물건들이 다 튀어나온다.
민간 유통이 금지된 무기, 마약, 밀수품, 이따금 사람까지도. 이곳은 그야말로 불법 거래의 천국이다.
“우선 정규 회원 등록을 하고 나서, 특별 경매에 내놓을 상품의 감정 신청을 하러 갈 겁니다.”
“특별 경매란 것은 아무나가 다 신청할 수 있는 겐가?”
“아뇨. 원래는 VIP 회원이 아니면 안 되지만, 팔러 온 물건이 뭔지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죠.”
나는 경매장 로비의 안내소를 찾아갔다.
그곳의 감정사는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남성으로, <펍 미드나이트>의 주인장을 연상케 했다. 초면에 거들먹거리는 태도 또한 그와 비슷했다.
“흐음, 파워스톤입니까?”
“예.”
“어디 보자. 가공 상태는 꽤 좋군요. 색상과 형태는 흠잡을 데가 별로 없……. 잠깐, 이거……?”
감정사는 스톤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흠칫 놀랐다. 허나 곧장 프로페셔널하게 표정을 고쳐 잡았다.
“회원분께서 희망하시는 경매가가 얼마신지요?”
“시작가 최소 2억 달러. 가급적 3억 이상에 낙찰되기를 원합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매니저와 상의한 뒤 평가액을 맞춰 바로 상품 등록 신청을 해드리겠습니다. 특별 창구에서 서류들을 챙겨 가시지요.”
물건 감정은 의외로 빠르게 끝났다.
나와 미르각시는 경매장 회원증과 상품 등록에 관련된 약관서를 가지고 안내소에서 나왔다.
“헌데, 이 경매장은 마피아가 운영하는 곳이라면서. 귀한 물건을 저리 덥석 맡겨도 괜찮은 것이냐?”
“마피아들은 웬만해서는 민간인을 건드리지 않아요. 신분이 확실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죠.”
회원 등록을 하면서 숨김없이 실명을 썼고, 상품 소유주로 들먹인 것은 회사 ‘윌슨앤코’의 명의.
지금은 내가 뒷세계에서 ‘암귀 카이트’가 아닌 ‘유진 연’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다니는 회사인 윌슨앤코는 옛날에 뒷세계 깡패들이랑 아주 깊게 연루되어 있었거든요.”
“호오, 그래서 회사 이름을 쓴 거로군.”
“맞습니다. 만약 저한테 해코지를 하려 했다간, 페르골리치 패밀리는 민간인을 건드린다는 리스크와 동시에 노스네스트의 다른 여러 조직들을 적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까지 짊어져야 해요.”
놈들이 님로드 스톤을 노리고 폭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긴 하나, 그럼에도 이 정도면 안전장치는 충분히 걸어 놓은 셈이다.
“뭐, 최악의 경우에는 놈들과 전쟁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제 옆에는 청룡 님이 계시니까요.”
“꼭 내가 같이 싸워줄 것처럼 말하는구나.”
“싸워주실 것 같은데요. 전쟁 좋아하시잖아요.”
“허어, 도대체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것이냐. 그런 건 다 지나간 얘기다. 나도 이제 늙었단 말이지. 남은 생은 가능하면 조용히 평화롭게 지내고 싶구나.”
미르각시는 혼잣말로 말했다. 조용히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는 양반이 왜 아까 양아치들이 시비 거니까 신나서 뛰쳐나간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이제부턴 자유시간인가?”
“그렇네요. 음, 특별 경매 시작까진 아직 한참 남았으니, 그동안 일반 경매 쪽이나 구경해 볼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앞으로의 전개는 용 님께서 원하는 대로, 조용히 평화롭게 흘러갈 터였다.
***
「자아, 다음 상품은…… 이것입니다!」
「옥 장식이 들어간 고대 엘프제 화살통!」
「녹이 좀 슬긴 했지만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마니아들에게는 꽤나 수집 가치가 있을 듯하군요!」
<해피 베이 옥션>의 공개 경매 시간.
객석이 제법 많이 들어찬 강당의 넓은 무대 위에서, 젊은 사회자가 능숙하게 상품을 소개했다.
「이번 상품도 인기가 많아 보이는데요.」
「시작가 5,000달러부터 출발하겠습니다. 호가 단위는 500달러…… 아! 바로 입찰이 나왔군요!」
「현재 입찰가는 5,500달러입니다. 6,000달러에 가져가실 분이 계십니까? 경쟁자가 많습니다만?」
경매장 곳곳에서 수군대는 목소리와 함께 패들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동작들이 내리 이어졌다.
유진은 단 한 차례도 패들을 올리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가치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으으음.’
미르각시의 속내 또한 유진과 비슷했다.
그녀는 대놓고 딴청을 피우거나 하품을 뱉는 등 지루함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거, 생각보다 썩 재미가 없는데.’
경매장을 직접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제법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고작해야 푼돈과 잡물이 오갈 뿐인 궁색한 실태에 구경만 하는 입장에선 금세 질리고 말았다.
‘골동품. 골동품. 또 골동품뿐이구나.’
‘오래전에 절판돼서 구하지 못하는 전설의 게임 소프트나 한정판 피규어 같은 건 안 나오는 건가.’
이래서야 인터넷 중고 카페 이하로군.
동경해 오던 암시장의 핫플레이스라기에 한껏 기대했건만, 이렇게까지 별 볼 일 없는 곳일 줄이야.
‘시시해.’
이대로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결국 미르각시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세요?”
“잠깐 뒷간에 좀 다녀오마.”
“그럼 저도 갈 테니까 같이 가죠.”
“그대는 내가 철부지 삼척동자인 줄 아느냐? 아무리 길치라도 변소 정도는 혼자서 다녀올 수 있다.”
“예? 그치만…….”
유진의 만류를 뒤로 하고, 여학생의 모습을 한 드래곤은 툴툴거리며 회장에서 빠져나왔다.
‘후우, 이제야 겨우 자유로워졌군.’
사실 드래곤은 굳이 화장실에 갈 필요가 없다.
마법으로 생리 활동을 모두 제어할 수 있으니까.
‘저놈은 무슨 지가 부잣집 시어머니라도 된 양 잔소리가 많으니, 곁에 있노라면 답답해 죽겠다니까.’
미르각시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루한 경매장 따위보다도 차라리 아까 전 골목에서 양아치들을 마주쳤을 때가 훨씬 재미있었지.
‘나가는 길이 이쪽이 맞나?’
그녀는 발이 향하는 곳으로 계속 향했다.
어째 걸으면 걸을수록 출구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하여튼 출구를 찾는 과정에서 수상해 보이는 문은 전부 다 열어젖혔고, 그럴 때마다 자신을 막아서는 마피아 조직의 경비원들을 수없이 때려눕혔다.
“……진퉁입니다. 순도 100% 님로드 스톤이 확실해요. 이거면 3억 달러는 껌으로 받는다니까요!”
불빛이 어두운 복도를 통과하던 즈음.
앞쪽에서 누군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져온 놈이 누구냐고요? 아, 윌슨앤코 쪽에서 온 민간인이에요. 보니까 어디 끄나풀 같던뎁쇼.”
미르각시는 코너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소리가 들려온 쪽을 살폈다. 아까 유진이 가져온 물건을 살폈던 감정사가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직접 건드리는 건 역시나 곤란하겠죠. 윌슨앤코는 <헬터 스켈터>뿐만이 아니라 뭐 이런저런 자잘한 애들이랑 엮여 있으니깐요. 돈 몇 푼 더 벌자고 일을 그렇게까진 키웠다간 보스가 엄청 화내실 겁니다.”
감정사는 진지하게 통화를 이어 갔다. 아무래도 마피아 놈들에게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아참, 그러고 보니, 그놈이 같이 데리고 온 애새끼가 하나 있던데……. 예예, 교복 입은 년이요.”
감정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아.”
그리고―
숨어 있던 미르각시와 눈이 마주쳤다.
“마침 여기 있네요.”
***
「오늘의 공개 경매가 종료됐습니다.」
「<해피 베이 옥션>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사회자가 작별 인사를 이르자 무대의 조명이 곧 꺼졌다. 일반 경매는 그렇게 끝이 났다.
특별 경매는 한 시간 뒤에 시작되는데, 어쩐지 아직 상품 등록에 관해 경매장 측에서 연락이 없다.
“이 양반은 또 어디로 간 거야…….”
게다가 미르각시의 소식도 끊겼다.
화장실에 다녀온다더니 30분 넘게 자리에 돌아오질 않았다. 설마 길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그리고.
강당에서 나온 직후.
「여봐라.」
「들리는가?」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울렸다.
강직한 미성. 미르각시의 목소리였다.
“뭐야?”
나는 순간 당황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히 들려왔다.
「놀라지 말거라. <텔레파시>다.」
“아니, 갑자기 뭡니까? 지금 어디 계세요?”
「그대의 음성은 내게 닿지 않는다. 허나 <천리안>으로 그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느니라.」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내가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머릿속에 또렷하게 울려오는,
미르각시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나 납치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