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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야근을 한다-126화 (126/201)

126화. The Murder Mystery (6)

늙은 칼잡이는 저주를 받았다.

그것은 칼을 쓰지 못하는 저주.

칼잡이에게 있어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그 저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칼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요도 무라사메.

네오에도의 전설적인 하이엘프 도공이 장장 300년에 걸쳐 칼날을 깎아냈다고 전해지는 지고의 명검.

그 칼에는 마력과는 또 다른 종류의 신묘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무라사메를 쥐고 있는 자는 설사 갓난아기라 해도 단칼에 불곰을 베어 버릴 수 있었다.

검을 만든 장인은 생각했다.

아아, 언젠가 이름난 검객의 손에 이 칼이 들어가게 된다면 의심 없이 세계를 지배하고 말지니, 그자의 심성이 곱지 못할 경우가 너무나도 두렵겠구나.

그는 새로이 칼집을 하나 더 만들었다.

무라사메를 칼집 안에 가두고, 주술 각인을 박아 검을 절대 뽑을 수 없도록 반영구적으로 봉인했다.

이어 그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검을 손에 넣은 자가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세 가지 조건을 두었다.

하나. 모든 날붙이를 멀리할 것.

하나. 선한 자를 해치지 않을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바로―

세상의 가장 큰 악을 무찌를 것.

수많은 이들이 검의 봉인을 풀고자 애썼다.

그러나 모호하기 짝이 없는 마지막 조건 탓에,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칼을 뽑지 못했다.

악은 무수히 많았으나 세상의 가장 큰 악 따위는 없었다. 엘프 장인의 해묵고 낡아 빠진 기억과는 달리, 이제 마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다.

도그아이드 킴이 무라사메를 얻은 것은 대략 40년 전의 일이다. 그가 악동이라 불리던 시절이다.

칼자루를 잡은 순간 사랑에 빠졌다. 그 어떤 무기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음을 곧바로 깨달았다.

남은 생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 칼을 온전히 휘둘러보고 싶었다.

사랑에 빠진 사내는 무슨 짓이든 해낼 수 있었다. 다른 검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개눈깔 또한 검의 봉인을 풀기 위하여 검이 없는 검의 길을 떠났다.

결국 걸림돌은 마지막 조건이었다. 무찔러야 할 세상의 가장 큰 악은 당최 어디에 있단 말인가.

네오에도에서 10년. 밤비타운에서 10년.

시에라시티에서 20년째를 보내는 중이다.

그동안 이 동네 저 동네서 숱한 악당들을 때려죽이고 다녔더니 도리어 자신이 악당 취급을 받았다.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본인은 칼을 쓰고픈 욕망만으로 맘이 그득하니, 굳이 따지자면 악인이 맞다.

시온이란 곳은 썩 괜찮은 사냥터였다.

시온 퀘스트에는 자신과 비슷한 강자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강한 녀석은 대개 쓰레기 같은 놈이다.

매번 꽝이었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좋다.

재물을 탐내 동료를 죽인 배신자가 있다.

심지어 암귀라는 대어까지 걸렸다.

다만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아까 전 무라사메가 놈에게 반응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세기의 악당을 코앞에 뒀다면 칼자루가 조금은 떨렸을 텐데.

와중에 암귀란 놈이 웃기는 제안을 했다.

협력하면 무라사메를 뽑게 도와준다나 뭐라나.

딱히 자신이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구라였어도 나중에 죽이면 그만이니.

“니가 저놈 이길 수 있다고?”

“그래.”

“그럼 가서 혼자 싸우면 되지, 왜 굳이 나랑 손을 잡으려 하는 거냐?”

게다가,

이놈은 뭐랄까.

“할배는 내가 못 이기니까.”

하도 뻔뻔스러운 것이.

악당 같지도 않고 말이지.

***

고작해야 철근을 휘두를 뿐인 기술이었다.

말이 좋아 ‘비검술’이고 ‘철근참’이지, 실상은 어떠한 마력도 기예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순수한 스윙.

그러나 한순간,

불꽃이 반짝였다.

검기는 아니었다. 평범한 쇠막대기로 검기를 내뿜는 것은 아무리 검성이라 해도 불가능했다.

피어오른 불꽃의 색은 보라색.

자색 마나의 불길이 철근과 철근을 쥔 자의 주위를 파도처럼 감쌌다. 그리고 일순 하늘로 솟구쳤다.

전력을 다해 휘두른 철근.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마법.

이는 <강화>로 만들어낸 가짜 검기.

허나, 때때로 가짜는 진짜를 능가한다.

쐐애애애액―!

직조하듯 그려낸 보랏빛 불꽃의 궤적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푸른 태양의 중심을 오롯이 갈랐다.

철근참에 의해 흩어진 마력 에너지가 이내 시온의 붉은 하늘을 찰나간 원색적인 청명으로 수놓았다.

‘내 마법이…… 막혔다고?’

펩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힘을 깨나 집어넣은 마탄이 먹히지 않았다. 님로드 스톤으로 80배 넘게 증폭된 <광선 집탄 술식>이, 우스꽝스럽게도 물리적인 힘에 초전 박살이 났다.

‘과연 네임드들의 합동은 다르다 이건가.’

뭐, 이 정도 고비는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이쪽도 전력은 아니었고 말이다.

“<신기 박격 술식>.”

펩은 총구를 들고서 영창을 외웠다.

이번에는 좀 더 화끈한 걸로 가볼까.

“<새터데이 나이트 스페셜>.”

공명하는 푸른 마석에 스치자,

청색 마력이 굴절되며 확산했다.

번쩍―.

쏘아 올린 총탄은 여름밤 축제의 불꽃놀이마냥, 있는 힘껏 하늘을 때리고는 펑 하고 흩날렸다.

그리고 개개의 불꽃들은 열 추적 유도 미사일처럼 땅 위의 있는 두 명의 남자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미사일의 숫자는,

실로 까마득한 무한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불꽃놀이다.’

막는 것도 피하는 것도 불가능.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마탄의 빗줄기 사이에서 놈들은 그저 발버둥만 치다가 탈진해서 죽어 버리겠지.

펩은 공중에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상상한 그림 그대로였다. 도그아이드 킴은 얄따란 철근을 부지런히 휘저어 가며 탄환들을 힘겹게 튕겨내고 있었고, 암귀 역시 <마나 배리어>와 <포스 디펜더>에 의존해 간신히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멍청이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이제 탄창은 모조리 동이 났지만, 걱정이라곤 일체 없었다. 님로드 스톤이 이미 구사한 술식의 마력까지도 계속해서 증폭시켜 주고 있었기에, 실시간으로 마법을 무한히 복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압도적인 승리는 벌써 정해져 있었다.

이대로 느긋하게 놈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무리를 지은 다음 시체를 확인하면 끝날 일이다.

‘…….’

그런데.

뭔가 놈들의 움직임이 묘했다.

‘이상하군. 방어만 하고 있기에도 분명 기력이 모자랄 텐데,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고 있잖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들을 쳐내면서, 놈들은 마탄의 빗줄기를 서서히 비집고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잠깐, 저쪽은…….’

펩은 곧 눈치챘다.

놈들이 향하고 있는 지점에는 분명히, 아까 전 자기 손으로 처단한 동료, 벅스의 시체가 있었다.

얼마 안 가 그들은 시체 앞에 도달했다. 곧이어 유클리드, 암귀가 벅스의 권총을 집어 들었다.

철컥―.

그가 총구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조준한 것은 공중의 적― 펩이었다.

‘설마 날 쏘려는 셈인가? 우습기는!’

펩은 코웃음 쳤다. 저 위치에서 고위력의 마탄을 쏜다고 해도 방호 마법을 부수지는 못할 터였다.

자아, 쏠 테면 얼마든지 쏴 봐라.

님로드 스톤을 뚫을 수 있다면 말이다.

든든한 방패 도그아이드 킴이 탄환 세례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동안, 유진은 마력을 끌어모았다.

유진이 사용한 마법은 <물리 관통 술식>도, <탄속 가속 술식>도, <집중 저격 술식>도 아닌.

“<강화>.”

실로 단순무식한 <강화>.

오로지 그뿐인 싸구려 마탄.

타아아아아앙―!!

격발의 순간. 보랏빛 축포가 터졌다.

쏘아 올린 총탄은 여름밤의 혜성처럼 올곧게, 그저 올곧게,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꿋꿋이 나아갔다.

‘소용없어.’

펩은 유진의 마탄이 자신의 방호 마법을 뚫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당연한 추측이었다. 님로드 스톤의 힘은 결코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

다만,

그가 간과했던 점은.

‘어?’

유진의 진심을 낸 출력이,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는 것.

쨍강―!

방호 마법이 깨졌다. 겨우 총탄 한발에.

그리고 보호막을 깨뜨린 그 총알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채로, 펩의 몸을 향해 슉 날아들었다.

“크윽!?”

푸슉―. 총탄이 턱뼈를 깎으며 스쳐 지나갔다.

펩은 몸을 비틀었다. 찌릿한 충격 직후 쓰라린 통증이 몰려왔다.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다.

‘뭐, 뭐야, 방금 건……?’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직후,

두 번째 충격이 복부에 전해졌다.

이번에 날아온 것은 쇠막대기였다.

도그아이드 킴이 철근을 집어던져 하늘에 떠 있는 펩의 옆구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억!”

펩은 또다시 비틀거렸다.

내장이 어긋난 고통에 정신이 잠깐 아득해질 뻔도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데미지는 꽤나 있었지만 역시나 이번 것도 치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젠장, 감ㅎ…….”

분노에 이를 꽉 깨문 그 순간.

펩은 수상쩍은 기류를 감지했다.

고개를 내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땅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어라.

……다른 놈은 어디 있지?

그는 뒤늦게 눈치챘다.

지금 순간적으로 정신 집중이 끊겨,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던 마탄의 세례가 아주 잠시 멈췄음을.

그리고 텅 빈 하늘의 공허한 틈에서,

어느새 한 남자가 눈앞에 도달했음을.

“헛.”

유진이었다.

<강화>로 흉내 낸 도약 마법으로 하늘을 날아, 닿을 수 없어 보였던 공중의 적에게 마침내 닿았다.

‘머저리 같은 놈.’

펩은 씨익 웃었다.

그는 유진의 속셈을 꿰뚫고 있었다.

‘접근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님로드 스톤은 접촉한 마력을 증강시킨다. 이는 누구 한 사람의 마력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가까이에 접근해서 스톤의 효과를 같이 받으려 했겠지. 하지만 멍청한 짓을 했구나.’

애초에 님로드 스톤의 특화 마력은 청색 마력.

저놈의 자색 마력으로는 반의반만큼의 효율도 얻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미 사전 조율을 마쳐 내 것이나 다름없는 마석에 무임승차를 하려고 했다니.

‘넌 이제 끝이다. 암귀.’

근접한 것은 오히려 실수였다.

끝장낼 기회를 준 셈이었으니까.

‘한 방에 보내주마.’

펩은 손끝과 스톤에 마력을 장전했다.

근거리에서 가장 효율적인 파괴 마법이라 한다면, 무엇보다도 이것만 한 마법이 없지.

“<폭렬파>!”

최대 출력. 최대 증폭. 최대 파워.

놈은 이 <폭렬파>에 맞아 허무한 최후를 맞이할 터였다. 형체조차 남지 않고 먼지로 스러질 터였다.

그때.

유진 또한 마법을 구사했다.

“<폭렬파>.”

서로 짠 것처럼 사용한 똑같은 마법.

청색과 자색의 폭발이 장엄하게 부딪혔다.

그의 최후의 순간은,

단 1초도 되지 않았다.

‘아.’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보라색이었다.

은은한 자색 빛이 온 시야를 뒤덮었다. 손끝의 청색 마력은 완전히 먹혀서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출력에서 밀렸다고? 내가?’

처음부터 유진은 님로드 스톤을 이용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

‘말도 안 되잖아. 이건.’

님로드 스톤으로 증폭할 것도 없이, 유진의 마나 출력과 보유량은 애초부터 펩을 훨씬 상회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소문도 있었지.’

‘암귀는 무한한 마나를 가졌다 하는.’

‘당연히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옛날이야기가 있다.

4,000년을 산 대마법사가 자신의 심장을 어딘가에 숨겼다고 하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

‘이게 노웨어맨의 심장이 지닌 힘인가.’

최후의 순간.

펩은 생각했다.

‘갖고 싶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추악하고도 순수한 욕심.

‘갖고 싶었어.’

눈을 감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라곤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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