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The Murder Mystery (2)
싸늘한 긴장이 감돌았다.
“너그는 이 늙은이가 글케 우습나보이.”
“…….”
“난 니들 죄다 갈아 마실 자신 있는데.”
도그아이드 킴의 새까만 눈동자가 번뜩였다.
타이어 냄새나 피 냄새 따위보다도 몇 갑절은 더 진한 살기의 냄새가, 시나브로 콧속을 누볐다.
“어데 한번 해보까? 으이?”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혼자서 다른 여섯을 조져 버릴 심산이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없기는 뭐가 없어? 아까부터 계속 생사람 잡고 앉았구마. 차라리 내가 다 쓸어버리는 게 낫지.”
“그러니까 말하고 있잖아.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쪽이 그럴 맘만 먹으면 우릴 다 죽이는 건 일도 아니겠지. 그냥 대놓고 면전에서 다 죽여 버릴 수도 있는데, 야밤에 이런 식으로 몰래 살인을 하거나 하는 좀스러운 짓을 도대체 왜 하겠어?”
도그아이드 킴은 범인일 확률이 낮다.
동기도 불분명하며 개연성까지 적다. 돈이 목적이었다고 치면 훨씬 깔끔한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펩이랑 같은 텐트를 쓰는 사람이 누구지?”
“저, 점니다, 오마르임니다…….”
“그가 몇 시에 밖으로 나갔는지 혹시 기억해?”
“모, 모르겟슴니다. 오마르 일찍 잣슴니다. 리더가 텐트에 들어온 게 언제엿는지도 잘…….”
“시체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곧장 캠프로 돌아왔겠지.”
내가 시체를 발견한 뒤 캠프에 그 사실을 알렸을 때, 누군가와 같이 있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즉, 나를 포함하여, 사건이 벌어진 당시에 제대로 된 알리바이가 있는 사람은 제로.
우리들 중 누구라도―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
“잠깐만, 근데, 그건 어디 있지……?”
그 무렵.
잠자코 있던 잭 린든이 물음표를 띄웠다.
“님로드 스톤 말일세. 작업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분명 리더가 맡아서 관리하기로 하지 않았나?”
파티 멤버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벅스는 허겁지겁 죽은 시체의 몸을 뒤져 살피기 시작했다.
“……없어…….”
우리는 시체 주변을 탐색하고, 다시 캠프로 돌아와 리더가 묵었던 텐트 안을 샅샅이 뒤졌다.
“빌어먹을! 여기에도 없잖아!”
님로드 스톤이 사라졌다. 잭 린든은 천막의 간이침대를 발길질로 뒤엎으며 고래고래 성을 냈다.
“범인이 가져간 모양이군.”
“젠장, 이 개자식 같으니!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찾으면 대가리를 찢어 버리겠어! 젠자앙!”
“이봐, 너무 그렇게 열 내지 마.”
“열을 안 내게 생겼나! 그게 얼마짜린데! 천만 달러짜리란 말이야! 내 천만 달러가 없어졌다고!”
그는 분을 못 이긴 듯 주먹으로 책상을 몇 차례씩이나 내리쳐, 결국에는 부숴 버리고 말았다.
“…이봐, 카이트.”
“왜.”
“그게, 설마 싶어서 묻는 건데, 그, 스톤을 훔쳐 간 범인이 혹시…… 자네인 건 아니지……?”
나는 눈살을 강하게 찌푸렸다.
지금 착용한 가면은 입과 코만 가리는 형태였던지라, 내 언짢은 눈빛이 그에게 훤히 드러났다.
“아, 아니, 딱히 자네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자네가 자주 그런 짓을 하지 않나……?”
“네 말은 내가, 평소에도 자주 돈 때문에 아무나 막 죽이고 다니는 쓰레기 새끼라고?”
“으억, 아냐! 그게 아니고! 지, 진상을 알고 보니 자네가 뒤에서 조종을 했다거나, 통수를 쳤다거나, 뭐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잖아. 엉? 그러니까는 그, 이번에도 혹시 그런 것이 아닐까 해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잭 린든은 예전부터 <펍 미드나이트>의 주인장에게서 나에 관한 썰을 자주 들었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벌였던 짓거리들을 알고 있는 거였다.
“이번은 아니야.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아, 그런가……?”
어쩐지 그는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은 범인이 나라서, 행여 자기한테 소정의 떡고물이 떨어지리라 기대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좌우지간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외부와의 연락은 일체 불가능. 다음 헬기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약 36시간.
그동안에 어떻게든 리더를 살해한 범인을 색출하고, 범인이 훔쳐 간 님로드 스톤을 되찾아야 한다.
나와 잭 린든은 우선 시신이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사라진 물건의 행방을 찾아낸 사람은 없었다.
“시체 안쪽 주머니에 이런 게 있었어.”
벅스가 구겨진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그것은 Z번대 구역 일대의 대략적인 지형과 작업 경로 등이 그려져 있는 작전 지도였다.
“음……?”
나는 그 지도에서 특이한 부분을 발견했다.
작업 경로와는 상당히 떨어진 지점 중 일부에, 보드 마커로 직접 그린 빨간 체크 표시가 있었다.
“리더가 죽기 전에 너한테 무슨 얘기를 나누자고 했었다며. 그 지도랑 뭔가 관계있는 거 같은데.”
“글쎄…….”
“거기 그 표시들은 뭐야? 짐작 가는 거 있어?”
내가 긴가민가해 하고 있던 와중, 옆에서 지도를 엿본 잭 린든이 입을 크게 벌려 소리쳤다.
“님로드 스톤을 숨겨 놓은 장소일지도 몰라!”
“뭐?”
“이제야 알겠어! 리더는 스톤을 숨긴 다음 그걸 카……. 유클리드에게만 알려주려고 했던 거야. 물건을 우리 몰래 꽁쳐놨다가 나중에 둘이서만 나눠 먹자고 설득하려 했다 이 말이지! 살해당한 이유는 그 사실을 다른 누군가한테 들켰기 때문이고!”
잭 린든의 추리는 얼핏 그럴싸해 보였으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형편없는 구석들이 금세 탄로 났다.
“당신 바보야? 표시된 지점은 캠프에서 10킬로미터 넘게 떨어져 있잖아. 리더는 하루 종일 우리랑 같이 있었는데, 여길 다녀올 틈이 어디 있어?”
“어엉……?”
벅스의 맹공에 잭 린든은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의 추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현시점에 단서는 이 지도뿐이었다.
“그래도 뭐, 가보기는 해야겠지?”
모두의 의견은 동의로 좁혀졌다.
날이 밝을 때까지는 아직 멀었다.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바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지도에 표시된 부분은 두 군데.
Z구역의 랜드마크인 ‘지옥못’을 중심으로 각각 반대편인 동쪽과 서쪽의 구획에 자리해 있었다.
“부대를 나눠야겠지?”
지도상으로 봤을 때 두 장소를 모두 들르게 되면 왕복까지 최소 10시간 이상이 소요될 터였다.
짧은 의논 끝에 제비뽑기로 팀을 정했다. 결과는 나와 벅스, 도그아이드 킴. 세 명이 1팀이 되었다.
“잠깐.”
본격적으로 움직이려던 찰나에,
대뜸 벅스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당신들이랑 같은 팀이라니 불안한데.”
“뭐가 불안해?”
“둘이 유력 용의자잖아.”
“웜마, 아직도 날 의심하는겨?”
“가령 당신네가 범인이 아니라 쳐도, 본인 안위 때문에 나를 해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난 이 팀에서 제일 약하니까.”
“허어, 몸덩이는 백두산만 한 처자가 뭔 놈의 겁이 그리 많을꼬. 덩칫값 좀 해라, 예끼.”
“시끄러워! 아무튼 난 불안하다고!”
“그래서 뭘 원하는 건데? 팀 바꿔 달라고?”
“아니. 무기만 여기 두고 가. 어차피 그쪽까지 가는 길은 정화가 끝나서 괴수도 거의 없으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든가. 난 상관없어.”
“할배는?”
도그아이드 킴은 잠시 우리를 슥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칼자루를 손으로 확 붙잡았다.
“……?!”
벅스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도그아이드 킴은 칼을 빼는 듯한 시늉을 하다가, 멈칫했다.
“흠.”
노인은 입술을 쭉 내밀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후 허리에 묶은 칼집의 끈을 풀어, 칼을 텐트 옆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이러면 되겠나?”
“…….”
“자자. 어서 일 보러 가자고, 젊은이들.”
의외로 협조성 좋은 김씨의 태도에 벅스는 얼이 살짝 나간 듯 보였다.
우리는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출발했다. 두 시간여의 행군 끝에, 드디어 그 연못 앞에 당도했다.
지옥못.
멸망한 도시의 한복판, 땅속 깊숙이 꺼진 싱크홀 바닥에 오염체들이 쌓여 만들어진 죽음의 호수.
맨틀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지열로 인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에테르 마그마가 오염체를 녹여 찐득한 가스가 생성되는데, 이것이 시온 전체에 널리 퍼진 독성 공기의 원천이었다.
괴수마저도 있기를 꺼리는 장소인 만큼, 접근에 있어 각별한 주의를 요했다. 방독면 착용은 필수.
1팀과 2팀은 거기서 갈라졌다. 표시된 지점까지 가려면 다시 한 시간 정도를 걸어야 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뭐야……?”
이윽고 까무러치게 놀랐다.
놀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찢어진 텐트와 간이침대.
―바닥에 널린 통조림 쓰레기.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장작.
마치.
누군가 살고 있었던 것 같은 풍경.
“우리 말고, 또 누가 여기 있었던 거야……?”
리더가 나한테 알려주려고 했던 게 이거였나.
캠프에서 고작 10km 떨어진 장소에 홀로 숨어 살고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 그 존재에 대해서.
“얼씨구, 유력 용의자가 한 명 늘었구만.”
“한 명이 아닐지도 몰라. 지도에 표시된 지점은 저쪽 반대편에도 하나 더 있었으니까.”
“그럼, 두 명씩이나 있단 말이야……?!”
시온 퀘스트의 각 구역에는 베이스캠프가 있고, 해당 구역을 드나들 수 있는 건 캠프의 멤버들뿐.
작전 지역에서 한참 벗어난 이런 장소에 생활의 흔적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다른 캠프에서 낙오되거나 하여 조난된 경우일까.
“어쨌든 간에 경계 대상이야.”
리더인 펩은 이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다가 살해당했다.
어떠한 목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놈들이 우리의 적이라는 사실.
“2팀이랑 합류하자. 저쪽도 뭔가 발견했겠지.”
우리는 일단 무전기로 연락하기 위해 최대한 방해전파가 없는 곳을 찾아 주변을 헤맸다.
그나마 주파수를 잡을 수 있었던 곳은 반대편과 거리가 가까운 지옥못 절벽 앞이었다.
“아. 아. 들리나?”
무전을 보내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저쪽은 주파수가 잘 안 잡히는 모양인데.
“저기 봐.”
내가 무전기랑 씨름하고 있었을 무렵, 옆에 서 있던 벅스가 싱크홀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누가 있어.”
나는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저편의 절벽에 옆모습 같은 실루엣이 보였다. 가면의 망원 렌즈로 확대해서 보니, 폴란드인이었다.
그 대머리 친구는 이쪽 기준 오른편에 서 있는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방향은 지옥못에서 올라온 시뻘건 가스 구름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봐. 들리나? 응답하라.”
나는 계속 무전을 보냈다. 폴란드인은 무전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그가 뒷걸음질을 쳤다.
“……?”
뭐지?
뭔가 이상했다.
이상함을 느낀,
바로 그 직후에.
“어?”
폴란드인의 머리가 터지며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그의 몸뚱이가 힘없이 뒤로 축 고꾸라지면서 절벽 밑 지옥못의 구덩이로 추락했다.
터엉―!
그 직후에 총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기분 나쁜 메아리가 되어 호수 주변에 웅웅 하고 울렸다.
「드, 들림니카……?」
그러고 나서 무전이 들려왔다.
전투 보조원, 오마르의 목소리였다.
「여기, 그, 시체를 발견햇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