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The Murder Mystery (1)
오후 6시.
베이스캠프에서는 소박한 연회가 치러졌다.
연회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전투 식량과 통조림뿐인 초라한 잔칫상을 차려놨을 뿐이지만, 적어도 싱글 몰트 위스키 같은 고급진 술은 몇 병인가 있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작전 리더인 펩이 축사 겸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늘의 성과로 저희 팀은 3일 치 작업 할당량을 다 채웠을뿐더러, 하루 만에 메인 플랜트 공략까지도 성공했습니다. 파티 전원의 성실한 공로, 특히 이번에 신규로 단기 지원을 오신 여러분 덕이 매우 큽니다. 본 작전 책임자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리더에게 딱히 열띤 성원 따위는 없이, 곳곳에서 소심하게 박수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지만, 다들 각자 흐뭇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임무 목표를 완수했기 때문에 상근 인원인 저와 벅스, 오마르 또한 오는 일요일에 지원 멤버 여러분과 함께 시에라시티로 복귀할 겁니다. 추가 보수는 전원이 맥시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펩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다음은, 전리품에 관해서인데…….”
바로 그즈음부터.
듣는 이들의 청각이 예민해졌다.
“자잘한 습득품의 경우 모두의 동의하에 기관으로 송부시키는 게 일반적인 방침이지만, 이번에 발견한 그것만큼은 그런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될 테지요.”
님로드 스톤.
마력과 반응하여 그 출력과 성능을 일약 급진적으로 상승시켜주는 증강계 특질의 최상품 희귀 마석.
마법사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물건인데다 수집용 보옥으로서의 소장 가치 또한 높아, 민간 거래 금지 품목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일단, 이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분배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습니다만…….”
“고민할 게 뭐 있나? 그냥 암시장에 갖다 팔고 대충 그 돈을 여덟 명이서 나누면 되잖아?”
“그렇게 쉬운 얘기가 아닙니다, 잭. 아시다시피 님로드 스톤은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닌지라, 돈으로 바꾸려고 해도 거래하는 것 자체가 까다롭죠. 빼돌린 물건인 만큼 세금 같은 법적인 문제도 있고요.”
펩의 말이 옳았다.
님로드 스톤은 경매 시작가만 1억 달러가 넘는 초고가의 아이템이다. 고로 환전할 때까지 최소 몇 주, 혹은 몇 달 이상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건 거래나 보관은 누가 하지?
만약 중간에 먹고 튀어 버린다면?
불상사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 리더의 말마따나, 전리품 처리와 분배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할 셈인가?”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잭 린든의 물음에, 펩이 차분하게 답했다.
“기관 측에 회수를 맡기는 겁니다.”
순간.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특히나 질문을 던진 잭 린든이 무척이나 노여워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힙 플라스크를 바닥에 냅다 집어 던지는 등으로 알기 쉽게 열불을 토했다.
“뭐? 기관한테 맡긴다고? 제기랄, 웃기지 마! 우리가 찾은 물건이야. 우리가 가져야 할 돈이라고! 그걸 왜 나랏놈들한테 갖다 퍼 줘? 절대로! 안 돼!”
오크 사내가 보여준 분노는 다른 이들의 반응까지도 여실히 대변해주었다. 실제로 리더의 선언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파티 멤버들 중 아무도 없었다.
“진정하시죠. 물론 오해하실 만한 여지도 충분히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입니다.”
펩은 씩씩대는 잭 린든과 언짢은 표정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님로드 스톤을 기관에 회수시킨다면 저희가 직접 빼돌렸을 경우보다 향후 전개가 여러모로 훨씬 안전해집니다. 무엇보다 물건 보관이나 거래 과정에 생길 수 있는 여러 트러블들을 예방할 수 있게 되죠.”
리더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적지 않은 돈인 만큼 보험은 필요했다. 어쨌건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다시금 말하지만 이게 최선입니다. 의논은 더 해보겠으나, 우선 현재 방침은 그렇게 정했습니다.”
그의 결정을 선뜻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더 나은 해결책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벅스의 말에 의하면 님로드 스톤의 거래가는 대략 3억 달러 선에서 시세가 형성된다고 하더군요. 어떻게든 기관 측과 조율하여 저희가 받을 몫의 수수료를 최대한 늘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못해도 한 명당 1,000만 달러는 떨어지게 할 것이란 리더의 말에, 끝내 잭 린든도 수긍한 듯 보였다.
좌우지간 브리핑은 그것으로 끝났다.
생각해 보면 천만도 엄청나게 큰돈이 아니던가. 이제 남은 이틀간 캠프에서 노닥거리다가 시에라시티로 돌아가면 그때부터는 다 같이 백만장자였다.
졸지에 기분이 다시 좋아졌는지, 잭 린든은 호쾌하게 병나발을 불어 대며 술판을 주도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무렵.
“유클리드 씨.”
캠프 리더, 펩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은 수고 많으셨습니다.”
“음.”
“대단하시더군요. 설마 정말로 혼자서 루트 공략에 성공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별거 아냐. 그쪽이 어그로 끌어준 덕분이었지.”
“……그런데, 실은 조금 의논할 게 있습니다만, 혹시 이따가 밤에 잠시 따로 뵐 수 있겠습니까?”
그가 물었고, 나는 갸우뚱했다.
“무슨 의논?”
“죄송합니다. 지금 말씀드리긴 좀 그렇군요.”
어쩐지 태도가 묘하게 수상쩍었다.
뭔가 중요한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자정에 캠프 뒤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그런 말을 남기고서 내 옆을 떠났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쭉 흘려보냈고,
어느샌가 자정이 되었다.
침실 천막에서 빠져나와 캠프 뒤편으로 향했다.
베이스캠프 뒷마당에는 타이어 숲이 있었다. 폐타이어가 가득하여 마치 수풀처럼 되어 있는 곳이었다.
“펩?”
헌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속한 당사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타이어 사이를 걸어 헤치며 주위를 탐색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붉게 물든 밤하늘 아래, 고무 냄새만이 즐비했던 그곳에서 다른 종류의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
….
피 냄새였다. 틀림없었다.
코를 찌르는 역겨운 피비린내.
터억―.
발등에 무엇인가가 걸렸다.
처음에는 타이어인 줄 알았다.
허나 발에 걸린 그건 타이어보다 좀 더 크고 묵직했다. 슬쩍 고개를 내려 아래쪽을 쳐다보자, 거기에 사람 몸뚱이만 한 뭔가가 마네킹처럼 쓰러져 있었다.
“이런 젠장.”
당연하게도,
그것은 시체였다.
***
시신은 머리가 완전히 으깨져 있었다.
“끔찍하구만.”
얼굴로는 누구인지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한 상태였지만, 체구와 복장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파티의 리더, 펩의 시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괴수한테 당한 건가?”
“아니. 베이스캠프 주변 1km 내는 24시간 방호 시스템이 가동해 있어서 괴수가 침범할 수 없어. 만에 하나라도 한두 마리가 안에 들어왔다 해도 끽해야 C급일 텐데, 리더가 그딴 송사리한테 당할 리는 없지.”
장비 관리자 벅스가 시체를 살펴보며 말했다.
“그러면, 사람이 저지른 짓이라고?”
“상처 보면 알잖아. 쇠몽둥이 같은 걸로 몇 번씩 내려친 게 아니면 이런 식으로 뭉개지진 않아.”
“Z3구역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없을 텐데.”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범인은 우리 중에 있어.”
그 한마디는 뒷목에,
아주 날카롭게 꽂혔다.
“처음에 발견한 사람이 누구랬지?”
“나야.”
주검을 둘러싼 파티 멤버들 사이에서 내가 앞으로 나왔다. 벅스는 찌푸린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왜 밤중에 혼자 이런 데서 어슬렁거렸대?”
“리더가 따로 만나 의논할 게 있다고 했어.”
“그런데 와 보니까 죽어 있었다? 너무 뻔한 변명 같은데.”
“미안한데, 그쪽은 지금 날 의심하는 건가?”
“수상한 녀석이 당신밖에 없잖아.”
반박할 말은 딱히 없었다. 정황상 최초 목격자인 내가 의심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리더는, 펩은 강해. 어중이떠중이한테 죽을 녀석은 아니야. 즉, 범인은 리더보다 강한 놈이란 거지.”
“그래서 내가 범인이다?”
“잘 아시네. 홀몸으로 플랜트 루트를 공략하는 괴물 같은 놈이 여기 당신 말고 누가 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그럴싸한 논리였지만, 혼자서만 덤터기 쓰는 것은 역시나 좀 억울했다.
“나뿐만이 아닐 텐데.”
“뭐?”
나는 곁눈질로 저편에 선 노인을 바라봤다.
이 상황에도 졸려 죽겠다는 듯 연신 하품을 쏟아내고 있는 도시 최강의 칼잡이, 도그아이드 킴.
“저 양반도 말도 안 되게 강하잖아.”
“…….”
“시체의 머리에 둔기로 여러 차례 공격을 가한 흔적이 있었지. 김씨가 쓰는 무기랑 부합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나보다도 저쪽이 더 의심스럽지 않나?”
벅스는 침묵했다. 반박할 말이 딱히 없어 보였다.
“그리고 범인이 한 명뿐일 거라고 가정하지 마. 어쩌면 두 명 이상일 수도 있어. 게다가 속임수를 쓰거나 함정을 파 놓거나 한다면, 그리 썩 강하지 않아도 사람 하나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고 말이야.”
아무래도 단서가 모자랐다. 시체와 그 주변을 좀 더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대체 왜 죽인 거지……?”
잭 린든이 의문을 표한 그때.
“돈.”
어제부터 하루 종일 줄곧 한마디도 않고 있던 두 대머리 폴란드인 중 하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작전 중 사망한 인원 몫의 보수는 생존한 인원에게 지급된다. 죽은 사람이 생기면. 돈이 더 생겨.”
“…….”
“돈 때문에 죽인 거라면. 분명 더 죽일 거다.”
오싹해졌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흘겨봤다.
……이 중에 범인이 있다.
……아마 기회가 생긴다면, 그 녀석은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것이다. 언제든지. 망설임 없이.
“제일 수상한 건 역시 당신이야. 유클리드.”
벅스의 눈초리가 나한테 푹 꽂혔다.
이어서 그녀는 도그아이드 킴을 째려봤다.
“당신도 의심스러워. 할배.”
“잉? 나?”
“돈을 노리고 리더를 죽인 거 아냐?”
“어이쿠, 내가 뭣 하러 그런 짓을 하누. 댁헌티는 나란 놈이 그리 쪼잔한 인간으루다가 보였나?”
도그아이드 킴은 킬킬 웃으며 말했다.
“설령 돈을 원했다고 쳐도 내 글카진 않지.”
그의 째진 눈매가 우리를 슥 돌아보았다.
“여기 있는 전원 다 죽여 버리고 가져가면 될 뿐인데, 왜 귀찮게 한 놈씩 몰래 죽이겠냐 이 말이야.”
섬뜩―.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왜. 못 할 것 같나?”
투명한 칼날이 목덜미를 겨누고 있었다.
농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가 진심을 낸다면 분명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도 남았다.
“그쯤 하지.”
무거운 침묵이 감돌던 와중,
내가 나서서 목소리를 냈다.
“그쯤 하다니, 뭘 그쯤 해?”
“헛소리 좀 그만하란 얘기야. 개눈깔이라 눈치가 없는 건 뭐 그렇다 치겠지만 적어도 분위기는 읽을 줄 아셔야지. 안 그럼 오래 못 살아요, 할아버지.”
“허허, 이놈 말본새 좀 보게.”
도그아이드 킴은 킥킥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랑 해보잔 게냐?”